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률구조공단 개인회생·파산 지원센터에서 한 채무자가 상담을 받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법률구조공단 개인회생·파산 지원센터에서 한 채무자가 상담을 받고 있다. ⓒ시사IN 신선영

영하 10℃의 강추위가 찾아온 2023년 12월21일 오후 1시30분, 서울회생법원 복도는 한파를 뚫고 법원을 찾아온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이날 오후에는 개인회생 신청자 100여 명의 채권자 집회가 예정돼 있었다. 채권자 집회란 채무자가 변제계획안에 대한 설명을 하고, 채권자 또는 회생위원이 그에 대한 이의를 진술하는 절차다. 사람들은 긴장된 표정으로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 법정에 온 사람 중 채권자는 없었다. 채무자들만 모여 판사로부터 회생 절차에 관해 간단한 안내를 듣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오후 2시, 법정에서 채권자 집회가 진행될 동안 김정국씨(가명·30)는 핸드폰을 보면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김씨의 핸드폰 바탕화면에는 생후 7개월 딸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김정국씨는 2023년 7월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한 번에 큰 액수를 대출한 것은 아니었다. 생활하는 데 필요한 돈을 조금씩 빌리다 보니 이곳까지 오게 됐다. 10년 차 직장인인 그의 월급은 약 400만원. 적지 않은 월급이지만 빚이 7000만원까지 늘어나 원리금 상환 액수를 감당할 수 없었다.

기준금리가 치솟기 이전 그가 매달 지불한 원리금 상환액은 약 100만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대출금리는 빠르게 올랐고, 부족한 생활비를 충당하느라 신용카드 사용액이 늘어 빚이 급격히 증가했다. 카드 돌려막기, 각종 추가 대출로 인해 매달 갚아야 할 원리금은 300만원을 넘어섰다. 김씨 부부는 전셋집을 월세로 옮기고 생활비 지출을 극단적으로 줄였다. 그러나 2023년 5월 딸이 태어나자 한계에 봉착했다. 아무리 지출을 줄여도 빚을 갚고 남은 월 100만원으로는 아이를 키우는 것이 불가능했다. 버티다 못한 그는 개인회생을 신청했다. 법원이 변제계획을 승인해준다면 원리금 상환액이 월 80만원 수준으로 줄어들 예정이다. “새출발 해야죠. 계획만 잘 통과되면 앞으로는 갚아나갈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말한 후 김씨는 법정으로 들어갔다.

2023년은 스태그플레이션의 해였다. 물가는 꾸준히 오르고, 물가를 잡기 위해 금리도 따라 올랐다. 반면 경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침체를 겪은 한국 경제는 계속 반전의 기회를 노렸다. 사회적 거리두기만 완화되면, 중국의 봉쇄정책만 끝나면, 원자재 가격이 안정되면 경기가 살아날 것이라 기대했다. 그러나 2023년이 마무리될 때까지 경기는 쉬이 나아지지 않았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장기화하자 빚을 감당하지 못하고 ‘망하는 사람’이 늘어났다. 법적으로는 이들을 지급불능 상태에 빠졌다고 말한다. 지급불능은 단순히 채무로 인해 힘들어하거나, 단기간 채무를 이행하지 못한 사람이 아니다. 앞으로도 채무를 갚아나갈 가능성이 없다고 객관적으로 판단되는 이들이다. 지급불능에 빠진 이들은 성실하게 생활을 영위한다고 하더라도 재기의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지급불능에 빠진 이들이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창구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사적 채무조정을 담당하는 신용회복위원회(신복위)가 있다. 신복위에서는 채권자, 즉 돈을 빌려준 금융회사의 동의를 받아 채무를 조정할 수 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법원에서 받는 공적인 채무조정이 있다. 법원에서 회생 또는 파산을 인가받아 채무를 조정할 수 있다.

파산을 할지, 회생을 할지는 각 개인이 최저생계비 이상의 소득을 올리고 있는지 여부에 따라 결정된다. 최저생계비 이상을 버는 사람은 회생절차를 밟아야 한다. 보통 3년으로 설정되는 변제기간에 최저생계비를 제외한 모든 소득은 채무를 갚는 데 사용된다. 변제 과정을 성실히 이행한다면 남은 채무에 대해 면책을 받을 수 있다. 단, 자신이 보유한 재산의 총가치(청산가치)보다 변제액수가 많아야 한다.

반대로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하는 이들은 파산절차를 밟는다. 파산한 사람은 최소한의 임차보증금과 6개월분의 생활비를 제외하곤 모든 재산을 채무를 변제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파산 과정을 성실히 마친다면 나머지 채무에 대해선 면책받는다.

“채무조정 자영업자 수 확실히 늘었다”

법원과 신복위의 통계에 따르면, 지급불능에 빠진 사람의 수는 2023년 한 해 동안 크게 증가했다. 〈그림〉은 지난 5년간 사적·공적 채무조정을 신청한 사람의 수를 월별로 나타낸 그래프다. 해당 그래프를 보면 두 가지 특징이 보인다. 첫째, 신복위 채무조정과 개인회생을 신청한 사람의 수가 2023년 들어 폭증했다. 신복위 채무조정은 이전까지 1만 건에서 1만2000건 정도를 유지해왔으나, 올해 들어 평균 1만5000건 이상을 기록했다. 개인회생도 마찬가지다. 약 6000건에서 8000건 정도를 유지하던 신청자 수가 평균 1만 건으로 늘었다. 둘째, 개인파산 신청 건수는 크게 변동하지 않았다. 즉, 최저생계비도 벌지 못하다가 망한 사람의 수는 증가하지 않았다. 반면 최저생계비 이상의 소득이 있음에도 채무를 감당하지 못해 회생이나 신복위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사람은 증가했다.

자료 :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실, 법원통계월보
자료 : 더불어민주당 오기형 의원실, 법원통계월보

지급불능에 빠진 사람이 증가한 이유는 자명하다. 개인이 벌어들이는 소득이 정체되거나 줄어든 반면 금리인상으로 인한 부채 상환액은 증가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물가가 상승하며 실질소득은 대부분 감소했다.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게 실질 가처분소득 변화다. 실질 가처분소득은 실질소득에서 이자비용 등 비소비지출을 제외한 액수다. 2022년 하반기부터 2023년 상반기까지 4개 분기 연속으로 가계의 실질 가처분소득은 전년 동기 대비 감소했다. 2023년 2분기에는 전년 동기 대비 실질 가처분소득이 5.9% 감소하며 역대 최대 감소 폭을 보이기도 했다.

춘천지방법원에서 파산·회생 사건을 담당하는 홍순건 판사는 “채무자들이 겪는 부담은 기준금리의 절대적 수치가 아니라, 상대적 배수로 봐야 한다”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설정한 기준금리는 2023년 1월 이후 3.5%로 유지됐다. 3.5%라는 기준금리는 언뜻 별로 높지 않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절대적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기준금리가 이전보다 몇 배나 늘었느냐다. 기준금리는 코로나19 팬데믹 이전만 해도 오랜 기간 2%를 넘기지 않았다. 2015년 3월부터 2020년 3월까지 1.25%에서 1.75%를 오갔다. 오랜 저금리 기간이었다. 이때에 비해 현재 기준금리는 약 2~3배 상승했다. 채무자들이 체감하는 이자 상환 부담 역시 그만큼 가중됐다고 봐야 한다.

지급불능에 빠진 사람은 구체적으로 누구일까? 채무조정 증가가 특정한 집단에서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채무조정 업무 관계자들이 입을 모아 우려하는 그룹이 있다. 바로 자영업자다. 자영업자들은 코로나19가 발발한 이후 꾸준히 손실을 감내해왔다. 사회적 거리두기가 완화됐지만, 후폭풍으로 찾아온 물가상승으로 과거와 같은 수준의 매출 회복은 여전히 요원하다. 더 나아질 상황만을 기대하며 버티던 자영업자들이 희망을 잃고 채무조정을 신청하는 사례가 2023년 들어 증가했다.

실제 통계에서도 지급불능에 빠진 자영업자가 증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서울회생법원 통계에 따르면, 2022년 한 해 동안 개인회생을 신청한 영업소득자는 총 2276명이었다. 그런데 더불어민주당 이탄희 의원실이 서울회생법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 상반기 동안에만 개인회생을 신청한 영업소득자가 1884명에 이른다. 전체 개인회생 신청자 중 영업소득자가 차지하는 비율 역시 2022년 15.4%에서 2023년 상반기 20.6%로 증가했다.

영업소득자와 고액 채무자를 담당하는 외부 회생위원인 신용균 변호사 역시 이 변화를 체감했다. 그는 서울회생법원에서 채무자의 재산을 조사하고 변제계획안을 심사하는 전임 회생위원을 6년째 맡고 있다. “과거에 비해 개인회생 신청자들이 보이는 차이점은 별달리 없다. 유일한 차이가 있다면 자영업자의 수가 확실히 늘었다는 점이다”라고 신 변호사는 말했다.

“정부한테 속은 기분이다”

신 변호사가 만난 자영업자들에게는 몇 가지 공통적 특징이 있었다. 우선 몇 달 간격으로 공적 자금을 통한 대출이 반복됐다. 자영업자들은 정부에서 저리 대출을 제공할 때마다 대출을 받아 불황을 버텨왔다. 2022년 말까지도 대출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해, 최근 1년간 받은 대출에 대해선 회생위원들이 더 면밀한 심사를 한다. 그러나 최근 대출이 방만하게 사용된 경우는 거의 없었다. 자영업자들은 주로 기존 대출을 돌려막거나 인건비를 지급하는 데 대출을 사용했다. 2022년까지 희망을 놓지 않고 재기할 기회를 노렸지만, 2023년 들어 돌려막기마저 불가능한 사태에 다다른 자영업자들이 많았을 것이라 해석된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도일씨는 최근 채무조정을 신청했다. ⓒ시사IN 조남진
서울 서대문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도일씨는 최근 채무조정을 신청했다. ⓒ시사IN 조남진

서울 서대문구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도일씨(59) 역시 일반적인 자영업자가 보이는 패턴을 똑같이 따라갔다. 코로나19가 발발하기 직전인 2019년 12월 카페를 창업한 김씨에게 지난 4년은 늪과도 같은 시간이었다. 창업 이후 현재까지 제대로 된 매출을 올려본 적이 손에 꼽는다. 월세와 재료비를 감당하기 위해선 매달 1500만원 이상 매출이 나와야 한다. 그러나 월 매출이 1000만원을 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당장 장사할 재료도 못 사는 상황에서, 대출은 한 줄기 희망이었다”라고 김도일씨는 말했다. 한 번에 몇천만 원씩, 정부에서 제공하는 대출은 가능한 한 전부 받았다. 그것으로도 부족해 신용카드로 돌려막기를 시작했다. 그러나 정부의 이자 지원이 만료되고, 금리가 오르면서 희망이던 대출은 절망으로 돌아왔다. “엄청난 빚을 마주하니 정부한테 속은 기분이 들었다. 대출을 받아야 살 수 있는 것처럼 말했는데, 우리 같은 자영업자의 피로 은행들만 배불린 게 아닌가 싶었다.”

한번 연체되기 시작한 상황은 악화일로를 걸었다. 처음에는 며칠만 영업하면 어떻게든 연체한 원리금을 상환할 수 있었지만, 그 ‘며칠’이 점차 길어졌다. 월세를 밀리기 시작하고 공과금과 건강보험료도 내지 못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배달 매출이라도 올려보고자 카페 한편에서 조각피자 가게를 병행했는데, 이를 위해 또다시 대출을 받아야 했다. 김씨 부부는 투잡을 뛰면서까지 대출이자를 갚으려 했지만 한계에 처했다. 2023년 9월부터는 무슨 방법을 써도 대출을 상환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지급불능 상태에 빠진 김도일씨의 곁에 가장 빠르게 찾아온 이들은 대출 알선 브로커들이었다. 이들은 어떻게든 대출을 받게 해줄 테니, 대출금의 20%를 수수료로 내야 한다고 말했다. 매일같이 걸려오는 추심과 대출 브로커 전화 사이에서 김씨는 지쳐갔다. 채무조정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긴 했지만, 복잡한 절차 앞에서 좌절하기 일쑤였다. 결국 진보당 가계부채119센터의 도움을 받고서야 그는 채무조정을 신청할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손실을 입은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새출발기금'을 통해서였다.

김도일씨 사례처럼, 자영업자들이 대량으로 지급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 데에는 정부의 책임도 적지 않다. 팬데믹 기간에 정부는 자영업자들의 영업을 심각히 제한했다. 그러나 이에 대한 손실 보상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금리를 낮춰 경기가 살아나길 바랐지만 자금은 부동산과 주식 등 자산 투자에만 몰렸다. 정부가 선택한 해법은 대출 확대였다. 자영업자들에게 저리로 대출을 제공해 이들이 팬데믹 기간을 버티게 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에는 한 가지 맹점이 있었다. 팬데믹이 끝난 이후 경기가 이전처럼 회복되지 않는다면 확대한 대출이 문제를 키울 것이란 점이었다. 해결되지 않은 맹점은 자영업자들의 지급불능 증가로 돌아왔고, 2023년 한국 사회는 그 후과를 마주했다.

2022년 10월4일 코로나19로 부채가 늘어난 자영업자들을 위한 ‘새출발기금’이 출범했다. ⓒ연합뉴스
2022년 10월4일 코로나19로 부채가 늘어난 자영업자들을 위한 ‘새출발기금’이 출범했다. ⓒ연합뉴스

지나치게 쉬운 대출이 사태를 악화시킨 측면도 있다. 대부분의 지급불능 채무자들은 상당 기간 돌려막기를 하며 규모를 키운다. 버티면 버틸수록 채무는 늘어나지만, 금융기관들은 이들에게도 추가 대출을 내준다. 당장 한 푼이 아쉬운 채무자에게 추가 대출은 뿌리칠 수 없는 유혹으로 다가온다. 심지어 회생절차 중인 채무자에게 대출을 내주기도 한다. 회생 과정 중인 채무자는 최소생계비를 제외하고는 모든 소득을 이미 채무 변제에 투입하고 있기에 추가 대출은 채무자를 또다시 지급불능 상태로 빠뜨린다. 물론 대출 문제에서 일차적으로 책임이 있는 대상은 채무자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서 무리한 대출을 내어주는 금융기관의 대출 관행 역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급불능에 빠진 채권자의 폭증은 2023년 한 해만으로 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경제적 파탄에 빠진 사람이 채무조정을 신청하기까지 통상 2년에서 3년이 소요된다. 2022년 한 해 동안 기준금리가 2.25%포인트 올랐다는 점을 감안하면, 채무조정 사례는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채무자들이 겪은 경제적 고통과 금융기관 등 채권자들이 입을 손실, 정부의 예산 투입도 뒤따라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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