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의 공동체 무정과 동정을 넘어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정조 1년(1777년) 초여름 가뭄이 심했다. 정조의 일기 〈일성록〉 5월15일자에 가뭄 이야기가 나온다. 왕이 말했다. “어제는 비가 올 듯한 기미가 매우 다분했는데 끝내 비가 내리지 않았으니 너무도 안타깝다. (중략) 천시(遷市, 시장 옮기기)는 몇 차에 행하는가?” 예조판서 홍낙성이 대답했다. “11차에 행한다고 합니다.” 왕이 한탄했다. “선조(先朝)께서 늘 중대하고 어려운 일로 생각하여 거행하지 않았었다.”농경사회에서 가뭄은 심각한 위기였다. 통치의 기초가 흔들리는 재난이 될 수도 있었다. 뭐라도 해야 했다. 천시 또는 사 은이 솟구치는 산에서 중남미 사회의학으로 김명희 (노동건강연대 운영위원장·예방의학 전문의) 입춘, 경칩, 춘분이 지나도록 쌀쌀한 날씨가 이어지더니 드디어 봄의 전령사가 도착했다. 백련사 동백도, 산동마을 산수유도, 화엄사 홍매화도 그 주인공이 아니었다. 고비사막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 황사와 미세먼지야말로 한반도에 봄이 왔음을 알려주는 진정한 전령사다. 대기 중 미세먼지 농도가 세계 1등이었다는 그날, 거리에는 다시금 마스크를 착용한 사람들이 넘쳐났다. 나도 오랜만에 서랍 속에서 KF 94 마스크를 하나 꺼냈다. 코로나19가 한창 유행하던 시기에 열린 한 행사에서 기념품으로 받은 것이었다.포장지에는 커다랗게 ‘은나노’ ‘ 꿈꾸는 사람은 봄꽃처럼 아름답다 김이경 (작가) 봄 맞은 산에 오른다. 가쁜 숨이 닿는 곳마다 보랏빛 꽃들이 피었다. 제비꽃이다. 톡톡 벌어진 꽃송이가 밥 달라 조르는 새끼 제비들의 앙증맞은 입을 닮았다. 이래서 제비꽃인가 했더니 제비 올 때 핀대서 제비꽃이란다. 어쨌거나 작지만 어엿한 봄, 생명의 전령사다.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며 노래를 흥얼거린다. “내가 너를 처음 만났을 때/ 너는 작은 소녀였고/ 머리엔 제비꽃/ 너는 웃으며 내게 말했지/ 아주 멀리 새처럼 날으고 싶어.”조동진의 ‘제비꽃’이 인기를 끌 때 나는 그 노래에 별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머리에 꽃을 꽂은 소녀라니 총선 전 ‘북풍’ 없었다, 이제 남북 충돌 막을 미래 비전 세워야 김창수 (전 코리아연구원 원장) 1919년 4월11일. 우리 역사에서 처음으로 ‘민주공화국’이 탄생한 날이다. 4월11일이 대한민국 민주공화국 생일인 셈이다. 이전에는 1인 군주가 통치하는 군주제의 역사였다. 1919년 4월11일, 비로소 주권의 소재가 군주에서 국민으로 옮겨왔다. 이날 독립운동가들은 ‘대한민국 임시헌장’을 발표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수립했다.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제로 함’이다.군주주권에서 국민주권으로, 전제군주제에서 민주공화제로 첫걸음을 뗀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헌장 제1조는 오늘날 헌법 제1조 1항 ‘대한민국은 민주 세상을 바꾼 자폐 스펙트럼의 역사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패턴 시커사이먼 배런코언 지음, 강병철 옮김, 디플롯 펴냄“이들은 하루 종일 체계화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자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느리지만 의미 있는 방향으로 변해왔다. 다양한 증상과 강도가 공존한다는 뜻에서 ‘자폐증’ 대신 ‘자폐 스펙트럼’이라 부르게 된 것이 대표적이다. 대중문화에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인물을 그리는 방식도 그들에 대한 오해를 허무는 데 기여했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자폐 스펙트럼 성향이 가진 패턴 찾기 능력, 즉 ‘체계화’에 주목했다. 현상에 대한 호기심을 토대로 끝없는 질문을 통해 검증된 시스템을 좋은 의사는 민중과 어떻게 만나야 할까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1959년 3월20일은 몹시 추웠다. 눈보라도 몰아쳤다. 이미륵의 9주기 기일이던 그날, 전혜린은 이미륵의 친구였던 독일인 T, S와 함께 뮌헨 교외의 묘지를 찾았다. 무덤은 거친 들판 가운데 작은 공동묘지 안에 있었다. “그의 무덤은 아무 장식도 없고 아무 데나 굴러다니는 것 같은 돌로 만든 작은 비석 위에 단 세 글자, 새겨진 한문 李彌勒 때문에 누구의 눈에나 금방 띄었다. … 나는 화환을 비석 앞에 갖다 놓았다(전혜린,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966).”전혜린(1934~1965)은 시대의 신드롬이었다. 수학을 0 몽테뉴에게 배웠다, 슬픔에도 가지치기가 필요하다는 걸 [여여한 독서] 김이경 (작가) 크든 작든 하나의 세계가 무너질 때 마음을 기울여 읽을 수 있는 문장은 많지 않다. 유명한 전기 작가 슈테판 츠바이크는 생의 마지막에 몽테뉴를 읽었다. 파시즘의 광기를 피해 찾아간 브라질의 셋집 지하실에서 몽테뉴의 〈에세〉를 발견한 그는 이 “체념과 물러남의 대가”에게서 “기쁨과 위로”를 얻었다. 그는 죽기 직전까지 에세이 형식의 전기 〈몽테뉴〉(한국어판 〈위로하는 정신〉, 안인희 옮김, 유유 펴냄)를 썼다. 전기는 미완으로 남았지만 남은 문장만으로도 그 간절한 마음을 헤아리기엔 충분하다.한 생애가 저무는 걸 지켜보며, 비슷한 심정 콰이강의 다리에 숨은 조선인의 슬픈 이야기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멀리서 경쾌한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밀림을 행군하는 장병들이 스코틀랜드 군가 ‘보기 대령 행진곡’을 부른다. 들으면 누구나 아, 하게 되는 익숙한 곡이다. 당당히 행진하며 부대가 들어오는 곳은 타이의 정글 속 포로수용소다. 말레이에서 일본군에 항복한 영국군 포로들이 도착한 것이다. 일본군은 전쟁물자 수송을 위해 한창 철도를 건설 중이다. 험준한 협곡을 흐르는 강에 열차가 지날 다리를 건설하면서 포로들을 동원한다. 포로들은 기어코 다리를 완성한다. 그리고 완공 날, 영국 특공대가 다리를 폭파한다. 영화 〈콰이강의 다리〉(1957) 모두에게 불편한 언론을 위해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불편한 언론심석태 지음, 나녹 펴냄“언론은 누구에게나 좀 불편한 소리를 하기 마련이다.”자괴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책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한국 언론은 어떤 정파를 어느 정도 강도로 지지하느냐가 매체의 생사를 가르는 지경으로 몰려 있다. 언론인은 ‘관찰자’ ‘감시자’가 아니라 ‘직접 선수’로 뛰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소비자들은 자신의 입맛에 맞는 언론을 지지하고 반대 언론을 공격한다. 정치권은 이런 상황을 적극 활용한다. 결국 한 언론만 읽어서는 객관적 사실이 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언론은 한 정파에는 친근하지만 다른 정파 한국의 인종차별 논란, K컬처가 위험하다 이오성 기자 최근 한 유튜버가 올린 영상으로 인도 온라인 공간이 들썩이고 있다. 1월18일 현재 구독자 114만명을 보유한 여성 유튜버 니키타 타쿠르는 ‘한국은 왜 인도인을 거부하는가?(Why Are Indians Getting BANNED In South Korea?)’라는 영상을 올렸다. 인도인들이 한국에서 겪는 ‘차별’을 고발한 영상이다.지난해 12월29일 올라온 이 영상은 조회수 765만 회를 기록했고 7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1월 초에 300만 조회수를 기록한 이래 보름 만에 두 배 정도 늘었다. X(옛 트위터)에도 이 영상을 〈경성크리처〉에 부족한 2%는 뭘까 [K콘텐츠의 순간들] 김선영 (칼럼니스트) 1945년 3월, 추운 계절의 끝자락에 서 있던 조선은 그 어느 때보다 술렁였다. 동경대공습 이후 패망의 그늘이 짙어진 일제의 만행은 더 극악해졌으나, 변화를 예감한 이들은 만개할 봄을 기다렸다. 그 시기 경성은 ‘부녀자 연쇄 실종 사건’으로 유달리 더 들썩였다. ‘경성 제일의 정보통’이라 불리는 금옥당 대주 장태상(박서준)은 경무국 이시카와(김도현)의 강제 명령으로, 실종된 기생 명자(지우)를 찾아 나선다. 때마침 금옥당에는 10년째 행방불명인 모친을 찾고 있는 윤채옥(한소희)이 나타나고, 태상과 채옥은 실종 사건의 모든 단서가 무례한 시대, 스타도 팬도 함께 울었다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1939년 6월23일, 경기도 인천부 경정 203번지에 사는 소학교 5학년생 유윤순(15)이 돌연 집을 나선 후 종적을 감췄다. 끝내 딸을 찾지 못한 어머니 한씨가 경찰에 수색원을 냈다. 배우를 동경하던 딸이 기어코 배우가 되려고 가출했다며 하소연이다(〈매일신보〉 1939년 7월12일, ‘꿈 많던 처녀시대, 배우를 동경코 가출’).” 윤순은 어쩌다 배우를 꿈꾸게 됐을까? 기사에는 단서가 없다.주소를 보다가 혹시나 싶어 검색을 해본다. 극장 ‘애관’이 인천부 경정 238번지에 있었으니 윤순의 집과 지척이다. 애관이 어떤 곳인가? 1 무지한 아름다움은 무죄일까?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1936년 8월9일 밤, 서울 광화문통, 종로 대창양화점 앞, 중학동 일대에 인파가 모여들었다. 신문사의 본사나 속보소들이 있는 곳이었다. 신문사 스피커에서는 NHK 아나운서 야마모토의 흥분된 목소리가 울렸다. 밤 11시2분, 드디어 “탕” 하는 출발 신호가 들렸다. 라디오 속 10만 관중의 함성과 조선인 군중의 함성이 뒤섞였다. “손기정!” “남승룡!” 뜨거운 응원 소리가 한여름의 밤하늘을 더욱 덥혔다.8월1일에 개막한 베를린올림픽은 식민지 조선인들에게도 가슴 뛰는 이벤트였다. 일본 대표단의 일원으로 조선인 7명이 올림픽에 참가한 소득 불균형을 이대로 방치한다면 [새로 나온 책] 시사IN 편집국 만화로 보는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클레르 알레·벤자민 아담 지음, 정수민 옮김, 한빛비즈 펴냄“문제는 정치다.”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피케티의 저서 중 한 권만 추천하라면,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권하고 싶다. 신분제 및 노예무역의 18세기부터 2010년대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불평등한 경제 시스템과 이를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이데올로기 사이를 오가며 '불평등'이란 상태를 풍부하고 흥미롭게 설명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 만화는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단지 그림으로 쉽게 일본 시민도 우려하는 통일부의 조선학교 접촉 조사 도쿄∙이령경 편집위원 2023년 12월12일 저녁 〈도쿄신문〉의 인터넷판에 “‘조총련과 무단 접촉’ 재일조선학교를 취재한 영화감독 등을 한국 통일부가 조사, ‘창작활동 위축시킨다’는 반발도”라는 기사가 실렸다. 통일부가 2023년 11월 일부 시민단체와 개인에 대해 ‘신고 없이 일본 내 조선학교 구성원들과 무단으로 접촉할 경우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며 조사에 나섰다는 내용이다. 한국 통일부가 문제 삼은 활동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많은 재일조선인, 일본인들이 이 뉴스를 보고 우려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 통일부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재일본조선인총 세계일주의 꿈, 돌아와서 만나는 나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 어릴 적 즐겨 부르던 동요의 한 구절이다. 둥근 지구를 걷다 보면 정말 출발한 곳으로 돌아오게 될까? 생각해보면 바로 이게 세계일주다. 세계일주는 온 세상 사람들을 다 만난 다음 처음 자리로 돌아오는 행위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달라져 있을까?기록상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것은 마젤란 탐험대였다. 1519년 9월에 스페인을 출발해 지구 한 바퀴를 돌고 3년 만에 귀환했다. 약 270명이 출발해서 18명이 돌아왔다. 마젤란도 필리핀에서 죽었다. 오랫동안 세계 “500년 살아남은 옛 집이 ‘집의 미래’다” 임지영 기자 임형남 소장은 멀리서도 눈에 띈다. 풍성한 회색 곱슬머리와 하얀색 뿔테, 사람 좋아 보이는 인상까지. 요즘 그를 알아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길을 지나다가도 버스 안의 승객이 창문을 열어 알은체를 할 정도다. 그의 옆에는 항상 노은주 소장이 있다. 임 소장과 달리 단정한 머리지만 주황색 뿔테 안경이 묘하게 두 사람의 분위기를 연결한다. 건축가 부부인 두 사람은 건축학과 동문으로 1999년부터 가온건축을 함께 이끌고 있다.가온은 순우리말로 중심이라는 뜻과 ‘집의 평온함’이라는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두 사람은 ‘건축은 땅이 꾸는 꿈 총선 승리한 스위스국민당, 그 비결은 이주민 혐오? 취리히·김진경 (자유기고가) 10월 초 막을 내린 올해 취리히 국제영화제의 주빈국은 한국이었다. 한국 영화 11편이 소개됐고, 덕분에 나는 취리히 한가운데서 (대다수 비한국인 관객과 달리) 자막 읽는 고생 없이 한국 영화를 감상하는 사치를 누렸다. 그중 한 편이 엄태화 감독의 〈콘크리트 유토피아〉다.영화는 대규모 지진으로 한국 땅이 초토화된 가운데 무너지지 않고 남은 단 하나의 건물로 추정되는 ‘황궁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다. 살 곳을 잃은 ‘외부인’들이 아파트를 찾아오자 주민들은 902호에 사는 김영탁(이병헌)을 대표로 선출한 뒤 이들을 몰아낼 계획을 세운다 조국과 국적과 고향이 하나가 아닌 사람들 [역사의 뒤 페이지] 조형근 (동네 사회학자) 러시아 작가 안톤 체호프의 문학 세계는 1890년의 사할린섬 기행을 전후로 나뉘곤 한다. 기행 이전에도 명성이 높았지만, 〈갈매기〉(1896), 〈바냐 아저씨〉(1899), 〈세 자매〉(1900), 〈벚꽃동산〉(1903) 등 그의 희곡 대표작이 모두 이 기행 후에 탄생했다. 사할린은 거대한 러시아제국의 동쪽 끝, 변방의 유형 식민지(Penal Colony·형벌 식민지)였다. 길이 끔찍하던 시절, 모스크바에서 1만㎞나 떨어진 변방을 찾는 것은 고난이었다.체호프는 1890년 4월21일 모스크바를 출발, 시베리아를 횡단하여 7월11일 사 한국은 ‘탄소 제국주의’ 시대의 식민지가 될 것인가 이오성 기자 2023년 10월은 인류사에서 꽤 중요한 날로 기억될 것이다. 기후위기를 막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 타국에 무역 압박을 가하는 제도가 시작하는 때이기 때문이다. 주인공은 유럽연합이다. 10월부터 유럽연합(EU)은 자국으로 수입되는 제품에 ‘탄소비용’을 매기는 시스템을 시행했다. 철강·알루미늄·시멘트·전력·비료·수소 등 6개 품목이 대상이다.이 사상 초유의 제도 이름은 ‘탄소국경조정제도(Carbon Border Adjustment Mechanism)’이다. 줄여서 CBAM이라고 부른다. 낯설고 복잡한 이름이지만, 나라 간에 사고파는 상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