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억울한 죽음, 그 진실을 찾아서
  • 김연희 기자
  • 호수 618
  • 승인 2019.07.23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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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0일 건설 현장에서 추락해 사망한 김태규씨는 ‘제2의 김용균’으로 불린다. 그의 누나 김도현씨는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지난하지만 의미 있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스마트폰으로 동영상을 보며 남매는 배를 잡고 웃었다. KBS <전국노래자랑>에 나와 손담비의 ‘미쳤어’를 부른 지병수 할아버지가 화제였던 때다. 누나 김도현씨(29)가 동생 태규씨(25)에게 영상을 보여주었다. 제대 후 한 대기업의 사내 하청업체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던 태규씨는 계약이 만료돼 새 일자리를 알아보는 중이었다. 지쳐 보이는 동생이 잠시라도 웃기를 바랐다. ‘할담비’ 동영상을 보며 웃었던 4월6일은 남매가 함께한 마지막 날이 되었다.

4월10일 수원의 한 아파트형 공장 신축 공사 현장으로 일을 나갔던 태규씨가 돌아오지 못했다. 오전 8시 출근 직후 사고가 발생했다. 건물 5층에서 외벽에 맞닿아 있는 화물용 엘리베이터로 폐자재 운반 작업을 하던 그는 건물 벽과 엘리베이터 문 사이 틈새로 추락했다. 틈새 폭이 43.5㎝나 됐지만 추락 방지 시설은 없었다. 20m 높이에서 추락한 태규씨는 손써볼 틈도 없이 숨을 거두었다. 일용직으로 출근한 지 사흘째 되던 날이었다.

병원 응급실에서 태규씨가 입고 있던 옷가지를 돌려받은 가족들은 순간 숨이 막혔다. 태규씨는 집에서 신고 나간 검은색 나이키 운동화를 그대로 신고 있었다. 시공사인 은하종합건설은 일용직 노동자에겐 안전화와 안전모가 지급되지 않는다고 했다. 엘리베이터는 안전 검사도 받지 않은 미승인 상태였다. 회사는 양쪽 문을 모두 열어둔 채 엘리베이터를 운행했다.

ⓒ시사IN 이명익김도현씨(사진)의 가방에는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자료가 가득하다.
정신없이 3일장을 치렀다. 스물세 살 때 취업 준비용으로 양복을 빼입고 찍은 증명사진이 장례식에서 영정사진으로 쓰였다. “내 동생이 왜 죽어야 하지?”라는 의문이 도현씨의 머릿속을 뒤덮었다. 장례 직후 도현씨는 사고가 난 공사장을 찾았다. 특성화고 졸업 후 단기 계약직으로 여러 공장을 다닌 태규씨는 틈틈이 건설 현장에서 일했다. 동생이 숨지고 나서야, 태규씨가 친구에게 “이렇게 위험한 현장은 처음”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이유를 단박에 알 것 같았다. 엘리베이터뿐만 아니라 1층에서 5층까지 오르내리는 계단도 아찔했다. “그런 곳에서 일하는 줄 알았다면 보내지 않았을 거예요.”

다음 날 다시 사고 현장을 찾았을 때 도현씨는 깜짝 놀랐다. 5층에 있어야 할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이동해 있었다. 사고 직후 고용노동부가 작업 중지 명령을 내린 상태였다. 공사장의 어떤 설비도 작동하면 안 되었다. 이유를 따져 묻자 시공사 직원은 “(1층으로 옮기는 게) 보기가 좋다”라고 답했다. 목격자들의 진술도 엇갈렸다. 사고 당시 5층에는 태규씨 이외에도 작업자가 두 명 더 있었다. 한 명은 사고가 날 즈음에 태규씨가 폐자재 운반을 끝낸 뒤 엘리베이터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말한 반면, 다른 한 명은 폐자재를 옮기는 작업을 하는 도중이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모두 떨어지기 직전 상황을 보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유족들로서는 의문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결국 도현씨는 4월15일부터 직접 사고 원인과 경위를 찾아 나섰다. 도현씨와 어머니, 도현씨의 친구와 태규씨의 친구까지 4명이 움직였다. 낮에는 경찰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산업안전보건공단 등을 돌아다니고 저녁에는 밤을 새우며 녹취를 풀었다. 쳐다보고 싶지도 않은 사고 현장도 여덟 번이나 찾아갔다. 그 내용을 A4 용지 크기의 노트에 빼곡히 적었다. 동생의 억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해 기자회견도 했다. 노트가 한 권에서 두 권으로 늘어나고, 확보한 자료가 많아질수록 도현씨 어깨에 걸린 가방도 묵직해졌다.

개정 산안법 취지 후퇴시킨 하위 법령


조사 과정에서 든든한 지원군도 얻었다. 5월7일 도현씨는 태안화력발전소 하청노동자였던 고 김용균씨의 어머니 김미숙씨를 만났다. 언론을 통해 소식을 접한 김미숙씨가 먼저 연락을 해왔다. 김용균씨와 김태규씨는 1994년생 동갑이었다. 도현씨와 어머니에게 김미숙씨는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되었다. 힘든 이야기도, 먼저 떠난 태규씨 이야기도, 이 아픔을 아는 김미숙씨에게는 편하게 말할 수 있었다.

5월28일은 태규씨의 49재이자 지하철 스크린도어를 정비하다 열아홉에 세상을 떠난 ‘구의역 김군’의 3주기였다. 두 청년 노동자를 추모하는 문화제가 서울 광화문 세종로공원 앞에서 열렸다. ‘너의 잘못이 아니야. 너는 나다’라는 타이틀이 붙은 추모문화제에 도현씨도 참석했다. “유족들이 원하는 건 목격자들의 번복되는 증언 속에서 죽음의 진실이 무엇인지 밝혀달라는 겁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달라는 겁니다.” 발언을 마치고 울먹이는 도현씨를 김미숙씨가 꼭 안아주었다.

ⓒ유가족 제공고 김태규씨(아래)는 사망하기 전 친구에게 “이렇게 위험한 현장은 처음”이라고 말했다.
김미숙씨를 통해 산업재해 피해 가족 네트워크 ‘다시는’도 알게 되었다.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2007년 사망한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부터 제주 생수공장에서 현장실습을 하다 2017년 목숨을 잃은 특성화고 학생 이민호군의 부모 이상영·박정숙씨를 비롯해 김도현씨까지 산재 가족들은 억울한 죽음의 진상을 밝히고 이런 사건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싸우는 중이다.

도현씨는 요즘 산업안전보건법(산안법) 관련 토론회나 공청회에 빠짐없이 참석한다. 지난해 12월 ‘김용균법’으로 불리는 산안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김용균법은 사내하청 노동자가 입은 산재에 대한 책임을 원청에도 물을 수 있도록 해 28년 만에 큰 진전을 이루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법안 개정에 맞춰 4월22일 고용노동부는 하위 법령(시행령·시행규칙)을 입법 예고했다. 이에 대해 노동계는 산안법 개정안의 취지를 후퇴시켰다며 우려한다. 개정 산안법은 ‘위험의 외주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유해·위험성이 높은 작업은 원칙적으로 도급을 금지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는 고용노동부 승인을 받게 했다. 그런데 시행령에서 도급 승인을 받아야 하는 유해·위험 업무 범위가 대폭 축소되었다. 태규씨가 사고를 당한 건설업 관련 조항에서도 여러 허점이 드러났다. 산안법은 건설공사 도급인(시공사)이 건설기계에 관해 안전조치를 해야 한다고 명시했지만, 시행령은 대상이 되는 기계를 건설기계 27종 가운데 4종(타워크레인·건설용 리프트·항타기·항발기)으로 한정했다. 전체 공사 현장의 산업재해와 관련해서도 산안법은 발주자가 예방을 책임지도록 했지만, 시행령에서는 총 공사금액 50억원 이상 발주 시에만 적용하도록 공사 규모를 제한했다. 산재 사고의 40% 정도가 건설업에서 발생하고, 영세 사업장의 사고 빈도가 높은 현실과 맞지 않는 셈이다.

6월14일 도현씨는 산업재해·사회적 참사 피해 가족들과 청와대 앞에서 ‘김용균 없는 김용균법 시행령 제대로 다시 만들어야 합니다’라는 현수막을 펼치고 기자회견을 했다. 생명안전 시민넷 대표로 온 김훈 작가도 마이크를 잡았다. “우리는 산업안전보건법의 하위 법령들이 그 법의 바탕에 깔린 무수한 죽음의 의미를 깊이 성찰해서 노동자 생명의 편으로 돌아오기를 요구합니다. 살려달라는 것입니다. 일하다 죽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내년에 또 2300명이 죽지 않도록 해달라는 것입니다.”

사고 직후 고용노동부가 내린 작업 중지 명령은 곧 풀렸다. 7월 말이면 김태규씨가 사고를 당했던 신축 건물이 준공된다. 경찰은 현장소장 등 시공사 직원 2명을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하고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조사한 고용노동부 경기지청 근로감독관도 기소 의견으로 관련 조사 자료를 검찰에 넘겼다.

7월5일 수원역 앞 추모문화제에는 시민 100여 명이 모였다. 김미숙씨도 자리를 지켰다. 도현씨는 펑펑 울면서도 ‘사랑하는 내 동생 태규씨에게’로 시작하는 편지를 끝까지 다 읽어 내려갔다. “꼭 너를 억울하게 보내지 않을게. 그러니까 항상 지켜봐줘. 너무 보고 싶다. 태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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