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 전 작성되었습니다.
고령화 시대를 맞아 공공지출을 합리화할 필요가 있는 부문으로는 의료(‘의료비와 건강보험 후보들의 생각은?’ 기사 참조) 외에도 연금이 있다.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이 낸 보험료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국민연금 급여는 보험료를 낸 가입자만이 받을 수 있다. 가입자들의 보험료가 아니라 세금으로 시행되는 복지제도 가운데 가장 덩치가 큰 것이 바로 기초연금이다. 지난해의 경우,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 속하는 595만명이 1인 가구 기준 최대 월 30만원을 지급받았다.
그럼에도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2018년 43.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 1위였다. 같은 시기의 OECD 평균은 13.1%다. 이후, 한국 노인의 빈곤 정도는 개선되고 있지만 다른 선진국에 비해선 여전히 열악한 수준으로 보인다. 크게 두 가지 대안이 제시된다.
먼저 국민연금의 급여 수준을 높이자는 주장이다. 2021년 5월 말 기준 1인당 국민연금 수령액은 월 55만361원이다. 최고액은 월 241만4390원이지만 평균으로 보면 여전히 ‘용돈 연금’에 머물고 있다는 비난이 나온다. 현재 국민연금은 일하는 40년 동안 월 소득의 9%(직장가입자는 노사가 4.5%씩)를 보험료로 내면, 은퇴 뒤에는 일할 때 벌던 소득의 40%를 연금급여로 받는 구조다. 이를 ‘보험료율 9%-소득대체율 40% 체제’라고 부른다. 소득대체율은 올해 43%인데, 매년 0.5%포인트씩 낮춰 2028년에 40%가 되면 이 수준을 계속 유지하도록 계획되어 있다. ‘국민연금 급여 수준을 높이자’는 것은 이 소득대체율, 즉 ‘일할 때 벌던 소득 대비 국민연금 수급액 비율’을 현재의 계획보다 더 올리자는 이야기다.
그러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높인다고 해도 그 혜택이 지금의 빈곤 노인에게 돌아가긴 어렵다. 가입 기간이 짧거나, 아예 가입하지 않은 사람들도 많기 때문이다(최소 가입 기간은 10년이며, 소득대체율 40%는 40년 가입자를 기준으로 한 수치다). 현재 65세 이상 인구 중 국민연금을 받는 비율은 10명 중 4명 정도에 불과하다. 국민연금이나 공무원연금 같은 ‘공적연금’을 받는 비율은 남성이 여성의 두 배다(2019년 기준, 개인정보보호위원회·보건복지부). 사실, 국민연금 급여의 액수가 낮은 것은 소득대체율 자체가 낮기 때문이라기보다 평균 가입 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이 상태에서 소득대체율을 올리면 가입 기간이 길고(즉 은퇴 전에 안정적 직장에서 일했고) 소득이 높은 노인에게 혜택이 돌아간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이 연기금 재정에 미칠 영향도 생각해야 한다. 지금처럼 ‘보험료 9%-소득대체율 40%’ 체제에서 가입자들은, ‘일할 때 낸 보험료’의 2.5~3.5배(수익비)를 ‘은퇴 이후 급여’로 받아가게 된다. 연금공단 처지에서는 ‘들어오는 돈(보험료)’보다 ‘나가는 돈(연금 급여)’이 많다. 즉, 보험료로 쌓이는 국민연금 기금은 언젠가 바닥날 운명이다. 문제는 한국의 저출산 고령화가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9%-40%’ 체제에서 국민연금 기금은 오는 2055년 고갈되리라 추정되고 있다(국회예산정책처). 1990년생이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해다.
이렇게 기금이 고갈되면, 고갈 이후인 2070~2080년의 ‘일하는 세대(만 18세부터 연금에 가입한다면 2011~2062년생)’는 소득의 35% 내외를 보험료로 내야 할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9%)의 3~4배에 이른다. 그 시점에 가서, 국가가 국민연금에 ‘재정’을 투입하면 된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 또한 보험료에서 세금으로 경로만 바뀔 뿐 미래 세대에 부담을 안긴다는 측면에서는 마찬가지다. 지금 한국의 국민연금 보험료율(9%)은 20% 안팎인 다른 나라들에 비해 매우 낮다.
국민연금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이들에게, 보험료를 납부하지 않아도 세금을 기반으로 지원받는 기초연금은 거의 유일한 노후 안전망이다. 노인빈곤율을 해결하려면 기초연금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문제는 소득 하위 70%가 받는 현재의 월 30만원으로는 빈곤 완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해외에도 세금에 기반해서 노인들에게 지급하는 급여가 있다. 다만 한국보다 수혜 범위가 적은 대신 급여 액수는 높다. OECD 국가의 노인 가운데 ‘세금에 기반한 급여(한국은 기초연금)’를 받는 비율은 2016년 기준 평균 22%인데 한국은 67%다. 그런데 급여 기준으로 보면, 각 나라의 평균소득 대비 기초연금의 급여는 OECD 평균 20%인 데 비해 한국은 5.5%에 그친다. 한국의 기초연금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광범위한 인원에게 지급되고 있으나 그 액수는 너무 작아서 노인층의 빈곤 문제 해결에 큰 개선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
가파르게 오르는 기초연금 예산
급격한 고령화로 한국의 기초연금 예산은 가파르게 오르는 중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장기 재정전망에 따르면, 2020년 국비 13조2000억원이 들었던 기초연금에 2060년에는 34조1000억원이 들 전망이다. 이와 관련, OECD는 2018년 “기초연금의 적용 범위를 ‘절대빈곤에 처한 65세 이상’으로 좁히면, 정부의 전체 예산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이들에 대한 혜택 수준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권고한 바 있다. 스웨덴은 1999년 모든 노인을 대상으로 하지만 액수는 낮았던 기초연금을 하위계층에 국한하되 액수는 늘리기로 결정한 바 있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다. 정치적으로 인기를 끌려면 그냥 연금을 많이 주겠다고 약속하면 된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기초연금을 지금의 월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연금 개혁은 집권 뒤 사회적 대화로 추진한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도 기초연금을 월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기초연금 대상을 현재의 소득 하위 70%에서 더 확대하겠다고도 공약했다. 또한 부부가 모두 기초연금 대상자일 경우 일부를 감액하는 제도를 폐지하겠다거나, 국민연금 수급자가 소득원을 가지는 경우 수급액을 감액하는 제도를 폐지하겠다고 공약했다. 모두 기초연금 및 국민연금의 지속가능성과는 거리가 있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국민연금과 공무원·군인·사학연금 통합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세 후보 모두 국민연금의 보험료율과 소득대체율에 대한 구체적 방안은 내지 않고 있다.
연금과 관련해 현재까지 가장 구체적인 공약을 낸 것은 심상정 정의당 후보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현행 9%에서 3~4%포인트 더 올리겠다고 했다. 명목 소득대체율을 인상하기보다는, 사각지대에 있는 영세 자영업자 등 지역가입자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기로 방향을 잡았다. 원래 정의당 당론은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 인상이었는데 입장을 바꾼 것이다. 이는 기존 진보진영 입장과도 충돌해서, “세대 갈등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 자가당착적인 주장”(참여연대), “공적연금을 약화하고, 사보험 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한국노총)라는 등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반면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은 심 후보 연금개혁안에 대해 “기존의 입장에 비해서 훨씬 진일보”라고 평가했다. 심 후보는 기초연금도 월 4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했다. 다만 소득 하위 70%라는 대상은 유지한다. 이를 위해 필요한 ‘증세’ 관련 공약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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