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9일 공적연금강화국민행동 참가 단체가 국회 앞에서 ‘21대 국회에 바라는 연금행동 정책요구안’을 발표했다. ⓒ참여연대 제공

이번 대선에선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논쟁이 거의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각 후보들이 ‘잘못 거론했다간 표만 떨어진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국민연금 개혁은, 새 정부가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국가 의제로 꼽힙니다. 학계와 노동운동, 시민사회 등에서는 이미 연금 ‘소득대체율’과 ‘미래세대 부담’을 중심으로 뜨거운 논쟁이 펼쳐져왔습니다. ‘소득대체율 인상’을 지지해온 주은선 경기대 사회학과 교수가 기고를 요청해서 이번 호에 게재합니다. 〈시사IN〉은 이 기고문에 대한 지지나 반론을 담은 글도 실어 연금개혁이 사회적 논의를 통해 올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편집자 주).

은퇴 후를 상상해보자. 당장 다음 달부터 임금이 들어오지 않으며, 나는 더 이상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은퇴를 한 것이니만큼 실업과는 달리 다시 일자리로 돌아갈 예정은 없다. 생활비는 줄여보지만 내핍에도 한계가 있다. 어떠한가. 막막하지 않은가? 은퇴라는 소득 절벽과 마주한 상황에서, 일하는 시기에 받던 임금의 일정 비율만큼을 은퇴 후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평생 연금으로 받는 것을 사회적으로 약속받는 제도가 국민연금이다. 즉, 소득 절벽을 계단으로 만들어 삶을 영위할 수 있게 하는 사회보장제도가 바로 국민연금이다.

■ 소득대체율이 중요한 이유

일하는 시기에 받던 임금에 대한 연금액의 비율을 연금제도에서는 소득대체율이라 한다. 소득대체율은 국민연금 급여 계산식에 설정되어 있으며, 소득대체율의 높고 낮음은 일하던 시기의 임금에 대비해서 내가 받는 연금액이 얼마만큼의 수준인지를 나타낸다.

국민연금제도의 기본적인 역할이 은퇴 이후 빈곤에 빠지는 것을 예방하는 것이라 할 때, 소득대체율이 지나치게 낮은 연금제도에서는 은퇴 국면에서 노인들이 빈곤해지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즉, 절벽 아래 계단이 지나치게 낮아서 있으나 마나 한 정도라면, 은퇴 후 발을 딛고 서게 만드는 기능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적정한 수준의 소득대체율을 설정하는 것은 국민연금제도가 부여된 역할을 수행하도록 하는 데 핵심이 된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통해 공적 노후소득 보장체계를 강화할 것인가? 아니면 2007년 이후 매년 0.5%포인트씩 떨어지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하를 계속 이어갈 것인가? 즉, 소득대체율로 대표되는 국민연금 보장성을 계속 약화시킬 것인가, 아니면 이를 어느 정도 회복할 것인가? 이것이 2022년 현재 국민연금 개혁에 관한 가장 중요한 논쟁 지점이다. 보험료율 인상 문제는 사실상 이를 위한 수단에 관한 것이다.

국민연금의 보장성 강화를 주장하는 입장에서는 국민연금 급여 수준이 지나치게 낮아 공적연금으로서 제 기능을 하고 있지 못하며, 소득대체율을 계속 낮춰온 결과 향후에도 국민연금의 빈곤 예방 기능이 상당히 제약될 것으로 본다. 따라서 소득대체율을 다시 적정 수준으로 회복해야 하며, 이는 다양한 장기적인 재정 확충 조치와 결합된다면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국민연금 보장성 강화를 반대하는 견해 또한 강력하다. 이는 빠른 고령화 가운데 급여 수준 인상은 재정적 어려움을 야기하며, 특히 미래세대의 부담을 가중시킨다는 판단에 기초한다. 그렇다면 핵심적인 판단 기준은 두 가지다. 국민연금 급여 수준은 도대체 얼마나 낮은지, 급여 수준 인상 시 미래세대가 부담을 감당할 수 있는지가 그것이다.

우선 국민연금 급여 수준은 명백히 낮다. 1988년에 도입된 국민연금은 지금 성숙단계에 진입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연금 급여 수준은 아직 빈곤 예방 기능을 할 정도로 높아지지 못했다. 국민연금 급여액 평균은 2021년 말 기준 약 55만원에 불과하며, 연금 수급자 절반가량의 연금액은 그 이하다. 국제 비교로도 경제적으로 발전된(OECD) 국가 중에서 한국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은 최하위권이다. 38년 동안 일한 평균임금 전일제 노동자를 기준으로 하는 연금 소득대체율을 국제 비교해보면 한국은 31.2%에 불과하여 OECD 평균 42.2%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혹자는 OECD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 계산 방식에 이의를 제기하며 한국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이 기초연금까지 합산하면 낮지 않다고 주장하지만, 기초연금은 수급 여부가 불확실한 연금이어서 이를 소득대체율 계산에 포함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 더욱이 실제로 수급자들이 받고 있는 연금액으로 보는 실질소득대체율은 20%대 초반으로 한층 더 낮다. 이렇게 낮은 연금액은 한국 노인 빈곤율이 다른 나라보다 현격히 높은 이유 중 하나다.

현재 노인 세대의 낮은 국민연금 급여액 문제는 가입 기간이 짧다는 사실과도 깊이 관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일하는 세대는 앞으로 더 나은 국민연금을 받게 될까? 후세대일수록 분명 국민연금 가입 기간은 더 길어진다. 그러나 2007년 이후 매해 계산식의 소득대체율이 0.5%포인트씩 떨어지면서 해당 기여에 의해 계산되는 연금액도 매해 줄어들고 있다. 이는 후세대로 갈수록 가입 기간은 길어져도 받게 되는 국민연금 급여액은 그 증가가 불확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향후 실질소득대체율이 상당 기간 신규 가입자에게 오히려 더 떨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계속 이어지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삭감을 어느 수준에서 되돌리지 않는다면 국민연금에 더 오래 가입한 후세대의 연금액이 오히려 낮아지는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국민연금제도가 성숙기에 이르러도 제대로 된 노후보장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의 노인 빈곤율은 OECD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다. 사진은 서울 탑골공원의 무료급식 모습. ⓒ연합뉴스

■ 미래세대의 국민연금 부담 가능성

공적연금의 본질이 세대 간 자원의 이전, 즉 노동 세대의 노인 세대에 대한 세대 간 부양이라면, 공적연금의 지속가능성은 생산력 발전을 고려한 부양 부담의 총량 면에서 판단하는 것이 적합하다. 대표적인 지표는 GDP 대비 연금지출비이다. 이 전망치를 통해 노인 부양 가능성을 가늠해볼 수 있다. 약 50년 후인 2070년 기준 국민연금 지출 예측치를 보면 소득대체율을 현행대로 하향 조정하면 GDP 대비 8.9%, 소득대체율 45%다. 소득대체율을 당초대로 회복시키면 9.9%, 50%로 인상하면 10.9%다.

그렇다면 국민연금 급여 인상의 경우, 사회적 부담 증가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일까? 일례로 50년 후에 GDP의 10.9%를 국민연금으로 지출하는 것의 의미를 두 가지 점을 고려하여 가늠해볼 수 있다. 우선 발전된 자본주의 국가 중 여러 나라들이 이미 GDP의 10% 이상을 공적연금에 쓰고 있다는 점에서 이는 불가능한 수치가 아니다. 2019년 말 기준 유럽연합(EU) 평균 GDP 대비 공적연금 지출은 11.6%였다. 또한 연금수급 연령 조정 같은 지출 조정이 이루어진다면 실제 연금 지출은 예측보다 낮아질 수 있다. 향후 50년 사이에 이루어질 생산력 발전에 따라 정작 중요한 것은 부의 양이 아니라 분배의 질서가 될 것이다.

공적연금제도는 경제성장의 성과인 생활수준 향상을 노동시장에서 물러난 은퇴 세대도 고루 누리도록 만드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이유에서 대부분 공적연금은 당해 연도 보험료로 바로 연금 급여를 지급하는 부과 방식(pay-as-you-go)으로 운영된다.

그렇다면 연금보험료를 받아 바로 연금 지출을 충당한다는 공적연금인데도 왜 국민연금에는 거의 1000조원에 이르는 기금이 형성되어 있으며, 그 쓸모는 무엇인가? 한국의 국민연금 기금은 절대적 규모로 세계적이며, 한국 경제 규모에 비해서도 크다. 그럼에도 국민연금기금은 미래에 지출해야 할 연금액을 다 충당할 목적으로 쌓아놓은 것은 아니다. 미래의 급여는 미래의 기여를 통해 재정 조달하는 것이 원칙이다. 국민연금기금은 인구, 경제 등 급격한 변화의 충격을 완화시키기 위한 완충기금(buffer fund)이다. 특히 경제성장 속도보다 고령화 속도가 빠른 국면에서, 연금보험료율이 지나치게 빠르게 올라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다.

2057년 기금 소진은 흔히 예정된 파멸처럼 거론되곤 한다. 그러나 이는 2057년까지 국민연금은 보험료를 부과하는 소득 기반을 확대하고, 보험료율을 조정하는 등 인구변화에 제도를 적응시킬 시간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기금 소진 시점은 보험료율 조정과 재원 다변화, 앞으로의 인구, 경제성장, 기금수익 추이 등에 따라 계속 달라진다. 한국 국민연금에서 보험료율 인상은 국민연금기금의 이러한 완충 기능을 고려하여 설계될 수밖에 없으며, 향후 인구구조가 새로운 균형을 이루기까지 연기금이 완충 효과를 발휘하도록 한다면, 소득대체율 회복 역시 불가능하지 않다.

2057년 기금 소진이 흔히 예정된 파멸처럼 거론되지만 거기에는 다른 의미가 있다. 사진은 국민연금공단 서울북부지역본부. ⓒ시사IN 이명익

■ ‘세대 간 수익비 비교’의 문제점

국민연금은 장기적 보장제도로 세대 간 계약의 지속성이 그 본질이다. 각 세대는 앞 세대 노후 보장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가지며, 세대에 걸쳐 이것이 지속된다는 신뢰가 국민연금제도의 존립 기반이다. 세대 간 부양의 지속을 위해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후세대의 보험료율 변화 속도를 느리게 만드는 것과 후세대가 노인 부양을 위한 역량을 갖추도록 만드는 것 두 가지 접근이 모두 필요하다.

특히 후자와 관련하여 아동·청년에 대한 교육, 보건의료, 돌봄, 주거, 고용 등에 대한 지원을 대폭 늘려야 하는 이유는 후세대의 역량을 높여 세대 간 복지의 순환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서다. 그런 의미에서 공교육보다 사교육을 선호하고, 계층 간에 뚜렷이 차별화된 돌봄·양육의 계층 재생산 구조가 고착되는 것은 공적연금을 위한 사회연대 기반을 침식한다. 공교육의 질 제고에 충분히 투자하고 이를 통해 계층 간 격차를 줄이는 것은 공적연금의 지속가능성에도 중요하다. 복지국가의 핵심 제도로서 국민연금을 둘러싼 세대 간 연대는 연금제도 안에서의 이익 다툼이 아니라 전 생애에 걸친 복지와 부담의 순환에 기반한다.

일부에서 국민연금에 대한 세대 간 수익비를 비교하며 앞 세대가 기득권을 누리고 후세대는 큰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처럼 주장한다. 그러나 세대 간 수익비 비교는 국민연금의 작동원리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국민연금제도는 각 세대가 동일하게 기여하고 동일하게 보장받는 방식으로 발전해오지 않았다. 철저하게 낸 만큼 받는다는 것은 국민연금에서는 개인 단위로도, 세대 단위로도 추구하는 목표가 아니다. 즉, 동일한 수익비에 기반한 세대 간 공평성은 국민연금이 추구하는 바가 아니다. 게다가 세대 간 공평성을 추구하여 공적 소득이전을 축소시킬수록 세대 내 불평등은 커진다.

국민연금 개혁을 제도 안에서 이익 다툼의 문제, 세대 간 대립의 문제로 빠뜨리는 것은 제도의 목표와 작동 원리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다. 세대 간 계약을 지속하는 요소로서 재정적 지속가능성은 중요하지만 이는 해당 시기 사회의 부담 능력을 통해 판단하는 것이 적절하다. 일례로 국민연금 개혁으로 영향받을 2050년의 부담 가능성 문제는 지금 노인 세대와 2050년 노동시장 활동 세대의 소위 연금수익비를 통해 판단할 이슈는 아니다. 국민연금을 무조건 깎는 것은 답이 아니다. 여러 세대에 걸친 안정적인 소득이전 조건을 창출하는 것이 더욱 근본적인 해법이다. 예컨대 노동시장 신규 진출 세대는 노동공급량 감소를 본격적으로 경험하는 세대로 국민연금 보험료 부과 기반을 더 이상 ‘임금’에 국한할 필요가 없는 세대이기도 하다.

청년 주거 등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하는 이유는 세대 간 복지의 순환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다. ⓒ시사IN 조남진

■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이 대신할 수 없는 제도, 국민연금

국민연금 저급여 문제가 계속되더라도, 혹은 이를 더 축소하더라도 기초연금과 퇴직연금이 있으므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고령화에 따른 노후소득 보장 비용은 전체로서 파악할 필요가 있다. 국민연금 지출은 줄어들더라도 조세 재원의 기초연금과 공공부조 비용이 더 늘어난다면 이것이 재정적으로 우위에 있는 방안인지 의문스럽다. 더욱이 기초연금은 국민연금과 같은 권리성을 부여하지 않는다. 정치적으로 빠르게 성장한 만큼 미래 어느 시점에는 빠르게 축소될 수도 있는 제도다. 낮은 가입률과 연금수급률을 볼 때 퇴직연금이 국민연금을 대신할 수 없으며 바람직하지도 않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더욱이 퇴직연금은 국민연금에 비해 매우 불평등하다.

국민연금 보장성을 강화하자는 것은 공적 사회보장제도가 노후보장에서 명확한 중심축 역할을 하도록 전체 노후보장제도를 설계하자는 주장이다. 이것은 적정 노후보장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 존재하는 복지국가를 만들자는 제안이기도 하다.

기자명 주은선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다른기사 보기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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