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예능 프로그램 〈덩치 서바이벌 먹찌빠〉의 출연진이 포즈를 취했다.ⓒSBS 화면 갈무리
SBS 예능 프로그램 〈덩치 서바이벌 먹찌빠〉의 출연진이 포즈를 취했다.ⓒSBS 화면 갈무리

내 몸은 4부터 100까지 모든 숫자를 겪었다. 50㎏일 때 사람들은 “44사이즈 되면 진짜 남자들이 널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거야”라고 했다. 60㎏이 되자 사람들은 “살만 빼면 더 예쁠 텐데. 왜 안 빼?”라고 했다. 70㎏이 되자 사람들은 “너 뚱뚱해. 심각해. 자기관리 좀 해”라고 했다. 80㎏이 되자 사람들은 “병원에 가봐야 하는 거 아냐?”라고 했다. 90㎏이 되자 사람들은 “괜찮아. 뚱뚱해도. 당당하면 돼”라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해준 충고와 걱정은 내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

나는 먹고 또 먹어서 결국 100㎏이 되었다. 그때 사람들은 나에게 뭐라고 말했을까? 멱살을 잡아 흔들며 정신 차리라고 소리를 질렀을까? 강제로 나를 병원에 집어넣었을까? 둘 다 틀렸다. 내가 100㎏이 되자 사람들은 나를, 나의 몸을 못 본 척했다. 모두가 내 몸의 눈치를 보다가 말을 돌리고 아꼈다. 이건 고발이 아니다. 설움을 토로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진심으로 행복했다. ‘아무도 내 몸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사유는 다소 황당하지만 그건 내 몸이 원하던 자유와 가장 비슷한 것이었다. 여성의 육체적 해방은 몸무게 100㎏부터 시작되는 것이라 여기저기 말하고 다닐 정도로.

실은 이제 뚱뚱한 몸으로 살던 경험을 말하거나 그 몸을 위한 방어적인 고백을 하는 것에 지겨움을 느낀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남의 몸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을 주장하기 위해서, 내가 살이 찌게 된 이유와 내가 살을 빼기 위해 어떤 힘든 시기를 거쳤는지 구구절절 늘어놓는 것이 왠지 억울하게 느껴진다. 몸이 겪은 일을 고백하면 거의 모든 여자가 자신도 그런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다이어트 캠프, 단식원, 체형관리 회사, 지방흡입센터, 식욕억제제, ‘먹토(먹고 토하기)’와 ‘씹뱉(씹고 뱉기)’, 거식증과 폭식증, 우울증과 자해까지. 고백을 통해 이런 경험들을 공유하는 것은 분명 서로에게 많은 힘이 된다. 하지만 나는 이제 이런 이야기도 하기가 싫다. 내 몸에 대해, 내 몸에 얽힌 상처에 대해 말할수록 나는 어두워지는데 세상은 언제나 나의 몸을 극복의 대상으로만 여기기 때문이다.

뚱뚱한 몸을 ‘나쁜 몸’이라 하는 세상이 가뜩이나 밉고 지겨운데, 그런 몸을 놀리고 자학하며 웃음을 챙기는 이들이 달가울 리 있을까? 비만한 사람이 연애 시장에서 ‘걸러지는’ 데에서 웃음을 찾는 코미디도, 둔한 몸을 가혹하게 단련시켜 ‘몸짱’으로 거듭나게 만드는 예능도. 한국 방송은 ‘뚱뚱한 몸’을 대하는 세상의 편견을 확대하고 재생산하는 혐오의 장이었다.

남의 몸을 놀리며 만들어진 웃음은 게으르다. 게으름은 원래 유통기한이 짧다. 하지만 그런 웃음을 만든 사람들은 자신들의 코미디가 ‘뚱뚱한 몸으로 웃기지 말라’고 묻고 따진 사람들 때문에 끝났다며 불평을 하곤 했다. 그들의 주장에는 전혀 동의할 마음이 없지만, 조롱의 소재에서 벗어난 ‘비만한 몸’들이 활동에 제한을 받고 있는 것 역시 사실이었다. 뚱뚱한 몸을 가진 대다수 방송인은 주로 ‘먹방’에 기용되었다. 인간의 신체 능력을 소재로 삼은 ‘피지컬 예능’, 연애와 사랑에 대해 말하는 ‘짝짓기 예능’과 ‘연애 카운슬링 쇼’가 흥행하고 있지만 그 어디에서도 ‘뚱뚱한 몸’은 찾을 수 없었다. 마치 ‘비방하지 않을 테니, 눈앞에 보이지도 말라’는 교환거래를 한 것처럼.

몸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기

‘먹어라. 단, 찌지도 빠지지도 말고.’ 〈덩치 서바이벌 먹찌빠〉(이하 〈먹찌빠〉)는 박나래·서장훈을 중심으로 매회 5대 5로 랜덤하게 팀을 나눠, 먹을 것을 걸고 게임을 펼치는 서바이벌 쇼다. 룰은 간단하다. 촬영 전 단체로 측정한 몸무게가 게임 후의 몸무게와 차이가 적은 팀이 승리한다. 승점을 가장 많이 챙긴 출연자는 ‘광고모델’이 되는 기회를 얻는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뚱뚱한 몸을 희화화’하고 그것을 방송의 도구로 삼는가? 〈출발 드림팀!〉과 〈무모한 도전〉이 언제적 유행인데 몸으로 웃기는 ‘운동회 예능’을 표방하는가? 이런 구시대적 기획과 포맷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TV 화면을 째려보며 1화를 재생했다. 코미디언, 배우, 전직 운동선수로 이루어진 열 명의 ‘덩치’들이 화면을 꽉 채웠다. 뚱뚱하다는 이유로 모인 사람들이 대체 무슨 말을 꺼내겠는가?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때 신동이 침묵을 깨고 질문한다. “여기서 ‘쥬비스’에서 연락 한 번이라도 받으신 분?” 그러자 모든 출연자가 거수를 하며 자지러진다.

“뚱뚱한 몸이 웃겨?” 웃음을 참으며 던지는 내 질문에 〈먹찌빠〉가 대답했다. “안 웃길 건 또 뭐야?” 본 적도 들은 적도 없는 게임들이 등장한다. 엉덩방아로 치약 멀리 짜기, 비눗물 슬라이드를 타고 누운 채로 림보게임, 밑 빠진 독 뱃살로 막기’, 욕조에 최대한 가볍게 뛰어들어 솜사탕 살리기…. ‘웃으면 안 돼!’를 외치지만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무겁고, 뚱뚱하고, 둔할수록 이긴다! 뱃살이 클로즈업되고, 물 세례로 적나라하게 몸매가 드러난다. ‘수치심이 느껴지지 않을까?’ 걱정이 들 때쯤엔 출연자들이 다같이 박장대소한다. 몸의 쓰임이 몸의 고백을 대신하니 시청하는 입장에서도 경계가 사라진다. 또 다른 의미의 〈피지컬 100(㎏)〉인 셈이다.

여러모로 시대에 ‘결격’인 방송이 부드럽게 받아들여지는 데엔 출연진의 역할도 크다. ‘덩치’는 아니지만 이 쇼의 전반적인 진행을 책임지는 박나래의 지휘 아래, 뚱뚱한 체형으로 집요하게 놀림을 받으면서도 그것과 싸우듯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고 있는 신동과 이국주가 지치지 않는 에너지로 기운을 불어넣는다. ‘몸이 다른 게 어때서?’를 쉴 새 없이 증명하고 있는 풍자와 ‘뚱뚱해지고 나서 비로소 직업과 행복을 찾은’ 나선욱도 특유의 위트를 잃지 않는다. ‘뚱뚱하기로 소문난’ 야구선수 최준석, 조폭 영화의 ‘덩치 1’ ‘덩치 2’를 전담하는 배우 이규호와 이규철은 자신의 몸에 갇혀 있던 식상한 권위를 탈피해 온몸을 던지고 그 속에서 새로운 쾌감을 발견한다.

서장훈과 신기루는 가장 돋보이는 출연자다. 게스트로 출연한 탁재훈과 이상민이 ‘이 방송에 투자했냐’고 물을 정도로 서장훈은 〈먹찌빠〉에 진심으로 임한다. ‘2m’가 넘는 거구도 이곳에선 그리 유별난 것이 아니기 때문일까? 다른 방송은 물론 현역 시절에도 절대 볼 수 없었던 그의 웃음은 모든 출연자를 화합하게 만든다. 신기루는 그런 서장훈이 가장 응원하는 출연자다. “루루!” 서장훈의 한마디에 신기루는 욕을 참으면서도 게임을 완수한다. 자신의 몸에 어떤 금기도 가두지 않으려 하는 직설적인 그의 입담은 ‘지금 내 몸이 어떤 상황을 겪고 있는지’ ‘그게 나에게 어떤 기분이 들게 하는지’를 해설하며 ‘뚱뚱한 몸’과 ‘유머’ 사이에 얽힌 불편한 문제들을 시원스럽게 해소한다.

그러나 〈먹찌빠〉를 보는 사람들 사이에는 반드시 나눠야 할 이야기도 존재한다. 〈먹찌빠〉 제작진은 ‘있는 그대로의 몸의 소중함’을 관철하기 위해 출연진에게 늘 맛있는 음식을 차려준다. 주로 고기, 해산물로 요리된 높은 열량의 음식들이다. ‘먹방’에 일가견이 있는 ‘덩치’들은 식탐을 드러내고 때로는 과식하며 음식을 ‘먹어 치운다’. 내 몸을 긍정하는 것에 건강을 해칠 수 있는 습관까지 포함해서는 안 된다. 음식을 포상으로 건 구성은, 잘 먹고 건강하게 먹는 방식에 대한 좋은 가이드는 아니기에 이 점은 반드시 유의하며 봐야 할 지점이다.

뚱뚱한 사람이 살을 빼면 ‘인간 승리’라 외쳤던 〈헬스보이〉가 뚱뚱한 체형으로도 신체적 활동에서 우수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는 〈오늘부터 운동뚱〉으로 완전히 탈바꿈했다면, 〈먹찌빠〉는 거기에서 한 발짝 더 내딛는다. 〈먹찌빠〉는 뚱뚱한 몸을 극복이나 증명의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뚱뚱한 몸은 그냥 뚱뚱한 몸이다. 이 세상이 요구하는 체력과 미적인 기준에 절대로 부합할 수 없다. 다만 〈먹찌빠〉는 그런 몸도 꾸준히 사용할 수 있게 판을 벌려서 건강하지 못한 몸, 부자유스러운 몸, 완벽하게 훈련되지 않은 몸도 그 자체로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주는 관용적인 ‘피지컬’ 콘텐츠다. 그리고 어쩌면 그 점이 이 쇼를 가장 미래에 위치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자명 복길 (자유기고가)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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