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앞에만 서면 흔들리는 재판부
  • 김은지 기자
  • 호수 553
  • 승인 2018.04.23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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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뇌물공여와 제3자 뇌물공여에 대한 판단이 재판부마다 달랐다. 같은 사안에 대한 다른 판단을 두고 법을 다루는 법조인들은 어떻게 볼까?

‘이재용 승계 작업’은 정말 없었나? 박근혜 게이트 관련 1심 선고가 마무리되며 한국 사회에 남은 질문이다. 4월6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는 피고인 박근혜의 18개 혐의 중 16개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박근혜 피고인에게 징역 24년과 벌금 180억원을 선고했다.

피고인 박근혜의 혐의 가운데 무죄가 난 두 가지 혐의와 일부 무죄가 난 한 가지 혐의가 논란이 되고 있다. 모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관련 있다. 하나는 삼성이 미르·K스포츠재단에 낸 204억원 뇌물 혐의, 다른 하나는 삼성이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낸 16억2800만원 뇌물 혐의다. 일부 무죄 부분은 삼성의 정유라씨 승마 지원이다. 삼성의 213억원 약속 중 실제 집행된 77억여원만 유죄로 인정했다(아래 <표> 참조).

이유를 불문하고 공무원에게 돈을 준 자체로 처벌하는 일반 뇌물죄와 달리, 제3자 뇌물죄는 ‘부정한 청탁’이 있어야만 죄로 인정된다. 돈을 준 이유, 즉 부정한 청탁의 대가가 입증되어야 한다. 미르·K스포츠재단과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에 삼성이 낸 돈을 박근혜 피고인에게 준 뇌물로 보려면 특검이 ‘부정 청탁’을 입증해야 하는 것이다.

박영수 특검팀은 삼성이 박근혜 피고인에게 이재용 승계 작업을 청탁했다고 봤다. 여기서 승계 작업은 단순히 ‘아버지(이건희)가 아들(이재용)에게 회사를 물러주는 행위’로만 정의하지 않는다. 삼성그룹의 복잡한 지분구조와 맞물려서 보아야 삼성이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작업을 위해 정치권력을 동원한 사실이 확인된다고 봤다.

특검은 이재용 승계 작업을 이렇게 정의한다. “이재용이 최소한의 개인 자금으로 핵심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의결권을 최대한 확보하는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다.” 이를 위해 박근혜 정부의 지원이 포괄적으로 필요했고, 개별 현안으로도 10가지에서 승계 작업이 필요했다고 제시한다.

①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 ②삼성SDS 및 제일모직 유가증권 시장 상장 ③삼성중공업-삼성엔지니어링 합병 ④삼성테크윈 등 4개 비핵심 계열사 매각 ⑤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⑥엘리엇 등 외국 자본에 대한 경영권 방어 강화 ⑦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후 신규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한 삼성물산 주식 처분 최소화 ⑧삼성생명의 금융지주회사 전환 계획에 대한 금융위원회 승인 ⑨삼성바이오로직스 상장, 투자 유치 및 환경규제 관련 지원 ⑩메르스 사태 및 삼성서울병원에 대한 제재 수위 경감 추진이다.

동일한 사안에 대해 각 재판부는 다른 판단을 했다. 지난해 8월 이재용 부회장의 1심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 27부(부장판사 김진동)는 포괄적으로 승계 작업이 존재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승계 작업을 협소하게 이해하지 않았다. 개별 사건 순서에 얽매이지 않고,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전자·삼성생명 지배력 확보 프로젝트로 승계 작업을 판단했다. 부정한 청탁이 존재하므로 제3자 뇌물죄가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다만 개별 현안으로서 승계 작업은 인정하지 않았다. 박근혜 피고인과 이재용 부회장 사이에 주고받는 사안 하나하나가 시기적으로 딱 떨어지지 않아서다. 1심 재판부는 이재용 부회장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지난 2월 이재용 부회장의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13부(부장판사 정형식)는 포괄적 승계 작업을 인정하지 않았다. 개별 현안이 이재용 부회장의 지배력 확보에 유리했다는 점을 수긍하면서도, 이는 개별 현안의 효과에 불과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이것만으로 곧바로 승계 작업이 존재한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 판결로 이 부회장은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2심을 맡은 정형식 부장판사는 판결 직후 비판이 거세지자 <조선일보>와 인터뷰하면서 이렇게 밝혔다. “법리(法理)는 양보할 수 없는 명확한 영역이었고 고민할 사안이 아니었다.”

지난 2월과 4월 최순실·박근혜 1심 재판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도 같은 판단을 했다. “승계 작업이 있었다고 보기에 증거가 부족하고, 박근혜 전 대통령 또한 이에 대한 뚜렷하고 명확한 인식이 없었다.”

같은 사안 다른 판단. 법을 다루는 다른 법조인은 어떻게 볼까? 오랫동안 재벌 경영권 승계에 대해 연구한 시민단체 경제개혁연대의 이상훈 변호사,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에서 국정농단 TF 소속이었던 김도희 변호사, 박영수 특검팀에서 활동한 전종원 변호사가 4월11일 한자리에 모였다. 이재용 1·2심, 박근혜·최순실 1심의 다양한 쟁점을 이야기했지만 삼성 부분을 중심으로 정리했다.

ⓒ시사IN 윤무영방담에 참여한 김도희(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정농단 TF),
전종원(박영수 특검팀), 이상훈(경제개혁연대) 변호사(왼쪽부터).


최순실·박근혜 1심에서 삼성 승계 작업이 인정되지 않았다.

전종원
:이재용 판결에서 1·2심이 엇갈렸다. 크게 세 가지였는데 안종범 업무수첩 증거능력 인정, 부정한 청탁(승계 작업) 존재, 정유라가 탄 말 소유권 이전 여부였다. 1심은 모두 인정했고, 2심은 부인했다. 그래서 이후 최순실·박근혜 1심의 판단이 중요했다. 어느 쪽을 따라갈까 싶었는데, ‘절충설’처럼 나왔다. 안종범 업무수첩의 증거능력은 인정, 부정한 청탁은 불인정, 말 소유권은 인정했다.

이상훈:시기상 이재용 2심 이후 최순실·박근혜 1심 선고가 나왔기 때문에 따라갈 거라고 예상했다. 오히려 이재용 2심을 예상하지 못했다. 사실 이재용 1심도 비판점이 있다. 뇌물은 약속한 금액까지 처벌한다. 삼성의 승마 지원 약속액은 모두 213억원이었다. 그런데 이 중 최순실씨 소유 페이퍼컴퍼니인 코어스포츠에 보낸 돈과 마필 비용 등만 인정돼 72억원만 유죄였다. 이 부분이 2심에서 바로잡힐 거라고 봤는데, 거꾸로 날아갈 줄은 몰랐다.

김도희:확정 약속이라고 볼 수 없다고 이재용 1심 재판부는 판단했다. 삼성의 승인이 있어야 계약이 확정되는데 그렇게 볼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전종원:이재용 1심이 제일 잘됐다. 이재용 1심은 포괄 현안으로서 승계 작업이 있다고 봤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세세한 건 모르지만, 두루뭉술하게 이재용 부회장이 승계하려는 점은 알았다며 유죄를 선고했다. 이재용 2심은 개별 현안이 승계 작업을 돕는 효과를 냈을 순 있어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된 거라며 승계 작업은 없었다고 판단했다. 박근혜·최순실 1심은 포괄 현안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하다고 봤다.

이상훈:뇌물 사건에서 원래 돈을 준 사실 입증이 가장 어렵다. 그런데 박근혜·이재용·최순실 뇌물 사건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돈을 건넨 사실은 확실하다. 그럼 ‘왜 주었냐?’인데, 여기서 ‘왜’를 설명하는 것이 삼성의 승계 작업이다. 막연히 잘 봐주겠지 싶어 주는 돈이 아닌, 구체적으로 아쉬운 게 있어서 돈을 건넸다는 거다. 그 아쉬운 걸 한 단어로 표현하면 승계 작업이다. 그걸 잘 봐줘야 하는 정부의 도움이 필요하다. 승계 작업이 왜 법과 연관되느냐면, 승계에는 상속세 문제가 낀다. 아버지 이건희가 누렸던 지배력을 그대로 아들 이재용에게 물려주려는데, 삼성의 지배구조에 문제가 있어서 그 작업이 원만하지 않았다.

김도희:삼성전자는 현재 시가총액이 358조원이다. 다른 계열사를 다 합쳐도 삼성전자를 지배할 수 없을 만큼 크다. 이재용 부회장 일가의 삼성전자 지분은 4%가 안 된다. 그러다 보니 다른 계열사들을 동원해 순환출자 구조를 만들어 지배력을 행사한다. 정부의 정책 결정은 당장 삼성의 지배력 확보에 영향을 미친다. 부정한 청탁을 할 수 있는 개연성이 충분하다.

이상훈:삼성그룹 지배구조의 문제점은 2015년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간 합병으로 적나라하게 나타났다. 그해 5월 이건희 회장이 갑자기 쓰러졌다. 승계 이슈가 불거졌다. 좀 더 적은 비용으로 삼성전자 지배력을 높이기 위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이뤄진다. 이 과정에서 문형표·홍완선 등 국민연금공단 간부들이 동원됐다. 이들은 모두 1·2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고 구치소에 갇혀 있다. 2심 법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개입을 인정했다.

그런데 박근혜 1심은 승계 작업이 없었기에 그에 대한 인식도 박근혜 피고인에게 없었다고 판단한다.

ⓒ시사IN포토독일에 있을 당시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는 삼성이 사준 말로 승마 연습을 했다.
삼성의 정유라 지원에 대한 법관들의 판단이 조금씩 달랐다.

이상훈:박근혜 전 대통령이 못 알아들었다는 얘기인데,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전체 웃음).

전종원:박근혜 1심 재판부도 그 증거들을 다 무시한 건 아니다. 금융감독원의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관련 전망’ 보고서,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집단 삼성의 소유구조 개편 전망 및 시사점’ 보고서, 박근혜 청와대 민정수석실의 ‘이재용의 경영권 승계 문제 관련’ 보고서 등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보고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다. 또 대통령의 지위와 권한 등 제반 사정을 고려하면, 개괄적으로나마 ‘이재용의 삼성그룹 계열사에 대한 지배력 확보를 위한 지배구조 개편’ 개념과 필요성을 인식했을 것으로 본다. 다만 승계 작업이 없었기에 이에 대한 인식도 없다고 판단한다.

이상훈:돈을 받았는데, 상대방이 왜 줬는지 모른다고 하면 무죄라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신문도 안 읽고, 아무것도 안 하면 제일 좋은 것이다. 잘된 판결문은 상식에 부합하고 읽을 때 휙휙 넘어가야 한다. 같은 법조인으로서 이재용 2심이나 박근혜·최순실 1심 판결문은 이해가 잘 안 된다.

김도희:뇌물 사건에서 이 정도 증거를 들이밀고도 ‘합리적 의심의 여지 없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실 자백 말고는 증거가 없다고 봐야 한다. 도청·감청은 불법이니까 인정이 안 될 것이고.

결국 부정하게 청탁할 것도 없는 삼성이 돈을 줬으니 강요의 피해자가 되었다.

이상훈:삼성이 이 사건으로 얻은 이익을 두 가지로만 산정해봐도 받아들이기 힘들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에서 수천억원 이익을 봤다(특검은 이 합병으로 이재용 등 삼성그룹 대주주에게 최소 7720억원 이득이, 국민연금공단에 최소 1387억원 손해가 갔다고 판단한다). 합병에 따른 삼성물산 매각 주식 수도 당초 1000만 주였는데, 공정거래위원회가 500만 주로 줄여줬다. 이것으로도 2000억원가량 이득을 봤다. 이렇게 두 건만 합쳐도 수천억원 이익이 생겼다.

전종원:박영수 특검이 정경유착의 전형이라고 정의하며, 이번 일을 계기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이재용 1심은 정경유착을 끊는 가장 큰 신호탄이 된 판결이라고 평가받았는데, 항소심이 전면 반박했다. 앞으로 이 정도는 정경유착이 아니니 해도 되나 하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것 같다.

김도희:이재용 2심 재판부가 정의하는 정경유착을 판결문에 명시해놓았다. 정치권력과의 뒷거래를 배경으로 문어발식 사업 확장, 거액의 불법·부당 대출, 국민 혈세로 조성된 공적자금 투입 등이다. 이러한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는 건데, 삼성그룹 창업주였던 이병철 회장이 사카린 밀수하던 시절의 정경유착 사례를 가지고 왔다. 결국 2심 재판부는 “이 사건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삼성그룹의 경영진을 겁박하고, 최순실씨의 그릇된 모성애로 사익을 추구해, 이재용 부회장은 뇌물임을 알고도 거절하지 못했다”라고 강조했다.

이상훈:이재용 1심 판결문에 나오는 용어 중에 ‘대관 업무’라는 말도 인상적이었다. 막연하게 관(官)에 접촉하는 지점이 있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판결문에 공식적으로 대관 업무라는 용어가 나오고 그 담당이 사장급이었다. 체계적인 대관 업무 과정이 판결문에 담겨 있다. 순환출자 고리 해소를 위해 로비하는 과정은 변호사로서 깜짝 놀랐다. 삼성 자문 변호사가 청와대 비서관 행정관과 수시로 연락하고 원하면 만났다. 사건을 맡으며 정부 관계자 만나기가 어려운 적이 많았는데, 같은 변호사로서 무능함을 느꼈다(웃음). 역시 ‘관리의 삼성’이다. 그런데도 피해자라니 납득이 잘 안 간다. 상식에 입각한 법리가 가장 정확한 법리라고 생각한다. 법리에 충실했다고 주장하는 수많은 판결이 대법원에서 깨진 경우가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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