김훈 작가(74)는 젊은 시절 우연히 안중근 신문조서를 읽었다. 이토 히로부미를 총으로 쏜 뒤 체포된 안중근 의사가 일본인 검찰관과 나눈 문답이었다. 김 작가는 “말 못할 충격”을 받았다. 안중근의 대의와 명분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었다. 김 작가는 ‘영웅 안중근’에 가려 잘 보이지 않던 서른한 살 ‘청년 안응칠(안중근의 아명)’을 읽어냈다.
조서 속에서 안 의사는 자신의 직업을 ‘포수’ 혹은 ‘무직’이라 밝혔다. ‘어디를 겨누었느냐’는 질문에 ‘가슴을 겨누었다’고 답했다. 김 작가는 “강과 약의 이항대립으로 구성되는 이 세계의 벽을 부수는 날것의 에너지”를 느꼈다. 함께 의거에 나선 우덕순과의 만남, 하얼빈으로 향하는 여정, 그사이 둘이서 1909년 10월26일의 계획을 논하던 기록을 전율하며 읽었다. “사상적 배경으로 혁명에 나서는 사람의 몸가짐은 이렇게 가벼운 것이구나, 발딱 일어나는 것이구나. 혁명의 추동력이 되는 삶의 열정, 격정이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그때부터 작가는 안중근을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어왔다. 안중근으로 소설을 써야겠다 마음먹었지만 ‘고단한 밥벌이’를 이어가는 동안 “방치해왔다”. 틈틈이 자료를 찾고 공간 여러 곳을 들여다보면서도 안중근의 짧은 생애가 뿜어내는 에너지를 감당하기 힘들었다. 잊어버리려 애쓰고 뭉개는 동안 작가는 늙어갔다. 지난해 몸이 많이 아팠고 올해 봄에 어느 정도 건강을 회복했다. 더 이상 미룰 수 없어 연필을 잡았다. 덜 만족스럽더라도 빨리 끝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신작 장편소설 〈하얼빈〉(문학동네)은 그렇게 완성되었다.
김훈 작가의 소설들은 대부분 옛사람이 남긴 기록에서 출발했다.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읽고 〈칼의 노래〉를, 정약전의 〈자산어보〉를 통해 〈흑산〉을, 안중근 신문조서와 〈동양평화론〉을 보고 〈하얼빈〉을 썼다. 사실의 기록 속에서 인물의 내면과 사회의 모순을 포착하고 때로 상상했다. 인간의 절망과 희망, 위대함과 나약함을 동시에 다루었다. 작가 말에 따르면 〈칼의 노래〉 속 이순신은 어떠한 희망의 허상도 제시하지 않으면서 절망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인물이다. 반면에 〈하얼빈〉 속 안중근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의 목표를 갖고 싸운 사람이다. 목표는 ‘동양 평화’다. 같은 목표를 말하지만 반대의 방법론을 지닌 이토 히로부미와 안중근은 하얼빈에서 비극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다. 작가는 식민지 현실, 독립의 대의, 일제의 악행, 민족 투사의 영웅성 같은 것들보다도 그 필연성과 비극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작가는 〈하얼빈〉이 반일 민족주의 소설로 이해되는 것을 가장 경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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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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