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들이 본 올해 출판 지형도는?
  • 차형석 기자
  • 호수 13
  • 승인 2007.12.11 1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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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책임자들의 설문 조사를 통해 2007년 출판계 흐름을 탐색했다. ‘출판 최전선’에 있는 이들은 ‘올해의 책’으로 <88만원 세대>를 꼽았다.
   
 
ⓒ난나 그림
 
 
편집자들은 출판계의 풍향계이다. 누구보다 트렌드에 민감하다. 또한 책을 보면서 일반인과는 다른 생각을 할 때가 많다. ‘이 표지 디자인은 누가 했을까’ ‘우리 출판사도 이 저자의 책을 내면 좋겠다’ 등등. 한 해 출판계 동향을 정리하면서 편집 책임자들(편집팀장, 편집장, 주간 등)에게 책의 세계와 그 관계자들에 대해 물어본 이유이기도 하다.

편집 책임자들에게 올해 가장 주목했던 책을 꼽아달라고 했다. 가장 많이 팔린 책이 아니라 각자 ‘자신의 관점에서 내가 뽑은 베스트 5’를 선정해 이를 합산하는 방식이다. 국내 필자가 쓴 책과 번역서로 나누었다.

국내서로는 <88만원 세대>(우석훈·박권일 지음, 레디앙 펴냄) <남한산성>(김훈 지음, 학고재 펴냄) <바리데기>(황석영 지음, 창비 펴냄) <나쁜 사마리아인들>(장하준 지음, 부키 펴냄) <지식ⓔ>(EBS 지식채널ⓔ 지음, 북하우스 펴냄)를 꼽는 이가 많았다. 다섯 권은 <88만원 세대>처럼 책에서 제기하는 메시지가 신선하거나, 김훈·황석영·장하준 등 ‘필자 파워’가 센 책, 그리고 <지식ⓔ>처럼 편집이 뛰어난 책으로 구분할 수 있다.

<88만원 세대>, 지적·사회적 화두로 떠올라

<88만원 세대>는 편집 책임자들이 올해 나온 책 가운데 기획 아이디어가 신선했던 책으로도 꼽았다. 전문 편집자들이 가장 주목한 국내서로 꼽은 <88만원 세대>는, 극적 출간 경로를 걸은 책으로도 기록될 만하다. 저자 우석훈은, <88만원 세대> 출간과 관련된 크고 작은 사고를 일컬어 ‘88만원 세대의 저주’라고 이름을 붙였다.

   
   
 
편집 직전에 출간이 거부되는 등 여러 출판사를 전전하다가 결국 마땅한 곳을 찾지 못해 아는 선배 ‘팔을 비틀어’ 출판사를 차리고, 그마저도 인쇄할 돈이 없어 출판사 사장이 마이너스 통장과 은행 대출로 겨우 400여 만원을 마련해 인쇄소에 넘겼다. 설상가상으로 신생 출판사라고 보증금을 요구하는데 방법이 없어, 이번에는 출판사 편집국장이 중고차를 팔아 유통 보증금을 충당했다. 그러고도 표지 사고, 배달 사고 등 온갖 해프닝을 두루 거쳤다. 난산 중의 난산!

그런 책이 올해 편집자들 사이에서 이견 없이 주목할 만한 책 타이틀을 거머쥔 것이다. 지난 11월, 1만 부 판매를 기념하는 자축연을 가질 만큼 사회과학 분야의 책치고는 선전하고 있다는 점도 반가운 현상이다.

<88만원 세대>의 파급력은 비단 출판계에 머무르지 않았다. 선배 세대뿐 아니라 그들의 자식 세대와의 경쟁에서도 절대적으로 불리한 20대 처지에 대해 생생하게 증언하는 이 책은 적지 않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청년 실업 혹은 비정규직 문제로 회자하던 고용의 문제를, ‘세대 착취’라는 화두로 재정렬함으로써 한층 예각화한 그의 메시지에 공명하는 이들이 매우 많았다. 그의 메시지는, 이미 승자 독식의 룰을 내면화하면서 승산 없는 세대 내 경쟁에 골몰하고 있던 20대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물론 다른 세대에게도 세대 간 격차와 세대 착취의 현상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했다.

‘20대여, 토플 책을 덮고 짱돌을 들어라’라는 자극적 카피를 달고 있지만 <88만원 세대>는 섣부른 희망이나 선동 대신, 냉엄한 현실을 직시할 것을 주문한다. 
저자 우석훈은 편집자들로부터 주목할 만한 유력 필자로 꼽히기도 했다. 현실에서 문제의식을 길어 올리는 그의 글쓰기 방식에 호감을 갖는 편집자들이 늘었다는 뜻이다.

<남한산성>과 <바리데기>는 올해 출간된 장편소설 가운데 가장 주목되었던 책들이었다. <남한산성>은 올해 역사를 소재로 한 장편소설 붐의 선두 격에 있는 작품이다. 그는 올해 이 작품으로 대산문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상품성과 작품성을 두루 인정받았다.

<바리데기>는 거장 황석영이 4년 만에 내놓은 장편소설이다. 탈북 소녀 ‘바리’의 고난에 찬 여정을 두꺼운 문체로 박진감 있게 묘사한 작품이다. 한국어판 출간 전에 영어·프랑스어·독일어·일본어권으로 번역 출간이 결정되었다.

<지식ⓔ>를 꼽은 이가 많았다는 것도 눈여겨볼 만하다. 교육방송(EBS)에서 방송되는 다큐멘터리 ‘지식채널ⓔ’를 책으로 만들었는데 ‘적은 텍스트와 파편적 이미지가 많은 영상을 책으로 성공적으로 구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정한 주제나 사물을 어떻게 하면 책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인가 늘 고민하는 편집 책임자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번역서로는 <생각의 탄생>(에코의서재 펴냄) <만들어진 신>(김영사 펴냄) <세계만물그림사전>(궁리 펴냄) <인간 없는 세상>(랜덤하우스코리아 펴냄) <전쟁의 기술>(웅진지식하우스 펴냄) 등이 많이 꼽혔다.  번역서들은 주로 시장의 반응도 좋고, 집기에 ‘묵직한’ 책들이 주로 꼽혔다. <생각의 탄생>은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인슈타인 등 뛰어난 창조성을 발휘한 사람이 공통적으로 사용한 13가지 발상법을 생각의 단계별로 정리한 책이다.

 <만들어진 신>은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의 최신작으로 이미 출간 전부터 화제가 된 세계적 베스트셀러이다. <인간 없는 세상>은 ‘지구에 인간이 사라진다면’이라는 질문에서 시작하는 과학 논픽션이다. 인류와 함께 사라질 것들과 인류가 지구상에 남길 유산이 무엇인지를 찾아나선다. <전쟁의 기술>은 손자, 클라우제비츠 등 전쟁 전략가의 이론을 비즈니스 전략과 맞붙여 설명한 경제·경영서로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다.

번역서 가운데 <세계만물그림사전>은 편집자들의 ‘눈 밝은’ 선택이라 할 만하다. 이 책은 일러스트 6000개와 그 일러스트에 등장하는 용어를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에스파냐어로 표기한 ‘비주얼’ 사전이다. 편집 책임자들은 올해 나온 책 가운데 기획과 편집이 가장 신선했던 책으로 <세계만물그림사전>을 꼽았다. 책을 출간한 궁리출판사의 김현숙 편집장에 따르면, 이 책은 계약 후 3년6개월 만에 출간되었다. 전문 분야 번역 감수에 공을 기울였다. 예를 들어 생물학과 교수가 번역을 하고, 번역 원고를 다시 파충류 전공자 등 각 영역 전문가에게 감수해달라고 요청했다. 스포츠 분야만 해도 체조 전문가, 컬링 전문가 등 여러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동아일보
강명관 교수(위)와 우석훈 박사는 편집 책임자들이 ‘편집자로서 함께 책을 만들어봤으면’ 하는 필자로 꼽혔다.
 
 
올해의 번역가로는 남경태, 강수정, 안진환, 이한음, 진태원, 최용만 등이 주로 거론되었다. 남경태씨는 올해만도 <남경태의 스토리 철학 18>등 집필서 두 권과 <비잔티움 연대기> 등 번역서 일곱 권을 출간한 ‘전방위 저술가’이다. 주로 인문서를 쓰고 번역하는데 편집 책임자들이 올해 주목한 필자로도 선정되었다. 번역자들은 각 영역에서 자기 브랜드를 갖고 있다. 안진환씨는 경제·경영 자기 계발서 분야의 대표 번역가이다. 번역서 선정에서부터 기획력이 강한 번역가로 알려져 있다. 이한음씨는 과학 분야의 신뢰할 만한 번역자로, 소설가로 등단한 이력을 갖고 있다. <마르크스의 유령들>을 번역한 진태원씨는 철학·인문학 서적 번역에 장점을 가진 번역가로, 인문사회 분야 편집자들 사이에 ‘진태원씨의 번역은 믿을 만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장 신뢰하는 출판사는 돌베개

편집 책임자들은 올해의 필자로는 앞서 말한 우석훈과 함께 강명관(부산대 교수·한문학), 정민(한양대 교수·국문학) 등을 꼽았다. 강명관 교수와 정민 교수는 한문학 분야의 연구 업적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한문학을 통해 독자와 인문 교감을 가지려는 지식인으로 유명하다. 웅진지식하우스의 김형보 주간은 “두 사람은 조선시대의 시와 산문 속에서 조선시대의 다양한 풍경을 대중적 필치로 끌어냈다. 편집자로서 꼭 한번 책을 내보았으면 하는 필자들이다”라고 말했다.

   
 
ⓒ시사IN 한향란
우석훈 교수
 
 
올해 두각을 나타낸 출판사로는 웅진지식하우스가 가장 많은 표를 얻었다. 이 출판사는 국내 임프린트제의 선두 주자로 평가받고 있다. 최근 2년 동안 많은 편집자가 ‘웅진’ 계열 임프린트로 이동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62~63쪽 기사 참조). 전통의 강자 김영사, 문학동네도 많은 주목을 받았다. 쌤앤파커스와 에코의서재는 비교적 신생 출판사. 쌤앤파커스는 올해 <이기는 습관> <에너지버스>를 펴낸 출판사로, 경제·경영서와 자기 계발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에코의서재는 1인 출판으로 시작했는데, 지난해 <판단력 강의 101>, 올해 <생각의 탄생>을 연달아 히트시킨 ‘타율이 높은’ 출판사이다. 심리학 분야 교양서, 자기 계발서를 주로 펴낸다.

출판사의 사이즈나 베스트셀러와 무관하게 편집 책임자들이 신뢰하는 출판사 리스트는 기억할 만하다. 마케팅이 점점 더 강조되는 출판 풍토에서 매번 고른 질을 유지한다는 것은 그 자체로 눈여겨볼 대목이다. 돌베개, 창비, 사계절, 웅진지식하우스, 이산 순으로 꼽혔다. ‘이 회사에서 낸 책이라면 내용, 편집, 디자인 등이 믿을 만하다’고 편집 책임자들이 보증하는 셈이다.

설문에 응한 출판사·출판 관계자 : 개마고원 고즈윈 그린비 글항아리 김영사 대니홍에이전시 더난출판 도서출판 길 돌베개 동아시아 레드박스 리더스북 마젤란 문학동네 변정수(출판 컨설턴트) 북스피어 북이십일 비아북 산책자 생각의나무 쌤앤파커스 오즈북스 웅진지식하우스 위즈덤하우스 은나팔 을유문화사 이매진 책세상 청림출판 페이퍼로드 학고재 한길사 황금가지 (31개 출판사 35명 답변·가나다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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