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5일 저녁 서울 중구 명동에서 퇴근길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시는 명동 입구 광역버스 정류소에 노선 표시 안내판(줄서기 표지판)을 설치한 뒤 오히려 퇴근길 차량 정체가 심해지자 표지판 운영을 1월31일까지 유예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1월5일 저녁 서울 중구 명동에서 퇴근길 시민들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 서울시는 명동 입구 광역버스 정류소에 노선 표시 안내판(줄서기 표지판)을 설치한 뒤 오히려 퇴근길 차량 정체가 심해지자 표지판 운영을 1월31일까지 유예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노란 조끼를 입은 교통계도요원들이 연신 호루라기를 불었다. 버스정류장 앞 인도에 산발적으로 서 있던 시민들이 그 소리에 맞춰 정류장에 진입하는 버스로 다가갔다. 1월8일 저녁, 서울시 중구 ‘명동입구’ 광역버스 정류장에서는 교통계도요원들이 버스에 올라타는 시민들을 살피며 인파를 정비했다. 정류장에 1m 간격으로 세워진 ‘줄서기 표지판’에는 ‘운영 유예’라고 쓴 종이가 붙어 있었다. 이른바 ‘명동 퇴근길 대란’ 이후 등장한 풍경이다.

지난해 12월26일, 명동입구 광역버스 정류장에 ‘줄서기 표지판’이 세워졌다. 이날 박형식씨(가명·55)는 35m 길이의 버스정류장에 표지판 13개가 다닥다닥 세워진 낯선 풍경에 당황했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서 출퇴근하는 그는 9300번 광역버스를 이용한다. 가장 이상했던 것은 대형버스가 정차하기에 표지판 간격이 너무 좁다는 점이었다. 버스들은 자신의 버스 번호가 적힌 표지판 앞 정차 구역에 들어가려 해도 그 앞뒤에 다른 버스들이 정차해 있을 경우 끼어들 수 없었다. 버스들이 줄줄이 밀리는 ‘열차 현상’이 벌어졌다.

퇴근 시간인 오후 5시부터 9시 사이, 명동입구 광역버스 정류장에 정차하는 버스는 558대다. 1분에 2.3대가 들어온다. 서울역 버스환승센터에서 회차해 명동입구로 들어오는 버스들이 연쇄적으로 밀렸다. 서울역~숭례문~명동 입구에 이르는 1.8㎞ 구간에 주차장처럼 차들이 쌓이기 시작했다. 10분이면 갈 수 있는 두 정류장 거리가 1시간30분씩 걸렸다.

“탑승구역을 좁게 만들어놓으니 버스 수십 대, 승객 수백 명이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탈 버스 서너 대가 눈앞에 있는데도 한 시간씩 기다려야 했다.” 박씨가 한참 만에 버스에 오르며 “퇴근길이 힘들어졌다”라고 기사에게 말을 걸자 “민원 좀 넣어달라”는 대꾸가 돌아왔다.

1월5일 저녁 서울 중구 명동 입구 버스정류소에 서울시 관계자가 버스 줄서기 표지판 운영 유예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1월5일 저녁 서울 중구 명동 입구 버스정류소에 서울시 관계자가 버스 줄서기 표지판 운영 유예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연합뉴스

탁상행정이라는 비난이 빗발쳤다. 서울시는 버스를 타려고 도로로 무단 진입하는 시민들의 안전을 위해 표지판을 설치했다고 설명했지만, 정차 이격거리를 고려하지 않아 승객들의 발이 묶이는 황당한 상황을 만들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최소한 버스우선 신호체계라도 만들었다면 이런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김상철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장은 명동·광화문·사당·강남 같은 광역버스 거점은 교통체증이 불가피하지만 이를 완화하는 방법도 있다고 말했다. “광역버스는 일반 버스에 비해 탑승객을 기다리는 정차 시간이 길다. 도로 위 여러 차량들이 뒤엉키게 할 수도 있다. 그래서 버스전용도로나 버스우선 신호체계 등을 정비해 승객을 태운 버스가 빨리 빠질 수 있게 해야 한다. 탑승 위치를 지정할 게 아니라, 흐름을 연결하는 ‘도로 정책’으로 해결책을 찾는 게 먼저다.”

사실 ‘탁상행정’이라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서울시 담당 공무원은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줄서기 표지판 아이디어를 낸 공무원도 명동입구에서 버스를 타는 경기도민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현장을 모르고 낸 대책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숫자만 보고 내놓은 방안이라는 점도 인정했다. “국토교통부의 자료를 활용해 정류소 수용 용량을 산출하고 노선별 평균 통행량 데이터도 비교했다. 다만 고정된 숫자만 확인하다 보니 현실적인 변수를 고려하지 못한 것 같다.” 1월5일, ‘줄서기 표지판’이 시행된 지 9일 만에 서울시는 ‘원래 시스템으로의 복귀’를 결정했다.

줄서기 표지판 설치 이후, 서울역부터 숭례문, 명동 입구 정류장에 버스들이 꽉 찬 상태가 표시된 앱 화면. 커뮤니티 게시판 갈무리.
줄서기 표지판 설치 이후, 서울역부터 숭례문, 명동 입구 정류장에 버스들이 꽉 찬 상태가 표시된 앱 화면. 커뮤니티 게시판 갈무리.

이후 서울시의 후속 조치가 나왔다. 단기적으로는 해당 정류소의 혼잡도를 낮추기 위해 명동입구 정류장에 정차하던 일부 노선의 정차 위치를 변경하겠다고 했다. 근본적으로는 서울 도심으로 진입하는 광역버스가 너무 많기 때문에 그 양을 조절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광역버스의 운행대수 및 노선을 감축하고 광역버스가 도심에 진입하기 전에 회차하도록 해 경기도민들이 서울시의 대중교통으로 환승을 거쳐 도심으로 진입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경기도 측은 이런 대책에 즉각 반발했다. 이번 ‘명동 퇴근길 대란’과 ‘명동 교통 혼잡’은 애초 원인이 다르다는 것이다. 전자는 서울시의 잘못된 행정 조치에 의한 결과일 뿐 광역버스 운행량과 상관이 없는데도 서울시가 ‘광역버스 탓’을 한다는 것이다. 경기도 측 담당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가만히 있다가 뺨 맞은 꼴”이라고 항변했다.

자동차 도심 혼잡통행료는 일부 면제

광역버스를 감차하겠다는 서울시의 대책은 의미심장하다. 1월6일, 오세훈 서울시장은 ‘명동 퇴근길 대란’을 ‘신중치 못한 새로운 시도’였다고 사과하는 영상을 찍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렸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수도권 주민은 모두 서울 시민”이라고 말했던 오 시장이 본인의 말을 뒤집으며 서울 중심 교통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평가한다. 이번 사태가 단순한 행정적 실수가 아니라 서울시의 광역교통정책의 성격을 보여주는 일화라는 것이다.

수도권의 생활 범위가 서울에서 경기 지역으로 분산되는 광역화가 진행되면서 경기도와 서울은 강력한 공동생활권으로 묶였다. ‘메가시티’ 담론이 힘을 얻은 것도 그 때문이다. 앞으로도 서울로 유입되는 경기권 ‘생활 인구’는 계속해서 늘어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시가 대중교통 규제책인 광역버스 진입 제한을 꺼내들었다.

애초 명동 교통 혼잡은 서울시와 경기도가 공통으로 인정하는 문제점이었다. 도심으로 들어오는 광역버스가 많아진 1차적 이유는 2022년부터 실시한 광역버스 입석 금지 조치이다. 이태원 참사 이후 고속도로를 이용하는 광역버스의 입석이 제한됐다. 만차인 버스를 몇 대씩 보낸 후에야 출근길에 오를 수 있는 승객들이 늘어나며 혼란이 빚어지자 경기도와 서울시, 국토교통부 산하 대도시광역교통위원회에서는 버스 물량 공세에 나섰다.

광역버스 입석 제한과 함께 철도 사각지대인 신도시의 인구가 늘어나는 점 역시 버스 의존도를 높이는 이유 중 하나다. 전현우 교통·철학 연구자는 광역버스에 대한 의존도를 당장은 줄이기는 어렵다고 봤다. 특히 수원·용인·분당이 있는 경기 남부권은 화성 동탄 등을 제외하고는 도시개발 속도가 조절되고 있지만, 고양·양주·김포가 있는 경기 북부권은 여전히 택지 개발이 한창인 가운데 이들 지역민을 서울 도심으로 진입시키는 철도의 대안이 광역버스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현우 연구자는 한정된 교통 인프라를 어떻게 분배할 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연신내, 서울역, 삼성, 수서를 연결하는 GTX-A 노선에 광화문역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지만 실패했다. 전철망 신설은 논의를 시작하는 데에도 한참 시간이 걸릴 것이다. 결국 광역버스 승하차 병목현상을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버스가 이용할 수 있는 도로의 범위를 넓혀주는 것이다. 승용차 제한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도심 내 승용차 통행량을 제한해 대중교통의 흐름을 개선하려는 의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명동 퇴근길 대란’ 논란이 계속되던 1월5일, 서울시는 도심으로 들어오는 자가용 진입을 억제하기 위해 시행하던 ‘남산터널 혼잡통행료’ 일부를 1월15일부터 면제하기로 결정했다.

광역교통망 체계는 교통수단의 운영 주체인 지자체·이용자·버스업체 등 여러 당사자들의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정치적 대상이다. 경기도에서 서울 도심으로 들어오는 이웃 시민들과의 관계맺기를 포괄하는 사회적 사안이기도 하다. 김상철 정책위원장은 ‘줄서기 표지판’ 같은 임시 방책과 광역버스 체증의 해결책으로 감차를 검토하는 접근은 서울시가 ‘수도권통합 교통정책’에 대한 고민을 시작조차 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경기도민을 끌어안을 것인가, 경기도민 탓을 할 것인가. 서울시 광역교통정책의 철학이 시험대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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