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국민연금은 ‘보험료율 9%-소득대체율 40% 체제’다. 기금 고갈 5년 뒤인 2060년 시점에 일하는 세대가 소득대체율 40%를 받으려면, 보험료율은 29.8%로 올려야 한다.ⓒ시사IN 이명익

윤석열 정부가 ‘연금 개혁’을 ‘노동·교육 개혁’과 함께 3대 개혁으로 꼽았다. 이대로라면 1990년생이 65세가 되어 연금급여를 받기 시작하는 시점(2055년)에, 국민연금은 고갈된다.

연금 고갈은, 국민연금공단이 기금 운용을 잘못해서 벌어지는 사고가 아니다. 사실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국민연금공단은 가입자들이 보험료로 낸 돈의 두 배 이상을 연금급여로 돌려주기 때문이다. 걷은 돈보다 훨씬 많은 돈을 돌려줘야 하니 언젠가 기금이 고갈되는 것은 당연하다. 당연한 일을 가지고 왜 이렇게 호들갑일까?

인구가 빠르게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공단에 쌓인 돈이 떨어지는 시점부터는, 해당 시기의 ‘일하는 세대’가 낸 보험료로 노인을 부양해야 하는데(서구의 많은 나라가 이미 이렇게 하고 있다), 한국의 고령화가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게 문제다. 기금 고갈 이후 보험료를 낼 수 있는 사람 수가 너무 적다. 게다가 평균수명은 더 길어지고 있다.

현재 국민연금은 일하는 40년 동안 월 소득의 9%를 내면, 은퇴한 뒤에는 일할 때 벌던 소득의 40%를 연금급여로 받는 구조다. 이를 ‘보험료율 9%-소득대체율 40% 체제’라고 한다. 그런데 기금 고갈 5년 뒤인 2060년 시점의 ‘일하는 세대(1996~2037년 출생)’가 지금의 소득대체율 40%를 적용받으려면, 월 소득의 29.8%를 보험료로 내야 한다(〈그림 1〉 참조).

같은 소득대체율의 연금급여를 받기 위해 이전 세대는 9%만 내던 보험료를 2055년 이후 갑자기 29.8%로 세 배 이상 올린다면, 그 시점의 ‘일하는 세대(미래세대)’ 역시 순순히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국민연금은 5년마다 미래 재정 상태를 살피는데, 5년 전인 2018년 예측 때보다 인구구조가 더 나빠졌다(따라서 미래세대가 2060년에 내야 할 보험료율도 26.8%에서 29.8%로 더 높아졌다). 물론 앞으로 한국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다면 가입자들의 소득이 높아지므로, 국민연금공단은 같은 보험료율로도 더 많은 연금기금을 쌓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고도성장기가 다시 돌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현 시점에서 보험료를 올려 연금기금의 고갈 시점을 최대한 뒤로 늦출 수밖에 없다. 연금 개혁이 논의되는 이유다.

한국 사회는 지금까지 ‘연금 개혁’을 두 차례 추진했다. 1988년 출범 당시 국민연금은 ‘보험료율 3%-소득대체율 70% 체제’였다. 이후 보험료율은 법 시행 당시 명시한 대로 1993년부터 6%, 1998년부터 지금과 같은 9%로 올랐다(직장가입자 기준. 지역가입자는 처음 가입한 1999년 3%부터 서서히 올라 2005년 7월 이후 9%). 김대중 정부의 개혁으로 소득대체율은 60%로 줄었다. 노무현 정부 때 개혁으로 소득대체율을 2008년 50%로, 이후 매년 0.5%포인트씩 낮춰왔다(2023년 42.5%). 소득대체율이 2028년 40%까지 낮아지면 그 수준으로 유지하게 된다. 노무현 정부는 보험료율을 15.9%까지 올리려 했으나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연금 개혁은 미래세대를 위해 현세대가 ‘더 내고 덜 받아’ 기금 고갈을 미루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왔다. 그러나 현세대 대다수에게는 ‘적게 내고 많이 받는’ 지금의 연금제도가 유리하다. 그 때문에 연금 개혁은 늘 인기 없는 주제다. 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는 국민연금을 개혁하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 출범 뒤인 2022년 7월 국회에 여야 의원 13명이 연금개혁 특별위원회(특위)를 꾸렸다. 현재 연금 전문가 16명으로 구성된 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회가 논의를 하고 있는 단계다.

■ ‘소득대체율 인상’ 가능한 시나리오인가

자문위원들의 말을 종합하면, 어느 정도 보험료율을 인상하는 데는 이견이 없다. 문제는 소득대체율이다. 민간자문위원회에 참여하는 전문가 중 일부는, 올해 42.5%이며 매년 0.5%포인트씩 낮춰 2028년에 40%가 되는 소득대체율을 45%나 50%로 올리자고 주장한다. 소득대체율을 올린다는 전제하에서만 보험료율 인상을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의 진보 진영,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와 민주노총·한국노총도 비슷한 입장이다.

‘소득대체율 인상론’은 일견 모순적으로 보인다. 지금과 같은 소득대체율만 적용받으려 해도 미래세대가 내야 할 보험료율이 높다는데, 오히려 소득대체율을 올리자니? 이에는 나름의 철학이 있다. 소득대체율 인상론에 따르면, 2055년 기금 고갈을 지나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

예컨대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기금 고갈 25년 뒤인 2080년에 미래세대가 내야 할 보험료율은 기존 소득대체율을 유지할 경우의 35%에서 약 43% 수준으로 뛴다. 하지만 이는 보험료로만 연금급여를 충당할 때의 이야기다. 독일 등 해외 정부처럼 연금급여 지급에 국가 재정을 투입하면 된다. 또한 고갈 이후 시점에 지출해야 하는 연금급여의 총액은 2080년 국내총생산(GDP) 대비 9.4%로 전망된다(소득대체율 50%로 인상 시에는 약 11.8%). 한국의 경제규모를 감안하면 이 정도 부담은 충분히 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2080년에 GDP 대비 9.4%라는 연금급여의 규모는, 2023년의 같은 수치가 1.7%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증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해외에선 연금급여가 이토록 급격히 늘어난 경우를 찾기 어렵다(위 〈그림 2〉 참조). 국가 재정을 투입하면 된다지만, 재정 역시 세금에서 나온다. 한국은 노인인구 급증에 따라 의료비 지출도 커질 예정이다.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방안은 보험료율 인상이다. 사실 한국의 보험료율(9%)은 세계적으로 매우 낮은 편에 속한다. 2020년 기준으로 독일 18.6%, 스웨덴 22.3%, 일본 18.3%,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18.2%인 것과 대조적이다.

소득대체율 인상론자들도 미래세대의 연금 부담이 현세대보다 크다는 것 자체는 부정하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방법이 있다고 말한다.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에 참여하는 남찬섭 동아대 교수(사회복지학)는 “보통 미래세대를 얘기할 때 근로소득자만을 연상하는데, 미래세대 안에는 돈 잘 버는 자본가도 있고, 가난한 노동자도 있다. 노동자가 아니라 부담능력이 높은 자본가에게, 기업 중에서도 하청보다는 원청에게 (보험료든 세금이든) 부담시키면 된다”라고 말했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과연 그게 현세대가 그릴 수 있는 시나리오일까?” 역시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회에 참여하는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정책위원장이 물었다. “물론 미래에 진보정치가 엄청나게 발달하고 노동자 세력이 집권해서 부자에게 돈을 많이 거두면 여기저기 쓸 수 있을 것이다. 근데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이 없다. 법인세를 더 매기든 뭘 하든 미래세대의 몫이다. 대단히 어려운 계급정치 프로젝트가 성공할 것을 전제로 해서, ‘미래세대는 자본과 싸워서 이길 테니 부담이 과하지 않다’고 얘기하는 건 무책임하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2020년 38.9%로 OECD 1위다. 빈곤 노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소득대체율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연합뉴스

오건호 정책위원장은 진보 성향이면서도 진보 진영의 소득대체율 인상론에 찬성하지 않는다. 이처럼 연금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더 중시하는 전문가들을 ‘재정안정화론자’로 분류한다. 이들은 소득대체율은 2028년에 40%로 맞춰지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보험료율을 지금의 9%에서 예컨대 향후 10년간 15%로 단계적으로 올리자고 주장한다. KBS 보도에 따르면,  이 경우 기금 고갈 시점은 13년 이상 늦춰진다. 반면 소득대체율 인상론자들 주장대로 보험료율을 예컨대 9%에서 12%까지만 올리고 소득대체율을 50%로 올리면 고갈 시점이 늦춰지는 건 8년 정도다. 고갈이 미뤄지긴 하지만 재정 안정 효과는 적어진다. 올린 보험료의 상당 부분이 소득대체율 인상분에 쓰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득대체율 인상을 주장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제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라는 게 소득대체율 인상론자들의 논리다. 국민연금이 존재하는 이유는 적립금을 쌓아두기 위해서가 아니라 노후생활 보장이다. 2022년 1월 말 기준 1인당 국민연금 수령액은 월 57만1945원이다. 최고 월 246만원을 받는 사람도 있지만, 평균으로 보면 여전히 ‘용돈 연금’이라는 비난이 나온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2020년 38.9%로 OECD 1위다.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빈곤한 노인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소득대체율을 오히려 올려야 한다는 논리가 그래서 나온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신뢰란 소득대체율을 올려야 회복되는 것일까? 기금이 고갈되면 보험료만 내고 연금급여를 못 받을 수 있다고 걱정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특정 세대가 독박을 쓸 수 있다’는 우려야말로 제도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는 주범일지도 모른다고, 재정안정화론자들은 주장한다.

빈곤 노인의 삶을 개선하는 일은 시급하다. 그런데 그 해법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린다. 우선, 현재 빈곤 상태에 있는 65세 이상 노인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이 올라가더라도 그 혜택을 받지 못한다. 이미 은퇴해서 소득대체율과 수급액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노인 중 국민연금을 받는 노인 자체가 10명 중 4명에 불과하다. 국민연금 역사가 짧고 가입 기간 10년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도 많아서다. 65세 이상 인구의 국민연금 수급 비율은 남성이 여성의 두 배에 달한다.

결국 소득대체율 인상은 현재 연금 가입자들의 은퇴 뒤 연금급여에 해당하는 얘기다. 그래도 은퇴가 몇 년 남지 않은 이들을 포함한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잠재적 빈곤 방지책’으로서는 소득대체율 인상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이를 둘러싸고도 의견이 갈린다.

■ 소득대체율 인상은 누구에게 유리한가

지금까지 논의의 전제였던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40%’는 월 100만원 소득자가 40년 동안 연금보험료를 내면, 은퇴 뒤 일할 때 벌던 소득의 40%인 40만원을 연금급여로 받는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는 법으로 정해진 ‘명목’ 소득대체율에 불과하다. 상당수의 가입자들은 40년 동안 꼬박꼬박 보험료를 내지 못한다. 2020년 신규 수급자의 평균 가입 기간은 18.6년에 불과하다. 그래서 한국의 가입자들이 실제로 받는 평균 연금급여는 은퇴 전 소득의 20%대 초반에 그치고 있다(실질 소득대체율).

국민연금은 그 특성상 소득이 높고 가입 기간이 길수록 연금급여액을 많이 받게 설계되어 있다. 이런 상황에서 명목 소득대체율 인상은 노동시장에서 고용이 안정되고 소득이 높은 사람들에게 가장 유리하다. 소득대체율을 50%로 높일 경우, 국민연금에 10~20년 가입한 월 100만~200만원 소득자는 연금이 월 4만8000원~12만2000원 증가한다. 반면에 35년간 가입한 월 429만원 소득자는 월 30만5000원을 더 받게 될 것으로 추정된다(아래 〈그림 3〉 참조).

물론 국민연금 안에는 일부 재분배 기능이 존재한다. 연금급여의 절반은 자신의 생애 소득에 비례해서 결정되지만, 나머지 절반은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들의 평균소득과 연동된다(이때 가입자 평균소득을 ‘A값’이라고 부른다). 이 A값을 기준으로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사람에게는 더 낮은 소득대체율을 적용하고,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는 더 높은 소득대체율을 적용한다. 대부분의 나라에서 국민연금을 완전 소득비례 방식으로 운영하는 것과 비교된다. 이런 ‘하후상박’ 구조가 있는데도 어째서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이 중상위 계층에게 더 유리하다는 걸까?

“국민연금의 재분배 기능이 저소득층의 낮은 소득과 짧은 가입 기간을 완전히 상쇄해주지는 못한다. 기본적으로 노동시장 중심부와 주변부의 격차 때문이지만, 제도 내부의 문제도 있다.” 오건호 정책위원장의 말이다. “만약 국민연금이 지금처럼 평균적으로 낸 돈의 두 배 이상 돌려받는 제도가 아니라 자신이 낸 보험료만큼 돌려받는 제도였다면, 고소득층은 낸 돈보다 적게 받고 저소득층은 낸 돈보다 많이 받아 명실상부한 재분배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국민연금에서는 저소득자뿐 아니라 ‘고소득자도’ 낸 보험료에 비해 더 많이 받는다. 자식과 손주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법은 보험료율 인상이다. 보험료율을 높이면 상위계층이 내는 절대액이 커지므로 순혜택은 줄어든다. 지금의 낮은 보험료율은 미래세대에 부담을 지울 뿐 아니라 현세대 내에서도 연금 불평등을 키우고 있다.”

2월16일 국회에서 열린 ‘미래세대·일하는 시민의 연금개혁 목소리’ 토론회 모습.ⓒ시사IN 이명익

여기서 ‘낸 돈의 두 배 이상 돌려받는다’는 것을 ‘수익비가 2 이상이다’라고도 표현한다. 국민연금 가입자 중에서 고소득자의 수익비는 저소득자보다 낮지만, 어쨌든 1보다 크다. 낸 보험료보다는 많이 받는다는 뜻이다. 고소득자일수록 가입 기간도 길다. 한데 보험료율은 똑같다. 고소득자의 국민연금 순혜택이 더 큰 이유다. 오건호 정책위원장의 제안은 미래세대를 위해, 또한 노동시장 불평등이 연금 불평등으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앞으로는 적어도 받을 만큼은 내자는 내용이다(국민연금의 재분배 기능을 없애자는 것은 아니다).

물론 소득대체율 인상론자들은 이런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노동시장 불평등의 책임을, 심지어 재분배 기능도 갖추고 있는 국민연금에 돌리는 것은 맞지 않는다는 논리다. 이들은 국민연금이라는 공적연금에서 ‘수익비’를 따지는 일 자체를 부적절하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남찬섭 교수의 말을 들어보자. “국민연금은 내가 저축한 돈에 이자를 붙여 찾아가는 상품이 아니다. 자식 세대가 부모 세대를 집합적으로 부양하는 제도다. 세대 간 부담이 불공평하다는데, 그럼 미래의 고령인구는 빨리 죽어야 하나? 미래세대 부양 부담이 늘어나는 이유는 인구구조가 변해서이지 현세대가 9%만 내고 40%나 받아가서가 아니다. (세대 갈등은) 언론이 만든 ‘프레임’이다.”

반론은 있다. 다시 한번, 문제는 고령화다. “인구가 늘어나고 경제가 빠르게 성장할 때는 후세대일수록 노인을 부양할 능력이 커진다. 그러면 앞 세대들이 후하게 받아도 괜찮다. 세대 간 계약이고 연대일 수 있다. 그런데 ‘인구 보너스’가 ‘인구 오너스(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고 부양해야 할 노인인구는 많아져 경제성장에 부담이 되는 현상)’로 바뀌는 저출생 고령화 시대에는, 세대별로 내는 보험료와 받는 연금액의 규모 분석이 필수적이다. 서구의 연금 개혁에서 수지 균형 개념이 도입된 이유다. 세대 갈등의 객관적 위험이 존재함에도 그 모순을 이야기하지 않는 게 오히려 지금의 세대 불평등에서 이득을 보는 기득권자들의 논리 아닐까?(오건호 정책위원장)”

소득대체율 인상을 요구하는 진보 진영 내부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인상을 전제로 보험료율 인상’이라는 기존 당론을 바꿔 ‘소득대체율 인상 없는 보험료율 인상’을 공약했다. 대선 이후 정의당 내부에서 이견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2월16일에는 ‘미래세대·일하는 시민의 연금개혁네트워크(준비위원회)’가 토론회를 개최했다. 청년유니온·전국청년네트워크·한국프리랜서협회·노후희망유니온 관계자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김설 청년유니온 위원장은 ‘소득대체율 인상론’에 대해 “기금 고갈 시점 이후의 미래세대 재정부담은 그대로 방치된다. 노후소득 강화 관점에서도 명목 소득대체율을 강화하는 것보다는 실질 소득대체율을 강화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와 양대 노총이 참여하는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의 소득대체율 인상론과는 다른 입장이다. 진보 진영 내부에서 토론이 이어질 듯하다.

■ 다층 연금체계 vs 국민연금 강화

현재 한국의 정년은 60세인데 국민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는 65세다. 5년간 공백이 있다. 이 공백을 메우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정년을 올리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연금을 붓는 기간만 늘리는 것이다(의무가입 상한 연령을 현 60세 미만에서 65세로 상향). 장기적으로 정년을 연장해야 하지만, 호봉제하에서 임금을 어떻게 줘야 할지의 문제와 청년 일자리 감소 가능성 때문에 쉬운 선택지는 아니다. 60세까지 주된 일자리에서 일할 수 있었던 공공부문 정규직 등 노동시장의 중심부 계층에게만 혜택이 가리라는 우려도 높다. 노동조합 중심으로 정년 연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해마다 더 강하게 분출될 전망이다.

2월8일 국회 연금개혁특위 여야 간사와 민간자문위 위원장들이 연금 개혁 논의를 위해 만났다.ⓒ연합뉴스

노후소득 보장 정책은 어떻게 재편해야 할까. 재정안정화론자들은 ‘다층 연금체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안정적인 직장에 오래 다닐 수 있는 중간층 이상 계층에게는 ‘퇴직연금 제도’를 활용할 수 있다. 사업주들은 노동자 월 소득의 8.33%만큼을 퇴직금으로 적립하도록 법으로 강제되어 있다. 퇴직연금은,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하는 대신 지금의 국민연금처럼 매달 지급받아 부족한 노후소득을 보완하게 하려는 제도다. 2005년 도입되었으나 활성화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말 기준, 만 55세 이상이 되어 퇴직연금 수급을 개시한 계좌 중에서 95.7%가 퇴직금을 일시금으로 수령하고 있는 실정이다. 퇴직금 일시금 수령은, 주된 일자리에서 이르게 퇴직해 자영업에 뛰어들게 하는 악순환의 고리이기도 하다. 고용보험의 실업급여를 강화하는 한편 퇴직금 일시금 수령 조건을 엄격히 하고, 현재 국민연금보다 낮은 퇴직연금의 수익률을 높이면, 굳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올리지 않더라도 중간층 이상의 노후소득 보장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저소득층 노인의 안전망으로는 국민연금 외에 기초연금을 강화하는 방안이 꼽힌다.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월 30만원을 주는 기초연금은, 국민연금에 포괄되지 않은 이들에게는 거의 유일한 안전망이다. 한국 기초연금의 평균소득 대비 급여 비중은 OECD 평균보다 크게 낮은 반면, 65세 이상 인구 중 기초연금을 받는 인구 비율은 약 70%로 OECD 평균(22%)의 세 배다. 이와 관련, OECD는 2018년 “기초연금의 적용 범위를 ‘절대빈곤에 처해 있는 65세 이상’으로 좁히면, 정부의 전체 예산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서 이들에 대한 혜택 수준을 크게 높일 수 있을 것”이라고 권고한 바 있다. 스웨덴은 1999년 모든 노인을 대상으로 하지만 액수는 낮았던 기초연금을 하위계층에 국한하되 액수는 늘리기로 결정했다. 이렇게 저소득층에게는 기초연금의 기능을 강화하고, 고소득층에게는 퇴직연금을 활성화하면,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인상하지 않고도 노후소득 보장 체계를 더욱 튼실하게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소득대체율 인상론자들은 다층 연금체계에 회의적이다. 근속연수가 짧은 한국 노동시장을 고려하면 퇴직금을 ‘연금화’하기가 쉽지 않고, 민간 연금의 역할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이에 대해서는 국민연금공단이 퇴직연금을 운용하는 옵션을 선택하게 하자는 제안도 나온다). 또한 소득대체율 인상론자들이 보기에는 기초연금이야말로 미래세대에 부담이다. 보험료를 내지 않아도 세금으로 지원받는 기초연금보다는 국민연금이 그나마 미래세대의 부담을 줄여주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소득대체율 인상으로 국민연금 급여 수준이 올라가면 기초연금에 들어갈 재정이 줄어든다. 여기서 아낀 조세를 미래세대 국민연금 보험료 지원에 쓸 수 있다(남찬섭 교수).”

하지만 국민연금처럼 가입 기간 10년이라는 ‘문턱’이 있고, 생애 소득과 가입 기간에 연금액이 연동되는 제도의 한계를 고려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찮다. 앞서의 〈그림 3〉에 따르면, 국민연금에 10년 가입한 월 100만원 소득자는 소득대체율이 50%로 올라도 수령액이 24만1000원이다. 기초연금 30만원을 더해도 54만1000원에 불과하다. 기초연금을 하위계층의 최저소득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강화하면, 지금처럼 하위 70% 노인에게 모두 지급하는 것보다는 부담이 줄면서도 유의미한 노후소득 보장 정책이 될 수 있다. 단, 이를 위해서도 증세는 필요하다.

국민연금 가입자 중 사업 중단이나 실직 등의 이유로 보험료를 내고 있지 않은 ‘납부예외자’가 307만명(13.9%), 보험료를 13개월 이상 장기 체납한 사람이 100만명(4.5%)에 달한다(남인순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2021년 6월 기준). 사각지대의 핵심은 ‘지역가입자’다. 국민연금 가입자는 크게 직장가입자(1인 이상 사업장의 사업주와 노동자), 그리고 이에 해당하지 않는 지역가입자로 나뉜다. 직장가입자인 노동자는 보험료 절반(소득의 4.5%)을 사업주가 내준다. 같은 지역가입자 중에서도 농어민은 국가가 보험료를 50%까지 지원해준다. 그러나 도시 지역가입자에 해당하는 영세 자영업자, 프리랜서, 특수고용 노동자 등은 소득의 9%를 고스란히 보험료로 내야 한다. 연금에 국가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면, 연금급여를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는 계층의 소득대체율을 높이기보다, 국민연금에 가입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는 쪽이 낫다고 재정안정화론자들은 생각한다. 예컨대 보험료를 9%에서 15%로 올릴 경우, 도시 지역가입자 인상분의 절반(3%)을 국가가 지원하는 것이다.

■ 연금 개혁은 정치다

결국 연금 개혁은 한정된 자원을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중 무엇에, 국민연금 내에서도 누구에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정치의 문제다. 동시에 현세대 가입자들의 공감을 끌어내야 동력이 생기는 과제다. 소득대체율 인상이라는 반대급부 없이 보험료율 인상을 관철할 수 있을까? 재정안정화론의 가장 취약한 지점이다.

〈동아일보〉는 지난해 9월 서울 서대문구 현대백화점 신촌점 정문 앞에서 국민연금 관련 즉석 설문조사를 했다. ‘10만원 더 내자’는 팻말을 내걸자 63명이 반대하고 46명이 찬성했다. 닷새 뒤 같은 자리에서 같은 팻말을 들었다. 단, ‘아이들과 청년 위해’라는 여덟 글자를 덧붙였다. 반응이 달랐다. 찬성이 67명으로 다수였고, 반대는 36명에 그쳤다. 어떤 가치로 설득하느냐에 따라 시민들이 꼭 연금 개혁에 반대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1월19일 프랑스 툴루즈에서 정부의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노동자들이 거리로 나서 시위를 벌였다.ⓒEPA

오히려 준비되지 않은 것은 정치 쪽일지도 모른다. 대통령실 안상훈 사회수석은 지난해 8월 “더 내고 덜 받거나, 아주 많이 내고 조금 더 받거나”라고 대략적 방향을 언급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정부 안은 따로 없는 상황이다(국민연금법에 따르면 오는 10월에 정부안이 나올 예정이다). 그 전에 국회 연금특위에서 단일한 안이 나올지는 불투명하다. 최근 특위 산하 민간자문위원들이 단일안을 도출하려다 실패했고, 논의는 원점으로 돌아갔다.

연금특위 더불어민주당 간사인 김성주 의원은 “‘더 내고 더 받는다(보험료율도, 소득대체율도 인상한다)’는 게 민주당의 기본 방향이지만, 구체적인 안은 복잡하고 이해관계가 얽힌 문제라 낼 수도 없고 내는 게 바람직하지도 않다. 야당 입장에서 꼭 적극 나서야겠냐는 볼멘소리가 내부에 있는 것도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연금특위 민간자문위원으로 참여하는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전문가의 역할은 논점을 명확히 하는 것 정도인데, 서로 입장이 다른 전문가들에게 한 달 반 만에 합의하라고 하는 등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측면이 있다. 지난 대선에서 모든 후보들이 연금 개혁을 한목소리로 외친 것에 비하면, (대통령실이나 정당들이)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라고 말했다. 내년 4월 총선이 예정돼 있는 만큼, 총선 뒤로 미뤄질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5일 제1차 국정과제 점검회의에서 “이번 정부 말기나 다음 정부 초기에는 앞으로 수십 년간 지속할 수 있는 연금 개혁의 완성판이 나오도록 지금부터 시동을 걸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서두르는 듯한 인상은 아니다.

연금 개혁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독일도 2001년 연금 소득대체율을 70%에서 53%까지 낮췄고, 2025년까지 48%로 유지하기로 했다. 독일과 스웨덴, 일본 등은 기대여명 등 객관적 조건의 변화에 따라 수급액을 자동으로 조정하는 이른바 ‘자동 안정화 장치’를 도입했다. 정치적 부담이 큰 연금 개혁을 반복하는 대신, 자동적으로 개인들이 부담을 나눠 질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러면서도 생계가 곤란할 때까지 오래 살더라도 최소한의 생활을 유지하게 해주는 연금의 공적 기능은 유지하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연금을 받기 시작하는 나이를 62세에서 64세로 늘리는 내용을 담은 마크롱 정부의 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시민들이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광경이 생소하게 느껴진다(한국과 일본에서 정년은 고용관계를 강제로 종료시키는 나이이지만, 프랑스 등 유럽 나라에서 정년은 곧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을 의미하므로 정년 연장은 연금을 늦게 받는다는 뜻이 된다). 젊은 세대가 중장년층과 함께 광장에 나와 ‘부자가 더 부담하라’고 목소리를 내는 풍경도 ‘세대 간 연대’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2027년이 되면 연금 적자가 120억 유로(약 16조4000억원)에 달한다는 프랑스의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이미 27.8%(노동자 측 11.3%, 사용자 측 16.5%)에 이른다. 소득대체율은 60.2%다(OECD Pensions at a Glance 2021). 하락하고 있다는 프랑스의 2020년 합계출산율은 1.83명. 한국은 지난해 0.78명이다. 프랑스 사례가 우리의 낙관 근거가 되긴 어려워 보인다. 가장 인구가 많은 1차 베이비부머 세대(1955~1963년 출생)는 이미 2015년부터 국민연금 가입자 신분을 벗어났다. 올해는 1963년생이 국민연금을 ‘졸업’하는 해다. 한국 사회의 갈등해결 능력이 시험대에 올랐다.

 

한국의 소득대체율은 정말 낮은가

법에서 정한 국민연금의 명목 소득대체율이 국제적 수준에 비해 낮다는 견해가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2세에 연금에 가입해 그 나라가 허용한 최대 가입연령까지 보험료를 납부한 사람이 은퇴 뒤 자신이 일할 때 벌던 소득의 몇 퍼센트를 민간 연금이 아닌 공적연금으로 받는지, 즉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을 비교한다. 2021년 OECD 보고서를 보면, 한국은 공적연금의 소득대체율이 31.2%로 나온다. OECD 평균은 42.2%다. 소득대체율 인상론자들은 이 수치를 근거로, 한국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이 다른 나라보다 낮으며, 따라서 노인빈곤 방지를 위해서는 소득대체율을 올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상 한국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에는 기초연금이 포함되어 있지 않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 역시 논란의 여지가 있다. OECD 국가에서 22세에 연금에 가입한 사람은 평균 약 66세까지 보험료를 부을 수 있다(가입 기간 44년). 한국은 60세 미만까지만 가입할 수 있으므로, 38년 가입한 사람이 기준이 된다(60세-22세). 가입 기간이 짧으니 소득대체율도 40%보다 낮게 나온다(한국의 ‘소득대체율 40%’는 40년 가입 기준이다).

40년 가입 기준 40%라면, 38년 가입의 경우 38%여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왜 38%도 아닌 31.2%가 되는 걸까? OECD가 비교 대상으로 삼는 연금 가입자의 은퇴 전 소득은 그 나라의 ‘노동시장 상시고용자 평균소득’이다. 한국은 2020년 기준 월 383만원이다. 그런데 국민연금은 상시고용자뿐 아니라 영세 자영업자도 가입하므로, 국민연금 가입자의 평균소득은 월 244만원으로 더 낮다. 중요한 건 국민연금에는 일부 ‘재분배’ 기능이 있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소득이 높은 사람(예컨대 상시고용 평균소득자)에게는 더 낮은 소득대체율을 적용하고, 상대적으로 소득이 낮은 사람에게는 더 높은 소득대체율을 적용한다. 이런 하후상박 구조 때문에 OECD 통계에서는 한국의 소득대체율이 낮아 보이지만, 국민연금 전체 가입자의 평균 소득대체율은 낮지 않다는 것이다.

더욱이 한국의 해당 수치에는 ‘기초연금’이 포함돼 있지 않다. 소득 하위 70% 노인에게 월 30만원을 주는 기초연금은, 보험료가 아니라 세금으로 노인을 지원하는 제도다. OECD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은 국민연금 같은 사회보험뿐 아니라 기초연금 등 세금 기반 노후소득 보장 제도를 포괄한다. 단, 일부 노인에게만 주는 기초연금의 경우, 상시고용 평균소득자가 받을 수 있을 때만 소득대체율 계산에 포함한다. OECD는 노인 70%에게 주는 한국의 기초연금을 상시고용 평균소득자가 받기 어렵다고 판단했고, 여러 계산상 난점도 있어서 한국 소득대체율 계산에서 기초연금을 제외한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2022년 국민연금 총 급여 지출은 30조원, 기초연금 지출액은 20조원이다. 무시하기에는 덩치가 꽤 큰 공적연금이다. 그래서 재정안정화론자들은 OECD 보고서상의 수치를 근거로 한국의 공적연금 소득대체율이 낮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국민연금 소득대체율만 제대로 따져보더라도 다른 나라보다 낮지 않다고 주장한다.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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