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10월6일 경총에서 열린 간담회에 참석한 이낙연 대표(오른쪽)가 손경식 경총 회장의 안내를 받고 있다.

정부·여당은 ‘공정경제 3법’이라 부르고, 보수언론과 경제지는 ‘기업규제 3법’이라고 부른다. 상법, 공정거래법, 금융그룹감독법 세 법률 개정안이 8월25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3법’은 2020년 하반기 국회의 핵심 전선으로 떠올랐다.

‘3법’ 중에서도 특히 뜨거운 감자는 시장경제의 기본법 격인 상법이다. 상법 개정안의 양대 축은 다중대표소송제와 감사위원 분리선출제도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감사의 독립성을 높여서 기업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 경영진의 부정행위에 대해 모회사 주주들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기업이 자회사를 통해 대주주 일가에게 이익이 되지만 주주에게 손해가 되는 결정을 할 때, 모회사 주주들이 이를 바로잡을 무기를 주자는 취지다(32~ 33쪽 기사 참조). 접근법을 요약하면 이렇다. “기업의 주인은 대주주 일가가 아니다. 대주주 일가가 가진 주식보다 훨씬 크게 행사하는 지배권을 제자리로 돌려놓겠다.” 기업의 지배구조를 개혁한다는 것은 결국, 재벌 일가가 자신이 가진 주식보다 훨씬 큰 힘을 휘두르는 현실에 제동을 걸겠다는 얘기다.

상법 개정안은 묘한 역사를 갖고 있다. 다중대표소송제는 2012년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의 대선 공약이었다. 박근혜 후보 공약은 현재 개정안에 없는 집중투표제(주주총회에서 이사를 선출할 때 소수주주들이 일부 후보자에게 집중적으로 투표하는 제도. 이사회 구성에 소수의견이 반영되므로 대주주에게 불리하다)까지 포함해서 더 급진적이었다. 박근혜 후보의 상법 개정안을 입안한 인물은 김종인 선거대책본부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이었다. 그는 2016년에는 20대 국회에 입성해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다. 역시 다중대표소송제, 감사위원 분리선출, 집중투표제 등이 골자다. 그는 저서 〈결국 다시 경제민주화다〉에서 상법 개정 구상을 설명하며 “재벌의 지배구조에 민주적인 의사결정 운영 방식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라고 썼다. 현 정부·여당의 접근법과 사실상 같다.

여야를 두루 거치며 상법 논의의 ‘키맨’ 구실을 한 김종인은 현재 제1 야당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고 있다. 김 위원장은 정부가 내놓은 ‘3법’에 찬성 의견을 밝혀 재계와 보수언론을 긴장시켰다. 하지만 대다수 의원들은 ‘기업규제법’이라는 재계와 보수언론의 관점으로 기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0월6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나와, 고용 유연성을 높이는 노동관계법 개정과 3법 처리를 연계하겠다고 밝혔다. 하나씩 주고받자는 제안인데, 복잡한 당내 지형의 교통정리 문제를 밖으로 돌리는 효과도 있다. 김종인 위원장이 3법을 찬성한다고 해도 국민의힘이 그 방향을 곧이곧대로 따를 가능성은 별로 없다. 반대로 국민의힘 현역 의원들도 2021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까지는 ‘김종인표 혁신 브랜드’가 필요하다. 김 위원장은 당무 거부와 사임 등 ‘벼랑끝 전술’을 자주 구사해온 바 있다. 국민의힘 주류와 김종인 위원장 둘 다 뜻대로 밀어붙이기 어려운 구도다.

민주당은 대체로 단일 대오를 유지하고 있으나, 미묘한 징후도 보인다. 이낙연 대표는 김진표 의원을 민주당 국가경제자문회의 의장으로 앉혀 3법 논의를 주도하도록 했다. 이낙연 대표는 집권 여당이 반(反)기업적이라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김 의원도 기업친화적인 중도 성향으로 분류된다. 국민의힘 김종인 위원장은 이 ‘이낙연·김진표 라인’이 3법을 상당히 후퇴시킬 거라 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히려 여당이 말만 할 뿐 실제 의지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민주당이 여당이 된 후에 논의가 오히려 멈췄던 전례도 있다. 20대 국회로 돌아가 보면, 당시 ‘김종인 상법’은 2016년 11월부터 2017년 2월까지 네 차례 상정되며 합의 직전까지 가는 등 집중 논의됐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에는 2017년 11월에 한 차례 더 상정된 것을 마지막으로, 이후 3년 동안 논의 테이블에서 사라진다.

민주당에서는 “이낙연·김진표 라인의 역할은 재계의 의견을 존중하는 ‘외양’을 갖추는 것일 뿐, 3법의 핵심을 후퇴시킬 일은 없다”라는 반론이 더 많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첫 대변인을 맡았던 박수현 민주당 홍보소통위원장은 “정부·여당이 ‘3법’을 추진할 의사는 확고하다. 집권 초기에 상법 논의가 중단된 것은 여러 사회문제에 대해 노사정 합의로 풀어가던 시기라 그랬을 뿐 의지가 후퇴했던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재계를 논의 테이블에 붙잡아둘 필요가 컸던 집권 초기와는 달리, 성과를 내야 하는 집권 후기에는 입법을 미룰 이유가 없다는 의미다.

ⓒ연합뉴스2018년 9월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공정거래법 전면개편 입법 예고안 정책세미나’에서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3법 논란 종착점은 ‘삼성’

여러모로 3법의 전선은 단순한 여야 대결로 환원하기 어렵다. 야당은 명시적으로, 여당은 미묘하게 당내 균열이 있다. 서로가 자신의 균열을 덮고 상대의 균열을 키우려는 수를 던져가며 당분간 대치가 이어질 전망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0월6일 〈김종배의 시선집중〉 인터뷰에서 “민주당 내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하시는 김진표 의원님 같은 분들이 (3법에)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같은 날, 박주민 민주당 의원은 4년 전에 나왔던 ‘김종인 상법’을 그대로 다시 발의했다.

민주당에서 기업 지배구조 관련 법안을 오래 만져온 의원들 사이에서는 뜻밖의 고민도 들을 수 있다. 20대 국회에서 상법 개정안을 다뤘던 한 전직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상법은 기업 지배구조를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따라가다 보면 결국 만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다. 삼성이다. 기업 지배구조 왜곡을 바로잡자는 3법 논의는 결국 ‘우리 사회가 삼성전자의 지배구조 왜곡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로 흘러가게 되어 있다.”

그래서 정치권과 재계에서는 3법보다 오히려 더 조용히 주목받는 법안도 있다. 보험업법 개정안이다. 민주당 박용진 의원과 이용우 의원이 발의했고, 정기국회 때 본격 논의될 전망이다. 건조하고 기술적으로 보이는 이 법안은 따져보면 삼성전자의 지배구조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보험업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보유지분을 팔아야 한다.

삼성생명은 삼성전자 주식 8.5%를 갖고 있다. 실질적 최대주주다(삼성전자의 최대주주는 국민연금이지만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는다).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삼성물산이다. 그리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삼성물산 대주주다. 결국 ‘이재용-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 사슬이 핵심이다. 이 사슬 덕에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전자 지분 0.6%만으로 삼성전자를 지배한다. 그런데 보험업법이 개정되면 삼성생명이 빠져나가면서 이 사슬이 끊어진다. 한 민주당 의원은 “3법은 정치적으로는 시끄럽지만 내용상 합의는 의외로 쉽다. 기업 지배구조 문제가 의제로 떠오르면, 진짜 ‘큰판’은 보험업법이 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천관율 기자 다른기사 보기 yul@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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