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정현

“급전 100만원 필요합니다.”

게시판 본문 입력창에 이렇게 쓰고 ‘글 등록’ 버튼을 눌렀다. 곧바로 초시계를 바라보며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뚜르르.”

3초 만에 전화벨이 울렸다. “여보세요. 대출나라 보고 전화드렸습니다. 대출 필요하시죠?” 전화를 건 대부업자의 번호는 010-5×××-4×××. 곧바로 ‘사기 번호 검색’ 창에 전화번호를 입력해보았다. 해당 번호로 사기 피해를 받았다는 접수가 두 건 등록되어 있었다. 전화를 끊자 곧바로 또 다른 전화가 걸려왔다. 010-4×××-2×××. 이번에도 사기 신고가 한 건 접수되어 있는 번호였다. 전화 두 통이 걸려온 1분 사이, 각종 대부업자들의 문자와 카카오톡 메시지가 스마트폰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금융감독원(금감원) 등록 대부업체 통합조회 시스템에 문자·메신저·전화로 연락 온 전화번호를 모두 조회해보았다. 10곳 가운데 2곳을 제외하고 모두 불법 사금융업체였다. 일부 업체는 금감원 시스템 조회를 피하기 위해 ‘해외 발신’ 문자로 연락하기도 했다.

2020년 11월, 스물다섯 살 박종찬씨(가명)도 같은 경험을 했다. 급전이 필요했던 박씨는 인터넷 대부중개 사이트 ‘대출나라’에 사연을 올렸다. 박씨와 통화한 불법 사금융업체는 박씨에게 개인정보와 주변 사람들의 연락처를 내놓아야 돈을 빌려줄 수 있다고 했다. 업체는 박씨에게 30만원을 빌려주는 대신 일주일 후 50만원을 내놓으라고 했다. 곧바로 돈을 갚을 수 없던 박씨는 불어난 이자만큼 다시 대출했다. 세 차례 재대출 끝에 원금은 130만원으로 불어났다. 돈을 갚지 못하자 채무 독촉이 시작됐다. 주변 사람들에게 연락한다는 협박도 받았다. 궁지에 몰린 박씨는 사회복지사에게 이 사정을 토로했다. 사회복지사가 업체에 전화를 걸자, 업체 측은 “원금 130만원만 갚으면 없던 일로 하겠다”라며 한발 물러났다.

전국 700개 이상의 대출업체가 등록되어 있다고 광고하는 ‘대출나라’ 홈페이지.ⓒ시사IN 조남진

박종찬씨의 사례는 최근 발생하는 고리대금 불법 사금융 피해의 전형적인 패턴을 따른다. 급하게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이 인터넷 대부중개 사이트에 글을 올린다. 불법 사금융업체가 돈이 필요한 사람에게 전화한다. 첫 거래는 신용이 없으니 일단 초단기(일주일) 소액 대출부터 해보고, 돈을 회수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기면 월변(한 달 후 갚기)을 해주겠다고 유혹한다. 단기 고금리를 갚지 못하면서 재대출로 이어지고 결국 원금과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그러다 금융 지원단체, 금감원, 지자체, 대부금융협회 같은 구제 기구에 손을 내밀고, 이들 기관이 따져물으면 그제야 원금만 내놓으라며 꼬리를 내린다.

고리대 사채는 지자체나 금감원에 등록되지 않은 불법 대부업체의 영업 방식이다. 박씨의 경우 일주일(7일) 이자는 20만원, 연 이자로 따지면 약 1043만원이다. 원금이 30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연이율 3476%에 달한다. 당연히 불법이다. 법정 최고이율은 연 20%다. 하지만 금융권에서 대출이 어렵거나 급히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 혹은 대부업계의 현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고리대 사채의 늪에 쉽게 빠져든다. 핀테크(FinTech)의 시대에도 이런 피해는 여전하다.

고금리 불법 사금융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수십 년 전부터 비슷한 방식으로 피해자를 양산해왔다. 소액으로 시작해 점점 이자가 불어나는 방식이다. 그런데 최근 5년 사이에 피해 패턴에서 딱 하나 달라진 점이 있다. 바로 고금리 불법 사금융으로 유입되는 ‘경로’다.

■ 불법 사금융으로 유입되는 첫 관문

앞서 설명한 ‘피해 패턴’으로 돌아가보자. 맨 처음 박씨는 ‘대출나라’라는 인터넷 대부중개 사이트에 접속했다. 인터넷 검색창에 ‘대출’을 입력하면 가장 상단에 등장하는 사이트 중 하나다. 온라인 공간에서 대출이라는 키워드는 은행이나 금융기관이 아닌, 이런 대부중개 사이트를 우선 안내한다. 이곳은 표면상 일종의 광고 사이트다. 합법적인 등록 대부업체들이 각종 대출 가능 조건을 광고하고 홍보하는 형태를 띠고 있다. 지역별·상품별 업체 정보를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중개 사이트의 핵심 기능은 따로 있다. 바로 ‘실시간 대출 문의’라는 이름을 붙인 일종의 게시판이다. 대부중개 사이트 업계 1위인 대출나라는 ‘이용 안내’ 페이지에서 이 게시판이 ‘역경매’ 시스템으로 운영된다고 설명한다. 사용자(돈을 빌리려는 사람)가 실시간 대출 문의 글을 작성하면, 여러 업체에서 검토하고, 최대 8개 업체가 해당 글 밑에 ‘저희가 대출해드릴 수 있습니다’라고 표시를 한다. 그러면 사용자는 자신에게 돈을 빌려줄 의향이 있다는 업체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 직접 전화를 하면 된다는 것이다.

ⓒ시사IN 최예린

이용 안내 페이지에 고지된 내용만 놓고 본다면, 사용자는 으레 이렇게 생각하게 된다. ‘불법 업체는 내 정보를 보지 못하겠구나. 합법 대부업체들에 내 사정을 자세히 설명해야 유리하겠구나.’ 그래서 이 게시판에는 대부 대출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의 각양각색 사연이 올라온다. 군인인데 돈이 필요하다, 쿠팡에서 일하고 있는데 급전이 필요하다, 월변으로 상환하고 싶다, 생활비가 모자라서 돈이 급하다, 개인회생 중이라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릴 수가 없다….

그렇게 쌓아 올린 ‘각종 사연’이 8월17일 기준 61만 건에 달한다. 하지만 대출나라 상담 게시판의 현실은 업체의 설명대로 글을 올리는 이들이 주도권을 쥔 구조가 아니다. 기자가 직접 테스트한 것처럼, 박종찬씨가 경험한 것처럼, 차분히 대부업체들을 비교해보고 선택해 연락을 취하기도 전에 각종 불법 사금융업체들이 돈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먼저 연락을 해온다. 대출나라에 올린 개인 연락처를 대출나라에 돈을 낸 대부업체들이 곧바로 열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출나라 측은 8월17일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글을 올린 사람들의 연락처를 열람할 수 있는 업체는 합법적인 등록 대부업체뿐이다”라고 주장했다. 자신들은 합법 대부업체의 광고를 실어주고, 그 광고주들만 글쓴이의 연락처를 열람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앞서 설명한 실제 사례처럼, 번호를 열람해 먼저 연락하는 업체들은 미등록 불법 사금융인 경우가 더 많다. 대출나라 측은 “사이트 구조상 등록 대부업체만 로그인해 정보를 볼 수 있다. 글 올린 사람들의 전화번호가 불법 사금융업체까지 전달되는 건 우리로선 알 수 없는 노릇이다”라고 답했다. 만약 합법적인 업체가 대출나라에 광고를 실어 게시판 사용자의 개인정보 접근 권한을 얻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업체 아이디’를 불법 사금융업체와 공유한다면, 얼마든지 ‘대출이 필요한 먹잇감’을 노릴 수 있다. 합법적인 대부업체 간판을 내걸고 실제로는 불법 사금융 영업을 할 수도 있다. 대출나라 운영사가 불법 사금융업체에 직접 개인정보를 전달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불법 사금융 관계자들이 꼼수를 동원해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구조다.

대출나라 운영사인 정크레비즈 사무실. 대출나라는 스스로 ‘IT업체’임을 강조한다. ⓒ김흥구

문제는 더 근원적인 곳에 있다. 어째서 대출나라가 게시판 사용자의 개인정보를 업체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지다. 대출나라 게시판에 글을 올리려면 휴대전화 본인인증을 해야 한다. 가짜 연락처를 적는 걸 차단한다. 게다가 글을 올릴 때에는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과 ‘개인정보 제3자 제공’에 반드시 동의해야만 한다. 대출나라를 운영하는 임 아무개 대표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개인정보 제3자 제공에 글 올리는 사용자들이 동의하기 때문에 업체에 개인정보를 제공하는 거라 아무 문제가 없다”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개인정보보호법 제22조 5항에 따르면 제3자 정보제공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해서 서비스 제공을 거부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대출나라는 글쓴이의 핵심 개인정보인 전화번호를 대부업체들에 자동으로 전송되도록 시스템을 설계했고, 이를 거부할 경우 글쓰기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하게 차단시켰다.

약관을 꼼꼼하게 읽어보지 않는 한, 내 개인정보가 대부업체들에 공개된다는 사실을 알기는 어렵다. ‘이용 안내 페이지’에도 이런 이야기는 나와 있지 않다. 그저 글을 쓸 때 필수로 동의해야 하는 ‘개인정보 제3자 제공’ 약관에만 조그맣게 명시되어 있을 뿐이다. 만약 자신이 적은 사연이 불법 사금융업체에도 광범위하게 퍼진다는 걸 알았다면 61만 건에 달하는 게시글이 올라올 수 있었을까?

■ 누가 대부중개 사이트를 찾나

대출나라는 대부중개 사이트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운영되는 곳이다. 실시간 대출 상담 게시판 글 수만 따져도 압도적인 업계 1위다. 한국대부금융협회가 2020년 12월 발간한 〈불법 사금융 피해상담 사례 모음집〉에서도 이 사이트의 존재감이 드러난다. 임승보 한국대부금융협회장이 사례집 머리말에서 직접 대출나라를 언급했을 정도다. 이 사례 모음집에는 총 60가지 불법 사금융 피해 사례가 기술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28건이 대출나라 등 대부중개 사이트를 통해 불법 사금융업체를 만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누가, 어떤 사연으로 이런 대부중개 사이트를 찾는 것일까. 불법 사금융에 노출될 위험을 무릅쓰고서라도 급하게 돈을 빌리려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대출나라는 게시판을 이용하려는 사용자로부터 전화번호, 나이, 거주 지역, 필요 금액, 직업 유무, 대출 사유 정보를 받는다. 이 중 핵심 영업기밀인 전화번호와 나이를 제외한 나머지 정보는 사이트를 방문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열람할 수 있게끔 공개해두고 있다.

〈시사IN〉은 독립 데이터 연구자 김도연씨와 함께 대출나라 게시판에 올라와 있는 각각의 사연을 웹 크롤링(웹 페이지에 공개되어 있는 정보를 데이터로 변환) 기법을 통해 추출·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2016년 12월부터 2022년 7월10일까지 올라온 글을 대상으로 했다. 총 55만2956건이다.

〈그림 1〉은 월별 대출나라 게시판 글 건수를 표시한 그래프다. 2016년 12월 470건에 불과하던 대출 문의 게시글 수는 2018년 1월(4291건)까지 꾸준히 증가세를 보인다. 이후 잠시 주춤하던 월별 게시물 수는 2018년 하반기부터 급증해 2019년 1월에는 처음으로 월간 1만 건을 넘어섰다. 이후 3년6개월 동안 월간 게시물 수는 최저 8970건(2019년 2월)에서 최대 1만2883건(2022년 6월) 사이를 오가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금리상승이 본격화한 2022년 상반기에는 게시물 수가 연이어 증가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대부중개 사이트를 통해 불법 사금융으로 노출되는 이들도 갈수록 많아진다는 걸 추측하게 한다.

이번 분석에서 우리 사회의 변화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은 〈그림 2〉다. 단순히 대부중개 사이트의 이용자만 늘어난 것이 아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소액 대출’을 원하는 사람들 비중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그림 2〉는 2017년부터 2022년까지 매해 6월을 기준으로 ‘희망 금액(대출받으려는 금액)’을 금액대별로 묶어 분석한 결과다. 대출나라 사용자들이 점차 늘어나던 2017~2019년 대다수 대출 문의는 81만~300만원에 쏠려 있었다. 이 시기 그래프는 가운데 구간(81만~300만원)이 높게 치솟은 정규분포 모양이다.

이런 경향성이 2020년 6월부터 달라지기 시작했다. 21만~60만원을 빌리려는 사람이 급격히 늘었다. 2021년 6월에는 41만~60만원 구간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월간 게시글 건수가 가장 많던 2022년 6월에는 21만~40만원 구간이 압도적인 1위를 차지했다.

금액 분포 그래프도 정규분포 모양에서 소액 대출로 쏠리는 형태로 변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40만원도 없어서 대부업체를 찾는 이들’이 급격히 늘었음을 보여준다. 한국 사회 금융 소외계층이 지난 5년간 겪은 현실을 이 데이터를 통해 읽을 수 있다.

지역적인 분포도 시사점을 던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수도권 이용자의 비율이 더 커진다. 〈그림 3〉은 2017년 3월부터 2022년 6월까지 매달 지역별 비중을 계산해 비교한 것(100% 누적 영역 차트)이다. 2019년 5월까지만 해도 전체 이용자의 절반 이상은 수도권에 거주하던 이들이었다. 그러나 서울·경기·인천 지역의 이용자 비중은 점차 줄어드는 반면, 비수도권 지역의 비중은 오히려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 2021년 3월에는 전체 1만897건 가운데 6244건이 비수도권 문의 글이었다. 비율로 따지면 57.3%에 달한다.

2021년 10월부터는 다시 수도권의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이지만, 여전히 서울시는 전체 건수 대비 14%대로 감소하고 있다. 2022년 6월 기준으로 한국 전체 인구 대비 서울시 인구의 비율은 18.4%, 수도권 인구의 비율은 50.4%다. 인구 비율과 비교해보면 비서울 지역, 비수도권 지역일수록 ‘대부 자금을 구하려는’ 경제적 취약층이 더 많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과거에는 대부업체들이 길거리에 전단·명함을 뿌리거나, 지역 생활정보지에 광고를 게재했다. 그래서 대부업은 ‘지역적 성격’이 무척 강했다. 대전 사람은 대전·충청에 위치한 업체에, 부산 사람은 부산·경남에 위치한 업체에 돈을 빌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대부중개 사이트가 활성화되면서 지역적인 경계는 더 이상 무의미해졌다. 대출나라 같은 대부중개 사이트는 대부업의 공간적 범위를 확장한다. 서울에서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대구에 위치한 대부업체로부터 돈을 빌리기도 하고, 전라남도에 거주하는 사람이 경기도에 등록되어 있는 대부업체에서 돈을 빌리기도 한다. 일부 불법 사금융업체는 전국 어디든 돈을 빌려주겠다며 호객하지만, 막상 만나보면 출장비를 수수료 명목으로 내놓으라고 요구하기도 한다. 비수도권 지역 사용자가 대부중개 사이트를 통해 불법 사금융업체를 만날 경우, 이런 ‘출장비’ 명목으로 돈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있다.

■ ‘날것’ 그대로의 절규

무엇보다 대출나라 데이터에서 오늘날 경제적 취약층의 현실을 가장 ‘날것’으로 보여주는 항목은 ‘본문’이다. 대출나라에 들어와 직접 글을 남기는 이들은 게시물 본문에 자신의 현재 사정을 상세히 적는다. 이 중에는 개인파산·회생 여부, 직업 특성, 라이프스타일, 남아 있는 다른 빚, 원하는 상환 방식 등이 구체적으로 기술되어 있다.

그러나 빅데이터 분석 작업의 특성상 50만 건이 넘는 상세 텍스트를 모두 읽어보기는 어려웠다. 의미망 분석을 도입할 수도 있었으나, 그러기에는 글의 분량이 짧고 내용도 다채롭지 않았다. 온라인 뉴스 댓글이나 소셜미디어 게시물과 달리 대출나라 글에는 개인의 의견이 담기지 않았다는 점도 고려했다.

대신 〈시사IN〉은 특정 키워드의 월별 빈도의 추이에 집중했다. 가장 먼저 2022년 5월22일부터 7월10일까지 등록된 샘플 게시물 2만1880개를 기자가 직접 읽고, 의미 있다고 여긴 키워드 45개를 선별해 전체 데이터에서 추출해보았다.

그중 가장 유의미한 변화를 읽어낼 수 있는 키워드가 〈그림 4〉에 나타난다. 시대의 변화, 금융과 대부업의 변화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키워드는 ‘비대면’이었다. 대출 과정에서 ‘비대면’을 언급한 횟수는 2018년 6월까지 월 10회를 넘기지 않았다. 그러나 2019년을 기점으로 ‘비대면 대출’을 요구하는 이들이 큰 폭으로 증가했다. 2019년 5월 197건, 2019년 10월 803건을 돌파하더니 코로나19 팬데믹이 본격화한 2020년 3월에는 2002건을 기록했다. 이 추세는 일종의 ‘뉴노멀’이 되었다. 비대면 대부 대출을 원하는 사람들은 2021년 7월 4540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이후에도 매달 3000건 이상 꾸준히 언급되고 있었다.

금융 취약층을 현장에서 마주하는 금융 상담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를 크게 우려하고 있다. 기술적인 변화가 불법 사금융의 패턴도 바꾸었다고 보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을 전후해 인터넷 전문은행 등 핀테크 업체가 새로운 불법 사금융 시장을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가 ‘토스(toss)를 이용한 대부 거래’다.

광주·전남 지역에서 청년 금융 취약층의 상담을 돕는 광주청년드림은행 박수민 이사장과 주세연 센터장은 최근 반복되는 불법 사금융 피해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대출나라 같은 대부중개 사이트를 통해 불법 사금융업자와 연락하게 된다. 해당 업자는 다른 지역에 거주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이 중에는 서로 한 번도 만나지 않은 채 토스 ATM 출금 시스템을 이용해 돈을 빌려주고 갚는 경우가 있다. 각자 근처 편의점 ATM 기기에서 전화 통화를 하며 돈을 인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토스나 카카오뱅크 같은 인터넷 전문은행은 편의점 ATM에서 카드 없이 앱을 통해 출금할 수 있는 시스템을 운영 중이다. ATM 앞에서 앱에 나타난 일련번호만 입력하면 현금 200만원까지 ‘카드 없이’ 인출이 가능하다. 제도권 금융 기준에서는 비교적 소액이지만, 앞서 〈그림 2〉에서 본 것처럼 대다수 불법 사금융 이용자들은 100만원도 채 되지 않는 금액 때문에 사채의 늪에 빠진다. 빌린 돈을 갚을 때에도 이 같은 ATM 인출 시스템은 요긴하게 활용된다. 금융권의 각종 비대면 서비스는 ‘기록이 남는 금융거래’이지만, 실제 소액 대부 거래에서는 핀테크의 도움으로 송금 기록조차 남지 않는다. 불법 사금융은 핀테크의 발전을 등에 업고 진화하고 있다.

대출나라 게시판에서 공개하는 데이터에는 ‘나이’ 변수가 가려져 있다. 광고주들은 게시글을 남긴 사람의 나이를 확인할 수 있지만, 외부에서는 이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다만 연령대를 추정하게 하는 키워드는 추출이 가능했다. 〈그림 5〉는 ‘학생’ ‘군인’ ‘미필’ 키워드가 월별로 어떻게 등장하는지 보여준다. 적지 않은 20대 청년이 대출나라를 찾고, 불법 사금융에 노출된다는 걸 짐작하게 하는 자료다. 특히 비대면 대부 거래가 활성화될수록, 비대면 거래에 익숙한 젊은 층의 대부 거래도 그만큼 늘어나리라 보인다.

코로나19의 영향도 무시하기 어렵다. 〈그림 6〉과 〈그림 7〉은 코로나와 자영업, 코로나와 직업군 키워드의 상관관계를 살펴보기 위해 만들었다. ‘배달’ ‘노래방’ ‘유흥’ ‘일용’ ‘가게’ ‘자영업’ ‘사업자’ 등을 추출한 결과다. ‘코로나’라는 단어가 대출나라 게시판에 처음 등장한 시기는 2020년 2월(38건)이다. 바로 다음 달인 2020년 3월, 코로나를 언급한 건수는 276건으로 튀어 올랐고, 이 추세는 1년 동안 이어졌다. 문제는 이 시기에 함께 빈도수가 늘어난 키워드다. 대면 활동이 멈추면서 ‘노래방’ ‘유흥’ ‘일용’ ‘자영업’ ‘가게’ 키워드 모두 등장 빈도가 높아졌다.

직업군에서는 ‘배달’ 키워드가 가장 독특한 움직임을 보인다. ‘배달’ 키워드는 팬데믹이 진정된 이후에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20년부터 2021년은 배달업 종사자의 절대 숫자가 늘어난 시기다. 하지만 팬데믹 국면이 진정되고 대면 활동이 늘어나면서 2022년부터 요식업 배달의 수요가 감소했다. 이로 인해 배달 관련 직종에 있는 이들의 경제적 어려움이 가중됐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2022년에도 여전히 언급량이 늘어나는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 통제되지 않는 ‘유입 경로’

대출나라 같은 대부중개 사이트는 한국사회의 양극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지표다. 대다수 사람들은 대출나라 같은 대부중개 사이트의 존재를 모른 채 살아간다. 은행에서 신용대출이 어렵다 하더라도 저축은행·캐피털 회사 같은 제2금융권의 선택지를 고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양극화된 세상의 끄트머리에는 대부 금융을 통해서만 돈을 융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이처럼 취약한 이들을 노리는 불법 사금융업체들은 대부중개 사이트에서 새로운 대출 수요를 기다리고 있다. 과거처럼 전단을 돌리거나 공중화장실 벽면에 광고 스티커를 붙이는 대신, 모니터 앞에서 전화기를 들고 대기하면 된다.

대부중개 사이트의 규모는 점점 커지고 있다. 대출나라 임 아무개 대표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도 각종 민원이 많이 발생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금감원에서도 찾아왔고 여기저기서 불만을 표한다. 그러나 우리는 FM대로(원리원칙 지키며) 운영하는 업체다. 차라리 우리 말고 모방 업체의 문제를 취재하라.” 임 대표의 말마따나 대출나라를 흉내 낸 비슷한 사이트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검색을 통해 확인한 곳만 10여 곳에 달했다. 대부분 대부 광고 페이지와 ‘실시간 대출 문의’ 게시판을 운영하며 개인정보를 남기도록 유도하고 있었다. 일부 사이트는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개인정보 제3자 제공’에 대한 동의 절차를 생략하기도 했다. 급한 돈이 필요한 이들을 유혹하는 온라인 공간은 점점 범주를 넓혀가고 있다.

대부중개 사이트가 불법 사금융의 ‘포털’ 역할을 하지만, 관계기관의 대응은 사실상 전무하다. 법적으로 단속이 어렵다는 이유를 든다. 대부중개 사이트는 대부분 ‘대부중개업’으로 등록해 운영한다. 그러나 대부중개업은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로 운영된다. 금감원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등록만 하면 각종 대부 알선이나 영업, 광고 등의 업무를 할 수 있다. 대출나라도 경기도 부천시에 등록해 운영 중이다. 전국을 대상으로 가장 많은 대부 관련 정보가 오가는 곳이지만, 막상 관리감독의 주체는 부천시와 경기도인 셈이다.

대부업자와의 비대면 거래를 위해 편의점 ATM기의 토스(toss) 인출이 이용된다.ⓒ시사IN 조남진

금감원도 대부중개 사이트가 불법 사금융의 주된 유입 경로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다. 금감원은 지난 6월15일 ‘2021년 불법사금융 피해신고센터 운영실적’을 발표했는데, 이날 발표에서 소개한 주요 신고 사례 중 하나로 대부중개 사이트로 인한 피해가 언급되었다. 당시 보도자료에는 “장모씨는 대출○○ 사이트에 대출 문의 글 게시. 약 5분 뒤 불법 대부업자가 장씨에게 연락해 대출 조건을 설명함. 30만원 대출, 일주일 후 50만원 상환 조건. 업자는 가족 및 지인 연락처를 요구. 대출금을 상환하지 못하자 불법 대부업자는 대출 계약 시 받아간 가족 연락처로 채무 연체 사실을 알리겠다고 폭언 및 협박”이라고 기재되어 있다. 앞서 소개한 박종찬씨의 사례와 금액과 대출 방식, 이자율까지 똑같다. 그만큼 자주 발생하는 피해 유형이라는 의미다.

그러나 금감원은 대부중개 사이트보다 불법 사금융을 저지르는 대부업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부중개 사이트 같은 대부중개업은 단속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유다.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법적으로 대부중개업의 규정이 모호하기 때문에 대부중개 사이트에 대한 규제와 감독이 어렵다. 현실적으로 금감원에는 이들 사이트를 단속할 권한이 없다. ‘대부중개’라는 것 자체가 법적으로 굉장히 모호하게 규정되어 있어 법 개정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금감원이 지난 7월18일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에게 보낸 답변서에도 대부중개 사이트 피해를 막는 게 절차상 어렵다는 점이 드러나 있다. 민병덕 의원이 금감원에 “불법 대부 광고 및 미등록 대부업에 대한 신고를 어떻게 처리하는지”를 물었는데, 금감원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관련 조치를 의뢰한다”라고 답변했다.

대출나라의 유사 사이트들. 모방 업체가 점점 늘고 있다.

대부중개 사이트에 올린 글을 삭제하는 데에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동원되어야 하고, 전화번호 이용 중지 조치를 하려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나서야 한다. 여기에 불법행위에 대한 수사는 경찰과 검찰에 수사를 의뢰해야 한다. 대부중개 사이트를 제대로 단속하고 이곳에서 일어나는 개인정보 유출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금융위원회·금감원·과학기술정보통신부·방송통신심의위원회·지방자치단체·수사기관이 동시에 공조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공조가 상시 이뤄지기에는 피해를 받는 사람의 숫자가 너무 많다(2021년 금감원 접수 사례만 해도 73만여 건). 좀 더 근원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최근에는 대부중개 사이트에 대한 확실한 법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금융연구원 이수진 선임연구위원은 지난 4월 ‘온라인 대부 영업 현황 및 시사점’이라는 리포트를 통해 대부중개 사이트를 적극 규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당시 리포트에서 “대출중개 사이트 등록기관을 변경하거나 금융소비자보호법에 따른 중개 행위 영위 판단 기준을 포괄적으로 적용하는 등 대출중개 사이트 영업 행위를 규율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라고 제안했다. 8월12일 〈시사IN〉과 만난 자리에서도 이 선임연구위원은 “대출나라 같은 방식으로 대부중개가 이뤄지는 나라는 (현재까지 파악한 바로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다른 나라에서 활성화된 소규모 대부중개 사이트는 해당 사이트의 시스템 속에서 대부업체와의 중개·계약 등이 바로 이뤄진다. 그런데 한국식 대부중개 사이트는 돈을 빌리려는 사람이 자기 사연을 올리고, 대부 계약 행위는 사이트 바깥에서 전화 통화로 이뤄진다. 중개 사이트가 책임지지 않는 구조다”라고 지적했다.

대부중개 사이트의 문제는 외면받기 쉬운 이슈다. 한국 사회는 여전히 ‘사채를 쓴다’는 것을 도덕적으로 백안시한다. 불법 사금융 피해자들이 겪는 대표적인 불법 추심 피해가 ‘주변에 연락하기’인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불법 사금융의 피해는 공론장에서 잘 다뤄지지 못한다. 사채로 고통받는 사람은 뉴스보다 드라마·영화에 더 자주 등장한다. 언론이나 정치가 제대로 조명하지 못한 영역이다.

제도적인 보완은커녕, 대부중개 사이트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도 논의하지 못하는 동안 핀테크 산업의 발전은 불법 사금융을 더욱 진화시키며 피해자를 늘려가고 있다. 이제는 불법 사금융 자체를 단속하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유입 경로’에 관심을 두어야 할 때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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