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감원장(왼쪽)은 윤석열 정부에서 ‘실세’ 금감원장으로 통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보다 존재감이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합뉴스
이복현 금감원장(왼쪽)은 윤석열 정부에서 ‘실세’ 금감원장으로 통하고 있다.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보다 존재감이 강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주요 부처 리더십을 교체했다. 경제 분야 사령탑도 인선이 이어질 전망이다. 12월4일 6개 부처 장관 교체 과정에서 최상목 전 대통령실 경제수석이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내정되었다. 금융위원장 역시 손병두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후임 물망에 오르고 있다. 그러나 당초 총선 출마 가능성이 높아 보였던 ‘검사 시절 대통령 측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금감원장)은 유임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과 함께 ‘검사 출신 대통령 측근’으로 불리던 이복현 원장은 금융 관련 이슈가 터질 때마다 주목받아왔다. 유임이 확정될 경우, 윤석열 정부의 전반기 금융정책은 이복현이라는 인물로 대변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1년 반 동안 이 원장의 행적과, 금감원 앞에 놓여 있는 향후 과제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금융정책 전반을 평가·예측해볼 수 있다.

검찰 특수통 출신인 이복현 원장은 취임 당시 ‘금감원 최초 검찰 출신 원장’이라는 점에서 화제를 모았다.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금융 관련 직무 경험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나오는 한편, 금감원 특성상 검사 출신 인선이 불가능할 것도 없다는 신중론도 여야를 가리지 않고 나왔다. 이때까지의 ‘전망’은 금감원이 통상적으로 수행하던 업무, 즉 금융기관에 대한 감독 업무와 금융소비자 보호 업무에 집중한다는 전제하에 나왔다. 본래의 기능을 넘어서 금감원장이 정부의 경제·금융 정책 전반을 대변할 것이라고 예측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 1년 반 동안 이복현 원장은 ‘실세 금감원장’ ‘금융위원장보다 돋보이는 금감원장’이라는 수식어를 이끌고 다녔다. 주요 이슈 국면마다 이 원장의 발언과 행적이 두드러졌다. 가장 큰 논란은 금융권의 ‘이자율’에 영향을 미치는 장면이다. 2022년 10월, 김진태 강원도지사가 강원중도개발공사의 채권 지급보증을 이행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면서 채권시장이 경색되는 이른바 ‘레고랜드 사태’가 발생했다. 자금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시중은행의 여신금리(은행이 대출해주는 금리)와 수신금리(예적금 금리)가 각각 5.64%, 4.29%를 기록할 만큼 크게 올랐다(2022년 11월, 한국은행 발표).

정부 개입으로 채권시장이 안정화되자 은행권에서는 여신금리와 수신금리가 모두 낮아졌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수신금리의 인하 폭이 더 커 은행의 예대마진(여신금리와 수신금리의 차이)이 2022년 11월 1.35%포인트에서 2023년 2월 1.78%포인트로 늘어났다. 이때 사실상 ‘창구지도’를 위해 나선 인물이 바로 이복현 금감원장이다. 2023년 2월부터 4월까지, 이 원장은 주요 시중은행, 지방은행을 차례로 돌며 ‘상생금융’을 강조하면서 사실상 상품금리 인하를 유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3년 2월13일 윤석열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은행의 돈잔치로 인해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금융위는 관련 대책을 마련”하라고 발언한 직후다. 2023년 3월30일에는 우리은행 지점을 방문한 자리에서 “상반기가 지나기 전에는 국민들이 은행권의 노력과 최근 단기자금시장 안정으로 인한 금리 하락 효과를 체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라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한국은행 총재나 금융위원장 대신, 금감원장이 체감금리 문제를 지적하는 것은 이례적이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기준금리는 3.5%로 유지되었지만 금융권의 가계대출 금리, 특히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꾸준히 낮아지면서 가계부채가 확대되는 모습을 보였다. 당시 이복현 금감원장의 개입(창구지도)은 국정감사에서도 논란이 되었다. 2023년 10월17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감에서 김종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복현발 상생금융이 시작된 4월을 기점으로 (가계대출이) 반등한다. 과연 이게 서민들을 위한 금융(확대)이었냐. 상생금융이 시작(4월)된 이후 은행 대출자의 신용점수가 대폭 상승한다. 대출받은 사람들은 고신용자 중심이었다. 이후 가계대출 총액은 10조원이 늘어났다. 서민금융보다는 고신용자 부동산 대출이 상생금융의 수혜자가 되었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 원장은 “어려운 사람을 좀 도와서 이자 내려달라는 이런 것들이 가계대출의 전체 추이에 영향을 미친다고 저는 생각하지 않는다”라고 답했다.

이복현 금감원장(왼쪽)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오른쪽)이 2023년 2월28일 민·당·정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이복현 금감원장(왼쪽)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오른쪽)이 2023년 2월28일 민·당·정협의회에 참석하고 있다. ⓒ시사IN 이명익

금융위원장보다 주목받는 금감원장

그러나 이후에도 시중금리에 영향을 미치려는 금감원장의 발언은 계속됐다. 2023년 하반기 들어 다시 금리가 오르는 움직임을 보이자, 2023년 11월2일 이복현 원장은 “고금리 예금 재유치와 외형 확대 등을 위한 금융권의 수신 경쟁 심화가 대출금리 추가 상승으로 이어져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이자부담을 가중할 수 있다. 필요할 경우 경영진을 면담해 건전한 경영을 유도할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금융기관들에 적극적으로 예적금 금리 인상을 억제하라는 시그널을 주면서, ‘면담’이라는 금감원의 창구지도 의지를 내비친 셈이다.

문제는 이 같은 거듭되는 ‘금리 개입’이 과연 금감원 소관이냐는 점이다. 금융정책 관련해 원래 주목받는 쪽은 금융위원회다. 하지만 주요 금융 이슈 국면에서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이복현 금감원장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2023년 11월5일 ‘공매도 금지’ 발표다. 당초 김주현 위원장을 비롯해 금융위는 공매도 금지에 부정적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11월9일 국회 정무위에서 김한규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국회 운영위에서 대통령실 비서실장한테 물어봤더니 (11월5일 비공개로 진행된) 고위 당정회의 때 (금융위가) 설득이 됐다고 한다”라며 금융위의 입장 선회에 대해 질책했다. 당시 김주현 위원장은 “시장 상황에 따라 조치한 것”이라고 답했으나, 이후 윤석열 대통령이 금융위원장을 교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공매도 금지에 대한 반발이 인선에 영향을 주었다는 추측이 이어졌다. 반면 이복현 원장은 “공매도 전면금지는 국내 증시의 변동성 확대, 글로벌 투자은행(IB)의 대규모 불법 무차입 공매도 사례 적발 등을 감안한 조치(2023년 11월15일)”라며 정부·여당의 입장에 충실한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실세 금감원장’이 등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에도 첫 민간인 출신 금감원장으로 주목받은 최흥식 전 원장, 시민사회 출신 김기식 전 원장 등이 실세 금감원장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취임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개인적인 논란으로 각각 6개월, 15일 만에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정권 실세로 꼽히는 인사가 1년6개월 이상 금감원장 임기를 지키는 것 자체가 이례적인 상황이다.

그러나 이복현 원장이 겪어온 논란과 그 앞에 놓인 과제는 가볍지 않다. 금감원의 ‘본업’이라 할 수 있는 금융감독과 금융소비자 보호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이슈가 터져나오고 있어서다. 내년도 대규모 손실이 예견된 홍콩 H지수 ELS(주가연계증권) 문제가 불거지면서 금융 당국의 감독 부실 논란도 제기되고 있다. 홍콩 증시와 연계되어 있는 이 상품은 일정 범주 밑으로 지수가 내려가면 원금을 보전받기 어려운 상품이다. 손실 가능성이 높은 데다 고령층에 대한 판매가 많아 불완전판매(정보를 제대로 고지하지 않고 금융상품을 판매하는 일) 논란이 일고 있다.

야권의 ‘횡재세(특별기금) 도입’ 주장에 대해서도 사실상 이복현 금감원장이 ‘수비수’ 노릇을 하고 있다. 이 원장은 야권의 횡재세 제도화가 “거위 배 가르자는 것”이라며 반박하면서도, 은행(11월27일)과 보험사(12월6일) 등 금융업계 대표들을 연달아 만나며 ‘상생 방안’을 계속 주문하고 있다. 연이어 불거지는 ‘관치금융’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복현 원장의 입에 당분간 이목이 계속 집중되리라 보인다. 무엇보다 그의 발언과 움직임이, 윤석열 대통령이 원하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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