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은희씨(54)는 참사 이후 지금까지 희생된 아이들을 기리며 예배를 이어오고 있다. 안산 화랑유원지 분향소가 철거된 후 2018년 5월부터 생명안전공원 예정 부지에서 시민들과 함께 매달 첫 주 주일예배를 드린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싸우면서 느끼는 게 있어요. 우리가 앞서서 가는 것 같지만, 아이들 뒤를 따라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이들이 못한 말을 하려고, 궁금해하는 질문에 답을 찾으려고 걸어온 길 같아요. 그래서 애들이 원하는 게 뭘까 늘 궁리하면서 살았어요. 세월호는 한국 사회에 선명한 선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예전과 다른 세상을 만드는 기준점이 되어야 해요. 저희의 활동은 그 선을 어떻게 선명하게 유지할 것이냐에 관한 일이에요.
예배 팀을 운영하는 것도 일종의 기억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분향소가 철거되면서 예배 공간이 없어졌을 때 막막했어요. 생명안전공원 부지에는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있었죠. 한 바퀴 둘러보는데 부지 뒤로 단원고가 보이더라고요. 그 순간 여기서 예배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가끔 아이들이 먼저 그곳에 와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도 있어요.
설교 없이 월별로 반 아이들의 이름을 낭독하고 사연을 읽어요. 처음에는 30명으로 시작해서 성탄 예배 같은 날은 200명 넘게 모여요. 일반 시민들이 유가족을 위로하러 왔다가 오히려 힘을 얻어 간다고 말해요. 생명안전공원이라는 공간도 참사의 아픔을 기억하면서 동시에 위로를 주는 역할을 하길 바라요.
대구지하철 참사 유족 중 한 분이 저한테 ‘혹시 나중에 암에 걸리지 않게 조심하세요’라고 하신 말씀이 기억에 남아요. 이태원 참사 피해 가족들을 보는 게 힘들었어요. 9년 전 우리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이전보다 사람들 반응은 약한 것 같고요. 실패를 경험해서 그런가, 저희가 죽는 거 말고 할 수 있는 건 다 한 것 같은데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요. 국가가 더 이상 회피하지 않도록, 다른 참사를 막기 위해서라도 꼭 매듭을 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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