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19일 대전시 서구에서 이재명 후보가 어린이와 인사하고 있다.ⓒ연합뉴스

대한민국 시민이지만 투표권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 만 18세 미만 아동·청소년이다. 표는 없지만, 지금의 정치 시스템에서 내려지는 결정으로 인해 앞으로 가장 오랜 기간 삶에 영향을 받을 시민들이다. 아동·청소년과 관련된 정책이라면 대개 교육·보육 부문(제755호 ‘교육 공약 속에서 동상이몽 찾기’ 기사 참조)만 떠올린다. 아이들의 삶엔 그 밖에 놓인 요소도 많다. 생존·안전·건강·놀이·복지 등 다양한 영역에서 욕구와 갈증이 존재한다. 학부모나 어른들을 위한 공약 말고, 아이의 삶 자체를 지원하는 아동·청소년 공약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아래 표 참조)

유력 대선후보들이 공통으로 앞세우는 아동·청소년 정책 공약은 ‘아동학대’와 관련된 것들이다. 수년간 되풀이되어온 잔혹 아동학대 사건들에 국민적 공분이 높기 때문이다. 이재명, 윤석열, 심상정 후보(기호순) 모두 아동학대를 예방하고 피해자를 지원하는 기관 및 인력을 확충하겠다고 약속했다.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과 경찰관을 늘리고 과로와 낮은 처우에 시달리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상담원의 처우를 개선하겠다는 내용 등이 담겼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경기도에서 추진한 위기가정 아동 발굴 사업인 ‘아동의 안부를 묻다’를 전국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아동학대 처벌을 지금보다 강화하겠다고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국무총리 직속으로 AI 기반 아동학대 예방 시스템을 구축하겠다고 약속했다. 심상정 후보는 학대 아동 쉼터, 가정위탁, 그룹홈 지원과 함께 입양 체계에 공공의 책임을 높이는 방안을 공약했다.

미취학 영유아에게 가장 중요한 세상은 ‘가정’과 ‘양육자’다. 그렇기 때문에 가정과 양육자를 지원하는 정책이 얼마나 촘촘하게 짜여 있는지가 아동의 생애 초기 삶의 질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변수다. 출생 이후 산모와 신생아를 돕는 정책이 그 출발점이다. 이재명 후보는 공공 산후조리원 확충을, 심상정 후보는 출산 전후 모든 가정 방문제를, 윤석열 후보는 산후우울증 진료 지원을 약속했다. 산모의 건강과 함께 아기의 안전을 살피는 일들이다. 육아휴직 확대 공약도 다양하게 나왔다. 육아휴직 부모쿼터제·자동육아휴직 등록제(이재명), 육아휴직 부모 1.5년씩 총 3년(윤석열), 전 국민 육아휴직제·아빠할당제(심상정) 등이다.

2월28일 대구 달성군에서 윤석열 후보가 어린이를 안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국회사진취재단

이른바 ‘정상 가족’ 외 다양한 가족의 모습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공약들도 눈에 띈다. 특히 한부모 가정 지원 계획을 약속했다. 이재명, 윤석열 두 후보는 한부모 가족 증명과 양육비 지급의 소득 기준을 완화하겠다고 밝혔다. 양육비 지급을 차일피일 미루는 ‘배드 파더스’와 ‘배드 마더스’ 문제에 국가가 직접 나서는 방안도 만들었다. 이재명, 심상정 후보는 경직된 출생신고 제도로 ‘있지만 없는 아이’가 되어버린 미등록·무국적 아이들을 위한 대체 법안도 약속했다. 윤석열 후보는 법정대리인이 동행하지 않으면 미성년 아동이 대출 회원증을 만들지 못하는 제도 때문에 많은 한부모·조손 가정 어린이가 도서관에서 동화책 한 권 빌리지 못하는 문제를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아동·청소년의 건강, 식생활, 교통안전, 이동권을 증진시키는 방안들도 눈에 띈다. 이재명, 윤석열 두 후보 모두 발달장애를 겪는 영유아를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는 서비스를 약속했다. 이 후보는 성인에게만 적용되는 중증 아토피 치료제의 건강보험 혜택을 아동·청소년에게도 넓히겠다고 했다. 초중고 학생 건강검진 주기 단축, 여성 청소년 생리용품 보편 지원, 남녀 청소년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백신 무료 접종도 이 후보 공약에 포함됐다. 윤 후보는 24시간 아동 전문 응급병원 설립을 약속했다.

“현재의 학교는 교도소와 비슷합니다”

어린이 보행 안전을 위한 정책 공약도 새롭게 추가됐다. 이재명 후보는 더 이상 ‘초록어머니 의무봉사’처럼 학부모에게 아이들 등하굣길 안전을 전가하지 않고 사회적 일자리 확대로 풀어가겠다고 밝혔다. 신도시 내 초등학교를 세울 때 학생들이 위험한 찻길을 건너지 않도록 도시계획 단계에서부터 아동 안전을 고려해 설계하겠다고도 했다. 심상정 후보는 학교 주변 등 어린이보호구역 내에서 무분별하게 대규모 토목공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심 후보는 또한 아동·청소년의 이동권을 높이는 공약을 냈다. 지역부터 시작해 순차적으로 7~18세 아동·청소년 모두가 버스와 지하철을 무상으로 이용할 수 있게끔 하겠다는 구상이다.

이재명, 윤석열 후보는 아이들 밥상의 격차에 주목했다. 윤석열 후보는 전국 어린이집과 유치원의 점심을 친환경 무상급식으로 통일시키겠다고 약속했다. 끼니 사각지대인 취약계층 초등학생의 아침밥과 방학 점심밥도 지원하겠다고 했다. 이재명 후보는 ‘꿈나무 카드’와 같은 아동급식카드의 사용처를 다양화하고 지원 단가를 올리겠다고 밝혔다. 경기도에서 시행해 좋은 평가를 받은 ‘어린이 과일 간식 사업’의 확대는 이 후보뿐 아니라 윤 후보도 공약에 포함시켰다.

이재명 후보는 초중고 학생들이 급식 시간에 채식 식단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아동·청소년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원하는 정책이다. 심 후보가 약속한 ‘탈가정 청소년 지원’ ‘학교 내 (성별 구분 없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 설치’ 등도 사회가 규정짓는 아동·청소년 정체성의 좁은 틀을 확장시키는 정책들이다.

청소년 범죄에 대한 법적 책임을 강화하는 공약도 내놓았다. 이재명·윤석열 후보는 모두 촉법소년(형사처분 대신 소년법에 의한 보호처분을 받는 범법 미성년자. 현행 만 10세 이상 14세 미만 소년범에 해당한다) 적용 연령을 하향 조정하겠다고 말했다. 이재명 후보는 연령을 못 박지 않았고, 윤석열 후보는 만 12세 미만을 제안했다. 윤 후보는 학교폭력·성폭력 등 중범죄는 청소년도 아예 촉법소년 적용을 받지 않고 어른과 같은 형벌을 받게 하는 등 청소년 범죄 ‘엄벌주의’를 강조했다.

여기까지는 ‘후보가 아이들에게 전하는’ 약속이다. 아이들은 장차 대통령이 될 어른에게 어떤 목소리를 낼까?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은 지난해 10월5일부터 12월31일까지 전국의 만 7~18세 아동·청소년 4478명에게 제20대 대통령 선거 아동정책 공약을 제안받았다. 이른바 ‘미래에서 온 투표’이다. 모두 5162개의 의견이 모였다. 어린이들은 메타버스에서 후보들을 만나 이 공약 제안들을 전달했다. 분량상 제한으로, 수많은 제안들 가운데 아주 일부만 아래에 붙인다.

“코로나로 인해 학교에서 쉬는 시간이 거의 없어요. 잃어버린 2년이 20년같이 느껴져요.” (하◯현, 12세, 부산)

“코로나 때문에 학교에서 수학여행은 물론 아무것도 못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도와주세요.” (홍◯진, 14세, 충남)

“현재의 학교는 교도소와 비슷합니다. 좁은 공간에서 규율 속에 같은 옷을 입고 같은 밥을 먹고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는 모습이 스트레스입니다. 교실을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자유로운 공간으로 만들어주세요.” (구◯영, 15세, 서울)

“학교폭력을 자세히 조사하고 가해자의 지위와 권력에 보복당할까 두려워 떨지 않게 해주세요. 학교나 선생님들이 별것 아니라며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고통받는 친구들이 너무 많습니다.” (박◯현, 16세, 서울)

“아동학대 사건이 나오지 않게 생후 12개월 정도는 지속적으로 아이가 안전한지 나라에서 확인해주세요. 그리고 N번방 사건이 다시 나오지 않게 관련 앱에 음란물 등을 올릴 수 없도록 법과 모니터링을 강화해주세요.” (이◯연, 14세, 제주)

“플라스틱을 마음껏 써도 후보자님 세대에는 피해가 없겠지만 저희 세대에는 큰 피해를 봅니다. 환경문제에 관한 법을 강화해주시고 일회용품 사용도 줄이는 법과 캠페인을 시행해주세요.” (이◯민, 12세, 대구)

“신호등 초록불 시간이 짧아서 위험하게 뛰어가야 해요. 초록불 시간을 늘려주시면 안전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박◯준, 12세, 경북)

“학교가 멀어서 매일 대중교통을 타고 등교하는데요. 학교가 먼 것도 서러운데 교통비가 많이 들어서 부담이 됩니다. 모든 학생과 아동들의 교통비를 지원해주세요” (정◯아, 18세, 대구)

“공동 생활 가정 그룹홈에서 살고 있습니다. 현재 저희는 한 방에서 2~3명씩 살고 있습니다. 사생활 같은 것은 당연히 없지요. 도와주세요.” (이◯재, 16세, 서울)

“엄마랑 동생이랑 셋이 사는 한부모 가정입니다. 엄마가 혼자 가르치시기 너무 힘들어 보여요. 저소득 가정 학생들의 학원비를 국가가 후원해주는 방법 부탁드려요.” (안◯서, 15세, 서울)

“어린이들이 시끄럽고 뛰어다닌다며 노키즈존이 너무 많이 생겼어요. 공공장소에서 시끄럽게 하면 안 된다고 교육도 해주고 부모님들이 잘 보호하면 되는데, 못 들어오게 하는 건 슬퍼요. 지금 어른들도 배려를 받으며 자랐을 텐데 잊고 지내는 사람이 너무 많네요.” (박◯윤, 13세, 대구)

“‘아동은 정치 같은 분야에 참여하지 못한다’는 생각이 줄어들 수 있도록 해주시고, 아동의 의견을 무시하지 않도록 여러 가지 정책과 법을 만들어주세요.” (이◯소, 13세, 대구)

기자명 변진경 기자 다른기사 보기 alm242@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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