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25일 방시혁 당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부산 벡스코 2전시장에서 열린 2019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문화혁신포럼’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2019년 11월25일 방시혁 당시 빅히트 엔터테인먼트 대표가 부산 벡스코 2전시장에서 열린 2019 한-아세안 특별 정상회의 ‘문화혁신포럼’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11월,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방시혁 하이브(HYBE) 의장의 말이 화제를 모았다. 그는 케이팝의 위기를 거론하며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라이트 팬의 숫자를 늘려야 한다고 말했다. 다른 어떤 장르보다 강렬한 몰입과 소비를 보이는 ‘슈퍼 팬’이 케이팝의 확장성에 한계를 만들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였다. 음악시장을 긴 호흡으로 봐온 이들이라면 일견 고개를 끄덕일 만한 이야기였다. ‘굵고 짧게’가 아닌, 넓고 긴 생명력을 유지하는 음악가가 많아질수록 신(scene)의 뿌리는 튼튼해질 터였다.

그러나 상황은 예기치 못하게 흘러갔다. 방송이 전파를 탄 이후 케이팝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부정적 반응이 폭발했다. 기획사 대표가 언론에 출연하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비중이 높은 케이팝 팬덤의 특성을 생각해봐도 이례적일 정도였다. 하이브 소속이 아닌 그룹 팬덤까지 들썩였다. 케이팝에서 한국을 뜻하는 K의 흔적이 점차 사라지고, 공연 티켓 가격이며 암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세계로는 나가도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기획사와 방송사의 팬 처우 등 다양한 이슈와 얽히고설키며 타오른 불판의 요는 하나였다. 케이팝이 헤비 팬덤의 희생으로 성장한 산업이라는 걸 잊지 말라는 지적이었다.

사실 라이트 팬은 케이팝에서만 쓰는 개념이 아니다. 팬덤이 있는 모든 분야에는 라이트 팬과 헤비 팬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것이 축구나 야구처럼 프로구단을 운영하는 인기 스포츠다. 서로 반대 개념인 라이트 팬과 헤비 팬덤의 특성을 비교해보면 차이를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야구로 예를 들어보자. 1년에 손에 꼽을 만큼 경기장을 찾으면 라이트 팬, 연간 회원권을 끊거나 시간이 날 때마다 직접 경기를 보러 가면 헤비 팬이다. 내가 응원하는 팀의 경기가 졌을 때 속상한 정도면 라이트 팬, 그날의 엉망진창 플레이를 참을 수 없어서 야구 커뮤니티 게시판에 상주하며 밤잠을 설치면 헤비 팬일 테다.

케이팝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 대상만 바꾸면 거의 그대로다. 좋아하는 그룹의 음악을 듣거나 음악방송을 찾아보는 정도면 라이트 팬, 컴백과 동시에 뮤직비디오 조회수나 음원 스트리밍에 애를 쓰고 공개방송 사전 녹화에 직접 참여해야만 성이 찬다면 헤비 팬이다. 공연 티켓을 구하지 못해 아쉽다 싶으면 라이트 팬, 이 공연을 못 가면 더 이상 살아갈 의미가 없으므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헤비 팬이다. 예시 간의 미묘한 차이는 있겠으나 큰 틀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기획사와 팬덤 사이 균열은 바로 여기, 헤비 팬과 라이트 팬의 정의가 다른 데에서부터 시작된다. 지금 케이팝 팬에게 라이트 팬은 이미 꼬일 대로 꼬여버린 산업구조 안에서 그룹의 성장이나 금전적 이득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이들이다. 우선 라이트 팬이라면 앨범은 자기가 들을 한 장만 살 것이다. 음악 차트 순위를 올리기 위해 밤낮없이 스트리밍을 돌릴 리도 없고 낯선 시상식의 읽기도 어려운 상을, 타는 것도 아닌 탈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해서 사돈의 팔촌 명의까지 탈탈 털어 투표하는 일도 없을 테다. 공연은 더더군다나 어불성설이다. 인기 있는 케이팝 그룹의 공연 티켓은 예매 시작 수 분 만에 매진되는 것은 물론 수백만 원까지 가격이 치솟는 암표도 허다하다. 한마디로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세계, 그게 바로 지금까지의 케이팝을 이끌어온 헤비 팬덤이었다.

‘좋아하는 마음’과 ‘한정된 기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느냐는 질문은 이곳에서 아무런 의미도 없다. 갑자기 터진 일도 아니고, 누군가가 일방적으로 잘못한 것도 아니다. 좋아하는 마음이 있었고, 기회는 한정되었다. 물심양면으로 비상식이 기준이 되었고, 그로 인해 개인의 득이 전체의 실보다 많으면 바로잡을 기회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면하는 적지 않은 이들이 있었다. 자발적이라는 이유로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이 무급으로 아웃소싱되었고, 그 사람과 마음이 모여 지금의 케이팝을 만들었다. 이쯤에서 다시 한번 라이트 팬이라는 단어를 바라본다. 그렇게 희망차고 산뜻하게만은 보이지 않는다.

케이팝 안에 켜켜이 누적된 스트레스를 딛고 라이트 팬을 확장해 나가려면 몇 가지 정리가 필요하다. 우선 라이트 팬 정의에 대한 원만한 합의와 그를 중심으로 한 산업구조 조정이다. 현재 기획사와 팬덤이 말하는 라이트 팬은 개념만 공유할 뿐 받아들이는 디테일에서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인다. 케이팝 라이트 팬 자체가 부재했기에 생긴 혼란이다. 기획사나 업계 내부에서 일하는 이들은 아마도 1990년대 가요계의 김건모나 신승훈처럼 온 국민이 이름을 알고 음악이 좋아 찾아 듣는 팬층의 해외 확장판을 생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앞서 언급한 기존 케이팝 팬들이 정의하는 라이트 팬과는 상당한 온도 차를 보인다. 산업구조를 조정하면 합의점도 자연스레 찾아질 거로 생각한다. 시간도 노력도 꽤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는 지금까지 방치되다시피 한 헤비 팬덤에 걸린 하중 및 스트레스 감소가 필수로 수반되어야 한다. 잊을 만하면 빌보드 차트 1위가 나오고, 세계 각국 유명 페스티벌의 헤드라이너로 케이팝 가수가 서도 헤비 팬들을 쥐어짜는 방식으로 유지 중인 산업구조는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 반복되는 비상식에 공급자와 소비자 모두의 상식선이 무너진 상태다. 너무 오래 지속되었고 그만큼 왜곡되었기에 풀기 어려운 숙제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케이팝 업계가 지금까지 헤비 팬덤에 진 빚을 인지하고 있다면, 새로운 모멘텀 앞에 지금까지 쌓여온 업보 청산도 함께 이루어져야 함이 옳다. 그것이 이 산업을 넓고 길게 지속하기 위한 중요한 주춧돌이 될 것이다. 라이트 팬을 비롯한, 지금껏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층위의 팬덤도 그 위에서 탄생할 수 있을 것이다.

기자명 김윤하 (대중음악 평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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