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작가(왼쪽)가 9월26일 경기 안산시 단원구 선감학원 사건 희생자 유해 매장 추정지에서 희생자를 위해 술잔을 올리고 있다. ⓒ김흥구

경기도 안산의 작은 섬 선감도. 지금은 육지와 연결됐지만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대부도에 딸린 외딴섬이었다. 지난 9월26일부터 닷새 동안 이곳(안산시 단원구 선감동 산 37-1번지)에서는 선감학원 사건 희생자 유해 매장 추정지 시굴 조사가 이뤄졌다. 시굴에 앞서 김훈 작가가 추도사를 했다. “우리는 언제까지 ‘미안해’를 거듭하면서 살아가야 하는가. 과거의 악과 화해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가능하다면 오직 사실의 바탕 위에서만 화해가 가능하다. (오늘 유해 발굴로) 많은 시신들이 확인돼 그 힘에 의해 화해의 단초가 잡히기를 기원한다.”

발굴 현장에는 선감학원 피해자들도 참석했다. 김영배 선감학원아동피해대책협의회장은 “강제노동 동원, 착취, 구타 등 인권유린과 배고픔의 고통을 못 이겨 탈출을 시도하다가 수백 명이 죽었다. 그중 약 150구의 시신이 이곳에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한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 김 아무개씨는 “매일 기합 받고 매 맞았다. 50년 전 매질과 배고픔을 못 참고 도망가다 뻘밭에 빠져 죽은 친구를 내가 이곳에 묻어줬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닷새 동안 이뤄진 현장 시굴 조사에서 조사관들이 조심스레 흙을 파내자 그 안에서 치아 몇 개와 하얀색 단추가 나오더니 이어서 파내는 무덤마다 유해와 유품이 나왔다. 무덤 5기에서 발굴된 치아는 총 68개. 감식을 맡은 한국선사문화연구원은 이 치아들을 열다섯 살에서 열여덟 살 사이 청소년들의 것이라고 추정했다. 치아와 함께 발굴된 단추 6개가 선감학원생들이 입던 제복의 단추와 일치해 선감학원 희생자들의 시신으로 밝혀졌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원회) 관계자는 “유골 부식이 진행 중이고, 봉분이 약 150기로 원아대장의 사망자 수에 비해 훨씬 많아서 신속한 유해 발굴을 통해 정확한 사망자 수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선감학원은 일제강점기인 1942년에 설립되어 1982년까지 40년 동안 국가 주도로 운영된 ‘부랑아 보호시설’이다. 1941년 경기도 사회사업협회는 기부금 50만원으로 선감도 전체를 매수했다. 이어 ‘조선감화령’을 근거로 1942년 선감학원을 만들고 아동 200여 명을 수용했다. 이후 미군정이 들어서면서 1946년 경성의 부랑아 수용시설을 경기도로 이관했다. 1957년 경기도는 선감학원 설치 및 보호수용의 근거가 되는 선감학원 조례를 제정해 1982년 폐쇄할 때까지 선감학원을 직접 운영했다.

선감학원 폐원 때까지 수용된 아동 수는 50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중 현재 원아대장으로 입퇴소 연도 및 생년이 확인된 아이들만 4689명이다. 당시 정부는 ‘거리를 배회하거나 걸식하는 아동을 근절한다’는 명목 아래 전국에서 아이들을 붙잡아 선감도로 데려가 가뒀다.

정근식 진실화해위원장이 10월20일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결정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퇴소 사유 가운데 17%가 ‘탈출’

선감학원 피해자 유해 발굴 현장을 찾은 수용자 김 아무개씨는 “열 살 때인 1964년 고향 동인천 인현동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데 어떤 아저씨들이 나를 붙잡아 이곳으로 끌고 왔다. 주로 인천·수원 아이들이 많이 잡혀와 있더라”라고 말했다. 대부분 “옷이 허름해서” “친구들과 놀다가” “주소를 잘못 대서” 등 황당한 이유로 끌려왔다고 한다. 버젓이 부모가 있는 아이도 잡혀 왔다. 이런 경우 원아대장에는 ‘아버지는 숨졌고 엄마는 정신이 나가 행방불명됐다’고 적혀 있다. 실적 채우기 식으로 일단 잡아다놓고 별도의 확인 절차 없이 엉터리로 기재한 것이다.

이렇게 붙잡혀온 아동들은 구금된 채 강제노역, 폭행, 가혹행위, 성폭력 등을 당해야 했다. 국가의 책임 아래 운영된 이곳의 인권침해는 총체적이었다. 붙잡혀온 아이들에게는 지옥 같은 일상이 펼쳐졌다. 새벽에 일어나 운동장에 모인 아이들은 원장의 훈시를 들은 뒤 강제노동 현장으로 끌려갔다. 주로 염전, 축사, 잠실(양잠), 논밭 등으로 이동해 일했다. 이들은 대가를 한 푼도 받지 못한 채 혹사당했다. 말을 듣지 않거나 일이 서툴면 무서운 체벌이 뒤따랐다. 일명 원산폭격, 나룻배, ‘줄빠따’, 한강철교, 비행기 등으로 불리는 단체기합으로 원생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했다. 특히 폭행에는 기숙사의 사장(책임자)이나 반장은 물론이고 경기도의 담당 공무원들도 가담했다고 드러났다.

한창 성장기 아이들에게 중노동을 시키고도 식사는 죽지 않을 만큼만 제공했다. 주식은 꽁보리밥이나 강냉이밥을 주었고, 반찬이라야 무장아찌, 오이지, 김치가 고작이었다. 그마저도 썩은 음식을 내놓아 배고픔을 못 참고 쥐를 잡아먹거나 땅을 파서 흙 속에 사는 애벌레를 잡아먹는 아이도 수두룩했다. 밤에는 1인당 0.3평(약 1㎡)의 공간만 주어져 제대로 몸을 뉘기도 힘들었다. 과밀수용 실태에 대해 피해자 김 아무개씨는 “한 반에 30명이 지그재그로 누워서 잘 정도로 좁아서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라고 증언했다.

배고픔과 학대를 견디지 못한 아이들은 하나둘씩 야밤을 틈타 선감학원에서 탈출을 시도했다. 어린 원생들이 섬을 나가는 유일한 방법은 목숨 걸고 바다를 헤엄치는 것뿐이었다. 조수간만 차가 큰 서해에서 밀려오는 파도에 떠밀려 사망자가 속출했다. 바닷가로 떠밀려오는 시신은 남은 아이들이 근처 야산에 묻었다. 김영배씨는 그렇게 묻힌 아이들이 수백 명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썰물 때가 되면 갯벌 곳곳에 친구들의 주검이 박혀 있었다. 그 시신들을 가마니에 담아 야산에 묻어준 기억이 58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지금까지 선감학원 내부 자료로 공식 확인된 사망자는 29명뿐이다.

선감학원 원아대장에 등재된 4689명을 분석한 결과, 퇴소 사유 가운데 탈출이 824명으로 무려 17%에 이르렀다. 굶주림과 폭력, 강제노역에 시달리던 원생 중 상당수가 섬에서 탈출을 시도하다가 선감도 주변 물살이 센 서해 갯벌과 깊은 수심으로 인해 익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진실화해위원회는 이번 조사에서 신원을 특정할 수 없는 추가 사망자에 대한 진술과 시굴에서 확인된 선감동 산 37-1번지의 암매장 유해, 그리고 800명 넘은 탈출자 등을 감안할 때 실제 사망자 수는 훨씬 많으리라 보고 국가와 경기도에 정식 유해 발굴을 권고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오른쪽)가 10월20일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 피해자를 위로하고 있다. ⓒ공동취재

“위헌·위법적인 부랑아 정책 시행”

선감학원 피해 아동은 국가가 삶을 송두리째 짓밟은 경우에 해당한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이들의 피해는 수용소를 벗어난 뒤에도 계속됐다. 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해 사회에서도 번번이 취업에 실패했고 주로 구두닦이와 공사장 등을 전전하며 어렵게 살아왔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조사 결과, 대부분의 피해자는 여전히 정신적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 퇴소 후 현재까지 정신질환, 인지기능 저하, 스트레스 비적응 반응, 신체적 장애를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이번 선감학원 인권침해 사건 진실규명 신청인 167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선감학원을 생각하면 ‘괴롭고 진땀이 난다’ ‘심장이 두근거린다’라거나 ‘우울하고 불안하다’는 등 피해자들 대부분이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것으로 조사됐다.

진실화해위원회는 10월18일 선감학원 아동 인권침해 사건에 대해 ‘강제구금과 강제노동, 폭력, 사망 등 국가 공권력에 의한 중대한 인권침해 사건’이라고 결론 내렸다. 선감학원이 폐원된 지 40년 만에 국가 차원의 첫 진실규명 결정이다. 위원회는 “국가는 권위주의 시기 위헌·위법적인 부랑아 정책 시행으로 인해 선감학원 수용 아동의 인권침해에 대한 책임이 있다”라고 명시했다. 또 경기도에 대해서는 1982년 선감학원 폐쇄 이전까지 운영 과정에서 발생한 인권침해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부랑아 대책을 수립해 무분별한 단속 정책을 주도한 법무부와 행정안전부, 보건복지부와 경찰, 선감학원 운영 주체인 경기도 등이 총체적 인권유린에 책임을 지고 피해자와 유족에게 공식 사과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국가는 피해 구제를 위해 특별법 제정 등 적절하고 합리적인 조치를 강구하라고 권고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상규명 발표가 난 10월20일 김동연 경기도지사는 피해자 대표들을 만나 공식 사과하고 생활안정지원금 지급과 추모공간 마련 등을 약속했다. 그는 하루 전에 선감학원 현장을 찾아 잔존 시설을 둘러보고 피해자들을 만나기도 했다. 하지만 이에 앞서 경기도 국정감사에서 선감학원 인권유린 피해보상의 주체는 경기도가 아닌 ‘중앙정부’라고 규정한 바 있다. 피해자들로서는 자칫 경기도가 중앙정부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 아니냐고 의심할 수도 있는 대목이다. 앞으로 선감학원 아동 인권유린 사건의 책임을 다하는 과정에서 경기도와 중앙정부의 협력이 중요하리라 보인다.

기자명 정희상 기자 다른기사 보기 minju518@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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