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9월25일 당 소속 시·도지사 간담회에 참석하고 있다.

10월6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를 찾았다. 정부·여당이 ‘공정경제 3법(이하 3법)’이라고 이름 붙인 입법 사안에 대해 경영자단체의 의견을 듣기 위한 자리였다. ‘3법’은 상법 일부 개정안, 공정거래법 전부 개정안,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 세 가지를 의미한다. 정부와 여당은 세 법안의 제·개정이 문재인 대통령의 핵심 공약이라며 기업들의 우려와 달리 한국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이날 간담회에서 손경식 경총 회장을 비롯한 경영자 그룹은 각각의 법안이 경영과 투자에 많은 제약을 가한다며 법안 추진의 속도와 강도를 조절해달라고 요구했다.

누구의 말이 더 설득력을 갖는지 판단하려면 3법의 핵심 내용을 살펴봐야 한다. 3법은 갑자기 등장한 이슈가 아니다. 2017년 대선 당시에 주요 내용이 현 정부 공약에 포함되었고, 20대 국회에서 때를 놓친 내용이 대다수다. 주요 정책 기조는 ‘기업과 대주주(이른바 재벌 일가)에 대한 견제장치를 재구축’하는 데 있다. 상법을 개정하는 것은 각 주식회사의 운영 과정에 대주주 견제장치를 보강하겠다는 의미다.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은 기업집단(재벌)에 대한 정부 규율의 틀을 재편하는 내용이다. 여기에 그동안 금융지주법 적용을 받지 않던 ‘금융회사를 계열사로 거느린 기업집단(삼성·현대차·한화·미래에셋·교보·DB)’을 좀 더 효율적으로 감독하기 위한 금융그룹감독법이 추가된다.

가장 논란이 격한 대목은 기업의 헌법이라고 불리는 상법 개정안이다. 정부·여당은 이 ‘기업의 헌법’에 ‘감사위원회 위원 분리선출제’와 ‘다중대표소송제’를 도입하려 한다. 감사위원은 기업의 감시자다. 그러나 대다수 주식회사 감사위원은 이사를 먼저 선출한 뒤 이들 가운데 감사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1주1표 주주자본주의에서 이사회 구성에는 대주주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다. 이사 중 한 명인 감사도 마찬가지다. 이런 질서에 균열을 내 감사 한 명 이상을 이사회 이사선임과 별도로 ‘다른 규칙’을 통해 선출하게 하는 내용이 이번 개정안에 포함되었다.

다른 규칙이란 3% 룰을 의미한다. 대주주를 비롯해 아무리 지분이 많더라도 감사 분리선출 과정에서는 발행 주식 총수의 3%까지밖에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1주1표 주주자본주의의 예외 조항이다. 이럴 경우 대주주 입장에서는 ‘입맛에 맞는 감사’를 내세우기가 어려워진다. 경영자단체는 해외 투기 세력의 침투를 우려하며 이 조항을 반대하고 나섰다. 이사회에 원치 않는 인물이 들어오는 것, 그 인물이 회사 내부 사정을 훤히 들여다보도록 권한을 주는 것이 경영자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적잖은 비율을 가진 외부 주주가 연합해 감사 선임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감사 한 명의 권한이 과연 기업 경영에 얼마나 위협적인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평균적으로 코스피200 지수에 포함된 대기업은 감사위원을 평균 3.2명(2018년 기준) 두는데, 이들 중 최소 한 명을 경영자 의중과 다른 방식으로 선출하는 것이 경영체제의 근간을 위협하는 수준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다중대표소송제 역시 경영자단체가 반발하는 내용이다. 이 개념은 ‘주주대표소송제’의 확장판이라고 보아야 한다. 치킨 프랜차이즈를 운영하는 A라는 업체가 있다. A사는 B라는 자회사로부터 식품 원재료를 납품받는다. 그런데 B사는 A사 대표(겸 대주주)의 자녀가 따로 세운 C라는 물류회사에 배송 일감을 몰아준다. 심지어 일반적인 시세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C사에 대금을 지급한다. C사는 큰 이익을 보지만 B사는 손해를 본다. 만약 B사가 상장되어 있다면, 그 소수주주들이 B사 경영진에게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며 소송을 걸 수 있다. 이게 주주대표소송제다.

하지만 B사가 비상장 자회사라면 어떨까? 모회사는 재무제표에 자회사의 손실을 반영해야 한다. 즉 B사의 손실은 곧 모회사 A사의 손실이며 이는 A사 주주의 손실로 이어진다. 반면 A사 대표는 자녀에게 안정적으로 부를 물려줄 수 있다.

위 예시에서 A사 주주들은 B사 경영진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 이런 부당한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단, 모회사가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경우) 경영진에게 소송할 수 있도록 허용한 것이 바로 ‘다중’대표소송제다.

이 법안 역시 불안요소가 없는 것은 아니다. 소송 남용, 즉 ‘잦은 소송으로 인해 경영이 어렵다’는 볼멘소리가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실제 현실에서 대표소송제 사례는 많지 않다. 경제개혁연구소가 2018년 3월에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1997년부터 2017년까지 21년 동안 판결이 내려진 주주대표소송 사례는 120개 사에서 137건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오히려 주주대표소송을 확대하는 것이 기업집단 내 지배·종속관계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는다. 무탈하게 경영을 이어가고 싶은 회사들 처지에서는 껄끄러운 채널이 하나 더 생길 수 있지만, A사 사례처럼 소수주주의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내용에 가깝다.

ⓒ연합뉴스2011년 4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이재용 사장이 함께 출근하고 있다.

대세는 제·개정, 반대론 논거는 ‘속도조절’

공정거래법 전면 개정안은 기업집단 규제의 틀을 재정비하는 성격을 띤다. 이 개정안은 이른바 ‘재수 법안’이다. 공정거래위원회가 2018년에 한 차례 개정을 추진했지만 20대 국회에서 계류되다 결국 폐기되었다. 공정거래법은 1981년 제정 이래 수차례 부분적인 수정을 거치며 법안 체계가 혼잡해졌고 이를 정리하기 위해 전면 개정을 택했다. 정부(공정위) 개정안은 크게 이 법의 성격을 재정비하고, 기업집단(재벌) 규제를 강화하며, 법 집행 절차를 개선하는 내용을 반영했다. 세부 내용 중에서 ‘전속고발제 부분적 폐지(사회적 비난이 큰 담합은 공정위를 거치지 않고도 고발 가능)’ ‘과징금 상향’ ‘사익편취 규제 대상 확대’ ‘지주회사의 자·손자회사 지분율 요건 강화’ 등이 주목받고 있다.

재벌 규제 강화는 기업이 촉각을 곤두세우는 내용이다. 특히 ‘일감 몰아주기’로 기업을 키우는 사익편취 규제 대상이 확대된다. 가령 정몽준·정몽구 부자가 지분율 29.9%를 차지하고 있는 현대글로비스의 경우, 과거에는 두 사람의 지분율이 30% 미만이라는 이유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었지만 법이 개정(20%로 하향)되면 규제 대상에 포함된다.

3법을 둘러싼 환경은 정부·여당에 조금 더 유리한 상황이다. 범여권이 과반인 상황에다 과거 다중대표소송제 등을 직접 발의했던 김종인 국민의힘 대표도 3법 제·개정의 핵심 논의에 이견을 보이지 않는다. 결국 반대론에서 내세우는 핵심 논거는 ‘속도조절론’이다. 굳이 코로나19로 인해 기업활동이 위축된 시점에 회사 운영의 기반 원칙(상법)과 정부 규제 강화(공정거래법)가 이뤄져야 하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앞선 간담회에서 3법을 정기국회 이내에 처리할 것이라고 경영자단체 대표들을 앞에 두고 재차 강조했다. 정부 발의안에 대한 좀 더 첨예한 줄다리기는 올가을 정기국회 법사위와 정무위에서 펼쳐질 전망이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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