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방진 도도군〉은 장편 의인 동화다. 개성적인 동물 캐릭터와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배경을 지녔기에 짤막한 우화와는 쉽게 구별된다. 의인 동화도 역동적인 서사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 작품은 유감없이 보여준다.
주인공 ‘도도’는 건방지지만 밉지 않고 사랑스러운 개다. 제멋에 겨운 허풍이 가득해서 빡빡하거나 까칠하지 않다. 누구나 파고들 수 있는 어수룩한 빈틈이 의외로 많다. 부잣집 안방에서 ‘귀차니스트’로 품위 있게 거들먹거리다가 비만증 때문에 버림받는 착각의 명수이기도 하다.
도도의 행보는 ‘집→가출→집→가출→집’의 패턴을 되풀이하는데 그때마다 새로운 캐릭터와 환경이 놓여 있어 계단식으로 서사가 발전한다. 뚱뚱한 개라고 비웃음을 사서 버림받은 후 도도는 시골집으로 보내진다. 거기서 만난 꾀죄죄한 ‘아지’는 알고 보니 사진으로 짝사랑했던 ‘미미’다. 도도에 앞서 액세서리처럼 귀염을 받다가 주인의 변심 때문에 똑같이 버려진 개다.
그런데 아지는 시골집 주인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도도는 아지로부터 주종 관계가 아니라, 동반자 관계에 대해 깨닫는다. 도도가 시골집에 새롭게 적응할 즈음 원래의 주인집에서 다시 불러들였으나 탈출해서 떠돌이 개 누렁이와 뭉치를 만난다. 도도는 새로운 동반자를 찾아 나서고 드디어 시골집 주인과 ‘상자 할머니’를 만나 잠시 행복하게 지낸다.
하지만 ‘상자 할머니’가 사고를 당하자 도도는 다시 동물보호소로 옮겨져 철창에 갇히게 된다. 여기서 또 뭉치를 만난다. 뭉치는 실의에 빠져 지내는 젊은 도도에게 희망이라는 힘을 불어넣어준다. 마침내 도도는 보청견 훈련을 받고 농아인 가족으로 거듭난다. ‘행운→불행→행운→불행→행운’의 사건이 꼬리를 물지만, 도돌이표 반복이 아니라 엇박자로 만나고 겹치면서 최종 목적지를 향해 발전해가는 짜임이다.
폼 잡기 좋아하고 허풍이 센 건방진 개를 화자로 내세운 덕에 재치와 유머도 살아난다. 개를 액세서리 취급하다가 싫증나면 미련 없이 내다버리는 부잣집에 대한 묘사는 풍자의 압권이다. 탈출하기에 앞서 도도는 ‘사모님’을 향해 냅다 오줌발을 갈겨준다. ‘하하, 귀여운 녀석.’ 그러면 이놈은 또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도 알아.’
애완동물 탈출기는 흔한 편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캐릭터와 짜임과 스타일이 새로워서 우리 의인 동화가 발전하고 있다는 뚜렷한 징표로 삼기에 충분하다. 이를 계기로 사랑받는 동물 캐릭터가 많이 나와줄 것이라 기대된다.
평론가가 놀란 ‘건방진 신인’
‘올해의 책’ 동화 부문 후보에 올라온 작품은 〈건방진 도도군〉(비룡소), 〈플로라의 비밀〉(문학과지성사), 〈은하철도 999의 기적〉(시공주니어)이었다. 공교롭게도 세 작품 모두 ‘색채’가 달랐다. 〈건방진 도도군〉은 의인 동화, 〈플로라의 비밀〉은 판타지 동화, 〈은하철도999의 기적〉은 생활+판타지 동화였다. 그러다 보니 추천인들의 고민이 깊었다. 막판에 〈건방진 도도군〉과 〈플로라의 비밀〉이 남았지만, 〈플로라의 비밀〉이 관념적 내용이 많고 지나치게 서구 지향이라는 이유로 결국 밀리고 말았다.
그렇지만 올해 국내 동화를 보는 추천인들의 시각은 비슷했다. “신인 작가들의 약진이 눈부셨고, 작품의 색깔이 다채로워졌다!” 실제 ‘올해의 책’ 후보작을 쓴 작가 세 명 모두 ‘신인’ 소리를 듣는다. 소설적인 분위기가 나는 작품도 많았다. 단편소설에서 주로 쓰는 ‘시점 변화’를 차용한 동화도 눈에 띄었다. “그것을 긍정적으로 봐야 할지, 부정적으로 봐야 할지 모르겠다”라고 김현숙씨는 말했다. 좋게 보면 동화가 문학성을 회복하고 있다는 의미지만, 나쁘게 보면 ‘동화의 본질’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동화계가 한 발, 앞으로 나아갔다는 점이다. 어린 독자들에게는 참, 다행이다.
오윤현 기자
추천인:원종찬(아동문학 평론가) 김서정(아동문학 평론가) 선안나(동화작가) 김현숙(동화작가)
-
‘지혜와 성찰의 샘’에 빠져봅시다
‘지혜와 성찰의 샘’에 빠져봅시다
차형석 기자
얼마 전 일본의 대표적 출판사 이와나미쇼텐에서 40년 동안 일했던 편집자 오쓰카 노부카즈 씨를 만났다. 그는 일본 젊은 세대의 ‘활자 이탈’ 현상을 우려했다. 활자 문화가 붕괴하면...
-
이게 시일까? 갸웃거리다 ‘매혹’
이게 시일까? 갸웃거리다 ‘매혹’
이광호 (문학 평론가)
시인 황병승은 2000년대 한국 시의 가장 불온한 아이콘이다. 그의 두 번째 시집 〈트랙과 들판의 별〉은 그 불온성이 다시 한번 폭발하는 장관을 연출한다. 첫 시집 〈여장 남자 시...
-
그 시절을 너무 쉽게 잊었다
그 시절을 너무 쉽게 잊었다
정여울 (문학 평론가)
어떤 세대는 가질 수 있지만 다른 세대는 가질 수 없는 기억이 있다. 내 가난한 기억의 페이지를 만지작거리며 내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을까, 쓸쓸히 되묻는. 그가 그 시대를 너무 잘...
-
민주주의, 여전히 희망이려면?
민주주의, 여전히 희망이려면?
조현연 (성공회대 교수·정치학)
‘열망에서 절망으로 진행하는 혼돈의 시대와 희망 부재의 사회.’ 내가 생각하는 오늘 우리 사회의 자화상이다. 이런 고통과 위기의 시대에 민주주의란 말이 여전히 우리 시대의 희망이 ...
-
다시 전태일을 읽는다는 것
다시 전태일을 읽는다는 것
박인하 (만화 평론가·청강문화산업대학 교수)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2007년 12월의 대한민국. 인간답게 살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전태일을 만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전체 5권으로 기획되어 어린이 잡...
-
‘황우석 사건’ 추적한 과학다큐
‘황우석 사건’ 추적한 과학다큐
이인식 (과학문화연구소장)
황우석 신화는 끝났으나 검찰에서 ‘과학계의 성수대교 붕괴’라고 비유한 황우석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사건의 전말을 기록한 ‘황우석 백서’가 편찬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우...
-
달려라 환경문학아
달려라 환경문학아
박병상 (인천도시생태·환경연구소 소장)
언제나 그렇지만, 황우석 사기극이 터졌을 때 특히 그랬다. 98 대 2라는 놀라운 열광을 등에 업은 연구자가 제 사기극을 애국으로 위장할 때, 답답한 마음은 어디 문학인이 없나 두...
-
‘민족’은 국문학을 어떻게 이용했나
‘민족’은 국문학을 어떻게 이용했나
강유원 (서평가)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 ‘한문학 연구와 일상’ ‘한문고전의 활용 - 대중화의 전제조건’ 이렇게 세 장으로 구성된 〈국문학과 민족 그리고 근대〉를 일관하는 정신은 전복이다.저...
-
몸으로 썼으니 몸으로 느껴라
몸으로 썼으니 몸으로 느껴라
표정훈 (출판 평론가)
몸으로 썼으니 몸으로 느껴라〈노름마치〉는 광대, 만신, 소리꾼, 춤꾼, 예기 등 예인들의 절절한 사연과 놀이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
편집자들이 본 올해 출판 지형도는?
편집자들이 본 올해 출판 지형도는?
차형석 기자
편집 책임자들의 설문 조사를 통해 2007년 출판계 흐름을 탐색했다. ‘출판 최전선’에 있는 이들은 ‘올해의 책’으로 〈88만원 세대〉를 꼽았다.
-
“좋은 책은 스스로 움직인다”
“좋은 책은 스스로 움직인다”
노순동 기자
30대 초반의 젊은 북 디자이너 이석운씨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그는 북 디자이너가 백발이 성성할 때까지 작업하는 일본의 출판 문화가 부럽다고 말했다.
-
“한국 출판계의 구글이 되고 싶다”
“한국 출판계의 구글이 되고 싶다”
차형석 기자
출판사 편집 책임자들은 2007년 가장 두각을 낸 출판사로‘웅진’을 꼽았다. 웅진은 지난 2년 동안 ‘임프린트제’를 통해 급성장했다. 최봉수 웅진 대표를 만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