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부터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연합뉴스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심사 중인 이른바 ‘삼성생명법(보험업법 개정안)’을 둘러싸고 격한 찬반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삼성생명법을 두고 ‘삼성 해체법’ ‘개미 약탈법’ ‘반도체 안락사법’이라고 비난하면, 이 법의 발의자인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무식 자랑 권성동의 흑색선전”이라고 맞받아치는 식이다.

이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미 제19대와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되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질질 끌다가 의원들의 임기 만료로 폐기되었다. 의원들이 망설일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비록 ‘삼성생명’법으로 불리지만 사실은 ‘삼성전자’ 나아가 ‘삼성그룹’을 겨냥하게 되는 법안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취득원가에서 시가 기준으로

이번 보험업법 개정안(삼성생명법)의 대상은 보험사의 ‘자산운용 비율’이다. 보험사는 계약자들로부터 받은 보험료를 주식·채권 등의 금융자산에 투자한다. 이 주식·채권들로부터 얻은 배당금과 이자 혹은 해당 주식·채권의 매각으로 수익을 낸다. 이렇게 쌓인 돈으로 계약자들과 약속한 시기가 닥치면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 자산운용을 잘못했다간 보험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엄청난 금융 사고를 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보험사에 따라서는 인맥이나 대주주의 압박 때문에 불안정한 주식·채권에 투자를 몰아줄 수도 있다. 보험사가 ‘어떤 금융상품에 투자하느냐(자산운용)’에 대해 금융 당국의 규제를 받아야 하는 이유다.

현행 보험업법은 보험사가 자기 회사의 총자산 중 3% 이상은 계열사 등 특정 회사의 주식·채권에 투자할 수 없도록 규정해놓았다. 이른바 자산운용 비율이다. 다만 해당 금융상품의 가치는 ‘매입했을 때의 가격(취득원가)’으로 산정한다. 예컨대 총자산 100만원인 A 보험사가 B사 주식을 3만원(취득원가)으로 매입해 보유하고 있다고 치자(자산운용 비율 3%). 이후 B사 주식의 가격이 6만원(시가)으로 올라도, A 보험사는 여전히 자산운용 비율을 3%로 지키고 있는 것으로 간주된다. 현행 보험업법에서는 그렇다.

삼성생명법의 핵심은 이러한 가치 산정 기준을 취득원가에서 ‘시가(현재 주식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로 바꾼다는 항목이다. 위에서 언급한 A 보험사의 경우, 취득원가 기준인 현행 보험업법에선 B사 주가가 6만원으로 올라도 문제가 없다. 그러나 시가 기준인 삼성생명법이 현실화되면 자산운용 비율이 6%로 오르게 된다. A사는 3만원 상당의 B사 주식을 매각해서 자산운용 비율을 다시 3%로 맞춰야 한다. B사 주가가 12만원으로 상승했다면, A사는 9만원 상당을 내다 팔아야 규제 기준을 맞출 수 있다.

이제 삼성생명의 자산운용 비율을 살펴보자. 숫자는 커지지만, 원리는 총자산 100만원의 A사와 조금도 다르지 않다(지금부터 나오는 지분, 시가총액은 2022년 12월28일 종가 기준, 총자산은 2022년 3분기 말 기준이다).

삼성생명(이하 생명)은 삼성전자(이하 삼전)의 최대 주주다. 삼전의 총주식 중 8.69%를 보유하고 있다. 생명은 이 지분을 40여 년 전인 1980년대에 5400억여 원(주당 1072원, 취득원가)으로 샀다. 이후 삼전은 글로벌 기업으로 눈부시게 발전했다. 주가 역시 치솟았다. 5400억여 원에 불과했던 8.69%의 가치가 지난 12월28일엔 약 54배인 29조3600억여 원으로 평가되고 있다. 취득원가 기준으로 보면, 생명(총자산 279조원)의 삼전 주식 보유에 대한 자산운용 비율은 0.19%(5400억원/279조원×100)다. 규제 기준인 3%보다 현격하게 낮다. 그러나 시가 기준(29조3600억원/279조원×100)으로는 무려 10.5%(3%보다 7.5%포인트 높은)에 달한다. 결과적으로, 삼성생명법이 통과되면 생명은 보유 삼전 주식 가운데 21조원 상당을 매각해야 한다. 같은 방법으로 계산하면, 삼전 지분을 1.49% 보유하고 있는 삼성화재(이하 화재, 총자산 87조2000억여 원) 역시 2조4200억여 원 규모의 삼전 주식을 매각해야 3% 기준을 맞출 수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생명과 화재가 보유한 23조여 원 상당의 삼전 주식이 시장에 나오게 된다는 이야기다. 만약 개정안 시행 시점에 삼전 주가가 지금보다 더 오른다면, 강제 매각해야 하는 주식 가치의 규모 역시 수조 원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총자산 100만원의 A 보험사가 그랬듯이 말이다.

시장에 삼성전자 주식이 쏟아지면

삼성생명법은 당초 ‘재벌개혁’ 차원에서 제기된 법안이다. 재벌 일가가 작은 지분으로 전체 계열사를, 그것도 금융회사를 끼고 좌지우지하는 시스템을 개선하겠다는 취지였다. 이런 대의명분에도 불구하고 국회에서 삼성생명법 의결이 지체되어온 이유는 삼성그룹, 나아가 한국 경제에 미칠 파장이 엄청날 것으로 우려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삼성 측 로비가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추정(상당한 개연성이 있는)도 있다.

삼성그룹의 소유·지배 구조는 이재용 회장 일가가 얼마나 안정적으로 삼전을 지배할 수 있는가에 맞춰 설계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림 참조). 일가는 한편으로 계열사들을 통해(이재용→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 삼전을 ‘간접’ 지배한다. 다른 한편으론 이 회장 등 가족 구성원 4명이 개인적으로 삼전 지분을 ‘직접’ 소유(합치면 5.45%)하고 있다. 이재용 일가와 계열사들의 삼전 지배 지분을 모두 합산하면 20.64%(합산 지분율)다.

2022년 11월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삼성생명법 토론회에 참석한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 ⓒ시사IN 포토

이 20.64% 가운데 생명의 몫이 8.69%로 가장 크다. 그런데 개정안이 통과되면, 생명의 삼전 지분이 2.47%로 떨어진다. 삼성화재의 삼전 지분 역시 1.49%에서 0.77%로 내려간다. 합산 지분율은 20.64%에서 6.94%포인트 빠진 13.7%로 하락한다. 삼전 주가가 오르면 더 많은 주식을 강제 매각해야 하므로 합산 지분율은 더 떨어질 것이다. 그만큼 일가의 지배력이 줄어들면서 그 공백을 노린 국내외 자본의 쟁투가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의 외국인 주주 비율은 49.75%에 달한다.

일각에선 외국인투자촉진법과 그 시행령 등에 외국인의 경영권 인수를 차단하는 조항이 있으므로 해외 투기자본의 위협은 우려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 법안들에 따르면, 외국인 투자가 ‘국가의 안전과 공공질서 유지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다른 부처 장관과 협의 혹은 외국인투자심의회 심의에 따라 ‘외국인 투자제한 업종’을 지정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나 외국인 투자자가 한국 기업의 경영권 인수를 시도하는 행위가 ‘국가 안전 유지에 지장을 초래하는’ 경우로 국제사회에서 인정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외국인 투자는 국내법으로 규제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당시 이재용 회장 측은 주총에서 참석 주주의 3분의 2(약 66.7%) 찬성을 얻어야 하는 합병을 69.53%의 지지로 겨우 성사시킨 바 있다. 미국계 사모펀드인 엘리엇이 ‘삼성물산 주주 이익’을 기치로 들면서 비교적 성공적으로 지지세를 규합했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이를 동력으로 이재용 회장 측과 위임장 대결을 벌였다. 당시 삼성물산의 최대 주주인 국민연금공단(9.92%)이 이 회장 측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합병은 부결되었을 것이다. 더욱이 당시 엘리엇의 행위 양식을 보면, 굳이 경영권까지 도전하지 않더라도 지지 세력을 배경으로 경영진 측에 ‘연간 순익보다 많은 특별 현금배당’ ‘수조 원 규모의 자사주 소각’ ‘배당성향 대폭 확대’ 등을 요구하며 투자 여력을 소진시킬 수도 있다. 엘리엇은 당시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가 창업자 일가의 이익을 위해 국민연금공단을 압박해서 합병을 성사시키는 바람에 큰 손해를 봤다며 한국에 대한 투자자-국가 분쟁해결절차(ISDS)를 진행 중이다.

생명과 화재가 강제 매각해야 하는 삼전 주식의 규모(이후 삼전 주가에 따라 20조~30조원가량일 것으로 추정)를 감안하면 주식시장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어 왔다. 다만 이런 우려에 대응해서 삼성생명법은 주식 매각에 7년의 유예기간을 제공하고 있다. 매년 단계적으로 팔면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증시의 상징과도 같은 삼전 주식이, 비록 7년에 걸친다 해도, 수십조 원 규모로 쏟아지는데 정말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을지는 상황이 닥쳐봐야 알 수 있다.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22년 12월7일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생명이 매각할 대량의 삼전 주식을, 삼전이 자사주로 매입하는 것을 허용하는 내용이다. 역시, 시장 충격을 줄이기 위한 일종의 안전장치다. 또한 이 개정안은 삼전 측이 생명으로부터 매입한 자사주를 지체 없이 소각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렇게 되면 기존 주주들은 삼전 주식의 총량이 줄어들며 오를 지분율과 주가로 큰 이익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삼전 법인 차원에서는 그만큼 투자 여력이 줄어들게 된다. 수십조 원을 조달해서 자기 회사 주식을 산 다음 제거해버려야 하기 때문이다. 반도체는 다른 산업에 비해 설비투자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데다 기술력에 따라 시장점유율이 천양지차로 갈리는 부문이다.

더욱이 생명이 삼전의 최대 주주 자리를 놓게 될 때 공정거래법 등 현행 법률에 따라 삼성그룹의 구조가 변동되면서 계열사 주식들의 대이동이 초래될 수도 있다. 유안타증권 최남곤 연구원이 최근 발표한 ‘삼성생명법 통과에 따른 지배구조 영향’ 보고서를 참조해서 다음과 같은 시나리오를 구성해봤다. 2022년 말 현재, 삼전의 대주주는 지분 보유 기준으로 삼성생명(8.69%), 국민연금공단(7.68%), 미국의 자산운용사인 블랙록(5.03%), 삼성물산(5.01%) 순이다.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어떤 회사(예컨대 C사)가 다른 기업(D사)의 1대 주주이며, C사가 가진 D사 지분의 가치가 C사 총자산의 50% 이상이면, C사는 D사의 지주회사로 강제 전환될 수 있다. 삼성물산의 총자산은 38조원인데 보유한 삼전 지분의 시가는 16조9000억원에 달한다. 생명이 대주주 명단에서 빠질 경우, 삼전 주가가 오르거나 삼성물산이 삼전 주식을 추가 매입하면, 삼성물산이 1대 주주로 자동 부상하면서 지주회사로 강제 전환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연금공단과 블랙록은 그 업태상 제외). 그리고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자회사(여기서는 삼전)의 지분 중 30% 이상을 보유해야 한다. 삼성물산이 삼전 지분의 30%(101조원 정도)를 매입하려면 80조여 원을 더 조달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 삼성바이오로직스 등 자회사들을 매각해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온다. 이 같은 삼성그룹 소유·지배 구조의 지각변동은 금융시장에 큰불을 붙일 것이다.

2015년 7월17일 최치훈 당시 삼성물산 건설부문 사장이 제일모직과의 합병계약 안건 가결을 알리며 의사봉을 두드리고 있다.ⓒ연합뉴스

삼성생명법의 대의명분

이런 우려들에도 불구하고 삼성생명법의 대의명분은 비판이 불가능할 정도로 강력하다. 자본시장과 관련된 규율이 법제화되어 있는 나라에서 기업 경영진은 자사 법인과 주주들의 이익에 봉사할 의무를 갖고 있다. 그런데 삼성생명의 삼전 지분 보유에서 주요 목적 중 하나가 삼성그룹의 지배권 유지라는 것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다. 주주보다 이재용 회장 측의 이익을 더 비중 있게 경영 기조에 반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2022년 11월23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삼성생명법 토론회에서 경제개혁연대 노종화 변호사는 발제문에 다음과 같이 썼다.

“삼성생명 이사회나 하부 위원회는 ‘지배주주의 지배권 유지’를 의사결정의 주요 목적으로 삼을 수 없음. 그러나 안타깝게도 삼성생명의 주요 목적은 삼성전자에 대한 지배력 유지라는 것이 유력한 시장의 평가임. 그렇다면 삼성생명 이사회는 그 자체로 회사에 대한 충실 의무와 보험 계약자에게 부당하게 위험이나 손해를 전가하지 않아야 할 계약상 기본 의무를 저버린 것임.”

아무도 자본시장 규율과 법률에 어긋나는 행위의 교정에 반대할 수는 없다. 만약 삼전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순기능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면, 삼성생명법은 예전에 통과되었을 터이다.

그러나 삼성생명법이 현실화되더라도 ‘삼성의 지배구조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고 ‘외국 자본의 경영권 위협은 상상할 수 없으며’ ‘반도체 산업에도 차질을 빚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하는, 이 법률 지지층 일부의 시각은 위험할 수 있다. ‘자본시장 정의’라는 편익이 그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동반될 가능성 역시 시민들에게 알려질 필요가 있다. 삼성그룹이 한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을 감안하면, 그 지배구조 변동의 이해관계자는 단지 기존 주주들에게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시민에게 해당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자명 이종태 선임기자 다른기사 보기 peeke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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