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27일 서울에 위치한 한 고용복지센터에서 실업급여를 신청하려는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7월27일 서울에 위치한 한 고용복지센터에서 실업급여를 신청하려는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시사IN 조남진

“재계약하지 않겠습니다.” 64세 유정태씨(가명)는 지난해 7월, 3년 동안 일한 빌딩 경비직에서 물러나야 했다. 1년짜리 계약직이라 매년 재계약을 했지만 회사는 더 이상 유씨를 쓰지 않겠다며 계약 종료를 통보했다.

처음으로 실업급여를 받아봤다. 3년 이상 재직한 50세 이상 실업자에게는 총 7개월 동안 실업급여가 지급되었다. 시간 날 때마다 워크넷(고용노동부 취업 포털)에 들어가 이력서를 넣었지만 은퇴 연령에 가까운 유정태씨를 쓰려는 회사는 없었다. 실업급여를 받은 지 4개월쯤 됐을 무렵, 유씨는 내일배움카드를 발급받아 전기기능사 자격증 학원에 등록했다. 단순 경비직으로는 똑같이 불안정한 저임금 노동만 반복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유씨는 올해 4월에 자격증을 취득하고, 곧바로 5월부터 새 직장(빌딩 설비팀)에서 일을 시작했다. 마찬가지로 1년짜리 계약직이지만, 급여나 처우는 이전보다 조금 나았다. 유씨는 실업급여를 받던 시기를 떠올리며 “우리한테는 실업급여가 목숨줄이나 다름없었다”라고 말했다.

유정태씨의 사례는 어쩌면 고용보험 제도가 제 기능을 한 모범적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같은 인물에게, 같은 기간 전혀 다른 이야기도 있다. 유정태씨는 실업급여를 받던 지난해 12월 해외여행을 다녀왔다. 자녀들이 팬데믹 기간에 모아둔 여행 적금으로 온 가족이 3박4일 동안 일본 후쿠오카를 다녀왔다. 여비 대부분은 자녀들이 지불했지만, 현지에서 본인 생활비로 용돈을 쓰기도 했다.

실업급여가 나오는 동안 자격증을 취득해 더 나은 일자리를 얻은 것도, 그동안 해외여행을 다녀온 것도 모두 ‘급여 수급자’ 유정태씨의 일상이다.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떠올리게 된다. 과연 유씨가 경험한 ‘실업 기간 동안의 일상’은 칭송하거나 비난해야 할 대상이 될 수 있을까?

이 모습을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7월12일 국민의힘은 실업급여 제도를 손보겠다며 현장 실무자를 초빙해 공청회를 열었다. 이날 공청회에서 나온 발언이 논란이 됐다. “실업급여가 악용되어 달콤한 보너스라는 뜻의 ‘시럽급여’가 되지 않게 해야”라는 발언이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 입에서 나왔다. 회의에 참석한 조현주 서울지방고용청 실업급여 담당자는 “실업급여 신청하러 온 사람들이 웃으면서 방문한다. 여자분들, 젊은 청년들, 이 기회에 쉬겠다고 온다. 실업급여를 받는 도중에 해외여행 간다. 그리고 자기 돈으로 일할 때 살 수 없었던 샤넬 선글라스를 사든지 한다. 이건 아니지 않나”라고 말했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왼쪽 두 번째)은 ‘시럽급여’ 발언으로 반발을 샀다. ⓒ연합뉴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왼쪽 두 번째)은 ‘시럽급여’ 발언으로 반발을 샀다. ⓒ연합뉴스

‘수급자다움’을 요구한 이 발언에 반발하는 여론이 거셌다. 7월14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 출석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샤넬 선글라스’ 발언에 대해 “제도의 취지에 맞게 제대로 실업급여가 작동되도록 한다는 취지였는데 일부만 부각됐다”라고 말했다. 여론의 역풍이 강하다고 해서 정부·여당이 추진하려던 정책이 멈춘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는 실업급여를 ‘짧고 굵게’ 받는다. 나이와 고용보험 가입 기간에 따라 최저 90일에서 최대 270일(9개월)까지 실업급여가 지급된다. 하한 금액(최저 금액)은 최저임금의 80%인 184만7040원 수준이다(2023년 기준).

OECD가 진짜 문제 삼은 것

이정식 장관을 비롯한 정부 핵심 관계자들은 ‘굵게(많이) 받는 것’에 초점을 두고 제도를 손봐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업급여 하한선이 최저임금을 받는 임금노동자의 실수령액보다 높은 경우가 생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한선을 낮추거나 없애고, 반복 수급과 부정 수급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책의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 장관은 이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보고서까지 언급하며 “OECD도 구직급여를 받으면 최저임금 사업장에서 일하는 것보다 소득이 역전되는 부분을 개선하도록 권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막상 이정식 장관이 언급한 OECD 보고서(Economic Surveys: Korea 2022)는 오히려 실업급여의 지급 기간을 늘리고 실업급여가 최저임금 노동자의 실질소득을 넘어서는 부분을 조정할 것을 주문한다. 장관이 직접 ‘기간’에 대한 논의는 쏙 빼놓은 채, ‘얼마나 주느냐’에 대한 언급만 선택적으로 취한 셈이다.

애초에 OECD가 지적한 고용보험 사각지대 문제는 지난 문재인 정부의 핵심과제 중 하나였다. 1995년 도입된 한국의 고용보험 시스템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을 마주하면서 사각지대 문제가 부각되었다. 자영업자와 특수고용직(캐디, 학습지 교사 등)뿐 아니라 기술발전으로 확대된 플랫폼 노동자에 대한 고용보험 미적용 문제가 불거졌다.

고용보험 사각지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는 2020년 12월에 ‘전 국민 고용보험 로드맵’을 발표했다. 보편적 고용안전망을 제공하기 위한 고용보험 확대 계획이다. 기술발전으로 인해 전통적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구분이 희석되고 고용 형태가 다양해지는 추세에 맞춰 ‘소득에 기반한’ 고용보험을 2025년까지 확대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등장한다. 바로 ‘소득 기반’이다. 실업을 보호하기 위한 정책은 그동안 노동시간을 중심으로 체계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특수고용이나 프리랜서 등은 회사나 시간 단위로 편성된 고용보험 시스템에 편입되기가 어려웠다. 실업 여부와 급여 수급 같은 고용안전망의 기준을 개개인의 ‘소득’에 맞추는 작업이 반드시 병행되어야 했다. 기술발전으로 대다수 시민의 경제활동이 세무 전산시스템에 기록으로 남기 때문에 가능한 계획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8월9일, 서울 노원구 서울북부고용센터 앞에서 시민들이 실업급여를 신청하려고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1년 8월9일, 서울 노원구 서울북부고용센터 앞에서 시민들이 실업급여를 신청하려고 줄지어 서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2022년에 들어선 윤석열 정부는 전임 정부의 이 로드맵을 그대로 계승하지 않는다. 고용보험뿐 아니라 노동정책 전반에서 ‘문재인 정부 지우기’가 주된 과제인 것처럼 보인다. 다만 명분상 고용보험을 비롯한 고용안전망의 사각지대가 존재하고 업종과 고용 방식에 따라 안전망의 격차가 크다는 점은 인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소득 기반’에 따른 고용안전망 확대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윤석열 정부는 과거 로드맵이 규정한 대로 기존 고용보험에 다양한 직군을 확대 포섭하기보다는 ‘노무 제공자·자영업자 등의 특성을 고려해 다양한 방식의 소득 지원이 가능하도록 보완적 고용안전망을 사회적 논의를 거쳐 마련하겠다(고용정책 기본계획)’고 주장한다.

‘문재인 정부 지우기’와 ‘소득 기반 고용안전망 확대’ 사이에서 택할 수 있는 정책적 선택지는 한정적이다. 여기에 윤석열 정부는 재정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전제조건이 추가된다. 이번 실업급여 축소 논의도 이런 조건에서 나왔다. ‘시럽급여’ 발언 이후 비판에 직면했던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7월14일 “(고용보험기금이) 10조2000억원 흑자였다가 3조9000억원 적자 나는 구조를 바꾸자는 것이다”라며 돈을 아끼는 것을 주된 정책 목표로 언급했다.

“결국 사람을 늘려야 하는 문제”

전임 정부의 색채를 지우고, 고용안전망은 확보하며, 돈은 쓰지 말아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하에서 윤석열 정부는 어떤 정책을 펼치고 싶은 것일까? 전체적인 방향성은 지난 1월29일과 1월30일에 연이어 발표한 ‘고용서비스 고도화 방안’과 ‘고용정책 기본계획’에서 찾아볼 수 있다.

윤석열 정부가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은 적극적인 고용서비스 제공이다. 한마디로 실업자가 다른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해주고 재교육하는 데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고용서비스 고도화 방안’에서 정부는 이렇게 지적한다. “그간 우리 고용센터는 코로나19 과정에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급여 지원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고용센터 본연의 업무인 구직자에 대한 일자리 연계 등 취업 지원에는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실업급여로 대표되는 급여 지급보다 실업자에게 좀 더 적극적으로 일자리를 연결하는 게 더 효과적인 고용안전망 정책이라는 설명이다.

고용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윤석열 정부의 접근이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문제는 사회서비스 확대를 위한 재정지출에 얼마나 의지를 보이느냐다. 사회서비스 분야에 집중하겠다고 정책적으로 천명했으면, 여기에 따르는 자원 투자 계획도 함께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사회서비스 분야에 예산을 늘리겠다는 구체적 발표는 아직 없다. 재정지출 의지에 대해 의구심 섞인 반응이 많다. 남재욱 한국교원대 교수는 “현장에서 고용서비스 실무진과 인터뷰해보면, 기초적인 행정만 하기에도 인력이 부족한 상태라고 답한다. 고용서비스는 일종의 커리어 가이드를 제공해야 한다. 결국 사람을 늘려야 하는 문제다. 정부의 고도화 방안에도 정작 가장 중요한 인프라와 인력 확충에 대한 이야기는 빠져 있다”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정부는 실업급여 부정 수급을 근절하기 위해 ‘데이터 기반 기획조사 강화, 검경 합동조사, 특별점검 확대’ 등을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다. 부정 수급을 감시하고 판별하는 데에도 고용서비스 인력과 인프라가 소요된다. 정부가 하겠다는 것만 하는 데에도, 결국은 재정지출이 필수다. 돈을 줄이는 방향만으로는 정권 초반에 목표로 삼은 고용서비스 확대가 요원해진다. ‘샤넬 선글라스’와 ‘시럽급여’로 대표된 소란스러운 정국에 가려진 진짜 논의는 이런 것들이다.

7월17일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정부와 여당의 실업급여 축소 정책에 반발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7월17일 국회 앞에서 민주노총 관계자들이 정부와 여당의 실업급여 축소 정책에 반발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자명 김동인 기자 다른기사 보기 astoria@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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