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진하는 연금 개혁을 두고 프랑스 사회 내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재임에 성공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새 총리 엘리자베트 보른을 앞세워 대통령 선거 공약이던 연금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지난 1월10일 열린 공식 회견에서 보른 총리가 발표한 연금 개혁안 상세 내용에 대해 반발이 크게 일었다. 해당 안의 골자는 연금 수령을 시작하는 나이(정년)를 62세에서 64세로 늦추고, 연금 납입 기간도 단계적으로 총 43년까지 늘리는 것이다. 이 밖에 15~19세부터 수습 기간을 포함해 일해온 ‘장기 경력 노동자’들의 정년도 지금보다 2년 미뤄 60~62세로 했다.
‘장기 경력’ 제도는 2003년부터 적용되었다. 일찍 일을 시작한 사람들이 더 빨리 퇴직할 수 있게 한 제도인데, 대체로 ‘베이비붐 세대(1945~1949년 출생)’와 관련이 있다. 이 세대는 14~16세 나이에 일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았다. ‘수습생’ 형태로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제빵업 같은 경우는 지금도 15세부터 현장에서 일을 배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렇게 일찍 일을 시작한 사람이 현재 연금 수령 국민의 5분의 1에 해당한다.
국영철도청, 전기·가스업, 은행업 등을 특별연금 적용 대상에서 제외해 일반연금으로 전환하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보른 총리는 개혁안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 발표가 연금 개혁의 종지부는 아니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개혁안은 1월23일 국무회의, 1월30일 상임위원회를 거쳐 현재 프랑스 하원 의회에서 논의 중이다. 프랑스 정부는 이 연금 개혁안을 올해 여름부터 적용하려 한다.
곧바로 대규모 반대 시위가 뒤따랐다. 지난 1월19일 열린 1차 연금 개혁 반대 시위에는 약 112만명(내무부 추산)이 참여했다. 상임위원회에서 개혁안을 논의한 1월30일에는 프랑스 전역 약 300곳에서 시민 127만2000여 명이 참여해 2차 시위를 벌였다. 이날 시위의 여파로 학교, 대중교통, 공항 등 공공시설 운영이 중단되었다. 2차 시위 직전 프랑스 TV 채널 프랑스2에 출연한 로랑 베르제 민주프랑스노동연맹(CFDT) 위원장은 “총리가 1월19일에 있었던 큰 결집(1차 시위)을 묵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만약 정부가 (시위대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3차 시위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시위는 좌파 성향 정당 연합인 ‘뉘프(NUPES)’와 노동조합 ‘노동총동맹(CGT)’이 주도하고 있다. 특히 이들은 정년을 64세로 연장하는 안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시위 규모가 점차 커지고 있지만, 2월1일 프랑스2에 출연한 올리비에 뒤솝트 노동장관은 “2027년이 되면 연금 적자가 120억 유로(약 16조4000억원)에 달할 것이기 때문에 (정년 상향 조정은) 협상할 수 없다”라며 강경한 태도를 보인다. 2월7일 열린 3차 시위에는 75만여 명이 참여했고, 2월11일 4차 시위에는 96만여 명이 운집했다. 노조는 3월7일과 8일에도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시위에 참여한 이들은 이번 연금 개혁 정책이 부적절하며 불공정하다고 주장한다. 프랑스 국민건강보험에 따르면 2021년 일반연금 적용 대상자들의 은퇴 연령은 평균 62.9세로 개개인의 연금 납입 기간에 따라 연금을 수령하기 시작하는 연령이 달라진다. 프랑스 정부의 구상이 현실화할 경우, 상황에 따라 64세보다 더 오래 일해야 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정년을 64세로 늘리는 정부안은 개개인의 상황을 고려하지 않은 채 단순히 노동 기간을 늘리겠다는 정책이 된다.
또한 2014년 이전에 수습 기간을 거친 ‘장기 경력 노동자’들은 수습 기간이 노동 기간으로 인정되지 않아 해당 기간만큼 수당(연금 납입액)을 더 채워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1월30일 일간지 〈르파리지앵〉과 인터뷰한 48세 크리스토프 씨는 15세부터 수습생으로 일을 시작했지만 2014년 이전에 수습 기간을 거친 탓에 노동 기간을 1년 더 채워야 한다며 정부의 연금 개혁안에 대해 “잘못된 정책이며 불공정하다”라고 말했다.
여론도 호의적이지 않다. 프랑스 여론조사기관 ‘입소스 소프라 스테리아’가 2월1~2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4%가 정부의 연금 개혁안에 반대했다. 개별 개혁 사안들 중 정년 상향 조정안을 반대하는 비율이 64%로 가장 높고, 연금 납입 기간을 43년으로 연장하는 안에도 57%가 반대 의견을 표했다.
2월1일 라디오 채널 ‘프랑스앵테르’에 출연한 필리프 마르티네스 노동총동맹(CGT) 위원장은 “연금제도를 개선하려면 사람들을, 특히 업무 강도가 높은 사람들을 더 일하게 만드는 방향이 아니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1월17일 뉘프의 연금 개혁 반대 포럼에 참석한 프랑수아 뤼팽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LFI)’ 의원도 “사람들은 ‘로봇과 정보산업이 발달한 지 40년이 지났으니 고강도 업무를 하는 노동자 비율이 많이 낮아졌겠지’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정작 이들의 비율은 늘었다”라고 연설했다.
실제로 2017년 12월, 프랑스 노동부 산하 조사연구통계지원국(Dares)에 따르면, 3가지 조건(신체적 제약, 피로한 근무 주기, 유해한 노동환경)에 해당하는 고강도 업무 노동자의 비율은 1984년 12%에서 2016년 34%로 늘었다. 프랑스 정부는 이번 발표에서 위험이 따르는 직업에 종사할 경우 교육 기간 제공, 업무시간 단축, 2년 조기퇴직을 가능하게 하는 ‘C2P 제도’의 적용 범위를 늘리겠다고 했지만, 정년 연장 정책으로 인해 이들 고강도 업무 노동자들은 2년 더 근무해야 은퇴할 수 있게 되었다.
공화당의 협조가 관건
정치권에서 법안을 통과시키는 것도 녹록지 않다. 지난 2월6일에 열린 프랑스 하원 본회의에는 법안 통과를 늦추기 위해 2만 개가 넘는 수정안이 제출되기도 했다. ‘굴복하지 않는 프랑스’가 가장 많은 1만3000여 법안(수정안)을 냈고, 유럽녹색당(EELV), 사회당(PS), 공산당(PCF), 공화당(LR)에 이어 극우 성향인 국민연합(RN)도 수정안을 제출했다. 이들 수정안은 대부분 정년 상향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이에 대해 여당인 르네상스 대표 오로르 베르제는 “의회에서 개정안을 전부 검토하는 데만 4개월이나 필요할 것이다. 야당 의원들은 이 사실을 알았을 터이고, 제대로 심의하기란 불가능하다”라고 말했다.
프랑스 정부는 법안을 통과시키기 위해 중도 우파 성향 야당인 공화당의 협조를 구하고 있다. 프랑스 하원은 총 577석이다. 이 가운데 여당(3개 정당 연합) 의석은 250석에 불과해 법안을 단독 처리하기가 어렵다. 과거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 시절, 정년을 60세에서 62세로 연장한 바 있는 공화당(61석)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2월1일 보른 총리는 에리크 시오티 공화당 의원, 올리비에 마를레 공화당 대표를 만나 공화당이 요구하는 개정안에 관해 논의했다.
공화당은 프랑스 정부의 개혁안 가운데 15~19세부터 일을 시작한 장기 경력 노동자들의 정년을 60~62세로 미루는 안을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60~62세에 은퇴하게 되면 노동 기간이 44년에 달하기 때문에 일반연금 적용자들(43년)에 비해 1년 더 일해야 해서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프랑스 정부와 공화당의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보른 총리는 2월5일 〈일요신문(JDD)〉을 통해 20~21세에 일을 시작한 국민이 63세에 퇴직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유화책을 내놓았다. 그러나 마를레 공화당 대표는 같은 날 일간지 〈르피가로〉와 한 인터뷰에서 “(정부의 입장 변화가) 좋은 방향인 것은 인정하지만 아직 16세나 17세에 일을 시작한 노동자들에 대한 문제가 남아 있다”라며 입장 차가 여전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2월14일 보른 총리는 “21세 미만부터 일을 시작한 경우에는 무조건 납입 기간 43년을 채우면 은퇴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추가 대책을 발표했다. 정부 예산안과 정책안 통과, 법 개정 등 연금 개혁을 둘러싼 정부와 여러 정당·노조의 줄다리기가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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