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헌국씨(62)는 거리의 목사, 길 위의 목사로 불린다. 목회를 시작한 1989년부터 그의 예수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서 있었다. 최헌국 목사는 세월호 참사 문제와도 10년을 함께했다.
"얼마 전 환갑이었는데 저에게 아내가 묻더라구요. 이제는 쉴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가 죽음을 통해서 세상의 구원을 이뤄냈던 것처럼, 세월호 참사도 한국 사회가 새로운 생명안전을 일구어내는 변화의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러므로 세월호는 아직 현재진행형입니다.
‘이젠 되지 않았느냐’고 쉽게 말을 해요. ‘10년이 지났으니 이제는 그만해도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10년 전 아이들한테도 그랬잖아요. ‘가만히 있어라.’ 사람들은 세월호 참사의 진상이 규명되는 그때가 세월호의 마지막일 거라 말하곤 해요. 진상규명 이후도 중요합니다. 이 참사의 교훈을 우리가 잊지 않고 삶의 태도로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의 삶에서도 목사로서 마지막까지 지켜야 할 소명과 사명으로 가져가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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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4반 임경빈 학생 엄마 전인숙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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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소 기자
전인숙씨(51)는 1년 넘게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노숙 농성을 했다. 입원을 해야 할 정도로 몸이 상해도 전씨는 거리로 나섰다. 나중에 엄마가 나이 들고 아플 때 모시고 살겠다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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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잠수사 기록 〈로그북〉의 복진오 PD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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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익 기자
기록은 기억보다 잔인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을 직접 수습한 민간 잠수사들의 참혹했던 기억은 시간이 지나며 ‘죽음의 각인’인 트라우마로 남았다. 몸이 망가지고 삶도 무너졌다. 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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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3반 김도언 학생 엄마 이지성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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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미소 기자
4·16기억저장소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지성씨는 365일 딸(김도언 학생)과 친구들 곁에서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 단원고등학교에서 아이들이 앉았던 의자, 책상, 벽에 설치된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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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1반 유미지 학생 아빠 유해종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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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영 기자
유해종씨(62)는 2015년 안산 세월호 분향소 옆 공간에서 목공을 배우기 시작했다. 나무를 깎고 다듬는 동안에는 괴로운 생각도 잠시 멈췄다. 분향소가 사라지고 2019년 5월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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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의원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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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진 기자
세월호 참사 당시 박주민 의원(51)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였다. 참사 이후 그는 ‘세월호 변호사’로 불렸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 청와대 인근 청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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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과안전위원장으로 활동한 박진 국가인권위 사무총장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42]
존엄과안전위원장으로 활동한 박진 국가인권위 사무총장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42]
조남진 기자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였던 박진씨(53)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안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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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회를 바라는 의지 확인했다” [세월호 1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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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진 기자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였던 박진씨(53)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안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세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