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는 1월27일 부터 대중교통 통합 정기권인 ’기후동행카드’ 시범 사업을 실시한다. ⓒ시사IN 이명익
서울시는 1월27일 부터 대중교통 통합 정기권인 ’기후동행카드’ 시범 사업을 실시한다. ⓒ시사IN 이명익

1월23일 서울시가 대중교통 통합 정기권 ‘기후동행카드’ 판매를 시작했다. 기후동행카드는 공공자전거 따릉이를 제외할 경우 6만2000원, 따릉이를 포함할 경우 6만5000원으로 한 달 동안 서울 권역 내 지하철과 시내·마을버스 등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카드다. 전국 최초로 도입되는 ‘무제한 정기권’인 만큼 기후동행카드에 대한 관심은 판매량으로 이어졌다. 판매 개시 이틀 만에 누적판매량 10만 장을 넘어섰다.

하지만 ‘서울 시민만을 위한’ 할인제도가 지속 가능할지 우려도 크다. 기후동행카드는 경기·인천에서 승차하는 시민들의 이용을 제한했다. 경기도에서 운영하는 광역버스에서도 사용할 수 없다. 2020년 실시된 통계청의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경기도 전체에서 매일 서울로 통근·통학하는 인구는 약 125만5000명이다. 경기도와 서울시는 ‘수도권 통합환승요금제’로 묶인 단일 생활·교통권이기도 하다. 오세훈 서울시장 역시 “서울시로 나오는 사람들은 다 서울 시민”이라는 발언을 자주 해왔다.

기후동행카드는 이런 오세훈 시장의 기조와 다르게 설계됐다. 서울에서 나갈 때는 쓸 수 있어도, 다른 지역에서 서울로 들어올 때는 쓸 수 없는 ‘반값 할인’에 머문다. 지난해 9월, 기후동행카드 사업 설명회 이후 ‘경기도 배제’ 논란이 이어지자 서울시는 김포시·인천시와 협약을 추진했다. 올해 내로 김포골드라인과 김포·인천 광역버스에서도 기후동행카드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김포시장과 인천시장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함께 국민의힘 소속이다.

하지만 경기도 측 관계자는 〈시사IN〉과의 통화에서 추가적인 협약 진행이 쉽지 않을 것으로 봤다. “서울시가 통합적인 광역교통정책을 외면하고 지난해에 기후동행카드 사업을 기습 발표했다. 비판이 일자 경기도 내 개별 시·군과 협약을 맺으면서 사용 범위를 늘리려고 하지만, 대개 실익이 있겠냐는 회의적인 분위기인 걸로 안다.”

1월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중교통 정기권에 관한 합동 기자설명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김동연 경기도지사,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오세훈 서울특별시장, 유정복 인천광역시장. ⓒ연합뉴스
1월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중교통 정기권에 관한 합동 기자설명회가 열렸다. 왼쪽부터 김동연 경기도지사,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 오세훈 서울특별시장, 유정복 인천광역시장. ⓒ연합뉴스

게다가 1월22일에는 K-패스(국토교통부)·The경기패스(경기도)·인천I-패스(인천시) 등이 올해 5월 시행을 앞두고 줄줄이 공개됐다. 기후동행카드가 독점적인 할인정책은 아니라는 뜻이다. 정부와 지자체가 내놓은 대중교통 지원제도들은 연령·이용 횟수·이용 패턴·거주지 등에 따라 혜택 수준도 다르다. 오세훈 시장은 지난해 9월 YTN 라디오 인터뷰에서 이용자들이 매달 자신의 이용 횟수에 맞게 할인카드를 고를 수 있으니 ‘즐거운 선택’이라고 표현했지만, 시민들은 오히려 혼란스러워하는 분위기다.

문제는 이처럼 다양한 할인 제도가 나온 후에도 기후동행카드가 지속적으로 시민들의 선택을 받을 수 있는지 여부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은 5월부터 시행될 ‘K-패스’다. 국토교통부에서 현재 시행 중인 ‘알뜰교통카드’의 확대·개편 제도로 교통비 중 일부(일반 이용객 20%, 만 19~34세 청년 30%, 저소득층 53%, 한 달 최대 60회분까지)를 사후 환급해준다. K-패스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나, 전국 어디에서건’ 사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에 비해 기후동행카드는 경기권과 수도권을 물리적으로 분리한 ‘배타적인’ 서비스다. 교통의 관점에서 서울에서만 적용되는 혜택은, 서울만 고립시키는 정책이 되기도 한다.

강력한 라이벌은 환급형 ‘K-패스’

서울시 기후동행카드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가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제한 이용으로 서비스 폭을 확장해 평소 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도 대중교통 이용을 한 번 더 고려할 수 있도록 편의성을 높였다’고 말했다. 과연 그럴지 하나씩 살펴보자.

기후동행카드는 충분히 저렴한가? 그렇지 않다. 버스 기본요금 1500원을 기준으로 할 때, 6만5000원을 초과해 사용하려면 최소 44회 이상 버스를 이용해야 이득이 된다. 국토교통부(국토부)에 따르면, 2022년 서울시민 한 달 평균 대중교통 요금은 7만1745원이다. 기후동행카드가 6만5000원인 것을 감안하면 할인금액은 7000원가량 된다. 그런데 현재 국토교통부에서 시행 중인 환급형 교통지원책인 ‘알뜰교통카드’의 할인 폭이 더 크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 관악구에 사는 한지민씨(31)는 평일에는 버스를 타고 출퇴근하고, 주말에도 어학원을 다니기 위해 왕복으로 버스를 탄다. 한 달에 약 56회 버스를 이용하는 한씨의 한 달 교통비는 8만4000원이지만 알뜰교통카드 이용으로 1만9600원을 환급받는다(1회 교통비가 2000원 미만일 경우 일반 이용객은 회당 250원, 청년은 350원씩 환급받는다). 최종적으로 한씨는 한 달 교통비로 6만4400원을 지출한다. 그는 “비싼 노선을 타거나, 환승 시 추가비용이 많이 붙거나, 주말에도 대중교통을 많이 타는 ‘밖순이’여야 기후동행카드로 혜택을 볼 것 같다”라고 기후동행카드를 구입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알뜰교통카드를 이용하는 청년이라면 이미 월 최대 약 2만1000원에서 3만9000원까지 환급받을 수 있다. 환급형인 알뜰교통카드보다 정액제인 기후동행카드의 할인 혜택이 커지려면, 한 달에 60회 이상 버스를 타야 한다.

조삼모사 할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서울시는 지난해 8월과 10월, 각각 버스요금을 300원, 지하철 요금을 150원씩 올렸다. 오는 7월에도 지하철 요금을 150원 추가 인상할 계획이다. 기후동행카드 시범사업이 끝나는 6월30일 직후가 될 확률이 높다. 대중교통 추가 인상에 대한 불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기후동행카드를 생색내기용으로 급하게 내놓은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1월23일 서울시청 앞에서 공공교통네트워크 등이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기후동행카드 제도는 온실가스 감축이나 대중교통수단 분담률 상향과는 거리가 멀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1월23일 서울시청 앞에서 공공교통네트워크 등이 연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기후동행카드 제도는 온실가스 감축이나 대중교통수단 분담률 상향과는 거리가 멀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이미 문제점들이 드러났다고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영수 사회공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이용객들의 ‘촘촘한 편익 계산’을 전제로 대중교통 정책은 만들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익숙한 행동 대신 새로운 행동을 선택하도록 유인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영수 선임연구위원은 서울시가 기후동행카드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욕구를 수치화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설익은 정책을 펼쳤다고 지적했다. “정책을 시행하기 전에 최소한 인식 조사라도 거쳐야 한다. 계층별·연령대별로 다양한 이용자들이 있는 만큼, 합리적인 통합정기권의 가격대는 얼마라고 보는지, 자동차 대신 대중교통을 타려면 어느 정도 할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등을 먼저 파악하고 그것을 근거로 토론회라도 거쳐야 했다. 이 과정마저 생략한 채 중앙정부에서 시행하려는 K패스와 엇박자를 내며 서울시가 성급하게 기후동행카드를 도입한 것이다.”

이영수 연구위원은 ‘이용 횟수 무제한’ ‘정액제’ 같은 긍정적 요인에도 불구하고, 제한된 이용 범위와 교통 요금 인상액에 비해 낮은 할인 폭 등 이용자들의 욕구가 충분히 고려되지 않은 현재의 설계는 대중교통 이용률 상향에 오히려 장애물이 될 것이라고 봤다.

지난해 독일과 네덜란드 등 유럽의 에너지·기후 현장을 방문하고 온 고이지선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정부와 지자체가 신제품 출시하듯 경쟁적으로 발표하는 할인제도 역시 기후동행카드의 성패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봤다. 고이지선 연구원은 대중교통 이용률을 높이는 핵심 전략은 ‘이해하기 쉽고 단순한 시스템’에 있다고 말한다. 그는 전국 대중교통(지역 간 고속열차 제외) 무제한 이용권인 ‘9유로 티켓’을 도입한 독일 사례를 소개하며 “독일도 9유로 티켓을 시행하기 전에는 지역에 따라, 버스냐 지하철이냐에 따라, 이용 횟수에 따라 적용되는 요금제가 매우 다양했다. 너무 복잡해서 교통 관련 공무원들 사이에서는 ‘요금고시를 따로 봐야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라고 말했다.

이용도, 관리도 복잡했던 요금제도는 전국 통합 요금정책인 9유로 티켓 시행으로 단일화가 이루어졌고, 3개월이라는 시범 기간에 5000만 장 이상 판매되면서 대중교통 이용률을 25%나 끌어올렸다. ‘기후 티켓’을 도입한 오스트리아 역시 전국 단일 할인 요금제를 적용하고 있다. 개인이 복잡한 셈을 해야 하는 어려운 지원제도가 실제로 시민들의 삶을 바꾼 사례는 찾기 어렵다.

기후동행카드 판매가 시작된 1월23일 서울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기후동행카드를 구매하는 모습. ⓒ연합뉴스
기후동행카드 판매가 시작된 1월23일 서울 지하철 광화문역에서 기후동행카드를 구매하는 모습. ⓒ연합뉴스

교통 문제는 ‘로컬’ 문제?

서울시는 기후동행카드 사업을 도입하면서 자동차 이용자를 지원하는 정책을 같이 내놓으며 이용자들에게 ‘어긋난 시그널’을 내고 있기도 하다. 서울시는 도심 교통난 해소를 위해 도입했던 남산 1·3호 터널 혼잡통행료를 최근 일부 면제하기로 결정했다. 100인 이상 기업에서 기후동행카드를 일괄 구매해 임직원들에게 배부하면 교통유발 부담금을 감면해주는 혜택도 검토 중이다.

환경단체들은 기후위기 대응을 위해 혼잡통행료, 주차료, 교통유발분담금 등을 감면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증액해 그 재원으로 녹색 인프라 확대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동차 이용자의 ‘불편’이 더 나은 대중교통 투자로 이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 대중교통 할인 지원 정책으로 실제 이용자가 늘어난다 해도 이들을 수용하는 설비와 서비스의 질이 함께 높아지지 않으면 다시 자가용 이용으로 돌아 설 수 있다. 이용의 편익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막기 위해서는 과감한 교통정책 변화가 필요하다. 고이지선 연구원은 “서울시가 대중교통기금을 마련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갖추고, 승용차·도로·전기차 등에 투입되는 보조금을 대중교통 활성화와 교통약자 혜택으로 돌려야 한다”라고 말했다.

2018년 기준 한국 수송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은 국가 전체 총배출량의 13.5%를 차지한다. 그중 도로 수송이 96.5%에 이른다. 정부는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달성을 위해 2030년까지 수송부문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8년 대비 37.8% 감축한다는 목표를 정했다. 개인의 승용차 수요를 줄이고, 대중교통 혹은 자전거·보행을 중심으로 교통정책을 재설계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서울시의 기후동행카드는 ‘무제한 정기권’이라는 선도적 방식으로 발 빠르게 시범 운영에 들어갔지만, 중앙정부의 교통정책과 보조를 맞추지 못하고 단일 교통권 지역을 배제하면서 그 본연의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현재 서울시와 국토부 대도시권광역교통위원회, 경기도 관계자 등은 경쟁적 할인 지원에 따른 시민들의 혼란을 막기 위해 별도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1월22일 박상우 국토교통부 장관은 “교통문제는 굉장히 로컬(지역적인) 문제”라며 “하나의 정해진 방식이나 틀보다는 다양한 선택지를 갖는 것이 좋다”라는 견해를 밝혔다. 경기도 관계자 역시 환급형과 정액형 등 완전히 다른 체계가 있는 상황에서 “통합 요금제를 내놓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라고 말했다. 제3의 길을 모색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정해진 건 없고 이제 막 도화지를 펼쳤을 뿐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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