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2007년 12월의 대한민국. 인간답게 살기 위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전태일을 만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전체 5권으로 기획되어 어린이 잡지 〈고래가 그랬어〉에 연재 중인 만화 〈태일이〉. 〈태일이〉는 〈와우산〉 〈노동자대회날〉 〈을지로 순환선〉 같은 만화적 회화(혹은 회화적 만화)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해 어린이 그림책 일러스트레이터로서, 평범하고 소박한 사람들과 풍경을 그린 한 칸 만화, 〈코리아 판타지〉나 〈철망바닥〉과 같은 단편을 발표한 최호철의 첫 번째 연재 작품으로 2007년 11월 1·2권이 출간되었다. 1권은 1959년 서울에서 시작해 아버지의 사업이 망해 고생길에 접어든 전태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2권은 가출 후 다시 일 년 만에 대구로 이사 온 가족과 만나 야간 학교에 다니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태일이〉 1·2권은 자신의 차비를 아껴 시다들에게 먹을 것을 사주는 ‘이상한 재단사’ 전태일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성장했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전태일은 열악한 환경에서 착취당하는 청계천 노동자들의 삶을 부여잡고 자신의 몸까지 불살라버린다. 그리고 그 이후 수많은 전태일들은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켰다.
하지만 2007년 오늘, 태일이가 살던 1960년대와 비교해 절대 빈곤은 사라졌지만,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시키는 ‘마음이 가난한 세상’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이 책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슬프다. 2007년 마지막 해 절망이 더욱 구체적이 되어가는 오늘 최호철이 그려낸, 흐르는 듯 열린 선에 담긴 전태일의 어린 시절에게 많이 부끄럽다. 〈태일이〉는 ‘마음이 가난한 세상’에 보내는 전태일의 맑은 영혼이다.
캐릭터 다양 볼거리 풍성
만화 분야의 추천작들은 각양각색이었다. 만화 칼럼니스트 서찬휘씨는 〈도로시〉(학산문화사), 〈CIEL-The Last Autumn Story〉(대원씨아이), 〈불꽃의 인페르노〉(학산문화사)를 추천했다. 세 작품 모두 해외에 수출될 정도로 인정받는 작품이다. 〈도로시〉는 고전 〈오즈의 마법사〉를 새로운 감각으로 재구성한 손희준 작가의 작품으로 미국에 수출되었다. 서찬휘씨는 “〈CIEL〉은 독특한 개그 감각과 잘 짜인 판타지 설정으로 폭넓은 인기를 얻고 있고, 〈불꽃의 인페르노〉는 안정적 작화 솜씨로 액션의 박력과 매력 넘치는 여성 캐릭터 등 볼거리가 매우 풍성하다”라고 평가했다.
만화 평론가 박석환씨는 〈이현세의 버디〉(중앙북스) 〈마음의 소리〉(중앙북스) 〈온〉(시공사)을 추천했다. 조석 작가의 〈마음의 소리〉는 네이버에 연재된 웹툰으로, 올해 네티즌이 뽑은 최고 인기 만화이기도 하다.
유시진 작가의 〈온〉은 제효원씨도 추천작 리스트에 올렸다. 유시진 작가는 여성 만화 팬의 지지를 받는 대표 만화가이다. 제효원씨는 “현실과 판타지를 오가는 액자 구조로 구성된 만화로 근래 보기 드문 깊이와 진정성이 느껴지는 흡인력 있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차형석 기자
추천인:고경일(상명대 만화·애니메이션 학부 교수) 박석환(만화 평론가) 서찬휘(만화 칼럼니스트) 제효원(독자만화대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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