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30일 시민단체 회원들이 ‘기준 중위소득 인상 및 부양의무자 기준 완전폐지’를 촉구했다. ⓒ연합뉴스

※이 기사는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 전 작성되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불안정 취업자들의 소득보장이 의제로 떠올랐다. 영세 자영업자·특수고용직·프리랜서·플랫폼 노동자 등 일하는 사람 상당수가 고용보험에서 배제되어 있음이 드러나면서다. 문재인 정부는 자영업자 소득 파악 시스템을 개선했고, ‘전 국민 고용보험’을 추진 중이다. 대권주자로 떠오르던 당시의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한발 더 나아가 ‘기본소득’을 주장했다. 복지제도의 사각지대를 원천 봉쇄하고 기술변화에 따른 일자리 소멸에 대응한다는 취지였다.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기본소득이 이번 대선의 최대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 후보가 “제1의 공약으로 할 일은 아니다”(2021년 7월2일), “국민들이 반대하면 안 한다”(2021년 11월29일)라고 발언하는 등 기류가 바뀌었다.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은 ‘집권한 뒤 공론화를 거쳐 추진하겠다’는 선에서 정리될 모양새다.

이 후보는 내년부터 연 25만원(월 2만833원), 임기 말부터는 연 100만원(월 8만333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고 한다. 전 국민 인구가 5200만명임을 감안하면 내년에는 연 13조원, 임기 말에는 52조원이 드는 거대한 프로젝트다. 재원은? 내년에 필요한 연 13조원은 지난해 초과세수 60조원을 고려하면 증세 없이 가능하다는 게 이 후보 쪽 설명이다. 임기 말 기본소득 시행 시 필요한 연 52조원에 해당하는 부분은 토지배당 연 30조원, 탄소배당 연 10조~20조원으로 충당한다. 토지배당이란 건물이나 땅을 가진 사람 누구나 그 가치에 대해 정해진 세율(예컨대 0.1%)로 세금을 내고, 이를 똑같은 액수로 모든 국민이 나눠 받는 제도다. 탄소배당은 탄소배출 기업에 세금을 물리고 이를 모두가 돌려받는다는 의미다.

이렇게 연 52조원을 만들어서 부자를 포함한 모든 시민에게 월 8만333원을 주는 이유가 무엇일까? 저부담-저복지를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한다. “더 부담하고 더 잘사는, 소위 중부담 중복지로 가려면 복지 총량이 늘어날 수밖에 없는데… 세금을 많이 내는 사람들을 (복지 혜택에서) 배제하면 추가 부담에 대해 저항이 발생해서 늘리기가 어렵다”(이재명 후보, 2022년 1월6일) 더불어민주당 선대위 후보자 직속 기본사회위원회의 강남훈 공동위원장(한신대 경제학과 교수)은 이렇게 말했다. “증세를 해야 한다면, 수혜자가 하위 50%인 것보다 하위 90%로 다수인 편이 정치적으로 더 돌파 가능성이 높다.”

첫눈에 이 전략은 말이 되는 것처럼 보인다. 2020년 귀속 연말정산 결과 한국의 노동자 중 37.2%는 각종 감면으로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안 냈다. 한국의 세금과 고용보험료 등은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세금이 제대로 쓰인다는 사회적 신뢰가 높지 않다. 이런 상황인 만큼, 국토보유세 등으로 상위계층을 ‘부담자’로 만드는 대신(상위계층도 기본소득으로 같은 액수를 받지만 세금을 많이 내므로 결과적으로는 부담자가 된다), 기존 복지 혜택을 받던 하층에 더해 중산층을 새로이 기본소득의 ‘수혜자’로 만들어서 증세 지지를 끌어내자는 전략이다.

2월23일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서울역 4호선 승강장에서 열린 장애인 이동권 지하철 시위 현장을 방문했다. ⓒ정의당 제공

지금의 생계급여와 상대적 빈곤율

그러나 부담자가 될 상위계층이 이런 전략에 순순히 동의할지는 의문이다. 이재명 후보가 기본소득을 주장하며 예로 든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기본소득 방식으로 증세를 관철하지 않았다. 사실, 한국에서 가장 연대성이 높은 제도인 건강보험만 해도 상위계층을 ‘순수한 부담자’로 만들고 중산층과 하층을 ‘순수한 수혜자’로 만들어서 달성된 게 아니다. 물론 결과적으로 상위계층이 보험료를 더 내지만, 그들을 포함해 누구나 부담할 수 있는 만큼 보험료를 내고, 아프면 건강보험의 혜택을 받는다. 상위계층이 실질적으로는 순수하게 부담만 하는 기본소득 모델과 다르다.

즉, 사회보장의 목적은 증세 자체가 아니라 질병·실업·노후·육아 등으로 인한 소득상실 같은 위험으로부터의 자유다. 기본소득은 이 ‘자유’를 줄 만큼 충분한 사회보장을 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위험이 없는 사람에게도 자원을 배분한다. 그런 점에서 사회보장과는 거리가 멀다.

이 후보는 만 19~29세 청년 약 700만명에게 연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더 얹어주기로 했다. 이 경우 청년들의 기본소득 수령액은 앞서의 ‘전 국민 기본소득’에 더해 월 16만666원이 된다. 소요 예산은 연 7조원이다. 60세 정년퇴직 뒤 국민연금을 받는 65세까지 연 120만원(월 10만원)을 주는 장년수당, 농어촌·예술인 기본소득 연 100만원(월 8만333원)도 기본소득 도입의 전 단계로 공약했다. 물론 단계적으로 대상과 액수를 확대해갈 수도 있다. 기본소득 주창자인 필리프 판 파레이스가 제안한 기본소득 액수는 1인당 GDP의 25%다. 이를 전 국민에게 주려면 한국의 경우 연 500조 가까이 든다(올해 예산 규모가 608조원이다). 이 정도 돈을 증세하는 데 기본소득이 더 비교우위가 있을지는 여전히 검증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어떤 의무도 지우지 않고, 재산이나 소득 조사 없이 모두에게 지급한다’는 기본소득의 아이디어에는 경청할 지점이 있다. 소득보장의 사각지대가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세후 상대적 빈곤율은 2018년 16.7%로 OECD 4위다. 상대적 빈곤율이란, 중위소득(전체 가구 소득을 쭉 늘어놓았을 때 가운데에 있는 가구의 소득)의 50%에 미치지 못하는 인구의 비율을 말한다. 그런데 한국의 대표적 복지제도인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생계급여를 받는 사람은 인구의 3% 수준이다. 상대적 빈곤율인 16.7%에는 크게 못 미친다. 덴마크는 상대적 빈곤율이 6.1%에 그친다. OECD 평균은 11.2%다.

생계급여를 받으려면 소득과 재산을 합한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올해 1인 가구 기준 월 194만원)의 30% 이하여야 한다. 1인 가구 기준 월 58만원, 4인 가구 기준 월 154만원 이하 소득이어야 그에 부족한 금액을 최저소득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것이다.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 30%를 넘지만 여러 이유로 근로 능력을 상실한 이들에게는, 노인 대상 기초연금(소득 하위 70%) 외에는 사실상 별다른 소득 보장이 없다.

이에 생계급여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의 범위를 더 넓히겠다는 공약이 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생계급여 기준을 현행 중위소득 30%에서 35%로 높여 21만명이 더 혜택을 받게 하겠다고 했다. 이렇게 늘려도 소득보장 수준은 1인 가구 월 68만원에 불과하다. 이재명 후보는 생계급여 기준을 상대적 빈곤 기준인 중위소득 50%로 단계적으로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실현된다면 상대적 빈곤을 아예 없앤다는 의미가 된다. 이 후보는 기본소득뿐 아니라 전 국민 고용보험도 공약했다. 모두 상당한 재원이 필요한 정책들이다. 안철수 후보는 생계급여 기준을 중위소득 40%까지 올린다.

당초에는 윤석열 후보 쪽도 우파 버전의 기본소득으로 불리는 이른바 ‘부의 소득세’를 공약할지 관심이 모였다. 밀턴 프리드먼이 주창한 제도로, 소득이 일정 기준에 미치지 못하면 이를 국가가 누진적으로 보전해주고, 기존 다른 소득보장 정책은 통폐합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기본소득 쟁점이 사그라지면서 생계급여 소폭 확대에 그쳤다.

오히려 심상정 정의당 후보가 기존 생계급여와 근로장려금 등을 통합해 중위소득 100% 이하 시민에게 최소 월 100만원 소득을 보장하는 ‘시민최저소득’을 공약했다. 진보 버전의 ‘부의 소득세’라 할 만하다. 예컨대 1인 가구 중위소득 100%(약 200만원)의 50%까지 최저소득으로 보장한다. 이러면 소득이 없는 사람은 200만원의 50%인 100만원을 지원받는다. 소득을 100만원 벌었을 경우, 200만원에서 모자란 100만원의 50%인 50만원을 지원받아 총소득이 150만원이 된다. 일을 할수록 총소득이 늘어나는 구조다. 재원은 연 50조원으로 이재명 후보의 기본소득과 비슷하지만, 중위소득 이하 시민에게만 혜택을 준다는 점에서 다르다.

OECD 국가들이 세금과 공적 이전소득(현금성 사회복지)을 통해 평균 25%만큼 불평등을 완화하는 데 비해, 한국은 11%에 그친다. 이 수치가 핀란드는 36%, 덴마크는 34%에 이른다(2018년).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은 “사각지대 없이, 실질적인 소득을 보장하면서도 노동 동기를 떨어뜨리지 않는 방법을 둘러싸고 활발히 논쟁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저작권자 © 시사IN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관련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