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이 기획과 각본을 담당한 드라마 〈선산〉의 한 장면. 윤서하(김현주·가운데)가 갑작스레 선산을 물려받은 뒤 생기는 이상한 일들을 다뤘다. ⓒNetflix 제공
연상호 감독이 기획과 각본을 담당한 드라마 〈선산〉의 한 장면. 윤서하(김현주·가운데)가 갑작스레 선산을 물려받은 뒤 생기는 이상한 일들을 다뤘다. ⓒNetflix 제공

최근 K드라마에서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장르 중 하나는 오컬트물이다. 초자연적 사건 혹은 영적 현상을 탐구하는 오컬트물은 국내에서 그리 대중적 장르는 아니었으나, 요 몇 년 새 인상적인 작품들이 잇달아 등장하면서 시청층을 점차 넓혀가고 있다. 2015년 〈검은 사제들〉과 2016년 〈곡성〉의 성공으로 영화계에서 먼저 시작된 한국형 오컬트물의 유행은, 2018년 〈손 the guest(손 더 게스트)〉(OCN)의 호평 이후 드라마계로도 이어졌다. 〈방법〉(2020, tvN), 〈보건교사 안은영〉(2020, 넷플릭스), 〈경이로운 소문 1·2〉(2020·2023, OCN), 〈지옥〉(2021, 넷플릭스), 〈아일랜드〉(2022, tvN), 〈괴이〉(2022, 티빙), 〈악귀〉(2023, SBS) 등이 대표 사례다.

이러한 가운데 1월19일 넷플릭스가 공개한 〈선산〉은 꽤 주목할 만하다. 2024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라인업의 첫 주자로 선택받은 〈선산〉은 연상호 감독이 기획과 각본을 담당한 6부작 드라마다. 연상호 감독은 애니메이션(〈돼지의 왕〉 〈사이비〉), 좀비 아포칼립스(〈부산행〉 〈반도〉), 초능력물(〈염력〉), SF(〈정이〉) 등 다양한 장르를 종횡무진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와 달리 드라마에서는 일관되게 오컬트 세계관을 이어가고 있다. 저주의 능력을 지닌 주인공이 거대 악과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 〈방법〉, 초자연적 존재가 사람들에게 지옥행을 선고하면서 벌어지는 대혼란 시대를 다룬 〈지옥〉, 기이한 불상을 둘러싼 미스터리한 사건을 파헤치는 〈괴이〉가 이에 해당한다.

〈선산〉은 엄밀히 말해 오컬트물이라 하긴 어렵다. 주요 인물 주변에 기이한 사건들이 계속해서 일어나지만, 초자연적 현상과는 거리가 멀다. 이 때문에 드라마 공개 직후 장르 논란에 휘말리기도 했다. 사건의 단서인 무속과 이로 인한 오컬트적 분위기는 반전을 숨기기 위한 미끼에 불과하다는 것이 비판의 요지다. 실제로 〈선산〉의 핵심 장르적 성격은 범죄 스릴러다. 갑작스레 선산을 물려받게 된 주인공 윤서하(김현주) 주변에 연쇄적으로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담당 형사 최성준(박희순)이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가는 수사 과정은 전형적인 범죄 스릴러의 플롯을 따른다.

〈선산〉을 K오컬트 드라마 계보 안에서 바라보는 것은, 그래서 오히려 흥미로워진다. 본래 오컬트물의 공포는 불가해한 현실의 이면에서 비롯된다. K오컬트 드라마는 이러한 성격을 한층 강하게 밀어붙인다. 드라마 속 악령의 대부분은 초월적 존재라기보다 그 시대의 사회악에 가까운 것으로 묘사된다. 가령 〈손 더 게스트〉의 악귀 박일도는 비정규직 노동자, 아동학대 피해자 등 한국 사회 약자들의 고통과 분노를 파고들었다. 〈경이로운 소문〉의 악귀들 또한 가정폭력, 정·재계 비리 커넥션 등 현실의 어둠 속에서 탄생한 존재들이다. 지난해 방영된 화제작 〈악귀〉도 같은 특징을 보인다. 극본을 쓴 김은희 작가는 악귀에 빙의된 주인공 구산영(김태리)에게 우리 시대 청년들의 좌절과 불안을 투영하고, 에피소드 안에는 학교폭력, 보이스피싱과 같은 다양한 사회문제를 녹여내면서 사회파 스릴러 장인다운 면모를 증명했다.

ⓒNetflix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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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불안, 지역 소멸이라는 ‘공포’

연상호 감독의 오컬트 드라마 역시 일관된 특징을 보여준다. 그가 처음으로 TV 드라마 극본을 맡은 작품 〈방법〉은 아예 탐사보도 전문 사회부 기자가 어둠의 주술사와 함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작품 속 악귀는 뉴스 사회면에서 볼 법한 재벌의 모습을 띠고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다. 〈지옥〉과 〈괴이〉는 오컬트에 재난 스릴러의 성격을 결합하면서 초현실적 존재의 등장으로 인한 사회 혼돈과 이를 이용하는 자들의 폭력을 그린 바 있다.

〈선산〉은 바로 이 같은 K오컬트 드라마의 특징을 공유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의 공포는 주인공 윤서하의 비밀스러운 가족사에서 출발해, 시간강사 서하의 고용불안 위기, 선산이 위치한 마을의 지역 소멸 위기 등 여러 사회문제를 거쳐 증폭된다. 극 중 윤서하가 처음 등장하는 순간은 학교로 대량 배달된 책을 정리하는 장면이다. 다음 신에서 그 책은, 서하가 선배 교수를 위해 대신 쓴 책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한국 대학 사회 특유의 위계 구도와 비정규직 강사에 대한 차별적 현실을 익히 알고 있는 시청자들은 고작 몇 분에 불과한 이 시퀀스를 통해 인물의 고통에 이입하게 되고 드라마의 스산한 분위기에 빠져든다.

서하 집안의 선산이 놓인 진성리의 불안한 현실도 작품에 음울한 기운을 드리운다. 선산의 주인이던 윤명길(김재건)의 급작스러운 사망사건을 조사하던 강력팀 형사 최성준은 사건 배후에 지역 재개발 계획이 있음을 밝혀낸다. 선산을 지키려는 노인과 골프장을 건설하려는 업체의 대립 역시 시청자들에게 익숙한 한국 사회의 현실이다. 드라마는 여기에 마을을 떠나고 싶어 하는 청소년들의 짧은 대화 신을 통해 심각해진 지역 소멸 위기와 공포를 환기한다.

그런 측면에서 〈선산〉이 묘사하는 무속신앙은 단지 분위기 조성을 위한 수단을 넘어 작품을 관통하는 핵심 정서를 압축한 상징적 장치로 볼 수 있다. 안정된 교수직을 향한 서하의 욕망과 마을 부흥을 꿈꾸는 진성리 주민의 욕망은, 결국 이 작품의 범인과 그의 가족이 기댄 기복신앙으로서 무속과 결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차별적 사회구조 아래층에 위치한 이들일수록 현실의 고통을 단번에 해결할 초월적 힘을 바란다. 오컬트는 바로 그 간극을 탐구한다. 요컨대 K오컬트 드라마는 범죄 스릴러로는 해결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어진 우리 사회의 모순 속에서 태어난 장르라 할 수 있다.

기자명 김선영 (칼럼니스트)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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