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국 회장이 이끄는 하림그룹은 세계 8위 해운사인 HMM의 경영권 매각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연합뉴스
김홍국 회장이 이끄는 하림그룹은 세계 8위 해운사인 HMM의 경영권 매각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연합뉴스

하림그룹이 국내 최대, 세계 8위 해운사 HMM(옛 현대상선) 경영권 매각의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다. 지난해 12월18일 매각 주체인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는 “우선협상 대상자로 팬오션·JKL 컨소시엄을 선정하였으며, 향후 세부 계약조건에 대한 협상을 거쳐 2024년 상반기 중 거래를 종결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팬오션은 벌크선 중심의 해운사로, 2015년 법정관리를 거쳐 하림그룹의 자회사로 편입됐다. 팬오션을 인수해 해운업에 진출한 하림그룹은 HMM 인수를 통해 해운업의 ‘큰손’으로 거듭날 발판을 마련했다.

하림그룹의 우선협상 대상자 선정 소식은 기대보다 우려를 불러왔다. 가장 먼저 하림그룹의 자금 동원 능력부터 검증의 대상이 됐다. 하림그룹은 HMM 인수 대금으로 약 6조4000억원을 제시했다고 알려졌다. 그런데 인수 주체로 나선 팬오션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3분기 기준 4600억원에 불과하다. 지주회사인 하림지주로 범위를 넓혀도 1조2900억에 그친다(현금 및 현금성 자산과 단기금융상품의 합). 인수 대금에 비해 부족한 액수다.

인수에 따르는 비용을 하림그룹이 오롯이 감당할 수 없다면, 누군가 이것을 나눠 질 수밖에 없다. 희생양으로 지목된 것은 팬오션 주주들이다. 현금이 부족한 팬오션이 HMM을 품기 위해서는 유상증자가 불가피하다. 즉, 주식을 신규로 발행해 자금을 조달해야 한다. 대출을 통한 자금 조달과 달리, 유상증자를 한다면 기업은 이자를 부담하지 않아도 된다. 자신의 지분율에 따라 일반주주처럼 유상증자 비용을 내면 될 뿐이다. 반면 기존 주주 처지에서 유상증자는 부담이다. 신주 인수 비용을 감당하거나, 신주가 발행돼 자신의 지분이 희석되는 것을 감내해야 한다. 자금 동원력이 부족한 하림그룹이 HMM 인수 비용 일부를 팬오션 주주들에게 전가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팬오션의 유상증자 규모는 3조원 내외로 추정된다. 시가총액이 2조원에 불과한 회사에서 3조원 규모의 유상증자가 예상되자 주가는 곤두박질쳤다. 우선협상자 선정이 발표된 다음 날인 12월19일 팬오션 주가는 10% 이상 하락했다. 코스닥시장본부의 조회공시 요구에 대해 팬오션은 12월20일 “구체적으로 확정된 사항은 없다”라고 해명했지만 주가는 회복되지 않았다.

또 다른 희생양으로 꼽히는 것은 인수 대상인 HMM이다. 선정 이전부터 하림그룹을 둘러싸고 HMM에 대해 ‘먹튀’를 하려 한다는 의심이 많았다. 자금력이 부족한 하림그룹이 인수를 위해 끌어다 쓴 빚을 갚으려고 HMM의 현금을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팬데믹 이후 찾아온 해운업 호황의 결과로 현재 HMM의 유보금(이익잉여금)은 10조원이 넘는다. 당장 인수 과정에서 자금 수조 원을 조달해야 하는 하림그룹 처지에서 HMM의 현금을 이용해 조달 비용을 감당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자회사를 ‘캐시카우’로 활용해온 하림

23만t급 HMM 로테르담호. ⓒ연합뉴스
23만t급 HMM 로테르담호. ⓒ연합뉴스

문제는 해운업에 불황이 도래했다는 점이다. 해운업은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이 명확한 업종이다. 호황기에는 배가 부족해 운송 수입이 빠르게 증가하지만, 호황기에 주문했던 선박이 출고되기 시작하면 공급과잉이 일어나고 불황이 찾아온다.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해 해운사들은 호황기에 현금을 보유하고 불황에 대비해왔다. 지난해 3분기 전 세계 해운사들이 적자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보금은 HMM에 여유자금이 아닌 필수 재원이라고 봐야 한다.

하림그룹이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에 전환사채의 주식 전환 유예를 요청했다는 사실도 세간의 우려를 증폭시켰다. 하림그룹이 HMM의 유보금을 사용한다면, 가장 유력한 방법은 배당이다. 매각이 실제로 성사되면 하림그룹은 HMM 지분 57.9%를 차지하게 된다. 전체 배당액의 절반 이상을 가져갈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한 가지 걸림돌은 산업은행과 해양진흥공사의 HMM 전환사채가 1조6800억원어치나 남아 있다는 점이다. 전환사채는 회사채의 일종으로 채권의 성격을 띠지만, 채권자의 선택에 따라 주식으로 전환될 수 있다. 전환사채를 주식으로 전환하면 하림그룹의 지분율이 38.9%로 줄어들고, 산업은행·해양진흥공사의 지분은 32.8%로 늘어난다. 1조원을 배당한다고 가정하면 하림그룹에 돌아갈 몫이 1900억원 줄어든다. 따라서 전환사채 전환 유예를 요청한 것이 유보금을 배당으로 사용하겠다는 하림그룹의 의도를 보여준 것이라는 의혹이 나왔다.

하림그룹은 이전에도 자회사를 ‘캐시카우’로 활용한다고 비판받았다. 하림지주 자회사인 NS쇼핑은 하림그룹의 숙원사업인 서울 양재동 물류단지 개발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다. 2016년부터 NS쇼핑은 자회사(하림지주의 손자회사)이자 사업 주체인 하림산업에 6230억원을 투자했다. 그러나 2023년 초 하림지주는 지배구조 개편을 통해 손자회사이던 하림산업을 자회사로 편입했다. 그동안 들어간 개발비용은 NS쇼핑이 감당하고, 성과는 지주회사가 가로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림그룹 산하 해운회사인 팬오션 역시 자회사 살리기를 위해 동원된다는 비판을 받았다. 2015년 하림그룹이 인수한 팬오션은 2021년 1월 하림USA에 308억원을 투자해 지분 22%를 취득했다. 심각한 적자 상태인 하림USA를 지원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팬오션이 보유한 하림USA 지분가치는 불과 석 달도 지나지 않아 50억원이 하락했다. 사실상 자신과 무관한 그룹 자회사를 살리기 위해 팬오션이 동원된 셈이다.

HMM의 현금을 노리는 것 아니냐는 의혹에 대해 하림그룹은 적극적으로 반박했다. 지난해 12월26일 배포한 보도자료에서 하림그룹은 “HMM이 보유한 현금자산은 현재진행형인 해운 불황에 대응하고, 미래 경쟁력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라고 발표했다. 전환사채 유예 요청에 대해서도 “전환사채 전환 유예를 통해 추가 배당금을 받을 의도는 전혀 없다. 이해관계자 보호를 위해 관련 의견을 제시한 것이다”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한종길 성결대 글로벌물류학부 교수는 HMM의 유보금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한다. 해운업계는 지금 불황기이자, 친환경 선박으로 가는 전환기다. 따라서 불황을 버틸 수 있을 만큼 덩치를 키우고 친환경 선박을 도입하기 위해선 유보금 이상의 자금이 투자되어야 한다. “대규모 투자는 해운업에서 상수다. 그런데 하림그룹에는 투자를 단행할 만한 자금이 없다. 유보금을 사용하지 않는 수준에 그칠 것이라면, 인수자 없이 HMM이 스스로 투자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HMM에 투자할 수 있는 인수자를 찾아야 한다”라고 한 교수는 말했다.

기자명 주하은 기자 다른기사 보기 ki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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