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오전 10시 정부 책임자가 브리핑을 한다. “오늘 자정 신규 사망자 2명, 전체 사망자는 603명.” 언론은 브리핑을 매일 중계한다. 진단(Test), 추적(Trace), 치료(Treat)를 병행한다. 발생 장소를 공개한다. 회사명도 알린다. ‘안전 사회 만들기’ 캠페인 긴급문자도 자주 울린다.

코로나19 방역 이야기가 아니다. 소설가 김훈의 글을 읽고 든 상상이다. ‘김국(편집국장으로 함께 일했던 그의 애칭)’의 사적 자아는 보수적이다. 그런 김국이 노년에 전향해 산재에 천착한다. ‘팩트 신봉주의자’ 김훈은 방역 대응이 일상적 재난 현장으로 확대되기를 바라며 사실의 힘을 역설한다. “‘사실’은 그 자체로서 힘을 내장하고 있지만, 그 힘은 ‘말하기’를 통해서 사회적으로 공유되어야만 현실 속에서 작동한다(〈한겨레〉 5월4일).”

ⓒ시사IN 조남진

이천 화재 참사로 노동자 38명이 숨졌다.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로 노동자 40명이 죽었다. 연도만 바뀌었을 뿐 양상은 똑같다. 2019년 한 해 산재 사고 사망자만 855명이다(산재 질병 사망자는 1165명). 그나마 줄어든 게 이 정도다. 2000년에는 한 해 산재 사고로 노동자가 1414명이나 죽었다. 그때부터 20년이 지났지만 죽음의 양상은 변하지 않았다. 산재 통계로만 갇혀 있는 저 죽음의 사실을 코로나19 대응처럼 공론화하면, 산재 사고 사망자를 줄일 수 있다. 질병관리본부처럼 근로복지공단이나 고용노동부가 적극 나선다면 매일 노동자 3명이 퇴근하지 못하는 현실은 사라진다.  

코로나19 이전으로 돌아가지 말자고 한다. 사회적인 논의가 활발하다. 유독 노동 분야만 거의 다뤄지지 않고 있다. 이제 노동환경도 바꿔야 한다. 사람을 살리는, 안전한 일터 만들기의 기본은 노동 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보장이다. 5월6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무노조 경영’을 포기했다. 헌법에 규정된 권리가 80여 년간 한 기업의 문 앞에서 멈추었다. 비단 삼성만이 아니다. 노조를 경원시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다. 심지어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표방한 이명박 정부는 노동부를 ‘고용노동부’로 개칭했다. 지금도 ‘노동’보다 ‘고용’이 앞서고 우선시된다.

‘주간 코로나19’에서 박혜영 노무사와 신광영 교수(중앙대 사회학과)를 초대해 노동 분야를 점검했다. 박 노무사가 활동하는 노동건강연대는 매달 산재 사고 사망자를 집계한다. 지난 3월 한 달에만 58명이 숨졌다. ‘주차장 진입로 캐노피 지붕에서 물 세척 작업 중 떨어져 사망’ ‘담배 원료 제조용 대형탱크에 빠져 숨져 있는 것을 동료가 발견’ ‘공장 정문 안쪽 도로에서 협력업체 화물차에 치여 사망’ ‘개량공사 현장에서 임목 벌채 작업 중 베어 넘긴 나무에 머리를 맞아 사망’…. 죽음의 사실을 더 읽지 못했다.

기자명 고제규 편집국장 다른기사 보기 unjus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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