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숙씨(51)는 1년 넘게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노숙 농성을 했다. 입원을 해야 할 정도로 몸이 상해도 전씨는 거리로 나섰다. 나중에 엄마가 나이 들고 아플 때 모시고 살겠다며 걱정 말라던 아들 경빈이에게 창피한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서였다. 지금은 단원고 4·16기억교실 복도를 나서며 아이들의 생일을 알려주고 이들의 꿈을 전해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 10년. 지금은 두렵지만 씩씩하게 나아가야 할 시점인 것 같아요. 처음에 저희는 진상규명이 3년에서 5년 안에 될 줄 알았어요. 그렇게 잡았을 때도 주변 사람들한테 ‘너무 긴 거 아니에요? 그런 말 마세요’라고 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지나왔네요. 그 과정에서 저희보다 더 오랜 시간을 싸우는 분들을 알게 됐어요. 광주5·18, 제주4·3, 강정마을...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연대해주셔서 참 감사하죠. 적어도 ‘우리의 권리를 찾고 안전한 세상에서 살기 위해선 우리가 싸워야 하는구나.’ 이게 오롯이 저에게 남은 것 같아요.
저에게 세월호는 연결고리예요. 저와 경빈이를 이어주죠.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이 반드시 되어야 하고, 진상규명이 되어야 책임자 처벌이 이뤄지고요, 그래야 우리 국민들이 안전한 세상에서 살 수 있을 거예요. 결국 우리 경빈이, 아이들의 명예 회복이 되지 않을까요.
새로운 분들과도 연결이 많이 됐어요. 저는 백남기 어르신 사건 때도 서울대병원에서 노숙을 하고, 장애인부모연대 소속 부모들이 병원 침대를 끌고 청와대까지 행진할 때도 그들 곁에 있었어요. 여러 아픔이 있는 곳들은 저희가 다 다니고 있잖아요. 이런 연결이 없었다면 아직도 모르고 살았을 거예요. 수많은 사람이 왜 싸우고 있는지.
시간이 지나니까 저희와 함께 연대해주시던 분들이 많이 아프세요. 갑자기 돌아가시기도 하고요. 그럴 땐 정말 마음이 무너져요. 살아서 함께 잘 싸웠으면 좋겠어요. 아프지 않고 끝까지 함께하기를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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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생존자 장애진씨 아빠 장동원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8]
세월호 생존자 장애진씨 아빠 장동원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8]
신선영 기자
장동원씨(54)는 세월호 참사 이후 회사를 그만두고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 활동에 뛰어들었다. 다시는 이런 참사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마음 때문이었다. 현재 가족협의회 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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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8반 안주현 학생 엄마 김정해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9]
2학년 8반 안주현 학생 엄마 김정해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9]
신선영 기자
김정해씨(53)는 10년이 지나고 20년이 되어도 아이를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사실만은 인생의 ‘동아줄’ 같을 거라고 말한다. 다만 10년 전보다 몸이 쇠약해진 유가족들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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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학년 8반 지상준 학생 엄마 강지은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10]
2학년 8반 지상준 학생 엄마 강지은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10]
신선영 기자
강지은씨(55)씨는 ‘기억이 힘이 된다’는 사실을 이전 참사 유가족들을 만나며 더 절실히 느꼈다. 그는 ㈔4·16세월호참사 가족협의회에서 회원조직사업 부서장을 맡고 있다. 가족협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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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목사 최헌국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23]
길 위의 목사 최헌국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23]
이명익 기자
최헌국씨(62)는 거리의 목사, 길 위의 목사로 불린다. 목회를 시작한 1989년부터 그의 예수는 세상 가장 낮은 곳에 서 있었다. 최헌국 목사는 세월호 참사 문제와도 10년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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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 416연대 이용후씨, 박은순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24]
천안 416연대 이용후씨, 박은순씨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24]
신선영 기자
세월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모인 천안 416연대 활동가 이용후씨(50)와 박은순씨(41)는 참사 직후 실종자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며 50일 동안 촛불을 들었다. 지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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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의원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39]
‘세월호 변호사’ 박주민 의원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39]
조남진 기자
세월호 참사 당시 박주민 의원(51)은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였다. 참사 이후 그는 ‘세월호 변호사’로 불렸다.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직후 청와대 인근 청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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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과안전위원장으로 활동한 박진 국가인권위 사무총장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42]
존엄과안전위원장으로 활동한 박진 국가인권위 사무총장 [세월호 10년, 100명의 기억-42]
조남진 기자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였던 박진씨(53)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안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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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회를 바라는 의지 확인했다” [세월호 10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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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진 기자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였던 박진씨(53)는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뒤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 존엄과안전위원장으로 활동했다. 그는 현재 국가인권위원회 사무총장으로 일하고 있다.“세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