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9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가브리엘 아탈(34)을 신임 총리로 임명했다. 프랑스 공화국 역사상 최연소 총리이자 최초의 동성애자 총리다. 이번 총리 선정은 마크롱 대통령이 대국민 신년사에서 약속한 ‘시민적 재무장 및 정부 쇄신’을 이루기 위한 파격적 행보였다. 아탈 총리는 임무가 막중하다. 야당 의원들을 설득해 국정 전반 정책에 대한 과반수 의회 표결을 추진하고, 6월9일 극우 정당 국민연합(RN) 대표 조르당 바르델라(28)에 맞서 유럽의회 선거를 치러야 한다. 또한 오는 7월에 열리는 파리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한다.
가브리엘 아탈 총리는 파리 정치대학(시앙스포)을 졸업하고 2006년 중도좌파인 사회당(PS)에 입당했다. 이후 그는 2016년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한 중도우파 정당 전진하는공화국(LREM·현 르네상스)에 합류했다. 2018년 당 대변인을 시작으로 2020년에는 정부 대변인, 2022년에는 재정장관, 지난해부터는 교육장관을 맡아왔다. 임명 직후 프랑스여론연구소(Ifop)가 실시한 여론조사(성인 1016명 대상)에 따르면, 응답자의 53%가 이번 아탈 총리 임명에 만족한다고 답변했다. 현 여당인 르네상스 지지층뿐만 아니라 공화당(LR)을 지지하는 이들도 아탈 총리 임명에 높은 만족도(75%)를 보였다.
프랑스 여당은 과반 의석(289석)에 40석이 모자라 국정 운영에 어려움을 겪어왔다. 전 총리 엘리자베트 보른이 ‘단독입법권’을 시행한 횟수만 23회에 달한다. 단독입법권이란 20개월간 의회 표결을 생략할 수 있는 프랑스 특유의 정부 단독 입법 시스템이다. 논쟁이 심했던 연금 개혁안, 이민법 개정안도 단독입법권이 발동된 법안이다. 의회에서 정부의 단독입법권을 저지하려면 내각 불신임을 통과시켜야 한다. 야당은 여러 차례 총리 사퇴를 요구하며 불신임안을 제출해왔고 정부 지지율도 하락세를 이어왔다.
가브리엘 아탈 총리는 지지율 위기를 겪는 프랑스 정부와 여당에 한줄기 빛과 같다. 지난해 12월7일 여론조사기관 엘라브(Elabe)의 여론조사 발표에 따르면, 마크롱 대통령은 28%, 보른 전 총리는 26%의 지지율에 그쳤다. 그러나 같은 조사에서 가브리엘 아탈의 지지율은 38%를 기록했다. 마크롱 정부 전 총리이자 현 중도우파 정당인 ‘오리종(Horizons)’의 대표 에두아르 필리프(44%)에 이어 두 번째로 인기 있는 정치인으로 꼽힌 것이다.
여론조사업체 입소스(Ipsos)의 마티외 갈라르 대표는 1월11일 라디오 프랑스앵포와 한 인터뷰에서 “(아탈 총리가) 여론을 주도하는 정부 인물이 됐다”라고 평가했다. 교육장관 재직 당시 사안을 분석·전달하는 능력, 구체적인 정책 적용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고 이것이 인기 요인이 되었다는 설명이다. 아탈은 학교 폭력 근절 캠페인, 교사 권위 회복과 학력 증진을 위해 유급 결정 권한을 교사에게 돌려주는 방안, 세속주의 존중을 이유로 이슬람권 여성 전통의상 ‘아바야’를 공교육기관 내에서 착용 금지하는 등의 정책을 펼쳐왔다. 일간지 〈르피가로〉와 여론조사기관 오독사(Odoxa)가 지난해 9월7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논란이 있었던 공교육 내 이슬람권 의상 착용 금지 정책을 응답자의 74%가 지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아탈 총리의 또 다른 강점은 정계의 반응에서도 드러났다. 여당인 르네상스의 마티외 르페브르 의원은 1월9일 신임 총리 임명 당일 국회 인터뷰에서 “여당 의원 중에서 아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못 봤다. 그가 재정부에 속해 있을 때 협상을 잘했기에 (과반수 국정 운영의)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마크롱 정부가 의회에서 과반 의석을 얻기 위해 줄곧 설득해온 공화당(LR) 의원들과의 친분도 깊다. 공화당 에리크 시오티 대표는 자신의 X(옛 트위터) 계정에 “새 총리의 성공을 진심으로 기원한다”라는 반응을 남겼고, 공화당 전 대표 로랑 보키에와는 지난 9월 리옹에서 만나기도 했으며, 공화당 서열 3위 의원이자 교육 전문가인 아니 주느바르 의원과도 오찬을 함께했다. 주느바르는 아탈 총리를 ‘젊은 고참’이라 칭하면서 “마티뇽(프랑스 총리 관저)으로 떠나지 말라”는 농담을 남기기도 했다.
한편 좌파 정당인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 에리크 코크렐 의원은 국회 인터뷰에서 재정장관 당시 아탈 총리와의 교류를 회고하며 “그를 꽤 인상 깊게 생각한다. 그는 아주 빨리 배우는 사람이다”라고 칭찬했다. 극우 정당 국민연합의 한 의원은 같은 날 “(아탈과 국회에서) 논쟁하는 것이 즐겁기까지 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탈 총리 앞에 놓인 길이 순탄하지만은 않다. 1월11일 아탈 총리는 새 정부 구성원을 발표하며 정부의 “행동과 결과”를 약속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첫 일성인 개각 과정에서 공화당 인사들을 중용해 우경화됐다는 비판에 맞닥뜨리고 있다. 니콜라 사르코지 전 대통령의 대변인이었던 전 공화당 의원 카트린 보트랭이 보건장관으로 임명됐으며, 사르코지 정부 당시 법무장관을 지낸 공화당 의원 라시다 다티가 문화장관으로 임명됐다. 이를 두고 국민연합 세바스티앙 셰누 의원은 1월12일 언론 인터뷰에서 “아탈 총리가 마크롱 대통령과 사르코지의 공동 감독하에 있다. 사르코지파(Sarkozyste) 장관들을 임명한다고 해서 공화당 의원들을 설득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라고 평했다.
최연소 대통령이 임명한 최연소 총리
공화당 의원으로서 줄곧 마크롱 정부를 비판해온 라시다 다티를 문화장관에 임명한 것도 파장을 일으켰다. 당장 공화당 내부에서 반발이 일었다. AFP 통신은 1월11일 에리크 시오티 공화당 대표가 그를 당에서 제명하는 결정을 내렸다고 보도했다. 신임 내각에 대한 좌파 정당의 반응도 싸늘하다. 굴복하지않는프랑스 소속 에리크 코크렐 의원은 1월12일 “마크롱2 정부이거나 사르코지 복귀 정부에 불과하다”라며 이번 개각을 비판했다.
프랑스 언론 역시 새 내각의 우경화를 우려했다. 일간지 〈레제코〉는 “마크로니즘(마크롱 정부의 통치 방식을 일컫는 표현)이 우측으로 선회했다”라고 보도했고, 일간지 〈리베라시옹〉은 ‘사르코 커넥션(Sarko connection)’이라는 기사를 게재하며 사르코지 정부 인사들의 커넥션이 새 내각에서 작동한다고 보도했다.
반면 아탈 총리는 자신이 우경화됐다는 비판에 반박하고 나섰다. 내각 발표 당시 TF1 TV와의 인터뷰에서 “우파 성향을 지닌 인물도 있지만 법무장관, 고등교육장관처럼 좌파 성향을 지닌 인물도 있다”라며 이번 정부 구성이 좌우파를 벗어나 정책을 운용하는 ‘2017년 마크로니즘’에 기초한다고 밝혔다. 총리 임명을 앞두고 아탈은 “프랑스 역사상 최연소 대통령이 최연소 총리를 임명했다. 저는 이를 대담함과 변화의 상징으로 보고 싶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특유의 정책 집행 능력으로 프랑스 유권자와 정계 인사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최연소 총리에게 임기가 3년 남은 마크롱 정부의 운명이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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