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신선영2015년 7월17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임시 주주총회. 주주들이 대거 참석해 대회의장이 북적이고 있다.

돈을 빌리면 갚아야 할 의무, 즉 채무(債務)가 생긴다. 굳이 채무를 발생시키는 이유는 좋은 프로젝트에 맘껏 투자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채무에 대해 ‘무한책임(unlimited liability)’을 져야 한다면, 다시 말해 ‘어떤 경우라도 빚만은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갚아야 한다’면 채무자는 빌린 돈을 함부로 쓰기 힘들다. 위험이 높은 곳에 투자했다가 잘못되면 자신의 기존 자산마저 보전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당신이 은행에서 빌린 2억원에 자신의 돈 2억원을 더해 4억원짜리 집을 샀다고 치자. 만약 집값이 3억원으로 떨어지면 당신은 1억원을 손해 보게 된다. 집값이 2억원으로 떨어지면 당신은 자신의 돈 2억원을 모두 ‘날리게’ 된다. 이것이 흔히들 얘기하는 ‘레버리지 투자(빚내서 투자)’의 무서움이다. 그러니 무한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라면 빌린 돈을 좀 더 안전하게 투자하는 게 낫다.

그런데 만약 빌린 돈에 대해 무한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아무리 사업이 잘못되어도 빚의 ‘일부’만 갚아도 된다면(limited liability:유한책임) 어떨까? 설령 투자가 실패하더라도 채무자가 책임져야 하는 금액의 ‘일부’만 갚으면 된다는 이야기다. 이 경우 채무자는 자신의 기존 자산을 부채 상환의 의무로부터 보호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유한책임의 채무자는 무한책임의 경우보다 더 많은 빚을 지려는 경향이 있다.

주식회사(corporation)의 주주가 바로 그런 경우다. 주주들은 자신이 투자한 회사가 부도나더라도 그 회사의 부채에 대해 지분만큼만 ‘유한하게’ 책임진다. 즉 그 회사에 투자한 주식만 포기하면 된다. 따라서 주주들은, 경영자들이 ‘회사가 빌린 돈’을 위험이 커도 기대수익률이 높은 프로젝트에 투자하기를 바란다. 만약 빌린 돈 2억원을 투자해 3억원을 벌었다면 원금과 이자를 갚고 남은 돈 1억원 정도를 주주들끼리 나누어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만약 10억원을 벌었다면 8억원 정도를 나누어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처럼 ‘빌린 돈을 갚고 남은 가치(잔여가치)’를 모두 주주들이 차지하게 된다. 주주들을 ‘잔여 청구권자(residual claimer)’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러므로 주주들에게 기업가치는 크면 클수록 좋다(이 글에서 기업가치는 그 회사의 주식과 채무를 합한 전체 자산가치를 가리킨다). 더욱이 주주들은 유한책임만 지기 때문에 ‘기업가치가 빚을 딱 갚을 만큼’인 경우와 ‘기업가치가 빚을 밑도는’ 경우 사이에 어떤 차이도 없다. 두 경우 모두에서 주주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사라지는 것은 마찬가지다. 기업가치가 빚을 밑도는 경우(적자가 자본금보다 더 많아지는 자본잠식)에도 주주는 자신의 주식만 포기하면 된다.

반면 채권자 입장에서는 빌려준 돈을 회사가 위험한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이 반가운 일일 리 없다. 기업가치가 얼마든 채권자에게 가장 중요한 사항은 빌려준 원금과 이자를 제때 받는 것일 뿐이다. 예를 들어 기업가치가 10억원이 되든 100억원이 되든 빌려준 원금 2억원과 이자를 받을 수 있는 수준만 된다면 채권자들은 상관하지 않는다. 그러나 기업가치가 2억원 미만으로 떨어져 그 기업을 통째로 팔아도 원리금을 못 받게 되면 문제가 달라진다. 다시 말해 채권자들이 선호하는 기업가치에는 명백한 하한이 있다. 그 하한 밑으로 기업가치가 떨어지면 채무불이행(default)이 일어나 ‘돈을 떼일’ 수 있기 때문이다.

ⓒ연합뉴스2016년 8월30일 이동걸 KDB산업은행 회장이 여의도 산업은행에서 채권단 회의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채무로부터 발생한 도덕적 해이

결국 빚을 지는 행위는 주주와 채권자 사이에 갈등을 만든다. 이는 주주들이 회사의 빚에 대해 유한책임만 지는 주식회사에서 필연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다. 주주들은 위험이 너무 높아서 궁극적으로 기업가치에 해가 되는 프로젝트라 할지라도 어떤 경우엔 이를 실행하는 것을 선호한다.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회사가 빚을 갚은 후 남긴 모든 가치를 주주들끼리 누린다. 실패하는 경우에도 주주들은 그 손해를 일부만 책임지고 나머지 모두를 채권자들에게 떠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주주들이 회사가 안전하고 수익성 높은 투자를 기피하도록 함으로써 투자원금을 아끼는 대신 채권자들에게 돌아갈 이득을 차단하는 경우도 있다(아래에서 이를 자세히 살펴본다).

이처럼 기업가치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충분히 인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빌려온 돈을 주주들이 오로지 자신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만 사용하고자 하는 것을 ‘채무로부터 발생한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는 뜻에서 ‘채무발 해이(債務發解弛)’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채무발 해이는 주주들이 부채를 늘리는 것을 선호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된다.

그러나 채무발 해이는 공짜가 아니다. 이를테면 채권자들은 돈을 빌려주고 난 후에도 자신이 빌려준 돈이 위험한 곳에 투자되고 있는 건 아닌지 계속해서 감시(moni-toring)한다. 여기에는 당연히 비용이 든다. 그러나 채무발 해이가 발생시키는 훨씬 더 큰 비용은 과소투자(underinvestment)와 과잉투자(overinvestment)에 있다. ‘과소’인 이유는 ‘해야 마땅한 투자를 않기’ 때문이고, ‘과잉’인 이유는 ‘하지 말아야 마땅한 투자를 감행하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말인지 알기 위해선 ‘순현재가치(NPV: Net Present Value)’라는 개념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기업이 어떤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얼마만큼 벌어야 할까? 적어도 투자원금보다는 많이 벌어야 할 것이다. 다만 투자원금은 지금의 돈이지만 ‘벌어들일 돈’은 미래의 돈이다. 즉 벌어들일 돈을 현재가치로 환산한(예컨대 연간 이자율이 10%인 경우 내년의 110원은 지금의 100원이다) 금액이 투자원금보다 큰 경우에만 투자할 가치가 있다. 이를 간단히 공식으로 써보자.

사업 프로젝트의 순현재가치(NPV)=‘현재가치(현금 1)+현재가치(현금 2)+…’–투자원금

‘현금 1’은 1년 후에 벌어들일 것으로 기대되는 현금이고 ‘현금 2’는 2년 후에 벌어들일 것으로 기대되는 현금이다. 이들을 모두 현재가치로 환산해서 합친 값(현재가치(현금 1)+현재가치(현금 2)+…)이 투자원금보다 클 때 NPV는 양(+)의 값을 가지게 된다. 이런 사업 프로젝트를 ‘포지티브-NPV 프로젝트’라고 부른다.

기업이 ‘포지티브-NPV 프로젝트’에 투자해서 수익을 내면 그만큼 주주들의 부, 즉 주가도 늘어난다. 그러므로 포지티브-NPV 프로젝트는 기업이 반드시 수행해야 하는 사업이다. 만약 경영자가 정당한 이유 없이 포지티브-NPV 프로젝트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능력 없다’는 비난을 받을 뿐 아니라 법률적으론 ‘배임(背任)’ 혐의로 처벌받을 수 있다. 경영의 목적이 주주의 부(주가) 증대에 있는데 그럴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리는 것은 경영자가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한 것이기 때문이다. 반대로 NPV가 0보다 작은 ‘네거티브-NPV’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 역시 경영자의 배임에 해당될 수 있다. 투자원금조차 건지지 못할 투자안에 돈을 낭비해서 회사의 주가에 해를 끼친 것이기 때문이다.

포지티브-NPV 프로젝트에 투자하지 않는 행위는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된다. 과소투자다. 네거티브-NPV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 행위’다. 과잉투자다. 이 두 가지는 주주와 채권자의 갈등으로 나타나는 채무발 해이의 대표적인 비용이다. 그런데 이런 일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AP Photo2월11일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저금리 기조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채무발 과소투자와 채무발 과잉투자

당신이 주주로 있는 회사(편의상 당신 혼자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고 치자)는 1년 후에 만기가 되는 12억원의 빚을 진 상태다. 1년 뒤 기업가치는 10억원이 된다고 하자. 아무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부도를 내게 될 것이다(빚을 참 많이도 졌다). 지금 당신 앞에 투자원금이 2억원인데 위험이 없어서 1년 뒤엔 100%의 확률로 3억원을 벌게 되는 프로젝트가 있다고 치자. 그리고 현금의 미래가치와 현재가치를 비교하기 쉽게 이자율은 0%라고 가정하자(이렇게 하면 미래가치가 현재가치와 같아져 현금이 발생하는 시점을 고려할 필요가 없어진다). 2억원을 투자해서 ‘확실하게’ 3억원을 벌어들이니 포지티브-NPV 프로젝트다. 반드시 감행해야 하는 사업이다. 그러나 놀랍게도 주주인 당신은 이 프로젝트를 하고 싶지 않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 1년 뒤 벌어들일 돈 3억원에 기업가치(10억원) 중 9억원을 더해 12억원의 빚을 모두 갚을 수 있다. 그러면 1억원이 남는다. 그러나 여기서 프로젝트를 위해 지불한 투자원금 2억원을 빼면 결국 1억원을 손해 보는 셈이 된다. 빚은 모두 갚을 수 있으나, 주주인 당신으로서는 이 프로젝트로 채권자들에게만 좋은 일을 하는 셈이 된다. 그러니 아무리 포지티브-NPV 프로젝트라고 하더라도 주주 처지에서는 하지 않고 넘기는 것이 낫다. 채무로 인해 발생한 ‘채무발 과소투자(debt overhang)’다.

만약 빚이 없었다면, 또는 빚이 적은 액수에 불과했다면 이처럼 포지티브-NPV 프로젝트를 건너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회사가 진 빚이 12억원이 아니라 10억원이라고 해보자. 이 경우 기업가치 10억원으로 빚을 갚을 수 있으니 1년 뒤 벌어들일 3억원은 당신이 챙길 수 있다. 여기서 투자원금 2억원을 제하면 1억원은 오로지 주주인 당신의 몫이다. 그러니 이 프로젝트를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빚이 적으면 채무발 과소투자는 일어나지 않는다.

이제 과잉투자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 위의 사례를 살짝 바꿔보자. 여전히 당신 회사는 1년 후에 만기인 12억원의 빚을 지고 있다. 아무것도 않고 가만히 있으면 1년 뒤의 기업가치는 10억원이 되어 부도를 피할 수 없다. 여기까지는 위의 예와 같다. 이제 당신에게 투자원가가 0원인 공짜 프로젝트가 있다고 치자. 위험이 높은 프로젝트라서 성공할 확률과 실패할 확률은 반반이다. 만약 성공하면 1년 뒤 4억원을 벌지만 실패하면 8억원을 손해 본다고 하자. 이 프로젝트의 ‘기대가치’는 ‘2억원 손실’이다. 성공할 때 벌어들일 것으로 기대되는 돈(성공 확률 50%×4억원=2억원)과 실패할 때 잃을 것으로 기대되는 돈(실패 확률 50%×-8억원=-4억원)을 합친 값(-2억원)이다. 즉 이 사업은 순현재가치가 –2억원인 네거티브-NPV 프로젝트이다.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당신은 이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 한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EPA그리스·아일랜드·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의 경우 2016년 GDP 대비 기업부채는 1999년보다 90%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성공하는 경우 벌어들인 4억원과 기업가치(10억원) 중 8억원을 합쳐서 12억원의 빚을 모두 갚을 수 있다. 이 경우 남은 기업가치 2억원이 주주들의 몫으로 남는다. 프로젝트가 성공한다면 빚을 모두 갚고도 주주들이 2억원을 챙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약 실패한다면 기업가치 10억원에서 8억원 손해를 제하고 2억원이 남게 된다. 이 2억원으로는 채권자들에게 빚을 갚아야 하므로 어차피 주주인 당신의 몫은 없다.

만약 당신이 주주인 기업이 이 프로젝트를 하지 않으면 1년 뒤엔 채권자들이 기업가치 전액(10억원)을 가져갈 것이다. 채권자들은 빌려준 12억원 중 2억원을 못 받게 되는 셈이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주주에게는 물론 한 푼도 남지 않는다. 그러나 이 기업이 해당 프로젝트를 감행했다가 실패하면 채권자들은 2억원만 챙기게 된다.

결과적으로 주주인 당신은 실패해도 손해를 채권자들에게 떠넘길 수 있다. 채권자 처지에서는 사업을 하지 않았을 때 회수할 수 있었던 10억원이 2억원으로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성공하면 주주가 벌고 실패하면 채권자가 손해를 뒤집어쓴다니 환상적이지 않은가. 주주에게 이 프로젝트는 잘되면 기사회생할 기회(주주의 몫이 2억원)다. 프로젝트를 하지 않으면 주주의 몫은 어차피 0원이다. 프로젝트를 했다가 실패해도 주주의 몫은 0원이다. 사정이 이렇다면, 주주로서는 ‘가만히 있으면 어차피 채권자에게 빼앗길 돈’을 위험이 아주 높은 투자 프로젝트에라도 투자해버리는 것이 나을 수 있다. 이것이 ‘채무발 과잉투자’다.

물에 빠진 사람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지푸라기를 팔아서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사람(채권자)에게는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를 망쳐놓으면 손해겠지만, 물에 빠진 사람(채무자)에게 그런 사정은 전혀 고려할 바가 아닌 것이다.

ⓒAP Photo2008년 9월15일 상자를 든 남자가 파산 신청을 한 미국 뉴욕 리먼 브라더스 본사 건물을 떠나고 있다.

만약 이 회사에 빚이 없었다면 혹은 빚이 적은 액수에 불과했다면 이 같은 네거티브-NPV 프로젝트는 실행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위의 사례에서 부채가 12억원이 아니라 5억원이라고 해보자. 기업가치 10억원으로 충분히 갚을 수 있는 부채이니 프로젝트가 성공했을 때 생기는 4억원은 오로지 주주들의 것이다. 여기에 빚을 갚고 남은 돈 5억원을 더하면 9억원이 주주들의 몫으로 남는다. 만약 실패하면 기업가치 중 8억원을 손해 보고 2억원이 남는데 이는 어차피 채권자들의 돈이니 주주의 몫은 없다. 성공과 실패의 확률이 반반이므로 이 프로젝트를 실행해 버는 주주들의 몫의 기대치는 4억5000만원(50%×9억원+50%×0원)인 셈이다. 그러나 이 프로젝트를 하지 않는 경우 주주는 10억원의 기업가치에서 5억원의 빚을 갚고 남은 5억원을 챙길 수 있다. 이 경우 프로젝트를 해서 4억5000만원 벌기를 기대하느니 그냥 그 프로젝트를 하지 않고 넘겨서 5억원을 챙기는 것이 나을 것이다.

이처럼 빚을 많이 진 회사의 주주들은 결국 위험한 투자안일수록 과대투자하고 위험이 적은 투자안일수록 과소투자하게 된다. 그러나 채권자들은 바보가 아니다. 채권자들은 이처럼 주주가 과잉투자 또는 과소투자를 할 유인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채무발 해이의 비용이 자신들의 기대수익보다 크다고 생각할 경우에는 아예 처음부터 돈을 빌려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돈을 빌려 투자할 수 있는 좋은 프로젝트들을 할 수 없게 되어 기업가치가 하락한다. 결과적으로 채무발 해이의 비용을 주주들이 부담하는 것이다. 채무발 해이가 만연하면 당연히 경제성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경기를 살리기 위해 각국은 앞다투어 이자율을 낮추었고 이 같은 저금리 기조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금리가 낮으니 돈을 빌리기 좋았고, 그래서 기업들의 부채는 크게 늘었다. 2018년 말 현재 전 세계 기업부채는 71조 달러로 10년 전인 2008년보다 15% 늘어났다. 글로벌 GDP의 93%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머징(emerging) 국가들의 경우 GDP 대비 기업부채는 금융위기 직전인 2006년 60% 수준이었던 것이 2017년에 86%까지 올랐다. 특히 중국의 경우는 160%를 넘는다. 투자는 줄었다. 이머징 국가들의 경우 2011년 이후 투자가 급감해 1995년부터 2008년까지의 평균을 훨씬 밑돈다.

ⓒCP PHOTO캐나다 온타리오의 금융규제 기구는 원료 채굴 업체의 프로젝트에 대해 ‘NPV(순현재가치)’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기업의 공시 요건을 강화했다.

채무발 해이로 인한 투자 감소의 악영향

유럽에서도 부채는 급증했다. 2016년 GDP 대비 기업부채는 1999년보다 30%포인트 이상 늘었다. 특히 그리스·아일랜드·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의 경우 90%포인트 이상 증가했다. 유럽 기업들의 투자 또한 매우 감소했다. 2016년 GDP 대비 투자가 2008년 최고치에 비해 절반 수준도 되지 못한다. 특히 그리스 등 위 5개국에서는 투자 감소가 훨씬 심각해서 다른 유럽 국가들 평균의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미국이 2014년에 금융위기 이전의 투자 수준을 회복한 것과 분명하게 대비된다.

물론 부채와 투자의 관계가 채무발 해이에 의해서만 비롯되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경영자의 자기과신(overconfidence)이 클 경우 부채를 늘려 과잉투자에 나설 수 있다. 반대로 요즘처럼 한참 부채를 늘려온 후에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으면 기업들이 생존을 위해 투자를 줄이는 대신 현금을 들고 있는 것을 선호할 수도 있다. 또 부채가 많은 기업들의 경우 벌어들이는 현금을 빚을 갚는 데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투자를 늘리기 어려울 수도 있다. 이런 기업들이 많아서 발생하는 경기침체를 ‘대차대조표 불황(balance sheet recession)’이라 부른다.

더구나 투자와 부채는 그 상관관계와 인과관계를 혼동하기 딱 좋다. 이를테면 투자기회가 없어서 부채가 줄었는지, 부채로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 투자를 줄였는지 알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몇몇 연구를 통해 채무발 과소투자의 실증적 증거를 갖고 있다. 최근의 한 연구는 유럽 기업들을 대상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2000년부터 2007년)과 이후(2008년부터 2012년) 동안 나타나는 투자 수준 변화의 정도가 부채가 높은 기업들과 낮은 기업들에서 유의한 차이를 보이는지 살펴보았다. 두 기업군 모두 위기 이후 투자가 감소했는데 기부채가 많은 기업들의 투자 감소가 부채가 적은 기업들의 투자 감소보다 유의하게 컸다. 저자들은 이를 채무발 과소투자로 보았다.

채무발 해이의 실증연구가 어려운 다른 이유도 있다. ‘어떤 기업이 포지티브-NPV를 포기한 것인지 아닌지’를 데이터로 확인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지난해 나온 한 논문은 똑똑하게도 캐나다의 원료 채굴 업체들(resource extraction firms)에 주목해서 이 어려움을 해결했다. 온타리오의 금융규제 기구(Ontario Securities Commission)가 채굴 프로젝트에 대해 NPV 관련 정보를 공개하도록 기업들의 공시 요건을 강화한 덕분이었다. 연구자들은 이 정보로 인해 경영자들이 포지티브-NPV 프로젝트를 얼마나 자주 건너뛰었는지 알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채무발 해이에 따른 과소투자의 실증적 증거가 하나 더 추가될 수 있었다.

이처럼 채무발 해이로 인한 투자 감소 문제는 우리 주변에 오랫동안 실재했고 최근에 더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다. 투자 감소는 결국 생산을 줄이고, 따라서 고용을 줄이며, 소비에도 부정적인, 경제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비용을 만들어낸다. 이런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는 결국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채무는 지지 않도록, 또는 질 수 없도록 해야 한다. 앞으로 한참 더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낮은 금리는 이런 면에서 볼 때 공짜가 아니다. 그러나 채무발 해이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역시 정보의 투명성(transparency)이다. 회사가 어떤 이유로 어떤 프로젝트에는 투자하고 어떤 프로젝트에는 투자하지 않는지를 누구나 훤히 알 수 있다면 ‘해야 마땅한 걸 안 하는’ 경우나 ‘하지 말아야 마땅한 걸 하는’ 경우 모두를 방지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정보 투명성은 어느 집단 사이의 갈등이든 그것을 푸는 가장 기본 조건이다.

기자명 이관휘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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