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의 한 건물에 하나은행·KB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 ATM 기기가 나란히 놓여 있다.  ⓒ연합뉴스
서울 시내의 한 건물에 하나은행·KB국민은행·신한은행·우리은행 ATM 기기가 나란히 놓여 있다. ⓒ연합뉴스

공정거래위원회가 4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 제재 절차에 착수했다. 은행들이 사전에 정보를 교환해 담보대출 한도를 비슷한 수준으로 조정했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제재가 확정되면 ‘정보 교환’만으로 담합이 인정되는 첫 사례다. 은행에 부과될 과징금 규모가 최대 1조원대에 달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은행들은 거세게 반발한다. 담합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이고, 짬짜미할 이유도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논란이 커지는 가운데 총선을 앞두고 새로운 형태의 관치가 진행 중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공정위는 최근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 등 4대 은행에 담합 혐의로 심사보고서를 발송했다. 심사보고서는 피심사자의 혐의를 담은 보고서로 검찰 공소장과 비슷한 개념이다. 공정위가 은행에 적용한 혐의는 ‘정보 교환 부당공동행위’다. 검찰 고발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었다. 공정위는 2월까지 은행들의 이의 신청을 받고 이후 심의(전원회의)를 열어 공정거래법 위반 여부와 제재 수준을 확정할 계획이다.

공정위가 문제 삼은 건 담보인정비율(LTV)이다. LTV는 은행이 부동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줄 때 대출 가능한 한도를 나타내는 비율을 말한다. 예를 들어 주택담보대출을 받아서 5억원짜리 아파트를 살 때, LTV가 70%라면 3억5000만원까지 대출받을 수 있다. 아파트·토지·공장·오피스텔 등 각 부동산 종류와 250개 시군구별로 LTV가 다르게 매겨진다. 이 때문에 각 은행에서 담보 종류, 지역별로 만들어지는 LTV 조합이 적게는 6000여 개에서 많게는 7500여 개에 달한다. 국민은행은 1년에 두 번, 신한·우리·하나은행은 1년에 한 번 담보물에 대해 LTV를 적용해 사전에 대출 가능 금액 등을 산정하는 절차를 밟는다.

공정위는 4대 은행이 LTV 세부 자료와 정보를 사전에 주고받으면서, LTV를 낮은 수준에서 비슷하게 조정하는 담합을 벌였다고 의심한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은행들은 7000여 개에 달하는 지역·물건별 LTV를 은행별로 나눠 엑셀 파일에 정리했다. 공정위는 조사 과정에서 은행 담보대출 담당자들이 수시로 만나 정보를 공유한 정황을 파악했다. 이 작업을 후임자에게 인수인계한 정황도 드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2023년 12월27일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2023년 12월27일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이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브리핑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출받으려는 개인과 기업은 LTV에 따라 대출이 얼마나 나오는지를 따진다. 통상 높은 LTV를 원한다. 대출 가능 규모가 커지기 때문이다. 은행이 LTV를 낮추면 고객이 받을 수 있는 대출은 그만큼 줄어들게 된다. 모자라는 대출 여력은 개인의 신용 상황을 반영해 대출을 일으켜야 한다. 이 경우 이자가 더 높게 매겨질 수 있고 다른 대출 상품을 추가하는 경우도 있다. 이 때문에 LTV 과소 산정은 은행에 유리하고 상향 경쟁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부동산 담보대출의 평균 금리를 밀어 올리는 측면도 있었다는 게 공정위 판단이다. 공정위는 4대 은행의 LTV는 정보 교환을 하지 않은 다른 은행들에 비해 낮게 설정돼왔고, 시간이 갈수록 대출금리 차이가 더 벌어진다고 보고 있다.

공정거래법상 담합으로 벌어들인 매출액의 최대 20%까지 과징금이 부과된다. 공정위 제재 대상에 오른 한 은행은 이번 심사보고서 검토 결과 과징금 부과 추정액을 최대 2000억원대 중반까지 예상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은행 네 곳의 과징금 총액이 최대 1조원에 육박한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게 문제라면 정부가 담합 주도한 것”

아직까지 이번 공정위 제재에 대한 은행권의 공식 입장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러나 속사정은 다르다. 무리한 제재라며 강도 높게 반발하는 중이다. 공정위와 소송전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이미 지난해부터 각 은행들은 대형 로펌을 선임하고 공정위 조사에 대응해왔다.

은행들은 우선 LTV 관련 담합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은행의 대출금리는 기준금리가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에 가산금리를 더하고, 여기에 우대금리를 뺀 값으로 결정된다(기준금리+가산금리-우대금리). 가산금리는 은행이 대출을 해주면서 지는 위험성, 업무원가 목표이익률 등을 반영해 정한다. 일종의 은행 마진이다. 우대금리는 은행이 고객의 거래실적 등에 따라 금리에 차등을 두고 고객에게 제공하는 혜택이다.

제재 대상에 오른 A 은행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시장금리 영향을 받는 대출 기준금리는 담합 자체가 불가능하다. 은행 마진이 되는 가산금리는 고객 신용도, 담보 종류 및 가격 등 차주별로 대출 조건이 천차만별이다. 은행마다 자금 상황과 이에 따른 대출 전략도 다르다. 최종적으로 은행들의 대출금리가 같더라도 이를 산출할 때 적용하는 가산금리, 우대금리는 제각각일 수밖에 없다. 담합해서 이를 하나하나 맞추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라고 말했다.

가계대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주택담보대출은 특히 담합할 이유 자체가 없다고도 강조한다. 제재 대상에 오른 B 은행 관계자는 이렇게 주장했다. “예를 들면 현재 무주택자와 1주택자는 서울 강남·서초·송파·용산구에선 LTV가 50% 적용되고, 다른 서울 지역 일부는 70%가 적용된다. 특정 은행이 자체적으로 LTV를 90%로 설정한다고 해도, 현재 정부 방침에 따라 대출은 50%, 70%로 제한된다. 낮은 LTV가 문제라면 사실상 정부가 담합을 주도한 것과 다르지 않다.”

실무자들의 정보 공유 정황에 대해서는 공정위가 업계 관행과 상황을 전혀 모르고 문제를 제기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C 은행 관계자는 “LTV 정보는 각 은행 지점만 가도 누구나 쉽게 접근해 비교할 수 있다. 특히 주담대(주택담보대출) LTV는 금융감독원이 지역별로 담보 관리 기준을 정해서 통제하고 있다. 이걸 정리해서 공유했다는 이유로 문제 삼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정보 교환은 리스크 관리를 위해 담보물을 폭넓게 분석하기 위한 일종의 관행 같은 것이다. 관행만으로 몰아세우기 전에 전반적인 시장 상황과 대출 과정, 구조 등을 고려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반면 기업이 땅, 건물 등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기업 대출은 획일적인 LTV 규제가 없다는 점에서 일부 담합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있다. 이에 대해 D 은행 기업금융 담당 관계자는 “기업 대출은 KB 시세를 기준으로 하는 주담대와 달리, 각 은행이 감정평가 업체에 상가나 건물의 감정평가를 맡긴 뒤 이를 기반으로 자체적으로 일정 비율의 대출한도를 산정한다. 이후 기업의 신용도 등을 합산해서 최종 결정한다. (기업 대출에서는) LTV라는 용어 자체를 안 쓴다. (공정위가) 어떤 부분을 LTV라 보고 정보를 교환했다고 지적하는지 파악 중이다”라고 말했다.

금융권에서는 공정위와 4대 은행의 법리 다툼이 치열할 것으로 관측한다. 이번 공정위 제재가 ‘정보 교환만으로’ 담합 혐의를 적용한 첫 사례여서다. ‘통상적인 담합’이 성립하려면 은행들이 기준금리 인상으로 불가피하게 늘어난 이자수익보다 더 과도한 이익을 누렸는지 공정위가 밝혀야 한다.

공정위 조사 결과 이번 담보대출 정보 교환 건의 경우 해당 행위로 인해 초과 이율 등 실질적 이익이 발생하지는 않았다. 제재 대상에 오른 은행들이 LTV를 비슷한 수준으로 결정하자고 합의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다. 공정위는 2012년 라면 가격 담합 사건에서 정보 교환 행위만으로 담합이 성립한다고 판단했지만, 2015년 대법원은 사전 합의가 있었다는 뚜렷한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식품업계 손을 들었다.

다만 2021년 개정된 공정거래법은 ‘정보를 주고받음으로써 일정한 거래 분야에서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하는 행위’도 담합으로 본다. 이번 ‘정보 교환 담합’ 제재가 확정되면 법 개정 이후 첫 사례가 된다. 공정위는 앞서의 은행 실무자 간 정보 공유, 각 은행에 대한 공정위의 현장 조사 과정에서 발견된 LTV 산정 자료(엑셀 등)를 증거로 제시한다. 은행은 담합 증거가 될 수 없고 담합 자체도 없었다고 맞선다. 담보대출을 받을 수 있는 창구는 4대 은행만이 아니라 그 외 시중은행 등 충분히 다른 선택지가 있다는 점도 강조한다. 결국 은행이 교환한 정보가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핵심 정보(가격, 생산량, 원가, 출고·재고·판매량, 거래조건 또는 대금·대가의 지급조건 등)에 해당하는지가 위법성을 가리는 핵심 요소가 될 전망이다.

공정위는 왜 큰 칼을 꺼냈나

“고금리로 어려운 소상공인·자영업자들께서는 죽도록 일해서 번 돈을 고스란히 대출 원리금 상환에 갖다 바치는 현실에 마치 은행의 종노릇을 하는 것 같다.” 2023년 10월 윤석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은행을 향해 이렇게 비판했다. 윤 대통령의 ‘종노릇’ 발언은 강경하고 명확했다. 곧바로 금융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 금융 당국 수장들이 대통령 발언 직후 보조를 맞췄다. 금융권 CEO들을 불러 ‘역대급 이자 이익’을 집중적으로 비판했다. 이어 금융권의 고통 분담 필요성을 독려했다. 수익을 환원하거나 인위적으로 수익 발생 자체를 억제하라는 것이 골자였다. 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은 이후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상생금융 대책’을 수립했다. 은행들이 2023년 12월 발표한 2조원 규모의 ‘소상공인 이자 환급’ 계획이 이 과정에서 나왔다. 이는 2023년 2월 5대 은행이 공개한 10조원 규모 ‘사회 공헌 프로젝트’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규모였다.

금융권과 관가는 이번 ‘정보 교환’ 사건도 주의 깊게 보고 있다. 4대 은행에 대한 공정위 조사도 비슷한 맥락에서 시작돼서다. 지난해 2월 은행들의 사회 공헌 프로젝트가 공개되는 과정과 맞물린다. 지난해 2월23일 윤석열 대통령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금융·통신 분야의 경쟁 시스템을 실효화하는 방안’을 보고받고 “은행 고금리로 인해 국민들 고통이 크다”라며 은행의 영업 행태가 약탈적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은행의 돈 잔치로 인해 국민들의 위화감이 생기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당초 공정위는 2023년 업무 추진계획상 은행에 대한 조사 방침을 세우지 않고 있었다. 윤 대통령의 지시 직전까지 공정위는 ‘금융·통신 분야 경쟁 촉진 방안’을 보고하면서, 금융과 관련해 은행 등 금융권 약관을 심사해 소비자에게 불리한 약관은 시정하도록 금융위원회·금융감독원에 요청하겠다고만 밝혔다.

윤석열 대통령이 1월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두 번째부터),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1월2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 두 번째부터), 김주현 금융위원장, 이복현 금융감독원장과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그런데 지난해 2월27일 공정위 카르텔조사국은 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은행 등 6개 은행 현장 조사에 착수했다. 신고 없이 시작된 직권조사로, 윤 대통령의 지시 나흘 만에 이뤄졌다. 공정위는 은행들의 대출금리, 수수료 등 담합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조사라고 밝혔다. 약관 심사는 시정명령 등으로 개선을 유도하는 수준에 그치지만, 카르텔조사국의 조사는 결과에 따라 시정명령, 과징금에 더해 법인과 CEO 고발로 이어질 수 있다. 공정위가 당초 계획한 약관 심사보다 더 무겁고 큰 칼을 꺼내 들었던 것이다.

공정위는 이후 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네 곳으로 범위를 좁혀 최근까지 조사를 이어왔다. 다만 조사 초기 공정위가 확인하고자 했던 대출금리나 수수료 관련 담합 의혹은 모두 혐의가 없다고 결론이 내려졌다. 2021년 12월 법 개정으로 도입된 ‘정보 교환 담합 혐의’만 적용됐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은행권을 향해 비판 목소리를 내고 있다. 고금리 장기화 국면에서 은행이 서민과 소상공인을 상대로 과도하게 이자를 받고 있다는 게 정부의 시각이다. 고금리 국면이 이어지면서 ‘종노릇’ ‘이자 장사’ ‘약탈적 영업’ 등 윤 대통령의 발언 수위도 계속해서 높아졌다. 금융권에서는 이자수익이 늘었다고 은행을 비판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항변했다. 기준금리 상승에 연동된 이자수익 증가를 은행의 탐욕만으로 규정하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금융권에서는 윤석열 정부 들어 금융권에 새로운 형태의 ‘관치’가 이뤄지고 있다고 해석한다. 대통령이 특정 업계에 대해 비판하면 관련 부처가 나서 보조를 맞추는 형태다. 과거처럼 낙하산 인사 등을 통해 경영에 직접 개입하진 않지만, 우회적으로 압박한다는 것이다. 목적은 이어지는 고금리에 따른 부정적 여론, 그리고 오는 4월 총선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익명을 원한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지난 정부들은 솔직한 편이었다. 경제위기나 경제활성화 등을 앞세워 금융권의 동참을 촉구했다.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추는 방식으로 금융권이 함께할 명분을 열어준 측면도 있다. 이번 정부는 ‘정부가 악의 축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나서는 것’이고, 이에 대해 금융권이 알아서 처신하길 바라는 것 같다. 요구는 하고 싶지만 개입은 하지 않는다는 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 문제는 금융권이 해석에 공을 들이다 보니 타이밍을 놓치고 또다시 비판받는 악순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기자명 문상현 기자 다른기사 보기 moon@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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