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김규진·김세연 부부 사이에서 한 아이가 태어났다. 여성 동성 부부인 두 사람은 언론 인터뷰에서 프랑스에서 생활한 경험이 아이를 갖겠다는 결심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동성 커플 사이에서도 아이를 얼마든지 낳아 기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프랑스는 2021년 생명윤리법이 개정되면서 비혼 여성과 레즈비언 커플에게 불임 치료(체외수정)를 허용했다. 법 개정을 통해 결혼 여부, 이성애 가족 여부와 상관없이 아이를 갖고 기를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되었는데, 이 법이 통과되기까지 수많은 논의가 있었다.

2018년 9월, 프랑스 파리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하고 있는 한 동성 커플. 체외수정으로 임신한 자녀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REUTERS
2018년 9월, 프랑스 파리에서 로이터 통신과 인터뷰하고 있는 한 동성 커플. 체외수정으로 임신한 자녀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REUTERS

프랑스에서 동성 부모에 대한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13년 동성결혼법(Le mariage pour tous)이 제정되면서다. 이 법의 이름은 직역하면 ‘모두를 위한 결혼’이다. 결혼뿐 아니라 입양과 상속의 권리를 보장한다. 가족기록부의 ‘남편’ ‘아내’라는 단어를 제외했다. 이 법이 제정되면서 프랑스는 전 세계에서 14번째로 동성결혼을 허용한 국가가 되었다.

프랑스 통계청(INSEE)에 따르면, 동성 부부는 전체 커플의 약 3%를 차지한다. 지난 10여 년간 7만명이 넘는 동성 커플이 결혼했다. 국민의 인식도 바뀌었다. 통계 전문기업 스타티스타(Statista)가 지난 6월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66%가 동성결혼이 합법이어야 한다고 답했다.

프랑스에서는 2017년부터 미혼·비혼 여성, 여성 커플의 체외수정 허용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당시 대선후보였던 에마뉘엘 마크롱 현 대통령은 “체외수정이 이들(미혼·비혼 여성, 여성 커플)에게 허용되면 안 된다는 법적 근거가 없다”라면서 체외수정 허용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2017년 6월 국가윤리자문위원회(CCNE)는 “사회 인식의 변화를 고려해 미혼·비혼 여성과 여성 커플의 체외수정 허용에 대해 긍정적이다”라고 발표하기도 했다.

2018년 7월5일 프랑스 최고 행정재판소인 ‘국사원’은 생명윤리법 개정안을 검토한 뒤 체외수정 확대에 “어떠한 법적 문제도 없다”라는 의견을 전했다. 국사원은 “연대 원칙에 의해 (미혼·비혼 여성, 여성 커플의) 체외수정 비용도 국가의 사회보장제도가 부담해야 하며, 아이의 출생 전에 공증인에게 공동 성명을 제출해 두 여성이 모두 엄마로 인정받을 수 있게 하는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라고 권고했다. 다면 남성 커플의 ‘대리모 출산’ 허용에 대해선 ‘다른 사람의 신체나 처지 이용 불가 원칙’을 들어 반대했다.

우여곡절 끝에 개정된 생명윤리법

국가윤리자문위원회와 국사원가 윤리적·법적 검토를 마쳤는데도 실제 개정안이 통과되기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었다. 프랑스 국회는 2019년이 되어서야 생명윤리법 공식 논의에 착수했다. 2019년 9월 아녜스 뷔쟁 당시 보건장관이 “(생명윤리법은) 우리 사회를 위한 하나의 기회이자 특권”이라며 논의를 이끌었다. 여당 ‘전진하는공화국’의 로랑스 방센브록-미알롱은 “(여성 커플에게 체외수정은) 매번 성사되지는 않기 때문에 이미 어렵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라면서 체외수정 허용 확대에 지지 의사를 밝혔다. 그는 레즈비언으로 벨기에에서 두 아이를 출산한 바 있다.

2021년 4월, 체외수정 허용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생명윤리법안에 찬성하는 시민들이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AFP PHOTO
2021년 4월, 체외수정 허용 대상을 확대하는 내용을 담은 생명윤리법안에 찬성하는 시민들이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AFP PHOTO

프랑스에서 생명윤리법 개정안과 같은 정부 입법안은 하원과 상원을 차례대로 통과해야 한다. 개정안은 2019년 10월 하원을 통과했지만, 2020년 1월 우파 야당이 다수인 상원에서 국가의 비용 부담, 정자 기증자 공개 등 세부적 문제에 대한 이견으로 부결되었다. 프랑스는 상원과 하원의 표결이 갈릴 경우, 양원합동위원회를 구성해 합동 표결한다. 합동 표결에서도 부결되는 경우 최종적으로 하원에서 표결해(종국 표결) 법을 통과시킨다. 생명윤리법 개정안은 양원합동위원회에서도 부결돼 결국 2021년 6월29일 하원의 종국 표결을 통해 법이 통과되었다. 우여곡절 끝에 생명윤리법이 개정되면서, 2021년 9월29일부터 미혼·비혼 여성과 여성 커플에게 출산의 길이 열렸다. 개정된 법이 시행된 직후부터 2022년 상반기까지 약 8개월 동안 총 5126명이 체외수정을 통해 아이를 낳겠다고 신청했다. 이 중 53%는 미혼·비혼 여성, 47%는 여성 커플이었다.

법 개정은 2021년에야 이뤄졌지만, 사회 인식 변화에 따른 체외수정 허용 확대는 예견된 것이었다. 2018년 6월28일 퀴어 퍼레이드의 날을 맞아 국회는 최초로 무지개 깃발을 게양했다. 프랑수아 드뤼지 당시 국회의장은 기자회견에서 “무지개 깃발 게양은 차별 반대 운동에 대한 국가적 지지와 참여를 상징한다”라고 말했다. 2018년 10월22일 중도 우파 성향 정당인 공화당 의원들이 일간지 〈르몽드〉에 체외수정 허용 확대에 동의한다는 공식 성명을 내기도 했다.

생명윤리법 개정안이 통과되기 전 프랑스 법은 이성 커플에게만 체외수정을 허용해왔다. 따라서 아이를 갖고 싶은 미혼 여성이나 여성 커플은, 모든 여성에게 체외수정을 허용하는 스페인·영국·벨기에·네덜란드·덴마크·스웨덴·핀란드 등에 가서 임신을 시도해야 했다. 아이를 가지려고 다른 나라를 방문해야 하는 여성 부부의 사연이 종종 보도되었다.

2017년 6월27일 라디오 프랑스앵포가 보도한 쥘리와 알반 씨 부부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쥘리·알반 부부는 벨기에에서 체외수정 시술을 받았는데, 세 차례 체외수정을 할 때마다 벨기에로 가야 했기에 며칠 동안 직장에 휴가를 냈다. 당시 인터뷰에서 그들은 “12개월에서 18개월 정도 기다린 끝에 벨기에 브뤼셀의 한 병원에서 체외수정을 받을 수 있었다. 산부인과, 정신과 의사와 네 번 면담을 거쳤다. 이 모든 과정은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게 했다. 응원받는 느낌을 받았다”라고 말했다.

반면 정기검사를 위해 방문한 프랑스 병원에서는 정반대 경험을 해야 했다. 쥘리·알반 부부는 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동성 커플이 아이를 갖는 것에 반대한다”라는 말을 들었다. 쥘리는 “무법자나 범죄자가 된 것처럼 느껴졌다”라고 회상했다. 결국 그 의사는 다른 전문의를 소개해주었다. 그런데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가 어려웠다. 2013년 프랑스 보건복지부가 동성 부부의 체외수정을 도우면 벌금이나 징역형을 받을 수 있다는 공문을 돌렸기 때문이다.

프랑스 정부는 2013년 동성결혼법에서 동성 부부의 입양을 공식으로 허가했다. 2018년 프랑스 통계청은 프랑스 내 동성 부부가 약 13만3000명이고, 그중 14%에 해당하는 부부는 약 3만1000명에 이르는 아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으며, 이 중 2만6000명이 미성년자라고 밝혔다. 어렵게 얻은 아이들과 동성 부모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동성 부모 가족에 대한 연구는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꾸준히 이어졌다. 영국 출신 심리학자 수전 골롬복은 2017년 스위스 심리학 학회에서 “우리가 진행한 연구에 따르면 90% 이상의 아이가 성장했을 때 이성애자가 되었으며, 아이들이 자란 환경이 특별히 여자아이에게 남성성을, 남자아이에게 여성성을 강화하진 않았다”라고 발표했다.

동성 부모 사이에서 자란 아이들

프랑스 학계에서 처음으로 동성 부모 친권에 대해 다룬 논문은 2002년 아동심리학자인 스테판 나도가 쓴 ‘동성 부모 친권, 가족의 새로운 기회’다. 4~16세 아동 58명을 연구한 이 논문에서 스테판 나도는 두 가지 결론을 내렸다. 첫째, 아이들의 행동이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었고, 둘째, 부모의 동성애가 그 자체로 아이에게 위험 요소가 되지 않았다.

성장 배경에 따라 아이들의 삶이 어떤 영향을 받는지 밝히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친 추적 연구가 필요하다. 2019년 9월21일 일간지 〈르몽드〉는 미국 ‘국립 레즈비언 가족 연구’의 수석 연구원이자 정신과 의사인 나넷 가트렐을 인터뷰하며 그의 장기 추적 연구를 소개했다. 가트렐은 1986년부터 77명의 여성 부부 아이들이 25세 될 때까지 추적 연구했는데, 그 결과 “이 청년들은 정신건강 측면에서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라고 말했다.

동성 부모 가정이 늘어나면서 프랑스 사회의 인식도 점차 변하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동성 부모의 일상을 담은 세브린 탈레(Sevrine Tales)의 만화 작품이 출간되고 9월에는 프랑스 아이들이 즐겨 보는 영국 만화 〈페파 피그(Peppa Pig)〉에 동성 부모가 등장하기도 했다.

지난 1월25일, 프랑스 정부는 ‘LGBT+(레즈비언·게이·바이·트랜스 및 성소수자) 미래 가족과 현 가족들의 권리 존중 지침’을 내놓았다. 48쪽에 달하는 이 지침서는 새로 적용된 법에 따른 체외수정 진행 방법, 친자관계 인증 과정, 보험 환급, 입양 과정 등을 담았다. 가장 마지막 장에는 육아휴직 차별이나 동성애 차별 발언 등 동성애 차별에 관한 대응법을 덧붙였다. 이 지침서에서 ‘인종차별·반유대주의·동성애 혐오 반대 정부 부처’ 대표인 소피 엘리제옹은 이렇게 말한다. “친애하는 부모님들, 친애하는 미래의 부모님들. 여러분은 한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탄생시키고, 사랑하며, 어른이 될 때까지 함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저는 이를 축하하며 여러분을 지지하고 때로는 어려운 이 길 위에서 행복을 찾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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