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17일 일본 문부과학성 앞에서 열린 ‘금요행동’.  시민 200명이 참가해 조선학교 무상화 배제 문제와 함께 코로나 감염 확대 속 지원 차별을 시정하라고 요구했다. ⓒ조선학교 ‘무상화’ 배제에 반대하는 연락회 제공
2020년 7월17일 일본 문부과학성 앞에서 열린 ‘금요행동’. 시민 200명이 참가해 조선학교 무상화 배제 문제와 함께 코로나 감염 확대 속 지원 차별을 시정하라고 요구했다. ⓒ조선학교 ‘무상화’ 배제에 반대하는 연락회 제공

2023년 12월12일 저녁 〈도쿄신문〉의 인터넷판에 “‘조총련과 무단 접촉’ 재일조선학교를 취재한 영화감독 등을 한국 통일부가 조사, ‘창작활동 위축시킨다’는 반발도”라는 기사가 실렸다. 통일부가 2023년 11월 일부 시민단체와 개인에 대해 ‘신고 없이 일본 내 조선학교 구성원들과 무단으로 접촉할 경우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법률 위반’이라며 조사에 나섰다는 내용이다. 한국 통일부가 문제 삼은 활동에 직간접으로 관여한 많은 재일조선인, 일본인들이 이 뉴스를 보고 우려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 통일부가 영화 제작 과정에서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와 조선학교 인사를 접촉했다며 문제 삼고 있는 다큐멘터리 〈차별〉(김지운·김도희 감독, 2023)과 〈나는 조선사람입니다〉(김철민 감독, 2021)의 제작을 돕고 상영 운동을 하고 있다. 그들은 통일부가 경위서 제출을 요구한 시민단체 ‘조선학교와 함께하는 사람들 몽당연필’과 함께 조선학교 학생들의 배울 권리를 지키기 위해 열심히 운동하는 당사자들이기도 하다.

일본에는 다양한 역사와 배경을 가진 외국인학교가 있다. 요코하마 개항을 계기로 설립된 ‘요코하마 야마테 중화학교(1898)’, 일본의 첫 국제학교 ‘디 아메리칸 스쿨 인 재팬(The American School in Japan, 1902)’, ‘도쿄 요코하마 독일 학교(1904)’, 고베의 외국인 거주지역에 설립된 ‘캐나디안 아카데미(Canadian Academy, 1913)’ 등은 1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1962년 설립된 ‘도쿄 인도네시아공화국 학교’ 이후 1990년대 중후반부터 각지에 브라질 학교가 늘어난다. 2000년 전후부터는 글로벌화의 영향으로 필리핀 학교를 시작으로 인도계, 이슬람계, 세계 최초의 네팔 학교도 생겨났다. 일본에서 외국인학교, 민족학교의 대명사는 7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조선학교다. 조선학교는 일본 패전 직후부터 일본 각지의 조선인들이 세운 국어강습소가 그 전신이며 나중에 우여곡절을 거쳐 북한으로부터 지원을 받게 된다. 일본의 월간 〈이어〉에 따르면, 2022년 현재 조선학교 61곳이 운영 중이고 코리아국제학원(2008)과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한국학교가 4개 있다.

일본 문부과학성에 따르면, 2021년 5월 현재 외국인학교 수는 126개, 아동 및 학생 수는 2만5960명이다. 이 숫자가 정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외국인학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적 지원이 아예 없다시피 해서 교육행정 당국의 현황 파악을 신뢰할 수 없다. 그래서 일부 국제학교나 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소수 외국인학교를 제외한 대다수 학교는 학생들의 절실한 요구를 자력으로 해결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 4월1일 ‘공립고등학교에 관한 수업료 불징수 및 고등학교 등 취학 지원금 지급에 관한 법률’(일명 고교무상화법)이 시행되었다. 2009년 8월 총선거에서 압승한 민주당의 공약인 이 제도는 외국인학교를 포함한 모든 고교의 수업료를 무상화한 조치라는 점에서 획기적이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조선고급학교만 무상화 적용 보류 대상이 된 후 심사에 회부되었다. 조총련을 통해 북한과 관계를 맺고 있는 조선학교는 제외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민주당이 굴복했다. 그 후 2년 동안 중단됐던 심사는, 2012년 12월26일 재집권한 자민당 아베 신조 정권에 의해 아예 배제로 바뀌었다. 취임 이틀 만인 2012년 12월28일 아베 정권은 조선고교에 무상화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아베 정권의 취임 첫 업무가 조선고교 ‘무상화’ 배제였다. 이듬해인 2013년 2월20일 아베 정권은 조선고교에 무상화 적용을 위한 근거 규정까지 삭제하는 등 시행령(省令)을 개악해 전국 10개 조선고교가 무상화 적용을 받을 길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아베 정권 첫 업무, 조선고교 무상화 배제

이런 부당한 처분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지역의 조선학교 지원 운동이 되었다. 도쿄의 경우 조선학교가 있는 전 지역에 시민단체가 있다(이하 ‘조선학교 무상화 배제에 반대하는 연락회’의 소식지 〈연필통신〉 제31호에서 인용). 그 전부터도 통학 정기권 할인 문제, 치마저고리 칼부림 사건 등으로 조선학교와 연계해온 단체나 시민들이 있었다. ‘에다가와 조선학교지원 도민기금’(에다가와 기금)은 2004년 폐교 위기에 몰린 고토(江東)구 에다가와(枝川)의 도쿄조선제2초급학교를 구하기 위해 결성된 지역 시민단체다. 토지소유권을 주장하며 폐교를 요구하는 도쿄도와의 재판은 일본과 한국 시민들의 응원에 힘입어 2009년 화해로 승리를 거두었다. 이후 에다가와 기금은 학교 새 건물 짓기, 스쿨버스 기증 등 여전히 제2초급학교를 지원했고 2010년부터는 고교무상화 재판 지원 운동도 함께했다. 아사가야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한 도쿄조선제9초급학교를 지원하는 ‘아사가야 조선학교 사랑회’는 고교무상화 제도에서 조선고교가 배제된 직후인 2011년에 만들어졌다. 지역 주민과 함께 조선학교 방문, 코리안축제, 1일급식, 학예회 등 다양한 교류와 지원을 한다. 니시도쿄시에는 ‘다치가와 마치다 조선학교 네트워크 우리모임’이 있다. 2007년 재일조선인 친구의 권유로 우리모임 결성 집회에 참가한 나카노 노리코 씨는 ‘조선학교에 교육 보장을! 어깨동무 모임’의 회원도 되었다. 1년에 수차례 조선학교 지원을 위해 김치를 팔고 있고, ‘남북코리아와 일본의 아이들’이라는 그림 전시회도 열었다.

2023년 12월23일 영화  상영회가 열렸다.ⓒ조선학교 ‘무상화’ 배제에 반대하는 연락회 제공
2023년 12월23일 영화 〈나는 조선사람입니다〉 상영회가 열렸다.ⓒ조선학교 ‘무상화’ 배제에 반대하는 연락회 제공

일본 정부의 조선학교 차별은 평소 북한 정권이나 조총련에 대해 비판적 생각을 가진 시민들도 움직이게 만들었다. 네리마 인권센터의 멤버인 호리 준 씨는 2010년 3월 초, 평소 조총련이나 북한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공언하던 지인으로부터 “조선학교를 고교무상화에서 배제하려는 움직임은 너무 심한 차별이다. 인권센터에서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겠냐”라는 전화를 받았다. 3월 말 호리 씨와 지인들은 ‘모든 학교에 고교수업료 무상화를! 네리마 모임’을 결성하여 브라질 학교 등도 무상화 대상이 되도록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했다. 지금도 매달 20일에 가두 선전을 하고 있다.

고교무상화 문제가 떠오르자마자 우선 학생들이 평등한 교육 기회를 달라며 일본 여론에 호소했고, 기회를 완전히 박탈당한 뒤에는 부모, 학교와 함께 일본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시작했다. 오사카·아이치·히로시마·규슈·도쿄 5곳에서 조선고급학교 ‘고교무상화’ 재판이 시작되었다(〈표〉 참조). 아이치의 재판 준비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 재일조선인, 조선학교의 역사 그리고 일본의 역사적 책임을 묻고 배우는 과정이었으며, 법정에서는 단순한 법리 판단을 넘어 고교무상화 문제의 역사성과 일본인으로서 책임을 판사들에게 고민하게 하는 장이었다. 모든 재판이 원고 패소로 끝났지만, 2017년 7월28일 오사카 지법만은 ‘상식적’ 판단을 했다. 판결은, 문부과학성 장관이 ‘교육 기회의 균등’이라는 무상화법의 취지와 관계없는 납치 문제 따위 외교적·정치적 의견에 근거해 조선고교를 무상화 대상에서 제외한 것을 인정하고, 이는 위법이며 무효라고 지적했다.

당사자와 지원자가 하나 되어 ‘재판 투쟁’

6년 넘게 걸린 당사자들의 재판에는 ‘몽당연필’과 같은 한국의 지원자들, 일본 각지의 조선학교 지원 단체와 시민들이 함께했다. 당시 점점 심해지던 재일조선인에 대한 혐오 발언의 표적이 될지 모른다는 불안, 일본 사법부에 대한 불신도 컸지만 당당히 나선 당사자들과 지원자들이 하나가 되어 조선학교의 권리, 아이들이 평등하게 교육받을 권리를 지키기 위해 재판 투쟁을 펼쳤다. 이번에 한국 통일부가 문제 삼은 다큐 〈차별〉과 〈나는 조선사람입니다〉에 그들의 당당한 활동이 담겨 있다.

도쿄에서는 국가배상 재판을 제소한 다음 날인 2014년 2월18일 각지의 조선학교 지원 단체들과 시민들이 ‘도쿄조선고교생의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을 결성하여 운동에 나섰다. 아이치에서는 2010년 5월20일 결성된 ‘조선고교에서 무상화 적용을 요구하는 네트워크 아이치’가 재판을 지원했다. ‘조선고급학교 무상화를 요구하는 연락회 오사카’도 무상화 재판 시작보다 빠른 2012년 3월1일 결성 집회를 열고 그해 4월17일부터 오사카부 청사 앞에서 항의행동을 벌였다. 이 항의는 매주 ‘화요일행동’으로 이어지는데, 오사카부와 오사카시가 독자적으로 조선학원(초중고)에 대한 보조금 교부를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런 지자체의 ‘차별’을 문부과학성이 나서서 전국으로 확산시켰다. 2016년 3월 문부과학성은 조선학교에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 28개 도도부현(광역자치단체) 지사에게 사실상 지급 중단을 요청하는 통지를 보냈다. 정부가 이렇게 노골적으로 차별을 하니, ‘안심하고’ 길거리와 인터넷에서 차별주의자들이 활개를 친다.

2023년 11월 오사카의 고교무상화 재판 투쟁 과정을 다룬 책이 출판되었다. ⓒ현대인문사 제공
2023년 11월 오사카의 고교무상화 재판 투쟁 과정을 다룬 책이 출판되었다. ⓒ현대인문사 제공

2019년 10월 시행된 유아교육·보육 무상화에서는 모든 외국인학교의 유치원이 제외되는 사태가 발생한다. ‘모든 어린이가 건강하게 크도록 지원한다’는 이념이 시설에 따라 달라졌고, 조선학교 차별은 외국인학교로 확대되었다. 차별이 또 다른 차별을 낳는다는 걸 일본 정부가 시연 중이다.

나카노 노리코 씨는 재판투쟁 중에 접한 “조선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투쟁이 아니라 꿈과 희망이 될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라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일본인으로서 책임을 염두에 두고 활동을 이어간다. ‘조선학교 무상화 배제에 반대하는 연락회’의 모리모토 다카코 씨는 10년 이상 지속된 한·일 교류 행사가 2023년 12월 중순에 열렸는데 한국 측 참가자가 절반으로 줄었다며, 이번 한국 정부의 조사가 향후 한·일 시민 교류를 위축시킬 것을 걱정했다.

기자명 도쿄∙이령경 편집위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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