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윤석열-안철수 후보 단일화 전 작성되었습니다.

‘탈모 치료에 건강보험 적용을 확대하겠다.’ 이번 대선에서 가장 눈길을 끈 공약 중 하나다. 극소수 질병성 탈모엔 지금도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이 공약은 적용 대상을 노화나 유전에 따른 탈모로까지 넓히겠다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냈다.

“다른 중증질환보다 탈모에 건강보험을 먼저 적용하는 것이 옳은지 논쟁할 수는 있지만, 절대 내서는 안 될 공약이라고 하긴 어렵다고 본다. 건강보험 제도 자체가 정치적 타협의 산물인 데다, 가입자들의 요구도 시대에 따라 바뀌어왔다. 정신건강의 중요도가 과거보다 높아졌듯이.” 황승식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예방의학)가 말했다. 물론 이재명 후보가 당선된다고 해서 곧바로 노화나 유전으로 인한 탈모가 건강보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의료서비스나 약품에 건강보험을 적용할지 여부는 가입자와 의료계·의약계가 참여하는 보건복지부 산하 사회적 논의기구인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결정한다.

1월4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영상에서 이재명 민주당 후보가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 공약을 설명했다. ⓒ재명이네 소극장 유튜브 갈무리

황승식 교수가 보기에 정말로 논쟁해야 할 지점은 따로 있다. “지난 30년간 건강보험의 역사는 ‘유니버설 헬스 커버리지(보편적 의료 보장)’, 즉 누구나 의료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문턱을 낮추고 공급과 서비스를 확대하는 전략이었다. 한 세대가 지났고 고령화가 닥쳤다. 이제는 모든 시민에게 의료서비스를 보장해주려면 보험료를 그에 맞춰 올리든가, 의료 수요를 조절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사실, (한국처럼 고령화에 접어든) OECD 국가들에서 어떤 식으로든 의료비 지출을 통제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급증하는 의료비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서구 국가들 가운데 의료시스템을 시장에 맡기는 사실상 유일한 나라다. 대다수의 병원을 민간이 소유하고 운영한다. 또한 의료보험 역시 다수의 민간기업들이 운영하며, 이에 따라 가입 요건도 까다롭고 보험료 역시 소득 및 고용 상태에 따라 크게 다르다. 이런 다수의 병원과 다수의 민간 보험사들이 제각기 계약을 맺는다. 2020년 미국인의 8.6%가 의료보험을 전혀 적용받지 못했다. 미국에서는 시민들이 의료비 때문에 파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미국과 달리 의료보장을 시장에 맡기지 않는 나라들은 두 가지 시스템으로 나뉜다. 하나는 사회보험이다. 직장·업종·지역에 기반한 여러 집단이 의료보험 조합을 만들어서 구성원들로부터 보험료를 걷었다가, 조합원이 병에 걸리면 지원하는 방법이다. 이런 조합들이 의사 단체와 계약을 맺어 의료비가 지나치게 높아지지 않도록 견제한다. 대표적인 나라는 독일이다. 다른 하나는 국영 의료서비스(NHS)다. 국가가 세금으로 운영하는 의료기관에서 공무원인 의사가 의료서비스를 제공한다. 영국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사회보험 유형에 속한다. 다만 여러 조합이 제각기 의료보험을 운용하는 것이 아니라 단일 기관(국민건강보험공단)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보험료를 걷어서, 이를 의료기관이 시민들에게 제공한 서비스의 대가로 지급한다. 한국에 있는 모든 병·의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과 의무적으로 계약해야 한다. 건강보험이 적용될 의료서비스와 약품도 정부 산하 사회적 논의기구를 거쳐 정해진다.

국가가 의료체계에 미치는 영향력이 강하다는 측면에서 한국은 영국과 비슷하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다른 것이 있다. 의료서비스를 직접 공급하는 주체, 즉 병원이다. 영국은 대다수 병원이 국가에 의해 운영된다. 한국의 경우, 대다수 의료서비스 공급자가 민간 병·의원이다. 공공 의료기관의 수는 매우 적다. 이처럼 의료체계의 틀은 국가가 정하는데 의료 공급자가 민간인 경우에 생기는 문제가 있다. 의료기관이 건강보험 계약자인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어떻게 평가하고 얼마나 많은 돈을 건넬 것인가?

한국은 ‘행위별 수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검사나 수술 같은 모든 의료 행위와 약품의 종류별로 국가가 가격(수가)을 정한다. 의료기관은 시민들을 진료하고 약품을 처방한 다음 그 비용을 건강보험공단에 청구해서 받는다.

행위별 수가제하에서 국가는 의료기관에 주는 돈인 ‘의료비’를 억제하기 위해 수가를 낮게 책정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의사들 처지에선 수가가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수입을 늘리려면 가급적 많은 의료 행위를 환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 한국의 의료 현장에서 이른바 ‘3분 진료’라는 ‘물량 공세’가 탄생한 배경이다.

1인당 외래진료 횟수는 OECD 국가 중 1위

한국의 의료시스템에서는 의료 수요 역시 적정한 수준을 넘는 경우가 많다. 물론 환자 본인의 돈(본인부담금)이 들어가긴 하지만 건강보험 덕분에 치료비의 대부분이 건강보험공단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시민들이 의료기관을 많이 이용하게 된다. 실제로 한국 시민 1인당 외래진료 횟수는 연간 17.2회로 OECD 국가들 중 1위다(2019년 기준, OECD 평균은 6.8회).

병원을 많이 가면 좋은 것 아닌가? 그러나 한국인은 기대수명 등 의료 지표가 비슷하게 우수한 다른 나라들보다 압도적으로 병원에 많이 간다는 게 문제다. 따지고 보면 환자의 본인부담금이 엄청나게 낮은 수준인 것도 아니다. 건강보험의 적용을 받지 않는 ‘비급여’ 진료가 많기 때문이다. 의사들로서는 가격(수가) 통제를 받는 처방보다 비급여 진료를 제공하는 것이 수익을 늘릴 수 있는 방법이다. 비급여는 건강보험의 존재에도 불구하고 환자가 부담해야 할 전체 의료비를 높여온 원인으로 지목되어왔다.

문재인 정부는 이전까지 비급여였던 3800여 항목(대형 병원 2~3인실 병실료, MRI·초음파 검사 등)에 건강보험을 새롭게 적용했다. ‘문재인 케어’로 불리는 정책이다. 이렇게 비급여를 급여화함으로써 ‘건강보험 보장률’, 즉 ‘비급여를 포함한 전체 의료비 중에서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액수의 비율’을 2022년까지 70%로 높인다는 것이 문재인 케어의 목표였다.

하지만 2017년 62.7%였던 건강보험 보장률은 지난해 65.3%까지 오르는 데 그쳤다. 분자에 해당하는 ‘건강보험 급여 지출’이 해마다 늘긴 했으나, 분모에 해당하는 ‘비급여를 포함한 전체 의료비 지출’ 역시 만만치 않게 증가한 결과다. 이를테면 암 같은 중증질환의 건강보험 보장률은 높아졌지만, 민간 실손의료보험이 지원하는 도수치료나 백내장 수술 같은 비급여 행위가 늘어나서 높아진 전체 보장률을 상쇄하는 식이다.

2019년 한국 시민이 지출한 총의료비 중에서 가계가 직접 부담한 비율은 30.2%로 OECD 평균(19.8%)보다 높다.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는 여전히 필요하다. 그런데 2020년의 경우, 전체 인구의 15.4%를 차지하는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 진료비의 43.4%를 썼다(〈2020 건강보험통계연보〉, 보건복지부). 물론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쇠약해지므로 노인 의료비가 늘어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세계에서 가장 급격한 한국의 고령화 속도를 감안하면, 지금의 건강보험 체계로는 이 추세를 감당할 수 없다. 65세 이상 노인인구 비율은 2050년엔 35%를 넘어선다. 현재는 OECD 평균에 근접한 수준인 ‘GDP 대비 의료비 지출 비율’이 가파르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2018년 7월19일 문재인 대통령이 분당서울대병원을 방문해 ‘소아 당뇨’ 학생과 가족을 만났다. ⓒ연합뉴스

‘문재인 케어’는 보장성을 높였을 뿐 전체 의료비 지출을 통제하는 과제에는 별달리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건강보험공단의 누적 적립금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20조7733억원에서 2020년 17조4181억원으로 줄었다. 건강보험료는 2018년 2.04%, 2019년 3.49%, 2020년 3.20%, 2021년 2.89% 올랐다. 올해 건강보험료는 월 소득의 6.99%다. 국민건강보험법상 소득의 8%까지 올릴 수 있는데, 이를 넘어서 보험료율을 올리려면 법을 개정해야 한다. 만만치 않다. 국고를 투입하면 되지 않을까? 법적으로 해당 연도에 예상되는 보험료 수입의 14%에 ‘상당하는 금액’을 정부 일반회계에서 지원하게 되어 있지만, 실제 국고 투입 비율은 최근 5년간 10.2~12.3%에 그친다. 그러나 이 또한 무한정 늘리긴 어렵다.

한국처럼 행위별 수가제인 일본에서는 ‘혼합진료 금지’라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일단 비급여 진료를 받은 경우, 같은 병에 대해서 나중에 건강보험이 되는 급여 진료를 받더라도 모든 진료비에 대해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한다. 한국에도 이런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근본적으로는 행위별 수가제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한국처럼 사회보험형인 독일은 ‘총액예산제’를 시행하고 있다. ‘의료보험 조합’과 의사 단체 간에 1년 단위로 그해 의사 단체에 지급할 총진료비의 규모를 미리 정해놓는 방법이다. 한국 건강보험을 벤치마킹한 타이완도 같은 방식이다. 이렇게 해두면, 의사들로서는 치료를 많이 한다고 해서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과잉 진료의 유인이 줄어든다.

“총액예산제 이야기 나온 지가 30년이다. 그런데도 안 된 건 이유가 있는 거다. ‘패자’는 명확한데(수익이 억제될 민간 의료서비스 공급자들), ‘승자’는 명확하지 않다(과잉 진료를 ‘못 누리게’ 될 가입자들). 아무도 지금의 수가제도를 고치고 싶어 하지 않는 게 문제의 본질이다.” 김창엽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보건정책관리학)가 말했다.

김창엽 교수가 보기에 현재의 건강보험 체제는 한국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두 가지 변화와 충돌한다. 첫째는 고령화다. 고령화에 맞추어 의료비 지출을 통제해야 하는데, 의료비를 받아서 쓰는 실질적 주체인 민간의 병·의원이 사적 수익을 추구하는 한 목표 달성이 어렵다. 둘째는 지역 간 의료 격차다. 여유가 있는 지역 주민들은 서울의 대학병원으로 향하고, 그렇지 못한 주민들은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다. 특히 중증 응급의료에서 지역 간 격차가 큰데, 건강보험공단도 보건복지부도 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무겁게 느끼지 않는다. 주민들이 공단이나 정부에 항의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김창엽 교수는 수가제도 개혁을 넘어서, 사회보험인 지금의 건강보험을 영국 같은 국영 의료서비스(NHS)형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본다. 이러면 모든 병원은 공적 소유가 되고, 보험료가 아닌 조세로 운영된다. 민간 병원이 수익을 추구하는 지금의 시장적인 운영 방식보다는 의료비 지출 통제가 비교적 더 쉽다. 또한 보험 방식이든 조세 방식이든, 의료비 지출 권한을 지방정부에 넘기는 방법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김창엽 교수는 “만약 보험료나 세금을 중앙에서 걷어서 지방정부에 나눠준다면 어떻게 될까. 시군구의 수장이 지역에 공공병원을 짓고, 주민들이 서울의 대학병원 대신에 지역에서 진료를 받도록 독려하는 거다. 이렇게 건강보험 운영의 정치적 책임과 지역의 의료 공급 책임을 일치시킨다면, 의료비 통제도 안정적이고 효율적으로 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조세가 아닌 ‘보험’ 방식이 한계를 노출하는 지점은 또 있다. 보험료를 누구에게 어떻게 걷을지가 점점 골치 아픈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보험 가입자는 크게 직장가입자(1인 이상 사업장의 사업주와 노동자), 그리고 이에 해당되지 않는 영세 자영업자 같은 지역가입자로 나뉜다. 직장가입자인 노동자는 사업주가 절반(월 소득의 6.99%라면, 약 3.5%)을 내준다. 그러나 지역가입자는 본인이 오롯이 부담해야 하며, 직장가입자와 달리 ‘소득’뿐 아니라 부동산이나 자동차 같은 ‘재산’까지도 보험료 산정에 반영된다. 농어민을 제외한 지역가입자 상당수는 영세 자영업자나 프리랜서, 플랫폼 노동자다. 노동시장 변화로 이런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정부는 직장가입자와의 형평성을 높이기 위해 향후 지역가입자도 소득에만 보험료를 부과하도록 할 방침이다. 자영업자 등의 소득 파악도 점점 개선되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지역가입자의 가입 조건 개선에도 반론을 제기할 수 있다. 노인들은 대부분 노동시장에서 이미 은퇴했기 때문에 지역가입자이며 연령상 건강보험을 많이 이용할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건강보험이 자칫 ‘재산은 없고 소득만 있는’ 청년 세대로부터 ‘재산은 있지만 소득이 없는’ 노인 세대로 부를 이전하는 제도가 될 우려가 존재한다. 주택연금 등 여러 방법으로 노인들이 재산을 현금화한다면 건강보험료를 좀 더 정확하게 산정할 수 있겠지만, 이 또한 간단한 과제가 아니다. 누구든 소득과 재산에 걸맞게 내는 세금을 재원으로 건강보험을 운영한다면, 이런 보험료 부과체계의 난점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을지 모른다.

대선후보들의 ‘건강보험’ 관련 공약은?

그러나 건강보험 체제의 근본적인 개혁은 주요 대선후보들의 관심사가 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윤석열 후보는 외국인이 건강보험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로 등록해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것을 두고 “국민이 잘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는다”라며 요건을 강화하겠다고 주장했다. 국내 거주 외국인 건강보험 재정은 2017년 2478억원, 2018년 2251억원, 2019년 3651억원에 이어 코로나19가 유행한 2020년 5715억원 흑자를 기록했다(고영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또한 직장가입자의 피부양자가 건강보험 혜택을 받는 것은 내국인도 마찬가지다. 직장가입자 1인당 피부양자는 내국인이 1.05명인 데 비해 외국인은 0.39명으로 절반 이하다(2019년 12월 기준). 직장가입자 피부양자에 대한 기존의 ‘관대한’ 보험 적용은 소득 파악이 개선되면서 이미 바뀌고 있다. 정부는 연소득 3400만원이 넘어야 피부양자 등록이 제한되던 것을 올해 7월부터 2000만원으로 강화한다.

윤 후보는 이 외에도 음압병실·중환자실·응급실 등 필수의료에 대한 공공정책 수가 신설, 중증질환 요양병원 간병비 급여화 등을 공약했다. 이재명 후보는 공공병원 확충과 전 국민 주치의제 도입, 불법 사무장 병원 척결 등을 공약했다. 공약들은 보장성 강화, 지출 통제 문제를 일부 다루고는 있지만, 한국의 건강보험이 직면한 문제를 풀 근본적인 해법이라 하기는 어렵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2017년 대선 때는 공공병원에 한해 총액예산제를 공약했으나 이번 대선에선 그러한 공약을 내지 않았다. 단, 지금의 건강보험과 달리 감기와 같은 경증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혜택을 줄이는 대신 중증질환의 보장성을 강화한 모델도 선택할 수 있도록 하는 ‘건강보험 이원화’를 내놓았다. 어느 정도 지출 통제를 염두에 둔 방안이다.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건강보험 본인부담금 상한을 연 100만원으로 정하는 ‘심상정 케어’를 공약했다. 재원에 대해선 민간 실손의료보험료의 5분의 1만 돌려도 된다고 설명했다. 이 외에 심 후보도 주치의제도 도입 등 의료체계 개편을 이야기했으나, 전반적으로 주요 대선후보들에게서 의료비 지출 증가를 근본적으로 통제하는 공약은 찾기 어렵다. 고령화와 지방소멸 시대, 변화하는 노동시장 속에서 가장 연대성이 높은 한국 사회보험 제도의 지속가능성이 도전받고 있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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