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경성크리처〉의 한 장면. 1940년대 일제강점기 말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넷플릭스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경성크리처〉의 한 장면. 1940년대 일제강점기 말 경성을 배경으로 한다. ⓒ넷플릭스

1945년 3월, 추운 계절의 끝자락에 서 있던 조선은 그 어느 때보다 술렁였다. 동경대공습 이후 패망의 그늘이 짙어진 일제의 만행은 더 극악해졌으나, 변화를 예감한 이들은 만개할 봄을 기다렸다. 그 시기 경성은 ‘부녀자 연쇄 실종 사건’으로 유달리 더 들썩였다. ‘경성 제일의 정보통’이라 불리는 금옥당 대주 장태상(박서준)은 경무국 이시카와(김도현)의 강제 명령으로, 실종된 기생 명자(지우)를 찾아 나선다. 때마침 금옥당에는 10년째 행방불명인 모친을 찾고 있는 윤채옥(한소희)이 나타나고, 태상과 채옥은 실종 사건의 모든 단서가 가리키는 음험한 공간, 옹성병원으로 향하게 된다.

2023년 12월22일 파트1이 공개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경성크리처〉는 일제강점기 말, 저마다의 사연을 지닌 채 조선인 실종 미스터리를 추적해가는 청춘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은 장태상은 혈혈단신으로 자수성가해 자신의 안위가 최우선인 인물이고, 헌신적인 부모 아래서 자라난 윤채옥은 본인이 받은 애정을 약자들을 향한 인간애로 되돌려주는 존재다. 극과 극의 성향을 지닌 두 주인공 같은 목적지를 향해 움직이는 동안, 수많은 로맨스의 공식대로 불꽃처럼 부딪치다 애틋한 감정을 품게 된다. 두 청춘이 풀어야 할 미스터리의 끝에는 일제의 생체실험으로 탄생한 괴물이 있다. 드라마 제목에서부터 명확히 드러나듯 크리처물로서 장르의 핵심이 밝혀지는 순간이다.

〈경성크리처〉는 이처럼 시대극 안에 로맨스, 미스터리, 스릴러, 누아르, 액션, SF, 크리처물 등 다양한 장르를 결합해 엔터테인먼트로서 재미를 극대화하려는 야심을 숨기지 않는다. 한 이야기 안에 다채로운 볼거리를 몰아넣는 K드라마의 복합장르 지향 트렌드 안에서도 최전선에 위치한 작품이다. 1940년대 경성 본정 거리의 풍경과 경성 최대 규모 전당포인 금옥당의 화려한 내부, 어두운 음모가 도사린 옹성병원의 지하 공간, 그리고 실험 끝에 탄생한 괴물체의 재현까지, 많은 제작비가 투입된 시각효과도 주요한 볼거리다.

요컨대 〈경성크리처〉는 최근 K드라마 대작의 흥행 공식을 두루 버무린 전형적인 기획상품이다. 〈경성크리처〉 공개 뒤 국내 시청자들의 호불호가 엇갈린다. 그런 가운데 ‘이야기가 뻔하다’는 평가만은 한목소리를 이루고 있다. 이는 대중 다수의 취향을 만족시키려 한 기획상품의 한계이기도 하다. 전체적인 평가는 모든 이야기가 완결된 이후에나 가능하겠으나, 적어도 선공개된 시즌1 파트1에 해당하는 7개 에피소드에서는 〈경성크리처〉만의 독창적 매력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킹덤〉이나 〈D.P.〉와 다른 점

다만 〈경성크리처〉에서 주목할 점은, 최근 한국의 역사가 K드라마의 중요한 흥행 공식으로 자리 잡은 현상과 이에 대한 우려 사항을 환기시킨 데 있다. 예를 들어보자. 2018년 넷플릭스 동시 공개 방식을 통해 글로벌 흥행을 기록한 tvN 〈미스터 션샤인〉부터 시작해서 넷플릭스 최초의 오리지널 한국 드라마 〈킹덤〉(2019), 〈사랑의 불시착〉(tvN, 2019), 〈D. P.〉(2021), 〈도적: 칼의 소리〉(넷플릭스, 2023), 〈무빙〉(디즈니플러스, 2023) 그리고 〈경성크리처〉에 이르기까지,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많은 대작이 일제강점기, 임진왜란, 분단 등과 같은 한국의 특수한 역사적 현실을 주요 소재로 한다. 여기에 분단의 역사에서 파생된 탈북인들의 비극적 현실을 담아낸 넷플릭스 최고 흥행작 〈오징어 게임〉과 K드라마는 아니지만 재일 한국인들의 숨은 차별의 역사를 복원해 세계적인 호평을 얻어낸 애플TV 〈파친코〉를 포함하면 사례는 더 늘어난다.

K드라마의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한국의 격동적인 역사 자체가 주요한 소재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와 관련하여, 2019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세계적 신드롬을 불러일으킬 당시 박찬욱 감독이 한 이야기에서도 중요한 시사점이 발견된다. 〈기생충〉의 아카데미 수상에 대한 축하 소감을 요청한 〈문화일보〉의 인터뷰에서, 박찬욱 감독은 ‘한국 영화계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냐’는 외국 동료들의 반응에 대해 ‘다이내믹 코리아에서 살아보라’고 답했다는 말을 전한 바 있다. 말하자면 한국 특유의 역동적인 역사가 창작자들에게 끝없는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이를 재현한 작품들은 그 자체로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서사적 체험을 안겨준다는 것이다. 실제로 〈경성크리처〉에 대한 해외 반응에는 신선하다는 평가가 꽤 많고, 731부대의 생체실험이 실제 역사라는 데서 충격을 받았다는 반응도 많다는 것이 이를 증명한다.

우려할 것은 한국의 역사적 현실이 글로벌 시청자들에게 색다른 소재와 볼거리로만 머무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최근 가상의 왕조를 배경으로 한 K사극에 내재된 문제점과도 유사하나, 이번에는 실제 역사라는 점에서 더 섬세한 문제의식이 요구된다. 그런 맥락에서 〈경성크리처〉의 가장 큰 아쉬움은 뻔한 이야기라는 지적보다 역사의식의 미흡함이다. 박해받던 식민지인이 괴물이 되었다는 설정은, 권력층의 착취로 인해 굶주리던 백성이 좀비로 변한 〈킹덤〉의 비극을 연상시키면서도 정작 〈킹덤〉과 같은 몰입은 얻어내지 못한다. 신분제 조선 사회에 양극화 심화의 현실을 투영한 〈킹덤〉과 비교해, 〈경성크리처〉의 동시대적 질문이 미약하기 때문이다. 제국주의에 대한 깊이 있는 비판이 녹아 있었다면 현재 세계에서 지속되는 전쟁의 비극도 연결해볼 수 있었겠지만, 〈경성크리처〉는 거기까지 나아가지 못한다. 괴물체를 보고 감탄하는 일본군의 기괴하고 악마적인 캐릭터만 부각될 뿐이다.

2021년 〈D. P.〉가 공개됐을 때, 가장 흥미로운 반응은 로맨스인 〈사랑의 불시착〉을 통해 멋진 군인 판타지에 빠졌던 해외 시청자들이 〈D. P.〉에서 사실적인 군대 묘사를 보고 충격받았다는 것이다. 〈D. P.〉는 역사의 사실적 재현으로 신선함을 주는 데 그치지 않고, 폭력의 문제를 획일적인 조직 세계의 모순에도 적용하면서 보편적인 공감까지 얻어낼 수 있었다. 역사를 통해 동시대적 문제의식을 이끌어내는 것이 작품의 평가를 어떻게 가르는지 보여주는 모범 사례이자, 〈경성크리처〉가 돌아봐야 할 지점이다.

기자명 김선영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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