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로 보는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

클레르 알레·벤자민 아담 지음, 정수민 옮김, 한빛비즈 펴냄

“문제는 정치다.”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는 〈21세기 자본〉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피케티의 저서 중 한 권만 추천하라면,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권하고 싶다. 신분제 및 노예무역의 18세기부터 2010년대 중후반에 이르기까지 불평등한 경제 시스템과 이를 정당화하고 강화하는 이데올로기 사이를 오가며 '불평등'이란 상태를 풍부하고 흥미롭게 설명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 만화는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단지 그림으로 쉽게 표현한 작품이 아니다. 18세기 말부터 오늘날까지 8대에 걸쳐 이어진 것으로 설정한 프랑스의 한 가족사로 ‘책’의 핵심을 녹여냈다. 책과 만화의 저자들은 지금의 소득 불균형과 불평등을 방치한다면 20세기 이전 ‘세습 자본주의’가 다시 도래할 것이라고 역설한다. 이런 사태를 막으려면 지금의 불평등한 질서를 공정하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우리의 태도(이데올로기)부터 성찰해야 한다.

논픽션 글쓰기 전설들

조문희 외 지음, 서해문집 펴냄

“진실은 사실의 종합인가요, 사실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먼 존재인가요.”

‘이것은 실화다’라는 문장만으로 엄청난 힘이 실린다. 소설과는 다른 논픽션 글쓰기가 점점 더 주목받는 이유다.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 하는 찬사도 받지만, 종종 ‘이렇게 써도 되냐’는 힐난이 뒤따르는 구성과 작법이다. 현직 기자부터 소설가 등 국내 논픽션 작가 12인이 어쩌다 논픽션 저술의 세계로 뛰어들게 됐는지 담았다. 인터뷰에 응한 작가들은 말한다. 전통적인 문법과 형식으로 써야 하는 기사들이 분명 있지만, 그렇게 해서는 쓸 수 없는 이야기들도 있다고. 팩트와 의견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사실과 진실은 어떻게 관계 맺는가. 저널리즘을 고민하는 이들이라면 줄 긋고 싶은 통찰들이 많다.

새로 쓴 프랑스 혁명사

장클레망 마르탱 지음, 주명철 옮김, 여문책 펴냄

“혁명은 전혀 한덩어리인 적이 없었다.”

‘프랑스 혁명사를 이렇게 쓸 수도 있구나’라고 느꼈다. 저자는 이른바 부르주아 계급이 절대왕정을 뒤엎고 근대로 가는 길을 열었다는 식의, 프랑스 혁명에 대한 통상적 관점에 동의하지 않는다. 프랑스 구체제(앙시앵 레짐)의 위기가 필연적으로 혁명으로 치달았다는 역사적 컨센서스에도 “이념적으로 야릇한 지름길을 부추기는 요약에 의존하는” 전체사적 해석이라고 비판해버린다. 역사를 어떤 절대적 법칙의 관철이라기보다 우발적 상황들의 우연적 결합으로 보는 저자의 시각은 낯설지만 흥미롭다. 영국, 폴란드, 스웨덴, 아메리카 식민지 등에서 일련의 정치적 변혁이 발생한 ‘대서양 혁명기’(1770년)부터 나폴레옹이 제1공화국을 무너뜨리고 집정관 정부의 총재로 권력을 장악하는 시기(1802년)까지를 네 가지 기념비적인 순간으로 나눠 프랑스 국내외의 복잡다단한 사건들을 마치 장편 역사 드라마처럼 솜씨 좋게 서술했다.

휘말린 날들

서보경 지음, 반비 펴냄

“감염은 내가 아닌 것에 물들면서, 휘말리면서 시작된다.”

‘어떤 사건이나 감정에 완전히 휩쓸려 들어가다.’ 사전에서 찾은 ‘휘말리다’의 정의다. 누군가로부터 강요당한 상황도 아니지만, 능동적으로 야기한 상황도 아닌 상태. 그러니 가해자도 피해자도 없다. 축복도 저주도 아니다. 의료인류학자이자 HIV/AIDS 인권운동 활동가인 저자는 감염이라는 생물사회적 사건을 휘말린 상태로 바라보자고 제안한다. HIV 감염인은 ‘앞줄에 선 사람들’이자 ‘먼저 휘말린 사람들’이다. 감염은 단절과 고립이 아니라 연결과 관계의 가능성을 틔울 수 있다. 감염이 야기하는 난제에 더 많은 사람들이 ‘휘말리기’를 바라는 이유다. 저마다의 고유함을 지워버리는 낙인과 혐오에 맞서는 사유가 이 책에 있다.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

녹색평론사 펴냄

“정부 수입의 3분의 1이 석유에서 나오는 에콰도르 국민 60%가 개발보다 보존을 선택했다.”

혹한의 계절에는 〈녹색평론〉 2023년 겨울호를 읽자. 이번 호의 부제는 ‘파국과 전환, 기로에 선 한국 사회’이다. 농정, 교육, 언론, 권력분산 등에서 한국 사회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 다룬다. 당면 과제인 에너지 전환에 대해서도 우리가 근원적으로 놓치고 있는 대목이 있음을 지적한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기, 이스라엘의 인종 청소를 다룬 글도 눈여겨볼 만하다. 발행인이자 편집인인 김정현은 머리말에서 이렇게 말한다. “기후위기의 최악의 사태를 모면하게 해줄 마지막 골든타임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에 너무 열중하지 말자. 그것보다 중요한 일은 우리가 옳은 길에 들어서 있는가 하는 것이 아닐까.” 이상고온과 최강 한파가 함께 찾아온 올겨울에 곱씹어볼 말이다.

만 년 동안 살았던 아이

나가노 하루 지음, 조지혜 옮김, 낮은산 펴냄

“나는 이후의 인생을 줄곧 그 대가를 치르며 살게 되었습니다.”

지하철 바닥에 대자로 뻗어버리는 엄마, 모르는 사람의 집에 불법 침입하는 엄마, 경찰서에서 옷을 홀딱 벗고 날뛰는 엄마…. 엄마는 조현병이었다. 그리고 그런 엄마를 돌봐야 했던 저자는 고작 여덟 살이었다. 삶에 압도되지 않기 위해 아이는 자신을 ‘신’으로 여기기로 한다. 그것은 “나는 나이기를 그만두었던 것”이기도 했다. 어린 시절은 사라졌고, 성장보다 조로가 가까웠다. ‘인생 전체가 후유증’인 성인기가 기다리고 있었다. 돌봄을 받아본 적 없는 사람은 스스로도 돌보지 못했다. ‘영 케어러’라는 이름 너머의 험난한 삶에 대한 이 뜨거운 고백에, 우리 사회는 어떤 준비가 되어 있는지 묻게 된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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