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

형이 세상을 떠나자 잘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경비원으로 취직한 저자는 하루 여덟 시간 동안 조용히 서서 고대의 조각품을 바라본다. 아침마다 500명 넘는 경비원들의 이름을 모두 아는 밥이라는 남자가 “브링리, A(중세)구역!” 혹은 “R(근대)!” “K1(그리스·로마)!” “F(아시아)!” “I(19세기)!” “G(아메리카)!” 하고 순찰 구역을 배정해주는 소리를 듣고 각자 ‘세계여행’을 하기 위해 흩어진다. H(이집트) 구역에 배치되면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일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이집트는.” 그렇게 10년 동안 만난 동료 경비원, 관람객, 그리고 미술품 이야기를 한데 버무려냈다.

민중의 시대

김재용 등 지음, 빨간소금 펴냄

“그 많던 ‘외치는 돌멩이’들은 어디로 갔을까?”

1980년대에 청년이던 사람들 중 상당수는 지난 몇 년 동안 엄청난 위화감을 느꼈을 터이다. 당시 ‘586’이 윗세대와 체제에 느꼈던 감정은, 자신들에 대한 ‘지금 청년’들의 반응과 질적으로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으므로. ‘1980년대가 무엇이었나’를 짚어보는 것은 586과 지금 청년 모두에게 매우 흥미롭고 중요한 과제일 수 있다. 1980년대는 이념과 투쟁의 시대로 이후 세계화 및 포스트 민주주의 시대와 큰 연관성이 없는, 획일적 시기로 여겨져왔다. 그러나 1980년대는, 노동자가 쓴 글이 지식인들의 의식화 자료로 사용되고, 에로 영화가 대량생산되었으며, ‘저항과 새로운 세상의 주체’로 자리 잡은 민중이라는 개념에 여성이 빠져 있다는 사실이 성찰되는 시대이기도 했다. 이 책은 그 시대에 나타난 여러 문화적 양상을 중심으로 1980년대를 분석하려는 시도다.

가짜 환자, 로젠한 실험 미스터리

수재나 캐헐런 지음, 장호연 옮김, 북하우스 펴냄

“아래의 이야기는 사실이다. 또한 사실이 아니기도 하다.”

여전히 정신질환은 현대의학이 ‘정복’하지 못한 ‘질병’이다. 현대 정신의학은 정신질환자에게 적절한 처방을 내리지 못하기도 하고 심지어 병명을 잘못 진단하기도 한다. 1973년 발표된 데이비드 로젠한의 논문 〈정신병원에서 제정신으로 지내기〉가 이를 잘 보여준다. 당시 ‘정신이 멀쩡한’ 여덟 명이 자발적으로 정신병동에 입원해 조현병이나 양극성장애로 판정받았다. 반세기 전에 일어난 에피소드일 뿐이라고? 저자 역시 스물네 살 때 자가면역 뇌염인데도 조현병이라는 오진을 받은 경험이 있다. 촉망받던 그는 겨우 목숨을 건져 자신의 경험과 로젠한의 실험을 엮어 이 책을 썼다.

세상이 물려준 식사를 끝장내고

장미경 엮음, 든든 펴냄

“채식을 머리로만 아는 사람들도 제가 실수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느낌이 있었어요.”

고양이를 만나고 비건을 결심한 저자가 ‘육식주의 너머’를 꿈꾸는 이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엮은 책이다. 첫 인터뷰는 한여름, 중복에 시작됐다. 만난 이는 두 아이를 양육하는 엄마이자, 17년 차 채식인, 페미니스트 시민 김시형이다. 그는 비건이란 단어도 없던 시절에 채식을 시작해 “반발과 폭력에 시달”리고 “그 편견은 출산과 육아를 거치는 동안 더 강화”되어 온갖 ‘요란한’ 경험을 했다. 하지만 그의 선택은 포기가 아닌 공존, 강요가 아닌 너그러움이다. 도덕적이지만 불편한, 시도하고 싶지만 부담스러운 비건을 둘러싼 ‘현 시점에 던질 수 있는 거의 모든 질문’이 담겼다. 식탁 위 반란의 유쾌한 활력을 만날 수 있다.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공부

김승섭 지음, 동아시아 펴냄

“보건학자의 삶을 선택했던 것은 답답했기 때문입니다.”

저자에게 공부는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언어’였다. 그런 공부를 책상 앞에서만 할 수는 없었다. 침몰하는 배에서 친구를 잃은 학생과 동료를 잃은 장병, 화재 진압 과정에서 동료를 잃은 소방공무원, 정리해고 이후 세상을 떠난 노동자들의 면면에 있었다. 고통받는 이들을 찾아다니며 ‘공부’를 했다. 차별 경험과 고용불안이 장애인, 성소수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지 연구해왔다. 연구 과정에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서도 계속 질문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를 모았다. 이 책으로 대중을 상대로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마무리한다고 하지만 벌써 다음 책을 기다리게 된다. 그만큼 필요한 이야기다.

러시아는 무엇이 되려 하는가

임명묵 지음, 프시케의숲 펴냄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자유주의는 사실 당연한 것이 아니다.”

여전히 의문이 가시지 않는다. 푸틴은 왜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것일까. 권력욕 때문이라면 오히려 서방과 친밀하게 지내야 하지 않았을까. 당돌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이 전쟁은 ‘역사를 1989년의 순간에서 끝내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들의 싸움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사건’이라고. 1989년은 동유럽 사회주의가 무너진 해다. 여기에는 이른바 ‘신유라시아주의’가 있다. 서방세계에 맞서 러시아가 다시 세계의 질서를 재편하기 위해 나서고 있다는 관점이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자유주의가 퇴조하면서 세계적으로 생겨나는 흐름이다. 〈K를 생각한다〉를 통해 1990년대생 논의를 촉발시켰던 젊은 저자가 이번에는 전공을 살려 러시아와 세계를 품고 왔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