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5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연합뉴스
11월5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오른쪽)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이 공매도 전면 금지 조치를 발표했다.ⓒ연합뉴스

‘그때’랑 똑같다. 아니, 더 나쁘다. 그때는 갑자기 닥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금융위기를 막아야겠다는 이유라도 있었다. 아니면 내가 견문이 좁아서 그런지 모르겠으나, 총선이 금융위기급의 위험요인이라도 되었나 보다.

‘그때’, 당시 여당(지금 야당)의 유력 대선주자와 전화 통화를 했다. 금지했던 공매도를 재개하느냐 마느냐로 한창 시끄러울 때였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해달라고 했다. 나는 “공매도 금지는 풀어야 한다”라고 첫마디를 꺼냈다. 바로 반응이 왔다. “알고 있습니다. 당정에서도 고려 중입니다….” ‘당정’이라는 말을 듣고 그만 폭발해버렸다. 말을 끊었다.

“그걸 왜 ‘당정’이 하십니까. 그건 ‘당정’이 하는 일이 아닙니다.”

내 목소리가 꽤 높았나 보다. 통화는 간단히 끝났다.

공매도 금지는 왜 갑작스럽게 실시되었나?

공매도 금지를 ‘갑작스럽게’ 시행한 점을 눈여겨보자. 시행 전 군불을 때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간잡이’들이 간을 봤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는 워낙 급작스럽게 시행된 탓에 시행 주체인 금융 당국조차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는 게 드러났다. 11월5일, 금융 당국의 공매도 금지 발표 직후 열린 기자회견은 코미디였다. “현재 계약되어 있는 공매도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금융위원장이 “실무자에게 확인해서”라고 답변하는 식이었다. 기자들이 질문을 통해 규제 당국이 해야 할 일을 ‘알려주면’ 당국이 받아적는 기막힌 모양새도 나타났다. 정말 여론엔 ‘진심이지’ 않은가.

공매도 금지 조치를 미리 알리면 시장이 준비할 시간을 갖게 된다. 이런 시간을 주지 않으려 ‘고의적’으로 갑작스레 실시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든다. 시장이 미리 알고 대비할 경우 주가 상승효과는 크게 제약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공매도자는 주식을 빌려서 판 다음에 그 주식의 가격이 내려가면, 떨어진 가격으로 주식을 사서 갚는 방법으로 이익을 본다. 그런데 (금지 조치를 예측하고 그것이 시행되기 전에) 미리 주식을 사서 갚아버리면(쇼트 커버링), 주가 상승이 공매도 금지 실시 이전에 일어날 수 있다. 그러면 공매도 금지 발표 이후 주가 상승에 생색 낼 중요한 기회를 잃어버리게 된다. 포퓰리스트들에겐 맥이 풀리는 일일 터이다.

또한 갑자기 발표해서 시장을 놀라게 하면 주가 상승이 과도하게 나타나는 ‘장점’도 있을 수 있다(overreaction). 오늘 오른 주가가 내일 얼마나 떨어질지 상관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오늘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가 중요하지 내일 따윈 걱정하지 않는다. 결기도 느껴지고 폼도 나지만, 이건 오늘만 열심히 살고 끝나는 하루살이에게나 어울리는 모토다.

공매도 금지 조치 이후 주가 움직임은 예상대로다. 펀더멘털이나 거시적 위험요인 자체가 바뀌지 않았는데 공매도 금지만으로 어떻게 주가를 부양하겠는가. 이런 주가 움직임을 예측하지 못했다면 재무관리 수업을 다시 들어야 할 일이다.

시장을 조금이라도 아는 투자자들이라면 주가가 뛰었을 때 이를 털고 나올 절호의 기회로 생각하고 실행했을지 모른다. 그 유명한 ‘처분 효과(disposition effect)’다. 그동안 손절매할 타이밍조차 놓쳐서 속절없이 마음을 끓였는데 주가가 올랐으니 얼마나 좋은가. 오른 가격에 팔고 나갈 수 있으니 말이다. 이후 떨어지는 주가를 보며 가슴을 쓸어내리고 있을지도 모른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러나 당신이 높은 가격에 주식을 매도했다고 해서 전체적으로 행복해진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다. 다른 누군가는 그 주식을 높은 가격에 샀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관투자가들이야 오른 가격이 적정가와는 한참 떨어져 있다는 걸 몰랐을 리 없으니 아마도 그 가격에 산 투자자들은 개인일 가능성이 높겠다. 높은 가격에 주식을 산 투자자나 아직도 그 주식을 갖고 있는 투자자들을 보며 ‘바보들’이라고 비아냥거리는 짓은 하지 말자. 미리 팔았다면 당신은 빨랐고, 운이 좋았으며, 아주 조금 더 똑똑했을 뿐이다. 야속하게도 바로 다음 날부터 주가가 고꾸라지니 불과 며칠 동안 얻어맞은 손실이 얼마나 컸을까. 금전적으로도 심적으로도 그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었기만 바란다. 당한 자가 멍청한 게 아니라, 사기 친 자가 나쁜 것이다.

공매도 전면 금지 발표 직후인 11월6일, 코스피 지수는 5.66% 반짝 상승했다. 그러나 이날 회복한 코스피 지수 2500선은 다음 날 곧바로 무너졌다.ⓒ연합뉴스
공매도 전면 금지 발표 직후인 11월6일, 코스피 지수는 5.66% 반짝 상승했다. 그러나 이날 회복한 코스피 지수 2500선은 다음 날 곧바로 무너졌다.ⓒ연합뉴스

이제 약속했던 공매도 금지 조치를 끝내야 할 내년 6월로 가보자. 고작 2년여 전에 공매도 재개를 두고 얼마나 나라가 시끄러웠는지 기억할 것이다. 미래에 주가가 어떨지 예측할 능력이 내겐 없다. 다만 상황이 어떻든 공매도를 재개한다고 했을 때 공매도 영구 금지를 바라는 투자자들이 어떻게 대응할지는 예상하기 어렵지 않다. 공매도의 순기능에 대한 토론회가 열리고 관련 기사들이 나올 것이며 경제 유튜브들 또한 바쁠 것이다. 그래 봤자 결정은 어차피 ‘당정’이 하겠지. 그 시점의 여론이 어떤지 보면서 말이다.

이번 공매도 금지가 그동안 해왔던 다른 조치들과 다른 점은 위기 시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시행한 것이 아니라, 멀쩡한 시기에 주가를 올리기 위한 부양책으로 실시했다는 점이다. 자사주 매입처럼 공매도 금지를 주가 부양을 위해 쓴다니 창조적이지 않은가. 다른 선진국들에선 엄두도 못 내는 일이다. 이 정도면 한국의 공매도 금지를 ‘K 공매도 금지’라고 부를 만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혹시 나중에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서 지금 공매도를 풀어놓아야 한다는 논리도 가능하겠다. 그래야 금지도 할 것이니 말이다. 그러니 내년 6월에는 나중에 금지해 주가를 부양해야 하니 공매도를 허용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기막힌 논리가 등장할지도 모른다. 주가를 자주 부양하려면 자주 금지해야 하니까 허용도 자주 하는 게 좋겠다.

한국의 주주들은 피곤하고 억울하다. 훌륭한 회사인데 주가는 형편없고, 오를라치면 지배구조 관련 이벤트에 속절없이 나가떨어지기 일쑤다. 알짜 기업을 분사(分社)하면서 주주들에겐 한 푼의 보상도 없고, 보상은커녕 폭락하는 주가를 그대로 얻어맞아도 할 말이 없는 곳이 한국의 자본시장이다. 이사회고 경영진이고 배울 만큼 배운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그저 ‘오너’에게 충성하는 것이지, 회사에 투자해준 고마운 주주들은 그들의 안중에도 없다. 그들도 할 말은 있을 터이다. 오너 체제 덕분에 회사가 성장하고 있으니 이 정도는 참아줘야 한다는 거다. 맞는 말이다. 다만 그걸 주주들만 참아야 하니 문제지. ‘챙기는 건 난데, 얻어맞는 건 너’라면 누구나 점잖을 수 있다. 맞다. 여긴 한국이다. 아쉬우면, ‘니가 가라, 하와이’.

그러나 이사회나 경영진조차 미약하게 보이게 하는 거대 세력이 있으니 이름하여 ‘당정’이다. 예나 지금이나 한국 자본시장에 가장 큰 위험 요소다. ‘당정 리스크’는 참 고약하다. 그 가격을 매기기가 너무 어렵다. 위험 자체도 변화무쌍한데 그 ‘가격’도 마찬가지다. 너무 광범위하고 근본적인 위험인데도 ‘랜덤’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당정 리스크’는 한국이라는 나라의 ‘신뢰’와 직접적으로 연관된다.

왜 외국 자본만 걱정하나?

이번 공매도 금지는 그나마 남아 있던 한국 자본시장에 대한 신뢰를 송두리째 날려버린 쾌거(?)로 기록될 것이다. 공매도의 순기능이나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이 어쩌고 하는 말들도 사치스럽다. 그걸 알고 추구하는 자들이라면 어떤 정책도 이런 식으로 실시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위원장이 대형주들에게만 허용된 공매도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춰 정상화(전면 허용)할 필요에 대해 언급한 게 올해 초다. 말을 뒤집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아예 시장조성자 공매도조차 금지할 태세다(〈시사IN〉 제704호 ‘시장조성자 규제하면, 손해는 투자자에게’ 기사 참조). 자본시장에서 신뢰라는 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는 굳이 다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외국 자본이 빠져나갈 거라는 경고가 들린다. 왜 외국 자본만 걱정하는가. 개인투자자들은 봉인가? 한국 주식시장에 이를 갈면서 미국 주식으로 갈아타는 투자자들이 보이지 않는가.

11월7일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회원들이 시장조성자 퇴출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11월7일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회원들이 시장조성자 퇴출 등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국가가 있어야 할 곳에 없으면 얼마나 삶이 핍진해지는지 대다수 한국인들은 몸으로 겪어서 알고 있다. 학폭을 당해도 가해자 보호에 바쁘고, 전세 사기를 당해도 어쩔 수 없다고 팔짱을 낀다. 전세 사기는 집주인의 부채 상태만 알려줘도 안 생길 일이다. 음주운전으로 인명 피해를 내도 표창장 위조만도 못한 죗값을 치르는 경우가 있다. 공원에서 누가 맞을지 상관없이 골프공을 있는 힘껏 날리며 연습을 하는 망나니도 제재하지 못한다. 화재 진압하러 출동한 불자동차는 불법주차한 차량 때문에 길을 돌아가야 한다. 어린이 보행사고가 자주 일어났던 곳에서 또 다른 어린이가 차에 치여 죽어도 혀만 한번 끌끌 차고 마는 곳이 한국이다.

이번 사태는 또 다른 교훈을 준다. 국가가 없어야 할 곳에서 설쳐대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있어야 할 곳에서 목소리를 내고, 없어야 할 곳에서 조용히 하는 것은 개인의 미덕으로만 여길 일이 아니다. 맞다. 당정, 바로 당신들한테 하는 말이다.

기자명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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