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인들
댄 존스 지음, 이재황 옮김, 책과함께 펴냄

“몽골의 정복 방식은 20세기의 공포 독재를 예고하는 것이었다.”

‘암흑시대’로 불리는 데다 세계사 교과서만으론 이해하기 힘들어 ‘기출문제’만 달달 외우고 지나쳤던 ‘중세’가 이처럼 흥미롭게 서술될 수 있는 시기였다는 것을, 이 책에 손을 대기 전까지는 미처 몰랐다. 저자는 서기 410년의 ‘로마 약탈’로 들어가 1527년의 ‘로마 약탈’로 1000여 년에 걸친 장구한 이야기를 마무리 짓는다. 대체로 시간 순서에 따라, 다양한 민족(로마인, 프랑크인, 아라비아인, 몽골인 등)과 세력(수도사와 학자, 기사, 건축가 등)이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 등 여러 대륙을 배경으로 어떤 활약과 흥망성쇠를 거치다가 바통을 ‘근대’로 넘겼는지 보여준다. 중세사의 큰 흐름을 알기 쉽게 한달음에 설명하는 동시에 세세한 에피소드와 역사에 대한 저자 특유의 통찰까지 드러내는 글쓰기가 매력적이다.

나는 바다로 출근한다
김정하 지음, 산지니 펴냄

“‘해양인이 왜 소중한 존재들인가?’에 대한 대답은 희미하게나마 마련한 듯싶다.”

해양 문화를 연구해온 저자가 바다와 연관된 일과 삶을 유려하고 심도 있게 담아냈다. 28년간 부산에 살면서도 바다와 관련된 담론은 어딘가 늘 부족하다 느꼈다. “해양인에 대한 천시와 박대”를 겪으며 살아온 해양인의 속마음을 알고 싶었다. 새벽 어시장은 죽고 싶다던 사람도 생각이 바뀌게 하는 곳이라 했다. 바다 밑으로 다가드는 숭어 떼를 찾아내는 숙련된 노동이면서 환경 악화로 해산물의 수확량이 줄어드는 걸 감지할 수 있는 최전선이다. 영도 해녀부터 경매사, 도선사, 국내 최초 여성 선장 등 바다에 깃든 억척스러운 생애사가 열전처럼 펼쳐진다. 한국 해양 문화에 관한 사료이기도 하다.

교수의 속사정
최성락 지음, 페이퍼로드 펴냄

“교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인 줄 알았다.”

대한민국에서 교수란 무엇인가? “모든 면에서 점점 여건이 나빠지는 교수라는 직업에 대한 안내서가 되기를 기대한다”라는 서글픈 한 문장으로 머리말을 마친 최성락 전 교수는 ‘직장인으로서의 교수’의 모습을 낱낱이 보여준다. 이를테면 수업에 자주 늦는 교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건 교수가 강의에 별 신경 쓰지 않을 때, 외부 사람과의 관계만 중시할 때나 가능하다.” 교수들끼리는 ‘학교 내에서 다른 어떤 일보다 수업이 우선’이라는 암묵적 합의가 있기에 웬만한 회의나 외부 일정은 수업 시간을 피해서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15년 넘게 교직에 몸담고 있었기에 알 수 있는 이야기가 가득하다.

글 쓰는 여자들의 특별한 친구
장영은 지음, 민음사 펴냄

“박완서는 박경리의 독자였다.”

쓰고, 읽는 행위는 여성들의 우정을 어떻게 연마시킬까? 작가는 버니지아 울프, 시몬 드 보부아르, 한나 아렌트, 페기 구겐하임 등이 나눈 ‘문학적 우정’의 각별한 장면들을 그러모아 엮었다. “읽고 쓰는 행위는 고독하지만, 신비롭게도 읽고 쓰는 여자들은 고립되지 않았다.” 울프의 친구 캐서린 맨스필드는 울프가 보낸 편지를 액자에 넣어두고 싶어 할 만큼 그의 문장을 사랑했다. 한나 아렌트와 메리 매카시는 정치적이고 도전적인 우정의 조건을 스스로 창조했다. 독서 내내 이들의 일기장을 엿보는 것 같은 신비한 쾌감이 동반된다. 우정을 쌓는 것만큼 남의 우정을 ‘읽는’ 것도 재미있다.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이주혜 지음, 창비 펴냄

“헤어지고 싶은 기억이 있다면 기록하세요. 어떤 수치심도 글로 옮기면 견딜 만해집니다.”

‘나는’이라는 말로는 단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시옷’이라는 이름을 빌려 겨우 써나갔다. 시옷이 켜켜이 펼쳐놓은 상처를 따라 읽다 보면 독자도 슬그머니 제 것을 꺼내 보게 된다. 비슷한 상처인지 이리저리 맞춰본다. 아직 말이 되지 못했던 고통이나 정체를 몰랐던 감정은 그렇게 타인의 말과 글을 빌려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소설의 가장 큰 힘은 아마 거기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일기라는 기록이 가진 힘과도 맞닿아 있다. 난해한 삶의 무기로 쓸 만한 언어를 쥐여주는 것. 과거를 복기하는 일인 동시에 “이제 다른 이야기로 넘어갈” 용기가 ‘쓰다’라는 동사 안에 뜨겁게 담겨 있음을 아름답게 증명한다.

웰니스에 관한 거의 모든 것
한이경 지음, 혜화1117 펴냄

“우리 주위에는 없을까? 이미 존재한다.”

웰니스. 경제용어사전에 따르면 ‘웰빙(well-being)과 행복(happiness), 건강(fitness)의 합성어로 신체적·정신적·사회적 건강이 조화를 이루는 이상적인 상태’를 말한다. 웰니스는 20여 년간 전 세계 여러 국가의 호텔 및 리조트 비즈니스 분야에서 일해온 저자가 주목한 키워드이기도 하다. 10년 전부터 변화 바람이 불었다. 중국에서 약 400평 규모의 도시형 웰니스 센터를 만드는 일에 참여한 저자는 한국에 들어와 새 호텔 여러 곳의 문 여는 일을 해왔다. 그러는 동안 민간기업은 물론 공공기관에서 웰니스 자문이 줄을 이었다. 웰니스가 어떻게 관광 산업의 가능성과 이어지는지 그의 경험을 통해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기자명 시사IN 편집국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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