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와 내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미셸 필게이트 외 지음, 이윤실 옮김, 문학동네 펴냄

“엄마를 위해 이걸 썼어요.”

제목만 봐도 울컥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엄마와 내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 이야기할 수 없는 것들, 이야기해서는 안 되는 것들. 쟁쟁한 여성 작가 열다섯 명이 모여 각자 엄마에 대한 기억을 꺼내놓는다. 가정폭력, 장애, 가난, 학자금, 새아버지, 우울증, 성폭력, 심리치료…. 서문을 쓴 미셸 필게이트는 이렇게 말한다. “엄마와의 불편한 관계 때문에 고통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과, 그 고통을 글로 영원히 남기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에 속했다.” 이 책을 읽은 뒤에 자신만의 편지 혹은 에세이를 써보는 것도 좋겠다. 엄마와 나 사이에 결코 오가지 않았던 말들에 대해서.

현명한 선택을 위한 가장 쉬운 경제학

남시훈 지음, 인물과사상사 펴냄

“빈곤과 불평등 문제는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다르다.”

미시경제학과 거시경제학을 공부할 계획이거나 학습 중인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 보시길 권고한다. 경제학 개념들은 그냥 외우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느끼는 일상의 감각과 연결시켜 고찰해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음식 배달 앱을 켤지 냉장고에 있는 식자재로 만들어 먹을지 같은 일상적 선택에서부터 기준금리, 재정, 정부의 경제 개입에 이르기까지 미시·거시 경제학을 통합적으로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며 기본 개념들을 잡아준다. 2022년 대형마트가 출시한 ‘당당치킨’을 통해 기업 간 ‘경쟁’이 왜 중요한지 짚고 전세 사기 문제를 통해 ‘신용위험’에 대해 이야기한다. 기후위기 문제에서 ‘용의자의 딜레마’를 추출하며 게임 이론에 대한 쉬운 설명을 제공한다.

젠더 수업 리포트

이유진 지음, 오월의봄 펴냄

“교육으로 정의를 세울 수 있을까?”

성폭력 범죄가 불거질 때마다 제대로 된 성교육의 필요성이 언급되지만 정작 교육 현장의 고민들은 제각각 흩어져 있다. 학생들은 혐오 표현을 놀이문화처럼 쓰는가 하면 교사와 학부모는 성교육 시간에 페미니즘을 다루지 말아달라는 요청을 한다. 7년 차 젠더 교육 활동가인 저자는 교육의 목적이 궁극적으로 ‘피해자/가해자 되지 않기’인지 질문을 던진다. 성교육은 산수처럼 똑 떨어지는 정답이 있는 영역이 아니고 인권과 젠더, 철학과 윤리를 아우르는 인식 체계에 가깝다. 그래서 낯설고 불편할 수밖에 없다. 강사로서 겪은 혼돈과 고민이 “더 나은 세상으로 가는 다리가 되길 빌며” 썼다. 성교육이 민주 시민으로 성장할 기회와 어떻게 연관되는지 보여준다.

질문하는 세계

이소임 지음, 시공사 펴냄

“정답을 맞히며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하며 나아간다.”

물음표로 끝나는 문장이 많다. 임대차 계약처럼 결혼 갱신제가 도입되면 어떨까? 끝이 있다면 인간은 더 성숙해지지 않을까? 노키즈존처럼 사회가 유독 아이를 배제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이야기는 질문만으로도 흥미롭다. 변호사가 되기 전까지는 정답이 있는 세계에 익숙했던 저자가 법률가로서, 엄마로서, 또 시민으로서 정답이 없는 세계를 만나며 담아낸 에세이다. 필요한 것은 정확한 답이 아니라 정확한 질문이며, 무지 덕에 더 많은 가능성을 만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좋은 질문은 나를 타인과 사회로 연결해준다. ‘작은 정의’를 고민해온 일상에서 건져낸 저자의 문장에 울림이 있는 이유다.

사람을 목격한 사람

고병권 지음, 사계절 펴냄

“이 이야기는 당신 혼자 지은 것인가. 이 삶은 당신 혼자 살아낸 것인가. 그렇지 않다.”

내가 ‘아는’ 세계는 어떻게 확장되는가. 고병권은 우리를 내가 안다고 착각했던 세계로 데려다 놓는다. 토끼처럼 몰리고 새우처럼 등이 꺾이는 불법 체류자 단속 현장으로, 배로 바닥을 기며 투쟁하는 사람들이 있는 지하철역으로…. “수십 년간 이 사회에서 묵음 처리 당한 사람”의 목소리와 “‘우리’에서 ‘탈락한 사람’”에 대해 “안타깝고 걱정이 되어서 혹은 서럽고 화가 나서” 썼다. 목격한 사람은 그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무언가를 알아버린 사람의 윤리란 그런 것이다. 그리하여 ‘함께 앓기’로 향하는 글은 당신의 응답을 기다린다. 당신은 이 세계에서 무엇을 보았는지, 혹은 볼 것인지. 그리하여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지 묻는다.

살아보니, 시간

이권우 외 4인 지음, 생각의힘 펴냄

“다시 말하지만, 원래 과거는 존재하지 않아요.”

저자가 많다. 도서평론가 이권우, 천문학자 이명현, 생화학자 이정모는 오랜 친구 사이다. 2023년 나란히 환갑을 맞았다. 여기에 물리학자 김상욱이 결합해 ‘시간’에 대해 논한다. ‘갑자’가 한 바퀴 돌아온 환갑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답하기란 쉽지 않다. 우선 시간이라는 것 자체가 똑같이 흐르지 않는다. 은유적 표현이 아니다. 중력에 의해, 단 2㎝만 더 손을 올려도 손목시계로 측정한 시간은 더 빠르게 흘러간다. 지구의 나이는 46억 년, 생명의 씨앗이 뿌려진 건 38억 년 전이지만 본격적으로 생명의 시간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건 고작 5억4200만 년밖에 되지 않았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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