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6일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광판에 카카오뱅크의 코스피 상장을 축하하는 문구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8월 초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주주자본주의를 해치는 대기업의 횡포에 대한 정부의 고민을 촉구합니다’라는 청원이 등장했다. 대기업이 핵심 사업 부문을 자회사로 쪼개어 떼어내면 주가가 하락하는 경향이 있다. 이로 인해 해당 대기업의 소액주주들이 손해를 입는 일이 드물지 않게 일어나는데 이를 어떻게 개선할지 정부가 고민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 청원은 참여 인원이 5000명에도 도달하지 못해 종료되지만, 사실 한국 자본시장의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를 담고 있었다.

기업을 붙이는 것(합병)만큼이나 쪼개는 것(분할)도 유행을 탄다. 지난 7월 초 SK이노베이션은 배터리와 석유개발 부문을 떼어내 두 개의 자회사로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공식적으로 밝혔다. 재무금융 데이터 서비스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에 분할 공시를 낸 상장사는 27개다. 2019년에는 38건, 지난해에는 59건이었다. 늘어나는 추세다. 중요한 것은 분할 이유다. 떼어낸 자회사를 상장시켜 자금을 조달할 목적으로 이뤄지는 분할이 적지 않다.

기업지배구조원 송은해 연구원의 2018년 보고서는 물적분할(뒤에서 설명한다) 이후 지배구조 변화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다. 보고서는 모두 78건의 물적분할 사례(2015~2017년)를 분석했다. 분할된 신설회사가 ‘존속회사(분할된 신설법인을 하나의 사업 부문으로 갖고 있던 업체)’의 100% 자회사로 남아 있는 경우는 43건(55.1%)에 불과했다. 나머지 35건은 분할 이후 신설 자회사의 지분구조에 변화가 있었다. 특히 이 중 25건은 존속회사가 신설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상실한 경우로 확인되었다. 자회사가 모회사의 이익에 크게 기여하는 사업 부문이었다면, 이 같은 지배력 상실이 모회사의 기업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온 강세장 가운데서 최근 수많은 기업이 상장을 기다리고 있다. 그중엔 모회사에서 분리되어 나온 자회사가 다수다. 자회사가 상장되면 모회사와 자회사가 동시에 상장기업이 된다. 이를 ‘모자회사 동시상장’ 또는 ‘자회사 분할상장’이라고 부른다.

지난해 9월과 올해 8월에 각각 상장한 카카오게임즈와 카카오뱅크는 카카오의 자회사다. 지난 9월17일 상장한 현대중공업은 한국조선해양의 자회사다. 지난해 여름 대박을 낸 SK바이오팜을 비롯해 SK바이오사이언스, SK아이이테크놀로지 등은 SK그룹의 계열사들로부터 분사된 업체들이다. LG화학에서 배터리 부문을 떼어낸 LG에너지솔루션, 카카오의 자회사들인 카카오페이·카카오모빌리티·카카오엔터테인먼트, 원스토어와 SK실트론 등 다른 SK 계열사들 역시 상장을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자회사 동시상장’은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미국이나 영국·프랑스·독일 등 선진국에는 이런 사례가 거의 없다.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은 수많은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그러나 ‘알파벳 그룹’에서 상장사는 지주회사인 알파벳뿐이다. 구글은 알파벳이 지분을 100% 보유한 비상장기업으로 남아 있다.

동시상장의 문제점은 특히 기업지배구조 이슈와 관련해서 뚜렷하게 드러난다. 지주회사(신설 자회사의 모기업)의 가치가 떨어지고, 모기업과 자회사 주주들 간에 갈등이 격화될 수 있다. 대주주의 전횡을 뜻하는 ‘터널링(tunneling)’도 큰 문제다. 터널링은 회사의 창고까지 몰래 터널을 파서 회사 소유의 보물을 도둑질해간다는 말에서 나왔다. 대주주들이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회사를 경영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해서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를 지칭한다. 대주주가 동시상장으로 터널링을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상장의 문제점을 이해하려면 우선 기업분할에 대해 간단히 정리할 필요가 있다. 기업분할에는 물적분할과 인적분할이 있는데, 이번 글의 주된 관심사는 물적분할이다. 그러나 잠시 인적분할도 함께 살펴보면 비교를 통해 두 가지 모두 좀 더 명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그림 참조).

소액주주 떨게 하는 대기업 물적분할

하나의 회사를 모회사(지주회사, 존속회사)와 그에 딸린 자회사(사업회사, 신설회사)로 쪼개는 것을 물적분할이라고 부른다. 자연스럽게 모회사가 자회사 지분을 많이 보유하게 되어 있으므로, 모회사의 지배주주는 설령 자회사 지분을 따로 갖지 않아도 모회사를 통해 자회사를 지배할 수 있다. 한 회사의 지분만으로 두 회사를 지배할 수 있다니 솔깃하다.

회사가 모자 관계없이 수평적으로 쪼개지면 인적분할이다. 수평적이란 두 회사 간에 지분 관계가 없다는 말이다. 인적분할에선 물적분할(모회사가 자회사에 많은 지분을 갖는다)과 달리, 기존 주주들이 ‘쪼개지기 이전 회사’에 가진 지분율과 똑같은 몫을 ‘쪼개진 이후의 두 회사’에 각각 갖게 된다. 즉, 당신이 A라는 회사에 20% 지분을 갖고 있었는데, A사의 일부 사업 부문을 B라는 회사로 인적분할 방식으로 떼어냈다고 치자. 기존의 A사가, A사(상호는 이전과 같지만 일부 사업 부문이 외부로 나간 상태인 존속회사)와 B사(기존 A사의 사업 부문으로 만든 신설회사)로 분할된 셈이다. 여기서 주주인 당신은 A사와 B사에 각각 20%의 지분을 갖게 된다. 원칙적으로 A사와 B사 간엔 지분관계가 없다.

다만 당신이 인적분할된 두 회사를 굳이 함께 지배하고 싶다면, 양사 모두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시간과 돈이 든다. 물적분할처럼 하나만 지배해도 둘을 지배하는 것이라면 좋을 텐데 말이다. 그러나 인적분할로 가도 ‘하나에 대한 지배로 둘을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양사 간에 모자 관계를 만들어주면 된다. ‘쪼개지기 이전 회사’가 자사주를 가졌다면 더욱 쉽게 이 목표를 성취할 수 있다. 이른바 ‘자사주의 마법’이다(〈시사IN〉 제349호 ‘인적분할이라는 마술’ 참조).

자사주는, 기업이 보유한 자신(해당 기업)의 주식이다. 예컨대 A라는 회사가 자사(A사)의 주식을 보유하는 경우다. A사가 자사주를 10% 보유했다면, 이는 A사(인간 주주가 아니라 A사라는 법인 자체)가 A사 스스로에 대해 10%만큼 주주로서 권리를 갖는다는 의미다. 그렇다면 이 A사는 자신으로부터 떨어져나간 B사에 대해서는 어떤 권리를 갖게 될까? 정답부터 말씀드리자면, A사(존속회사)는 B사(신설회사) 지분의 10%를 갖게 된다. A사가 자신에 대해 10%의 주주였다면, 자신으로부터 분할된 B사에 대해서도 10%의 주주라는 의미다. 자연스럽게 존속회사(A사)는 지주회사, 신설회사(B사)는 자회사라는, 모자 관계가 발생하게 된다. 지주회사를 통해 자회사를 지배할 준비가 끝난 셈이다.

남은 일은 A사와 B사 간의 모자 관계(A사의 B사에 대한 지배)를 더욱 굳히는 것이다. 이에 따라 A사에 대한 대주주(분할되기 이전 A사)의 지배력도 더 강화할 수 있다. 방법은 대주주가 인적분할에 따라 갖게 된 자회사(B사) 지분을 몽땅 지주회사(A사) 지분을 사들이는 데 사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대주주가 보유한 자회사 지분을 모두 지주회사 지분과 교환하면 된다. 이에 따라 지주회사는 자회사 지분을 더 많이 확보하게 된다. 대주주는 자신의 지주회사 지분율을 대폭 끌어올릴 수 있다. 물론 대주주의 자회사 지분은 줄어들겠지만 아무런 문제가 없다. 대주주가 지주회사만 확실히 지배할 수 있다면, 자회사까지 수중에 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인적분할은 하나의 회사를 지주회사-자회사로 전환해서 대주주의 지배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많이 쓰인다.

반면 물적분할은 일부 사업 부문을 떼어내 독립적인 발전을 도모하거나 쉽게 매각하기 위한 목적으로 실행된다고 한다. 적어도 교과서에는 그렇게 쓰여 있다. 그러나 한국에선 이에 중요한 이유 하나를 더해야 한다.

인적분할의 경우, 지주회사에 가장 중요한 일은 자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높이는 것이다. 지주회사가 자사의 자금으로 자회사 지분을 사들여야 한다. 자회사를 상장해서 지주회사의 지배력을 희석하려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그러므로 신규 자금의 유입도 없다.

그러나 물적분할로 떼어진 자회사는 주로 상장을 통해 자금조달에 나선다. 한국에서 물적분할이 중요시되는 또 다른 이유다. 지난 8월 한 경제신문은 ‘대기업들의 자회사 상장이 공매도보다 무섭다’는 제목의 기사를 내놓았다. 기업이 상장하는 게 무섭다니, 이게 무슨 말일까? 안타까운 얘기지만 ‘모자회사 동시상장’은 한국에서 개미투자자들이 주주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좋은 예가 된다.

구글은 알파벳이 지분을 100% 보유한 비상장기업으로 남아 있다. ⓒAFP PHOTO

당신이 A사의 주주라고 치자. A사에는 여러 사업 부문이 있다. 그중에서 ‘a’라는 사업이 가장 유망하다. 당신이 A사 주식을 산 이유도 a사업이 많은 현금을 벌어다 주리라 기대했기 때문이다. 매수 후 주가는 순항했으나 얼마 후 암초를 만났다. 놀랍게도 문제는 a사업이 너무도 유망하다는 데 있었다. 성장을 위해 자금을 크게 투자할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이때 기업이 보유한 현금이 충분치 않다면 대개의 경우 회사는 채권이나 주식을 발행한다. 다만 채권을 발행할(돈을 빌릴) 경우, 부도 위험이 높아지고 주주와 채권자 사이의 갈등으로 빚어지는 ‘채무발 해이의 위험’에 빠질 수 있다(〈시사IN〉 제702호 ‘화성에서 온 채권자, 금성에서 온 주주’ 참조).

반면 주식을 공개 발행해 새로운 주주들이 생기는 경우엔 기존 주주들의 지분이 희석된다. 지분이 희석되면 기존 주주들의 의결권(voting right)이 약해진다. 소액투자자에게는 지분 희석으로 인한 의결권 훼손이 대수롭지 않겠지만 지배주주에게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특히 증자(주식 발행으로 자금조달)로 조성해야 할 자금이 큰 액수일 때는 그만큼 지분 희석이 커진다. 지배주주가 현금을 아주 많이 갖고 있다면 새로 발행하는 주식을 대거 매입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을 터이다. 그러나 이는 대부분의 경우 가능한 옵션이 아니다.

그래서 지배주주는 A사에서 a사업 부문을 떼어내 Aa라는 자회사를 만든 뒤 이 회사가 스스로 자금을 조달하도록 계획을 세운다. 이에 물적분할을 활용할 수 있다.

물적분할 뒤의 A사는 가장 유망한 사업인 a부문이 없는 기업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A사가 신설회사인 Aa사의 지분을 100% 보유하고 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기존의 A사 내에서 a사업이 벌어들일 돈’이 ‘자회사 Aa가 벌어들이는 돈’으로 바뀌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A사 주주들이 받게 될 실제적인 현금흐름의 크기가 변화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Aa라는 자회사를 만든 이유가 처음부터 자금조달에 있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Aa가 상장을 해서 돈을 끌어모을 것이기 때문이다.

상장을 하면 Aa사에 새로운 주주들이 생긴다. 당연히 A사가 더 이상 Aa사의 지분을 100% 보유할 수 없게 된다. 이 말은 앞으로 Aa사가 벌어들일 현금을 모회사 A를 통해 기존 주주들이 모두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주주들과 나누어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다시 말해 Aa사가 훨씬 더 많은 현금을 벌어들일 정도로 크게 성공하지 못한다면 A사 기존 주주들의 몫이 줄어들게 된다. Aa사에서 생기는 현금을 새로운 주주들과 나누어야 하니 A사의 주가는 떨어진다. 이를 ‘지주사 할인’이라고 부른다.

물적분할 후 자회사 상장은 이처럼 지배주주의 지배권을 유지하면서 그 비용을 소액주주들에게 전가하는 자금조달 방식이 된다. 특히 지주회사가 보유해야 할 자회사 지분에 하한을 두어 최소 지분율을 상장 자회사의 경우 20%, 비상장 자회사의 경우 40%로 규정한 공정거래법은 자회사 분할상장이 난무하게 된 중요한 원인이다. 모회사가 가진 자회사 지분율이 20% 밑으로 희석되기(떨어지기) 전까지는 얼마든지 증자를 해도 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9월16일 서울 종로구 서린빌딩에서 열린 SK이노베이션 임시 주주총회에 주주들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배당 챙길 권리보다 의결권이 중요한 재벌

김우진 서울대 교수의 진단에 따르면, 필요한 자금을 모회사가 조달하지 않고 분할된 자회사의 상장으로 해결하는 방식은 재벌로 대표되는 한국의 특수한 기업지배구조에서 비롯된다. 최고경영자 시스템이 정착된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증자로 대주주의 지분이 떨어진다고 해도 경영자의 경영엔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한국의 재벌 구조에선 지배주주(재벌 일가)가 기업을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의 지배주주들은 자신의 지분율이 떨어지면서 지배권이 훼손될 가능성을 극도로 꺼린다. 모회사가 스스로 증자하는 것이 아니라 굳이 자회사를 떼어내 상장하게 만드는 이유다.

물론 ‘지주사 할인’으로 소액주주만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주가가 떨어지면 대주주도 손해다. 그러나 재벌 일가의 경우 그때그때의 주가보다 자신의 지배권이 훨씬 더 중요하다. 재벌들로서는 주주의 두 가지 권리 가운데 ‘배당을 챙길 권리(cash flow right)’보다 의결권(지배권)을 더 중시한다. 그러니 지배주주로서는, 지배지분을 유지하는 동시에 투자자금을 확보할 수 있다면 ‘지주사 할인으로 인한 배당권 훼손’ 따위는 충분히 양해할 수 있는 손해다. 그러나 배당이나 주가 차익이 의결권보다 훨씬 더 중요한 소액주주의 경우엔 배당권 손해를 의결권 보호로 상쇄할 수 없다. 온전히 손해만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국민연금공단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물적분할에 반대한 이유다.

모자회사 동시상장의 또 다른 문제점으로 자회사인 Aa사 주주들과 지주회사 A사 주주들 사이의 갈등으로 발생하는 비용을 빠뜨릴 수 없다. Aa사 주주들이야 Aa사에만 관심이 있지 A사나 A사의 또 다른 자회사들에게는 상관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A사 주주들은 Aa사뿐 아니라 또 다른 자회사인 Ab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 만약 Ab사가 잘되는 것이 Aa사에는 좋지 않지만 A사에 유리하다면 A사 주주들은 Aa사를 희생하더라도 Ab사를 지원하는 의사결정을 지지할 수 있다. 이 경우 소액주주이건 지배주주이건 A사 주주들의 이해는 일치하게 된다. 그러나 Aa사 주주들과는 큰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일감 몰아주기 등 주주 간 대립을 일컫는 터널링 사례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터널링으로 인해 지주회사 주주들은 얼마나 큰 손해를 보고 있을까? 이 문제의 대안은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제737호)에서 이야기하기로 한다.

기자명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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