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 프랑스 2024’ 대회에서 우승한 에브 질. 참가자 중 헤어스타일이 유일하게 숏컷이었다. ⓒAFP PHOTO
‘미스 프랑스 2024’ 대회에서 우승한 에브 질. 참가자 중 헤어스타일이 유일하게 숏컷이었다. ⓒAFP PHOTO

2023년 12월16일, 제94회 미스 프랑스 대회에서 북부 노르파드칼레 지역 대표인 에브 질이 '우승'했다. 2003년생인 그는 프랑스 북부 릴 대학에서 수학 및 정보과학을 전공하는 학생이다. 에브 질의 우승은 프랑스 사회에서 여러모로 화제였다. 그의 어머니는 인도양 남쪽 마다가스카르 인근에 있는 프랑스령 레위니옹섬 출신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프랑스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곳이다. 본선 대회 직전 레위니옹 지역 라디오 '앙텐 레위니옹(Antenne Réunion)'과의 인터뷰에서 에브 질은 “제가 우승한다면 레위니옹의 일부도 우승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라고 답했다. 본선에서도 레위니옹 지역을 언급하기도 했다. 2023년 12월19일 프랑스 북부 지역 일간지 〈라부아뒤노르(La Voix du Nord)〉와 인터뷰한 아버지 브루노 질은 “딸이 스스로 선택한 모험에서 꿈을 이뤘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착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끌려다니는 아이는 아니었다. 친구들을 보호하기 위해 선생님들께 맞설 줄도 아는 아이였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슈가 된 것은 그의 헤어스타일이었다. 이번 미스 프랑스는 1920년 개최 이래 최초로 짧은 머리를 한 참가자가 우승했다. 대회 후 공식 기자회견에서 에브 질은 “여성의 아름다움은 머리카락이나 체형으로 집약될 수 없다. 대담하고 영감을 주며 관습을 깨는 여성이 되고 싶다”라며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긴 머리카락과 풍만한 신체 곡선, 큰 키’라는 기존 틀을 깬 우승자를 두고 온라인에서 논란이 일었다. 특히 엑스(X·옛 트위터)에서는 실시간으로 미스 프랑스에 대한 설전이 오갔다. 한 이용자는 “(에브 질은) 미스 프랑스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의 헤어스타일에는 관심 없으나 중성적인 몸은 확실히 ‘워크(Woke)’로 작용한다”라고 썼다. 2013년 이후 두 번째로 100% 여성 심사위원단으로 구성된 이번 대회에서 대중 투표 3위였던 에브 질을 심사위원이 다양성이라는 ‘워크’의 의미를 강조하고자 뽑았다는 것이다. ‘워크’는 ‘깨어 있음’ ‘각성’을 의미하는 신조어로 보수 진영에서는 정치적 올바름(PC)을 추구하는 사람들을 비꼬는 의미로도 쓰인다.

2023년 12월18일 일간지 〈라부아뒤노르〉와 한 인터뷰에서 그는 “보디 셰이밍(Body Shaming, 외모·신체 등에 대해 공개적으로 지적하는 것)에 상처받은 것은 사실이다. 선택할 수 없는 신체에 대한 비난까지 겪어야 할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 또 일간지 〈르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는 “사람들이 머리카락에 대해 비판하는 것에 대해선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선택했고 바꿀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체와 체형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심사위원단이 의식적으로 그를 선택했다는 비판에도 당당하게 반박했다. 2023년 12월19일 방송 매체 C8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한 에브 질은 “다양한 직종에서 일하는 여성 심사위원단의 선택을 받았다는 점이 자랑스럽다”라면서도 “대중 투표에서 3위를 했다는 사실도 간과할 만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전날 같은 방송에 패널로 참여한 대중 투표 1위 후보이자 프랑스령 기아나 대표 오드레 오엔차이는 “사람들에게 (에브를 향한) 비난을 멈춰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방송에 출연했다. 누구라도 비난받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노동법원에 고발당한 미스 프랑스 협회

미스 프랑스를 향한 비난에 정치권도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유럽녹색당(EELV) 의원 산드린 루소는 자신의 엑스 계정에 “(머리카락에 대한) 비난에 섬뜩해졌다. 여성이 여성의 머리카락으로 무엇을 하든 간에 남성과는 상관이 없다”라고 썼다. 프랑스 공산당의 파비앙 루셀은 “여성들이 자신의 다양성으로 스스로를 정의 내리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회의 폭력성을 규탄한다”라고 말했다. 2023년 12월20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짧은 머리카락을 지녔다는 이유로 혐오 발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말도 안 되며, 학교에서든 온라인에서든 어떤 형태의 괴롭힘(harcèlement)이든 끔찍한 일이다”라고 말했다. 올해 학교 내 괴롭힘으로 피해자 세 명이 사망한 이후 프랑스 정부는 괴롭힘 근절 정책에 나서고 있다.

미인대회 참가자의 신체에 대한 비난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 당선된 미스 타히티 베말라마 샤브는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기도 했다. 2023년 12월18일 BFM TV에 출연한 인류학자 페데리카 타마로치는 “한 여성의 외형을 논하고 가치 절하한다는 것 자체가 성차별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미디어 분석가 비르지니 스피에 역시 AFP 통신과 인터뷰하면서 “미스 프랑스는 예능 프로그램으로 항상 성공을 거둬왔다. 그러나 그 성공 중 일부는 '헤이트 워칭(Hate-watching·비판하기 위한 시청)'에 기대고 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미스 프랑스 대회 개최 자체에 대한 비판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2020년 프랑스 양성평등고등위원회가 제출한 성차별 현황 보고서에는 미스 프랑스 대회가 ‘여성을 오브제로 일반화하는, 시대에 뒤떨어진 특성을 지니고 있다’는 비판이 담겼다. 2023년 12월19일 방송평론가 마티외 들로르모는 엑스에 “여성들은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고 있으면서 매년 여성들이 심사위원단 앞을 행진하는 품위 낮은 방송은 받아들이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프랑스 여성 유튜버 ‘EnjoyPhoenix’는 자신의 틱톡에서 “(매년) 국영방송을 통해 여성들을 비교하는 대회를 여는 것에 화가 난다. 한 해 내내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라, 우리는 우리 자체로 아름답다'고 하면서,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을 비교해서 뽑는다”라고 말했다.

2021년 10월19일 여성단체 ‘여성주의를 단행하라(Osez le féminisme)’는 공영방송 TF1과 미스 프랑스 협회를 노동법원(Conseil de Prud’hommes)에 고발하기도 했다. 이 단체는 미스 프랑스가 당선 뒤 1년 계약직 형태로 고용되는 점을 들어 ‘18~24세 여성, 싱글, 미혼, 무자녀, 키 170㎝ 이상, 타투 및 피어싱 금지’ 등의 규칙을 고용조건에 적용하는 것이 차별적이라고 비판했다. 2022년 12월15일 미스 프랑스 협회의 새 대표를 맡은 알렉시아 라로슈주베르는 지역 일간지 〈우에스트-프랑스(Ouest-France)〉와의 인터뷰에서 나이, 타투, 혼인 여부나 자녀 유무와 상관없이 18세 이상 여성, 그리고 시민권에 ‘여성’으로 기재된 트랜스젠더까지 미스 프랑스에 참여할 수 있게 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이에 따라 2023년 1월6일 프랑스 노동법원은 미스 프랑스 내 고용 형태가 존재한다는 점만을 인정하고 나머지 사안은 기각했다.

프랑스 전역에서 약 710만명이 시청한 올해 미스 프랑스 대회에는 다양한 여성들이 참여했다. 코트다쥐르 지역 대표 카를라 브시르는 '너무 크고 말랐다는 이유로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해 학교폭력 피해자들을 위한 지지를 얻고 싶다'고 했다. 프랑슈콩테 지역 대표 소니아 쿠탕은 어깨에 타투를 한 경찰 출신 여성이었다. 2023년 12월24일 RTL 라디오에 출연한 에브 질은 “제가 프랑스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성은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을 끄는 어떤 작은 매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미스 프랑스가 미인 대회이지만 시청률이 가장 높은 때가 연설 부분이었다. 사람들이 진심으로 (미스 프랑스 참가자들을) 알아보고 싶어 했던 순간이라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파리∙이유경 통신원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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