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공동취재단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발인식이 10월28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서 열렸다.

10월25일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타계했다. 향년 78세. 1987년 삼성그룹 회장에 취임해 2014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까지 그는 27년간 국내 최대 재벌그룹을 이끌었다. 그가 회장에 취임한 1987년만 해도 삼성그룹 계열사 전체 시가총액은 1조원 규모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늘날 삼성전자 단일 기업의 시가총액만 따져도 346조원이 넘을 만큼 삼성그룹은 그의 지휘 아래 급성장했다.

이건희 회장의 사망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그가 남긴 유산에 이목이 집중된다. 재계 서열 1위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력과 경영권은 이미 상당 부분 그의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승계되어 있다. 지난 26년간 삼성그룹 전 계열사를 총동원해 각종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면서까지 전개한 승계 프로그램 덕분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스물여섯 살이던 1994년, 부친 이건희 회장으로부터 60억8000만원을 증여받으며(당시 증여세 16억원) 본격적인 승계 절차에 돌입했다. 우수한 비상장 자회사(에스원, 삼성엔지니어링)의 주식을 저렴하게 산 뒤 상장 이후에 되팔아 종잣돈을 마련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에서 사실상 지주회사로 부상하는 에버랜드(현 삼성물산의 전신) 전환사채를 헐값에 매입하기도 했다.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뒤엔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을 통해 이 부회장의 그룹 지배권을 더욱 강화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그룹의 사실상 지주회사인 삼성물산의 최대주주(17.48%)다. 이 기나긴 과정을 통해 현금 44억8000만원(증여세 제외)이었던 이재용 부회장의 재산은 7조원대로 불어났다. 이건희 회장의 사망은 결국 26년에 걸친 창업주 3세 승계 프로그램의 마지막 페이지가 열렸음을 알리는 소식이다.

앞으로 남은 문제는 크게 세 가지다. 상속, 지배구조 문제 정리, 이재용 부회장의 형사재판.

먼저 이건희 회장이 소유하고 있던 계열사 지분들을 상속받으려면 천문학적인 상속세를 납부해야 한다. 최근까지 확인된 이 회장의 보유 지분은 삼성전자 4.18%, 삼성물산 2.9%, 삼성생명 20.76% 등이다. 이들 주식을 현재가로 환산하면 18조원이 넘는다. 부동산 등 기타 자산의 가치는 모두 합치더라도 약 5000억원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국 이건희 회장 재산 상속 문제는 18조원대 주식을 어떻게 가족들에게 물려주느냐에 달려 있다.

남은 총수 일가(홍라희·이재용·이부진·이서현)가 이건희 회장 주식 재산을 상속받을 경우 이들이 지불해야 하는 상속세 규모는 11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추정된다. 상속 최고세율 50%가 적용되는 데다 ‘경영권이 딸린 주식 지분’엔 가산금이 붙기 때문이다. 아직 이건희 회장의 전체 재산 규모가 알려지지 않았고, 상속 지분의 평균가액(사망일 전후 4개월 평균)도 오는 12월에야 확정되는 까닭에 정확한 상속세 규모를 당장 산출하기는 어렵다. 다만 얼마가 되었든 삼성그룹 총수 일가가 지불해야 하는 상속세는 국세청이 역사상 경험해보지 못한 금액일 것으로 전망된다.

ⓒ시사IN 신선영2018년 2월5일 항소심 선고공판으로 석방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지배구조의 뇌관, 보험업법 개정안

총수 일가 중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이 지분 대다수를 물려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 부회장이 상속세를 물기 위해 본인 소유의 주식 중 일부를 매각해서 현금을 확보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상속세를 연부연납(할부 지불)할 경우 최대 5년간 여섯 차례에 나누어 낼 수 있지만 이 역시 매해 ‘조 단위’ 현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재용 부회장은 이미 보유한 계열사 지분(삼성SDS 9.2% 등)이나 부친으로부터 물려받는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의 주식 중 일부를 매각할 수 있다.

상속세 납부를 위해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의 배당이 확대될 수도 있다. 배당률을 높이면 모든 주주가 더 많은 배당금을 받게 되는데, 대주주인 창업주 일가 역시 상당한 현금을 손에 쥐게 될 것이다. 특히 영업이익 규모가 크고 총수 일가의 지분율이 높은 삼성전자·삼성생명의 배당 확대 가능성이 첫손에 꼽힌다.

삼성전자는 2017년 10월, 배당액을 대폭 늘리는 주주환원 3개년 정책을 발표했다. 벌어들인 돈을 회사 내에 유보하며 재투자하기보다 주주에게 돌려주기로 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대주주인 총수 일가의 배당액 역시 늘어났다. 지난해 이건희 회장이 계열사들로부터 받은 배당액은 약 4748억원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용 부회장도 1426억원 규모 배당을 받아 이건희-이재용 부자의 배당 총액이 6000억원을 넘어서기도 했다. 배당 규모를 확대할 경우 매년 납부할 상속세의 상당 부분을 현금으로 충당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그러나 배당만으로 상속세 문제가 완전히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배당을 늘린다 하더라도 연부연납 시 납입해야 할 한 해 세금(1조~2조원 예상)에는 미치기 어려워서다. 결국 배당 확대와 계열사 주식 매도가 함께 동원될 가능성이 크다.

삼성이 상속세를 위한 ‘실탄’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는 징후도 곳곳에서 나온다. 삼성전자가 당초 10월29일로 예상된 ‘향후 배당 정책’ 발표를 미룬 것도 이 때문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삼성전자는 3년 전 발표한 3개년(2018~2020년) 주주환원 정책을 올해로 마무리한다. 이 때문에 새로운 배당 계획을 3분기 실적 발표일인 10월29일에 함께 내놓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러나 이날 삼성전자 측은 추후 배당 계획을 내년 1월로 예정된 4분기 실적 발표 때까지 미루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의 배당 방향이 이건희 회장의 사망으로 인한 상속세 마련 계획과 무관하지 않다는 걸 유추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상속세 부담이 결코 적은 것은 아니나 ‘못 낼 돈’은 아니다. 이미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전체 계열사를 지배하는 상황에서 돈을 만들어내는 방법이 구체적으로 정해지지 않았을 뿐, 납부가 불가능하진 않다. 이건희 회장의 지분을 삼성 내 공익재단에 기부(?)하는 방식으로 돌려 상속세를 피해 갈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러나 이는 여론 부담이 너무 큰 방법이다. 지난 5월 이재용 부회장이 대국민 사과에서 “이제는 경영권 승계 문제로 더 이상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하겠다”라고 공개적으로 언급한 점도 부담이다. 과거 승계 과정에서 저지른 불법행위에 대한 판결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승계와 관련된 또 다른 무리수를 두기는 쉽지 않다.

이건희 회장 개인 자산을 상속한다고 모든 문제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건희 회장 사후 해결해야 할 두 번째 문제인 ‘지배구조 정리 문제’가 남아 있다. 삼성그룹 지배구조의 축은 ‘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연결되는 계열사 소유의 사슬이다. 위 〈그림〉을 살펴보자.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물산을 지배하고(17.48%), 삼성물산이 삼성생명 주식의 19.34%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총주식의 8.51%를 가지고 있는 최대주주다. 이건희 회장(4.18%), 삼성물산(5.01%), 삼성생명이 각각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합치면 17.7%에 달한다. 이재용 부회장은 결국 3가지 방법(상속, 삼성물산 지분, 부친으로부터 물려받을 삼성생명 지분)을 동원해야 삼성전자를 안정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삼성생명 지분이 위협받고 있다. 국회에 발의된 보험업법 개정안 때문이다.

박용진·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발의한 보험업법 개정안은 사실 삼성생명을 겨냥한 법안이다. 현행법에 따르면, 보험사는 자산의 3%까지만 같은 그룹 계열사의 채권·주식을 보유할 수 있다. 보험회사가 가입자의 돈을 계열사에 함부로 투자하는 행태를 막기 위해서다. 삼성생명의 총자산은 317조원(2020년 2분기 기준)이므로 그 3%인 9조5000억원까지는 삼성 계열사의 주식이나 채권을 매입할 수 있다.

그런데 계열사의 주식가격을 어떻게 산정할 것이냐가 문제다. 지금까지는 보험사가 해당 주식을 ‘얼마에 샀느냐(취득원가)’로 ‘3% 초과’ 여부를 따졌다. 삼성생명은 1980년대에 삼성전자 지분 8.51%를 5000억여 원(취득원가)에 확보했다. 당시엔 삼성전자 주가가 매우 낮았기 때문이다. 보험업법 개정안에 따르면, 보험사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은 취득원가가 아니라 공정가액(현 시점의 주가)으로 평가된다. 이렇게 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의 가치는 29조여 원으로 치솟는다. 즉 삼성생명은 29조원 규모의 삼성전자 주식 중에서 9조5000억원(삼성생명 자산의 3%) 상당을 제외한 19조5000억원 규모의 주식을 강제로 매각해야 한다. 삼성전자 총주식의 5.6%에 달한다. 삼성전자의 ‘주인’을 바꿀 수도 있는 규모다.

여당 의원들이 보험업법 개정안을 낸 것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다. 외환위기 이후 다른 금융업권의 자산운용 비율 규제는 모두 공정가액(시가)으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보험사만 이 문제에서 예외로 취급되어왔다. 이미 보험업법 개정안은 19대, 20대 국회에서도 발의되었으나 통과되지 못한 이력이 있다. 현재 특정 계열사 주식·채권 비율이 공정가액 기준 3%를 넘는 곳은 삼성생명-삼성전자뿐이다. 그동안 이 법을 고치지 못한 것이 ‘삼성 특혜’라고 지적되었다. 이 개정안이 ‘삼성생명법’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보험업법 개정안 이슈는 이건희 회장의 유산 상속을 복잡한 고차방정식으로 만든다. 보험업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삼성그룹은 지배구조 전체를 재정비해야 할 수 있다. 상속세를 내기 위해 어떤 주식을 매각할 것이며, 계열사의 배당 정책을 어떻게 할 것인지, 그리고 최종적으로 어떤 형태로 삼성전자에 대한 이재용 일가의 지배력을 유지할 것인지 등을 다각도로 따져볼 수밖에 없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이제까지’와는 달리 여론을 자극하지 않는 방식이어야 한다. 세 번째 문제인 이재용 부회장 본인의 형사재판이 당장 코앞에 당면해 있기 때문이다.

이재용 부회장이 피고인으로 나서야 할 재판은 두 건이다. 두 사건 모두 그의 승계 프로그램의 핵심인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과 연관되어 있다. 하나는 지난해 8월29일 대법원에서 파기환송 판결을 받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뇌물공여 혐의’다. 이재용 부회장은 승계 작업을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최순실씨에게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기소되어 2017년 8월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고 수감되었다. 그러나 이듬해 2월 항소심 재판부는 삼성이 지불한 경주마 구입액 34억원과 영재센터 지원금 16억원에 대해 대가성이 없다며 징역 2년6개월, 집행유예 4년으로 감형했다. 이재용 부회장이 출소한 것도 당시 판결 덕분이었다.

ⓒ연합뉴스2011년 4월21일 삼성 서초사옥에 처음 출근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이재용 사장.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후유증’

하지만 대법원은 항소심에서 대가성이 없다고 판단한 돈이 대가성이 있는 뇌물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결국 이를 반영해 다시 재판을 받아야 하는데(파기환송), 대법원의 뇌물 판단 논리가 반영될 경우 이 부회장의 재수감은 불가피하다. 결국 승계 프로그램이 부친 사후에도 이재용 부회장의 발목을 잡은 셈이다.

2015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의혹이 제기된 사건도 재판을 앞두고 있다. 검찰은 지난 9월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한 관계자들을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시세조종 등 혐의로 기소했다. 이재용 부회장의 안정적인 경영권 승계를 위해 그룹 차원에서 합병비율을 조작하고, 각종 불법 로비와 시세조종 등 부정한 방식이 동원됐다는 이유였다. 당시 검찰수사심의위원회가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불기소 권고를 결정했지만, 검찰은 권고 내용과는 무관하게 최종적으로 기소 판단을 내렸다. 결국 승계 과정의 핵심 과정이었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은 이 재판 결과에 따라 그 정당성이 훼손될 우려에 직면했다.

물론 두 차례 재판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패소·수감된다 하더라도 당장 현 승계 구도가 와르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승계 과정의 핵심이었던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정당성이 무너진다면 관련 민사소송들이 잇따라 제기될 수 있는 형국이다. 이미 형사재판 판결과 별도로 ‘합병 무효 소송’이 진행되고 있다. 일성신약 등 구 삼성물산 주주들이 합병이 무효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2017년 10월 1심에서 재판부는 “포괄적인 승계 작업의 일환이었다고 해도 경영상 합목적성이 있었으므로 승계가 유일한 목적은 아니다”라며 합병 자체를 무효화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 재판은 이후 원고 측 항소로 2심이 진행 중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승계 후유증’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국정농단 이후 그가 겪은 모든 오욕은 결국 그의 승계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삼성 준법감시위원회(위원장 김지형)는 지난 3월 “그간 삼성그룹의 과거 불미스러운 일들이 대체로 ‘승계’와 관련이 있다.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준법의무를 위반하는 행위가 있었던 점에 대하여 반성과 사과는 물론 향후 준법 의무 위반이 발생하지 않을 것을 공표하라”고 권고했다. 결국 이재용 부회장 스스로도 대국민 사과에 나서며 “자녀들에게 회사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이 부회장이 20대 때부터 준비하고 시행한 경영권 승계 방식이 이제 더는 불가능하다는 판단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경제 규모, 자본시장 환경, 공정거래 규제망 등이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건희 회장은 전 세계를 놓고 보더라도 독보적인 성과를 거둔 경영자였다. 재벌 중심 경제라는 한국적인 배경, 고도성장기라는 시대적 특수성 위에서 그는 과감하게 투자하고 전략적인 판단을 내려 삼성이라는 거대한 기업을 일궈냈다. 그러나 특권과 반칙으로 점철된 역사 역시 그의 일면이다. 한국 경제 발전의 양면성을 대표하는 인물의 사망은 새로운 시대가 전개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일이다. 이건희 시대가 남긴 유산은 결국 이재용 승계 후유증으로 우리 사회가 고스란히 분담해야 할 일이 되었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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