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0월18일 공개 석상에 함께한 조현범 당시 한국타이어 경영운영 본부장(왼쪽 두 번째)과 조현식 당시 한국타이어 마케팅 본부장(맨 오른쪽). ⓒ연합뉴스
2016년 10월18일 공개 석상에 함께한 조현범 당시 한국타이어 경영운영 본부장(왼쪽 두 번째)과 조현식 당시 한국타이어 마케팅 본부장(맨 오른쪽). ⓒ연합뉴스

‘형제의 난’으로 불리던 한국앤컴퍼니 그룹(옛 한국타이어 그룹) 경영권 분쟁이 사실상 마무리되었다. 이번 경영권 분쟁은 조양래 명예회장의 장남인 조현식 한국앤컴퍼니 고문이 차남인 조현범 현 한국앤컴퍼니 회장에 맞서 지주사인 한국앤컴퍼니 지분을 공개매수하면서 발생했다. 당초 지분율은 조현범 회장이 42.03%, 조현식 고문이 18.93%로 격차가 컸다. 그러나 조희경(0.81%), 조희원(10.61%) 두 누나의 지분을 확보하고, 여기에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이하 MBK)가 조현식 고문에게 가세하면서 지분 확보 싸움이 격화되었다.

당초 조현범 현 회장의 지분이 워낙 많아서 ‘승부가 되긴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다. 게다가 아버지 조양래 명예회장까지 조현범 현 회장의 손을 들어주고, 직접 지분 확보 싸움에 참전하면서 조현식 고문 측의 승산은 떨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한국앤컴퍼니 지분 다툼은 여러 이유로 자본시장에서 이목을 집중시켰다. 사모펀드의 가세, 상호 비방도 서슴지 않는 공세적인 여론전, 재벌가 친인척 회사의 우호 지분 확보까지 매일 뉴스가 쏟아졌다.

한국앤컴퍼니 지분 다툼은 이번이 두 번째다. 첫 갈등은 3년7개월 전이다. 아버지인 조양래 명예회장은 2020년 6월, 자신의 한국테크놀로지그룹(한국앤컴퍼니의 당시 법인명) 지분 23.59%를 블록딜 매매(시간 외 대량 매매)로 막내인 조현범 현 회장에게 넘겼다. 이로써 조현범 회장은 단숨에 지주사인 한국테크놀로지그룹의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당시 블록딜 매매는 논란이 컸다. 증여나 상속 대신 주가가 떨어진 시기를 이용해 지분을 매매 형태로 넘겨 세금을 아끼려 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조현식 고문과 장녀인 조희경 한국타이어나눔재단 이사장이 조양래 명예회장의 결정에 반발했다.

막내 손 들어준 아버지에게 반기

이 갈등은 조양래 명예회장에 대한 성년후견 심판으로 이어졌다. 장녀 조희경 이사장은 막내에게 주식을 몰아준 조양래 회장의 결정이 ‘자발적 의사에 따라 이뤄진 것인지 판단해야 한다’며 성년후견 심판을 청구했다. 당시 아버지의 의사 판단에 문제가 있다면 막내(조현범)의 블록딜 매매 지분 확보는 무효라는 주장이다. 재판부는 1심에서 이 청구를 기각했다. 현재 항고가 이어지고 있다.

주주총회 설전까지 이어졌지만, 2021년 조현식 고문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며 지분 분쟁은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2023년 12월5일, MBK가 세운 투자법인 ‘벤튜라’가 한국앤컴퍼니 주식 공개매수를 발표하면서 경영권 분쟁이 재점화되었다. 조희경·조희원·조현식 삼남매 외에도 사모펀드인 MBK가 실탄(현금)을 마련하며 지분 확보 싸움에 뛰어들었다. 시장에 나와 있는 나머지 주식 가운데 최소 20.35%를 매입해 의결권을 확보하겠다는 구상이었다.

조현범 회장 측은 즉각 우호 지분 확보에 나섰다. 대표적인 우군은 아버지 조양래 명예회장과 ‘사촌 격’인 효성그룹의 지원이었다. 2023년 12월21일 현재까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정보에 따르면, 조양래 명예회장은 지분 4.41%를 확보했고, 효성그룹 계열사인 효성첨단소재도 지분 0.72%를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현범 회장이 보유한 주식을 포함하면 우호 지분(특별관계자 10명)의 총합이 47.2%에 달한다. 특히 아버지 조양래 명예회장의 참전이 사실상 이번 갈등 국면에서 일찌감치 승부를 갈랐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번 지분 확보 다툼은 상호 비방전으로 인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특히 삼남매 가운데 장녀 조희경 이사장과 막내 조현범 회장 측의 설전이 이례적으로 대중에게 노출되었다. 조희경 이사장은 2023년 12월17일 입장문 발표를 통해 “건강하지 않은 아버지를 이용해 (조현범 회장이) 자신의 사리사욕을 챙기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라며 동생을 강하게 비난했다.

한국앤컴퍼니 측도 2023년 12월20일 공개적으로 반박 입장문을 발표하며 조희경 이사장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조희경씨는 조양래 명예회장에게, 한국타이어앤테크놀로지 지분 5%를 본인이 운영하는 재단에 증여해주면 한정후견 개시 심판청구를 취하해주겠다고 했다. 증여받은 재산이 수천억 원임에도 불구하고 본인 돈으로 사회 공헌 활동을 한 것이 거의 없다. (효성그룹의 지분 확보 지원에 대해) 경영권 방어와 비즈니스 안정을 원하는 본인의 큰집(효성)까지 싸잡아 비난하는 것은 돈에 눈이 멀어 천륜을 저버리는 언행이다.”

그런데 ‘확보해야 하는 지분량’을 살펴보면,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우군인 MBK는 자칫 큰 손실을 입을지도 모르는데, 어째서 경영권 분쟁에 참여한 것일까?’ 시장에 나와 있는 한국앤컴퍼니의 주식은 조씨 일가가 가지고 있는 물량에 비하면 소수다. 소액주주들의 지분을 긁어모아 조현범 현 회장 측 지분(47.2%)에 미치려면 비용도 많이 들고, 원하는 만큼 매수하는 데 성공할지도 장담하기 어렵다.

통상 경영권 분쟁이 발생하고, 공개매수를 시행하면 주가는 오른다. 시장참여자들이 지분 경쟁으로 인한 주식 수요가 높을 것이라 예상하고 투기적 매수를 벌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한국앤컴퍼니의 주가는 2023년 11월까지 주당 1만5000원을 넘기지 못하다가 경영권 분쟁이 시작된 12월5일에는 주당 2만1850원을 기록했다. 당초 삼남매와 MBK 측은 주당 2만원에 공개매수를 신청했다가 매수 단가를 2만4000원으로 인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MBK 입장에서는 공개매수를 통한 경영권 확보에 실패하더라도 손해는 없다. ‘최소 확보 주식’ 수를 상정해두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공개매수 신청을 받은 물량이 최소 확보 주식 수(1931만5241주, 지분율 20.35%)에 미달된다면, 매수를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2023년 12월25일까지 진행된 공개매수 결과, 공개매수에 응한 주식 수는 838만여주, 지분율 8.83%에 불과했다. MBK 측은 다음 날 공시를 통해 “응모주식수가 최소목표수량에 미달하였으므로 응모주식 전부를 매수하지 않습니다”라고 발표했다.

이 점은 공개매수 기간 내내 조현범 현 회장 측의 공세 포인트가 되었다. 한국앤컴퍼니 측은 앞선 입장문을 통해 “사모펀드의 단기적인 이벤트에 (소액주주들이) 현혹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주가가 공개매수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은 MBK의 공개매수를 믿지 못하는 시장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2023년 12월21일 현재 한국앤컴퍼니의 주가는 종가 기준 1만7110원이다. 만약 ‘최소 기준’이 없이 공개매수를 신청한 모든 투자자의 주식을 MBK와 삼남매가 매입할 계획이었다면, 주가는 공개매수가인 주당 2만4000원에 육박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개인투자자들의 투기성 주식 매입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공개매수를 발표한 2023년 12월5일부터 12월21일까지 외국인은 145억원어치를, 기관은 398억원어치를 장내 순매도했다. 반면 개인투자자들은 약 262억원어치 한국앤컴퍼니 주식을 순매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개매수가 최소 매수 물량 미달로 인해 무위로 돌아가고, 삼남매와 MBK 측이 지분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주가는 단기적으로 경영권 분쟁 이전 수준(2023년 11월)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다. 경영권 분쟁의 반사이익을 노리려던 소액투자자들이 손실을 입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언제든 발 뺄 수 있는 사모펀드

대중의 불신을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모펀드인 MBK는 공개매수 가격을 올리면서까지 적극적으로 이번 경영권 분쟁에 개입했다. MBK가 당초 무엇을 노렸는지는 확언하기가 어렵다. 다만 MBK에서 이번 공개매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부재훈 MBK 부회장은 2023년 12월17일 〈매일경제〉와의 인터뷰에서 경영권 분쟁 개입 의도에 대해 “한국앤컴퍼니의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전문경영인 체제를 확립할 계획이다. 현재의 지배구조상으로 한국앤컴퍼니는 펀더멘털이나 지속성장 가능성이 발현되기 어렵다”라고 설명한 바 있다. 전 세계 10위 안에 드는 타이어 회사를 보유한 한국앤컴퍼니의 현 주가는 제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원인이 현 경영진(조현범 회장)에게 있다는 지적이다.

2020년 첫 분쟁과 달리, 이번 분쟁은 한 가지 차이점이 있다. 분쟁 당사자인 조현식 고문이 ‘경영에 참여하지 않을 것’을 천명했다는 점이다. 2020년 분쟁 당시에는 조현식 고문이 경영 일선에서 자리를 지키려 다툰 반면, 이번에는 경영권을 확보하더라도 전문경영인을 내세우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MBK 역시 공개매수를 통해 경영권을 확보할 경우 이사회를 전면 교체하고 전문경영인을 내세울 것이라 밝히고 있다. 동생인 조현범 회장에 비해 지분이 부족한 조현식 고문 입장에서는, 원하든 원치 않든,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만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분쟁은 상호 비방도 서슴지 않는 여론전으로 이목이 쏠렸다. ⓒ연합뉴스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분쟁은 상호 비방도 서슴지 않는 여론전으로 이목이 쏠렸다. ⓒ연합뉴스

한국앤컴퍼니 경영권 다툼의 승패와 무관하게 향후 한국 자본시장에서 비슷한 풍경이 반복될 가능성이 상존한다. 재벌가의 상속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수 지분을 확보한 자녀가 사모펀드, 특히 행동주의 펀드와 함께 ‘소유-경영 분리’ ‘지배구조 개편’을 내세우며 공개매수를 통한 지분 다툼을 벌일 수 있다는 점이 대중적으로 알려졌다.

사모펀드 입장에서도 향후 이 같은 상속 분쟁을 적극적으로 노릴 가능성이 크다. 당초 MBK는 ‘바이아웃(BO·Buy Out)’ 전략으로 유명한 사모펀드다. 자본을 집중투자해 기업의 경영권을 사고, 직접 경영하며 가치를 끌어올려 경영권 매입가보다 비싼 값에 되팔아 이익을 얻는 방식이다. 한미캐피탈을 우리금융지주에 되파는 과정에서 투자 원금 대비 4배 넘는 수익을 얻어 유명해졌고, 현재도 홈플러스, 오스템임플란트, 네파 등의 지분을 확보해 경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한국앤컴퍼니 지분 다툼에 뛰어든 펀드는 MBK 내부에서도 바이아웃 펀드가 아닌 약 2조원 규모의 ‘스페셜 시추에이션 펀드(SSF)’다. 바이아웃이 경영권을 통째로 사고파는 집중 투자를 의미한다면, SSF는 일종의 ‘특수 상황’에 놓여 있는 기업의 소수 지분에 투자하는 전략 펀드다. 소수 지분을 통해 주주 가치를 제고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는 사모펀드가 기업의 상속 분쟁 과정에서 힘을 보탤 수도 있음을 이번 사태는 보여주고 있다. 선대 회장이 점찍은 경영 승계가 적합한지, 아니면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며 기업의 가치를 제고시키기 위해 상속 분쟁의 최전선에 사모펀드가 나서는 것이 좋은지는 의견이 분분하다. 향후 비슷한 상속 분쟁 문제와 논란이 한국 자산시장에서 불거질 수 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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