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이명익

‘저복지’ 국가에서 가난한 사람들의 삶은 힘겹습니다. 국가가 국민의 삶을 충분히 보호해주지 못하기 때문이죠. 2018년 OECD의 사회지출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공공사회복지지출은 GDP 대비 10.8%로 비교 대상인 OECD 36개 국가 중 35위입니다. 우리나라보다 공공사회복지지출이 낮은 나라는 멕시코가 유일하죠.

한국은 ‘저부담’ 국가입니다. 세금과 사회보장 기여금(공적연금, 사회보험 납부액)의 규모가 GDP 대비 얼마나 되는지 보여주는 지표인 ‘국민부담률’ 또한 2018년 26.7%로 OECD 평균(34.0%)보다 매우 낮습니다. 그동안 개선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림 1〉에서 녹색 선은 우리나라의 1991년 이후 발자취입니다. ‘극저복지-극저부담’ 국가에서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하겠습니다.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서 사회복지지출을 하면 소득불평등이 개선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정책은 불평등 개선 효과도 별로 없습니다. 지니계수가 소득불평등의 정도를 측정하는 지수이므로, ‘세전·세후 지니계수 개선율’을 살펴보면 세제와 복지를 통한 불평등 개선 효과를 알 수 있습니다. 한국의 세전·세후 지니계수 개선율은 2017년 기준 12.6%로 OECD 국가 중 뒤에서 다섯 번째입니다. 평균(32.9%)의 절반에도 못 미치죠. 복지지출도 크지 않지만, 소득세제도 문제입니다. 우리나라의 소득세는 비교적 누진적인 세율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소득공제와 세액공제 및 감면이 역진적이라(고소득층에 혜택이 집중) 실제 소득재분배 효과가 제한적입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기초생활보장제도

기초생활보장제도는 기초연금·공적연금 등과 더불어 공공사회복지 제도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이죠. 복잡한 계산을 통해 생계급여·의료급여·주거급여·교육급여 등을 제공합니다. 〈그림 2〉가 한 가족의 소득수준에 따른 혜택을 보여줍니다. 우리나라의 모든 가정을 한 줄로 세웠을 때 딱 중간에 위치한 가정의 소득을 중위소득이라 합니다. 중위소득의 30% 미만이면 4가지 급여를 모두 받고, 중위소득의 43~50%에 위치하면 교육급여만 받게 되는 구조입니다.

그런데 다양한 문제점이 존재합니다. 가장 큰 허점은 복지 수급의 ‘선별 조건’에서 나옵니다. 어떤 조건을 만족시켜야만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것인데, 때로는 이 조건이 족쇄로 작용합니다. 예를 들면 ‘부양의무자 조건’입니다. 연락이 끊긴 자녀의 수입 때문에 생계 수단이 막막한 부모가 의료급여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됩니다. 재산 기준도 그렇습니다. 서울 창신동에서 숨진 지 한 달이 지나 발견된 80대 노모와 50대 아들은 90년 전 지어진 쓰러져가는 집을 소유했기 때문에 생계급여에서 계속 탈락하고 말았습니다. 병원 이용 때문에 혹시라도 200만원짜리 자동차를 사면 수급자가 되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또 65세 미만이면 아무리 아파도 반드시 일을 하거나 혹은 노동능력이 없음을 증명해야만 생계급여 수급 대상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일을 할 유인이 별로 없습니다. 일을 했다가 자칫하면 오히려 손해가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동을 하면 번 돈 대부분이 생계급여에서 깎여 나갑니다. 충분히 돈을 벌지 않는 한 괜히 일을 했다간 교통비 등의 지출로 오히려 손해가 납니다. 임시직으로 일했다가 해고되면 한동안 생계급여만 못 받게 됩니다. 기초생활보장에서 주는 급여만으로는 삶이 너무 빡빡하지만, 그렇다고 일을 하기도 쉽지 않은 구조입니다.

마지막으로,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개인이 필요한 서류를 모두 준비해서 공공기관에 제출해야 하는 국민의 시간 비용, 또 이를 관리하고 확인하는 공무원의 비용이 상당합니다. 이와 더불어 가난함을 증명하는 과정이 주는 괴로움도 헤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위는 우리나라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모든 선진국의 복지제도에서 똑같이 나타나죠. 2016년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허점투성이 복지제도에 대한 고발을 담고 있습니다. 영국에서 부인과 사별하고 혼자 살아가는 30년 경력의 목수 다니엘 블레이크가 어느 날 심장병 악화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수당을 청구했으나, 그의 건강 상태가 충분히 나쁘지 않아 지급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반려됩니다. 그나마 실업수당을 받지만,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등을 사용해서 구직활동을 하라는 정부의 지침에 비협조적이라는 이유로 이마저도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아무런 정부의 보호를 받지 못한 채 죽어갑니다.

영화의 다른 주인공은 아이 둘을 키우는 미혼모 케이티입니다. 그녀는 구직활동을 조건으로 정부보조금을 받고 있었는데, 구직센터 상담 시간에 단 몇 분 늦었다는 이유로 복지 제재 대상이 되었습니다. 보조금을 받지 못하게 되자 결국 성매매에 내몰립니다. 복지 혜택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무언가를 (불필요하게) 입증해야 하고, 그렇게 인간으로서 자존감이 허물어져가는 모습을 영화는 사실적으로 잘 그렸습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의 한 장면. 영국 복지제도의 허점을 다뤘다.

이렇게 기존 소득보장제도가 문제가 많기 때문에 대안적인 소득분배제도에 대한 논의가 생겨났습니다. 가장 먼저 등장한 대안은 저명한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제시한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입니다. 대부분의 복지정책을 단일화해서 일정 소득 이하에서는 일정 비율로 보조금, 그러니까 음의 세금을 지급하자는 게 골자입니다.

최근 서울시에서 시범사업을 실시하고 있는 ‘안심소득’도 (약간 변경된) 음의 소득세입니다. 서울시의 안은 생계·주거·교육 급여를 없애고(의료급여, 국민연금, 실업급여 등은 그대로 놓아둡니다), 그 대신 서울시가 정한 기준 소득(중위소득의 85%)과 실제 소득 간 차이의 50%를 지급해주는 정책입니다. (소득 이외의) 안심소득의 유일한 기준은 재산이 3억2600만원을 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림 3〉에서 X축은 서울에 거주하는 3인 가구 기준의 시장 소득, 그러니까 어떠한 소득보장제도의 개입도 받지 않는 가계의 세후 근로소득을 뜻합니다. Y축은 여러 종류의 소득보장제도의 적용을 받고 난 후의 가처분소득을 나타냅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는 붉은색으로 표시되어 있습니다. 예컨대 2021년 기준 우리나라 3인 가구의 중위소득은 약 400만원입니다. 중위소득의 30%인 월 120만원 미만 소득이 있는 경우에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를 통한 소득 보전을 해줍니다.  

안심소득을 적용해보면 어떻게 될까요? 초록색 선이 그 결과입니다. 저소득층의 현금성 복지가 크게 늘어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중위소득의 85%면 340만원입니다. 실제 소득이 140만원이면 이전에는 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의 적용을 받지 못했습니다. 안심소득하에서는 이 둘 차이의 50%인 월 100만원을 지급받습니다. 물론 소득이 중위소득의 85%인 340만원이 넘는다면 지원을 받을 수 없겠지요. 현행 서울시의 안심소득을 전국 단위로 확장한다면 연간 대략 25조~35조원이 소요됩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주장한 ‘기본소득’은 어떨까요? 기본소득은 모두에게 같은 액수를 지급합니다. (안심소득에 필요한 액수와 비슷한) 30조원을 모든 국민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면 1인당 연간 60만원이 돌아갑니다. 3인 가족이면 연 180만원, 월로 계산하면 15만원입니다. 〈그림 3〉에서 보라색 선으로 표시된 것이 기존 기초생활보장제도와 기본소득이 동시에 적용된 가처분소득입니다.

소득보장과 부의 재분배 좇는 대안들

기본소득은 가난한 사람에게 집중하는 하후상박(下厚上薄)이 아닌, 모두에게 동일한 액수를 나누어주는 방식입니다. 이는 소득재분배 효과가 매우 떨어집니다. 같은 수준의 부의 재분배 효과를 위해서 기본소득은 안심소득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지출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기본소득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누진세를 대폭 강화하는 등의 세제 개선을 동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안심소득 수준의 부의 재분배 효과를 달성할 수 있습니다. 결국 기본소득의 성패는 소득세제를 얼마나 누진적으로 바꿀 수 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과감한 증세가 없다면, 기본소득은 푼돈 수준의 매우 적은 금액을 국민들에게 나누어주는, 부의 재분배 기능도 실제적인 사회보장 기능도 미미한 정책이 될 것입니다.

7월4일 오세훈 서울시장(가운데)과 시민들이 ‘서울 안심소득 시범사업 출범식’에 참석했다. ⓒ연합뉴스

안심소득과 기본소득 모두 공통적인 장점이 있습니다. 기존 기초생활보장제도에 비해, 두 제도 모두 일을 할 유인을 충분히 유지합니다. 일을 한다고 해서 복지 혜택이 일순간에 사라지는 문제를 원천 차단했기 때문이죠. 이 점에서는 둘 다 기존 소득보장제도의 허점을 극복하는 좋은 방안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은 적어도 지원 과정에서 자산·소득 조사가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혹자는 안심소득보다 기본소득이 낫다고 주장합니다. 안심소득은 선별을 해야 하고 기본소득은 선별 과정이 없어서 행정비용 감소에 우위가 있다는 거죠. 하지만 기본소득의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소득세제 개선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합니다. 결국 소득에 의한 선별은 모든 제도에 해당하는 셈이죠.

학자로서 저는 같은 재원으로 불평등 개선 효과(부의 재분배 효과)가 월등한 안심소득을 지지하는 쪽입니다. 기본소득은 강력한 누진세제를 도입하는 국민의 동의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고려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기본소득은 낮은 불평등 개선 효과로 인해 대한민국에서 바로 도입하기는 어렵다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노인빈곤율 1위의 오명을 쓰고 있습니다. 빈곤의 상황이 이만큼 위중하기 때문에 어려운 분들을 우선 집중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안심소득과 기본소득은 모두 실제 현장에서 연구 중입니다. 지난 7월 첫 지급이 시작된 안심소득은 우리나라 최초의 사회 실험입니다. 서울시의 지원 가구 중에 무작위로 1300가구를 뽑아 안심소득을 지원하고, 2600가구는 기존 방식의 사회복지를 받게 됩니다. 향후 5년간 시범사업을 지속하면서 그 효과를 연구할 예정입니다.

3월14일 경기도 의왕시청에서 한 시민이 농민기본소득 지급 상담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경기도에서는 소득 3700만원 미만의 영세 농민 개개인에게 월 5만원의 지역화폐를 지급하는 농민기본소득 시범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2021년에 6개 시군에서 시작되었고, 2022년에는 17개 시군으로 늘어났습니다. 경기도 연천군 청산면에서는 모든 주민에게 월 15만원씩 기본소득을 지급하고 있습니다. 아쉽게도 사회 실험의 형태를 갖추지는 못했지만 유의미한 교훈을 얻을 것입니다.

머지않은 미래에 서울시와 경기도의 연구 결과를 통해 두 제도의 비용 및 효과를 살펴보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대안적 소득보장제도는 삶의 질 향상을 넘어 노동 공급, 자녀 교육, 행복, 공동체 의식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에 대한 최종 판단은 그때 더 분명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우리나라 사회복지 체계의 근본을 뒤흔들 두 제도, 우리 모두 관심 있게 지켜봅시다.

기자명 김현철 (홍콩과학기술대 경제학 및 정책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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