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였던 박진씨(53)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안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
“참사 초기,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로 워낙 큰 재난이었기 때문에 시민단체들이 뭘 해야 할지 정리가 잘 안됐어요. 그래도 무력하게 바라보고만 있을 순 없어서, 참사 피해자들에게 필요한 인권의 기준이 무엇이다라는 성명서를 인권단체들이 냈어요. 처음에는 가족들 만나는 것도 많이 힘들었어요. 아무도 긍정적으로 바라보지 않으시던 때라서 그냥 곁에 있는 정도로만 활동했어요.
세월호 참사는 일상을 안전하게 살아가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아침에 출근했던 가족이 무사히 퇴근하는 것, 여행을 갔던 가족이 무사히 돌아오는 것, 그렇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안전한 사회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했어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들 무사하다고 생각하지만 위험에 처한 사람들이 늘 있잖아요. 사회적 약자들이 위험에 처해 있으면 그들을 위해서 기울기를 조정하는 역할을 했다고 생각했어요. 또다시 기울어지면 사회는 평형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요. 그렇게 조금 위로 올라가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이 인권의 메커니즘이라 생각했고, 인권 옹호론자들의 역할이라 여기며 살아왔어요. 그런데 너무 허망하고 비참한 일이 벌어진 거예요.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사회가 이렇게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내가 딛고 있는 땅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허물어지는 느낌이 들었어요.
세월호는 많은 상처를 남겼지만 그 가운데서 희망적인 것을 찾는다면 다른 사회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의 의지를 볼 수 있었다는 거예요. 세월호 이후는 다른 사회가 되어야 한다는,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게 하겠다는 것이 사람들의 구호였으니까요.
세월호 참사는 희생자들 말고도 참 많은 피해자들이 있었어요. 잠수사, 생존자들, 화물기사 그리고 친구를 따라 생명을 달리한 학생과 엄마 아빠의 죽음 등등. 드러나지 않은 많은 피해자들을 좀 더 적극적으로 호명하고 싶었는데 지난 10년 동안 그 많은 아픈 사람들을 다 불러 세웠나 하는 아쉬움이 남아 있어요. 참사 이후 가장 크게 충격받았던 것은 자식을 잃고, 부모를 잃고 울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그만하라고, 울려면 그만한 자격이 있는지 입증하라고 요구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었어요. 피해자들을 위로하려는 한 그룹이 생겨서 굉장히 많은 희망을 봤다면 또 한편으로는 울고 있는 이웃에게 그만하라고, 돈 때문에 우느냐고 하는 그 모욕적인 말들이 많았던 것도 우리가 반성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생각해요. 지금 이태원 유족들한테도 혹여 그만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한다면 그게 얼마나 무섭고 나쁜 말인지 기억해야 해요.
세월호 참사 초기에 아픈 몸을 이끌고 뭐라도 하셨던 분들은 지금까지 위로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으니까 그나마 다행인데, 그냥 10년 동안 숨어 계시는 분들, 그래서 아픔으로만 끌어안고 계시는 분이 있을 텐데, 그 어떤 무엇도 당신들 탓이 아니라는 점을 꼭 기억하셨으면 좋겠어요. 당신들의, 당신들의 자녀, 당신들의 부모, 친구, 연인의 희생이나 피해 때문에 좀 더 나은 사회를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졌다는 것에 대해 우리 사회가 감사해하고 있다는 점을 전달하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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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4반 임경빈 학생 엄마 전인숙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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