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은 8월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하르츠 개혁’을 언급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독일’을 언급했다. “독일에서 노동개혁 하다가 사민당이 정권을 17년을 놓쳤다고 한다. 그러나 독일 경제와 역사에 매우 의미 있는 개혁을 완수했다.” 여기서 윤 대통령이 든 사례는 맥락상 하르츠 개혁을 뜻한다. 과거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도 하르츠 개혁을 모범으로 치켜세웠다. 특히 보수언론이나 재계에서 자주 소환한다. 그런데 하르츠 개혁이 정확히 무엇일까?

하르츠 개혁은 독일 정부가 2002~2005년 추진한 광범위한 노동시장 개혁이다. 사회민주당-녹색당 연립정부를 이끌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선거를 앞둔 2002년 2월 폭스바겐 노무담당 이사 출신인 페터 하르츠가 주도하는 논의기구 ‘노동시장의 현대적 서비스 위원회’를 만들었다. 이후 재집권에 성공한 슈뢰더 총리는 이 위원회의 제안이 포함된 ‘어젠다 2010’이라는 대대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내놓았고, 이 가운데 노동시장 관련 내용을 ‘하르츠 1~4 법안’으로 구체화해 통과시켰다. 일련의 과정을 ‘하르츠 개혁’이라고 칭한다.

실업자를 다시 노동시장으로

개혁의 목표는 ‘장기 실업자들을 다시 노동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이었다. 1990년대 이후 독일에서는 실업자가 400만명을 넘고 실업률이 10% 안팎인 고실업 상태가 지속됐다. 통일 이후 기존 복지를 동독 출신 실업자에게도 제공해야 하다 보니 부담이 상당했다. 이대로 가다가는 히틀러가 등장했던 바이마르 시절의 실업자 수(600만명)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컸다.

이에 독일은 ‘나쁜 일자리라도 실업보다는 낫다’는 기조하에 노동시장을 일부 유연화했다. 대표적으로 ‘미니잡(Mini Job)’을 활성화했다. 미니잡이란 사회보험료가 면제되는 저소득 취업자를 말한다. 하르츠 개혁 이전에는 주 15시간 미만 일하면서 월 325유로(약 44만원) 이하를 버는 사람만 미니잡으로 인정받았다. 개혁 이후에는 주 15시간 이상 일하더라도 월 400유로(2013년 이후에는 450유로, 약 61만원) 이하 임금을 받으면 산재보험을 제외한 사회보험료와 세금을 면제해주기로 했다. 이때 면제 대상은 미니잡 종사자이며, 그를 고용한 사업주는 여전히 사회보험료와 세금을 합쳐 급여의 25%(이후 30%로 조정)를 부담하도록 했다. 당시 독일에서는 가사노동이나 서비스업에서 노사가 사회보험료를 내지 않는 ‘불법 고용’이 증가하고 있었는데 이를 양성화하자는 취지였다.

미니잡 외에도 파견노동자를 쓸 수 있는 기간의 제한(2년)을 없애는 등 파견 노동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법을 개정했다. 또한 기간제 계약직을 채용하려면 객관적 사유가 있어야 하는데, 새로 창업한 기업의 경우 처음 4년간은 사유 없이도 채용할 수 있게 했다. 그뿐 아니라 해고보호법이 적용되지 않는 사업장 범위를 5인 이하에서 10인 이하 사업장으로 넓혔다. 이는 고용 유연화에 해당하기는 하지만, 독일 정부는 “이러한 해고보호법 개정이 미국식의 ‘채용과 해고의 자유’로 대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박귀천, ‘독일 노동개혁은 무엇을 남겼나? 하르츠 개혁을 중심으로’, 〈노사공포럼〉 통권 제36호, 2015).

2015년 5월21일 한국을 방문한 페터 하르츠(오른쪽)가 청중들로부터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정작 하르츠 개혁에서 가장 논란이 된 대목은 ‘하르츠 4 법안’으로 대표되는 실업급여 개편이다. 이전에 독일 실업자들은 3단계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즉 나이와 가입 기간에 따라 실직 후 최장 32개월(2년8개월) 동안 재직 시 벌던 돈의 3분의 2를 ‘실업급여’로 받을 수 있었고, 이 기간에 재취업에 실패해 장기 실업자가 되면 일할 때 벌던 돈의 53~57%를 사실상 기간 제한 없이 ‘실업부조’로 받았으며, 이에 더해 저소득층은 ‘사회부조’를 제공받았다. 이렇다 보니 재정은 많이 드는데 실업자들이 다시 구직에 나설 동기는 부족했다. 저임금 일자리를 얻기보다 실업부조와 사회부조를 받는 편이 더 나은 경우도 있었다.

2005년 시행된 하르츠 4 법안은 세 가지 지원제도를 ‘실업급여 Ⅰ’과 ‘실업급여 Ⅱ’로 바꿨다. 이 중에서 실업부조와 사회부조를 합한 ‘실업급여 Ⅱ’를 둘러싼 논란이 특히 격렬했다. 이전에는 일할 때 벌던 소득의 53~57%를 받던 것을 기초생활보장 수준으로 낮췄고, 지급 조건도 엄격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공공 고용서비스를 통해 소개받은 일자리를 합리적 이유 없이 거부하면 급여를 삭감하는 식이었다. 실업급여 Ⅰ에 대해서는 최장 수급기간을 32개월에서 12개월(고령자는 18개월)로 단축했다. 모두 실업자를 노동시장으로 밀어내는 방향의 변화였다. 하르츠 4 법안은 하르츠 개혁의 대명사처럼 받아들여졌다. 통일 전 동독 시민들이 공산정권에 항의하며 벌인 ‘월요 시위’를 15년 만인 2004년 8월에 부활시킬 정도였다. 이번에는 복지 삭감에 항의하는 월요 시위였다.

하르츠 개혁은 독일 내에서도 엇갈린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은 2013년 10월19일 베를린에서 열린 하르츠 개혁 반대 시위. ⓒdpa

하르츠 개혁을 추진한 슈뢰더 총리는 2005년 5월 사회민주당의 지지 기반이던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지방선거에서 패배하자 조기 총선을 제안한다. 어느 쪽도 과반을 얻지 못했고, 긴 협상 끝에 보수 계열인 기독민주당·기독사회당과 진보 계열인 사회민주당의 연정이 시작되어 앙겔라 메르켈이 총리에 올랐다. 그렇다고 하르츠 개혁이 철회되지는 않았다. 메르켈은 하르츠 개혁의 기본 방향에 동의함을 밝히며 일부 수정하는 노선을 택했다. 노동사회장관 등 노동정책 담당자들도 사민당에서 기용됐다. 다만 이 과정에서 하르츠 개혁에 반대하는 사민당 내 세력이 탈당해 2007년 좌파당을 창당할 만큼 상처가 컸다.

사민당은 지난해 말 선거에서 이겨 16년 만에 다시 집권에 성공했다. “사민당이 정권을 17년 놓쳤다”라는 윤 대통령의 말은 16년의 ‘착오’로 보인다. 엄밀히 말하면 사민당은 2005년 이후 연정에도 참여했기에 ‘노동개혁 하다가 정권을 놓쳤다’고 표현하는 것도 정확하지는 않다. 그렇다면 하르츠 개혁이 “독일 경제와 역사에 매우 의미 있는 개혁”이었다는 윤 대통령의 규정은 사실에 부합할까.

하르츠 개혁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실업 관련 지표가 크게 개선된 것은 분명하다. 2005년 11.3%에 달했던 독일 실업률은 코로나19 기간을 제외하면 지속적으로 낮아져 지난해 3.6%를 기록했다(OECD 평균 6.2%). 청년실업률(15~24세)도 7%로 OECD 평균 12.8%보다 현저히 낮다. 2005년 500만명을 넘었던 독일의 실업자 수는 현재 250만명 수준이다. 실업률이 낮아졌을 뿐 아니라 고용 인구 자체가 고령자와 여성 중심으로 크게 늘었다. 독일이 유럽의 ‘병자’에서 ‘견인차’가 된 것은 하르츠 개혁 덕분이라는 주장이 존재한다.

평가 엇갈리는 개혁

그러나 이것이 온전히 하르츠 개혁의 효과인지는 불분명하다. 다른 해석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요르그 미하엘 도스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과거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2002년부터 현재까지 10여 년의 독일 성장은 유럽 통합에 따른 통화 절하 효과”라고 말한 바 있다(독일의 훈수 “하르츠 개혁, 한국에 맞지 않다”, 〈조선비즈〉 2015년 9월7일 기사).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독일의 고용 충격이 크지 않았던 것도, 하르츠 개혁의 성과라기보다는 ‘노동시간을 단축해서라도 어떻게든 고용을 유지하려는 독일의 전통’이 힘을 발휘했다는 평가가 있다.

독일은 높은 고용률을 달성했으나, 유럽 영어 뉴스 사이트인 〈더 로컬(The Local)〉에 따르면 현재 4200만 노동자 중 760만명이 미니잡으로 일한다. 미니잡 종사자 수는 2003년에서 2019년 사이 43% 증가했다. 2001년 34만1000명이던 파견 노동자 수도 2017년 100만명을 넘어섰다. 이러한 비정형 일자리가 정규직으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지는 여전히 논쟁적이며, 오히려 여성의 경력 단절로 이어졌다는 비판적 시각이 있다. 하르츠 개혁 이후 독일의 고용률은 높아졌으나 실질임금은 낮아졌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숙련된 정규직 고용 중심의 제조업과 저숙련의 비정규직화된 서비스업의 격차 문제가 심각하게 제기”되기도 한다(박명준, ‘최근의 사회보장 개혁 동향-하르츠 개혁 사례’, 〈독일의 사회보장제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8).

독일 사회는 하르츠 개혁이 축소한 복지를 조정하고, 개혁의 부작용에 대한 방안을 마련해왔다. 독일 연방 헌법재판소는 2010년, 논란의 중심이었던 ‘실업급여 Ⅱ’ 수급자와 그 부양가족에게 지급하는 급여 수준이 독일 헌법이 규정한 최저생활을 보장하기에 미흡하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후 급여는 상향 조정됐다. 독일이 2015년 역사상 처음으로 도입한 법정 최저임금도 하르츠 개혁과 관련이 깊다. 노사 자치와 산업별 노동조합이 발달한 독일에서는 그간 최저임금법 없이 단체협약으로 임금협상을 해왔으나(북유럽의 많은 나라가 이렇게 한다), 하르츠 개혁 등의 영향으로 노조로 조직되지 않은 비정규·저임금 고용이 늘면서 전국적인 법정 최저임금이 필요해진 것이다. 독일은 하르츠 개혁 당시에 폐지한 파견 노동자 사용 상한 기간을 2017년에 18개월로 다시 설정했다.

한국에서는 하르츠 개혁의 핵심을 ‘유연화’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도 독일처럼 기존 정규직 해고를 쉽게 하고 복지를 축소해야 한다’는 식의 결론을 도출하곤 한다. 그러나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에서 노동법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박귀천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독일에서 일정 정도 규제완화가 이뤄지긴 했어도 ‘기존 정규직 전체’에 대해 해고를 쉽게 하는 방향으로 하르츠 개혁이 이뤄진 적은 없다. 기본적으로는 해고 보호 제도를 사회적 시장경제 체제의 본질적 부분에 속하는 제도로 인정해 그 핵심은 유지되도록 했다는 것이다.

박귀천 교수는 “하르츠 개혁을 한국에 적용하자는 주장은 위험하다. 독일과 한국의 사회보장 수준이 비슷하다고 할 수 있나? 노동조합의 경영참가 정도도, 정치 세력화 수준도 전혀 다르다”라고 지적했다. OECD에 따르면 2019년 기준 독일의 개별해고 보호 수준도, 정리해고 등 집단해고 보호 수준도 한국보다 높다. 독일은 6개월에서 24개월까지 이전에 벌던 세후 순임금의 60~67%를 실업급여로 받을 수 있지만(종전 12개월에서 코로나19 이후 24개월로 늘렸다), 한국은 4개월에서 9개월이며(종전 8개월에서 코로나19 이후 9개월로 늘렸다), 일할 때 받던 평균임금의 60%에 그치는 데다 상한액도 독일보다 훨씬 낮다. “사회보장이 두텁다고 평가받은 독일에서도 고용을 유연화하고 사회보장을 축소했을 때 제일 먼저 타격받은 사람들은 저소득층과 저임금 노동자였다. 한국처럼 양극화가 심한 나라에서는 (비슷한 정책을 관 주도로 일방 추진할 경우) 양극화가 더 심화될 수도 있다.”

최근 고용노동부는 학자 12명으로 구성된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 출범을 알렸다. 이 연구회에 참여하는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사회복지학)는 윤석열 정부가 하르츠 개혁은 물론 특정 국가의 노동개혁을 모델로 삼고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의 ‘노동 교사’로 알려진 정 교수 역시 하르츠 개혁이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성격의 개혁이라 보지는 않는다. “하르츠 개혁은 대표적으로 기존 정규직은 두고 외부자(상대적으로 취약한 노동자들)의 유연성을 강화한 개혁이다. 한국은 노동시장 이중구조 완화가 핵심인데, 하르츠 개혁은 오히려 이중화를 촉진했다고 할 수 있다. 윤 대통령의 하르츠 개혁 언급은 ‘광범위한 개혁을, 정권을 잃을 각오로 과감하게 추진하겠다’는 취지의 원론적 발언이라고 본다.”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는 주 52시간 상한제와 임금체계 개편이라는 두 주제에 관해서만 4개월간 활동하고 정책 제안을 할 예정이다. 향후 윤석열 정부가 기존 정규직이나 파견·기간제 고용을 유연화할 가능성은 여전히 있다.

7월18일 고용노동부가 만든 전문가 논의 기구인 ‘미래 노동시장 연구회’ 회의가 열렸다. ⓒ연합뉴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주임교수는 독일 쾰른 대학에서 유학하며 하르츠 개혁 추진 과정을 한국에 알린 연구자다. 그는 “하르츠 개혁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지만, 독일의 공론장에서 하르츠를 ‘개혁을 성공시킨 상징적 인물’로 부각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금기시되는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하르츠는 폭스바겐 노무담당 이사 재직 시절, 이 회사 노동평의회 의장(한국의 기업별노조 위원장)에게 불법적인 현금을 제공했다는 폭로가 나오면서 2005년 7월 불명예스럽게 물러났다. 이 현금 가운데 일부가 브라질 ‘성관광’에 쓰인 것이 알려지면서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았다. 하르츠는 2007년 1월 법원에서 집행유예와 벌금 57만6000유로(약 7억8200만원)를 선고받았다.

‘고용 유연화’보다 시급한 과제

스캔들에 연루되어 물러나기 전, 애초에 왜 하르츠가 개혁의 리더로 선택되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폭스바겐이 3만명을 해고해야 했던 상황에서 하르츠는 주당 노동시간을 28.8시간까지 줄이는 대신 급여는 조금만 삭감하고 다양한 조직 혁신으로 생산성을 높여 고용안정을 지켰다. 그는 분명 유연성을 강화했으나, 어디까지나 임금·노동시간·조직배치 등 기업 내부의 유연성이었을 뿐 ‘해고를 쉽게 하자’는 것은 아니었다. 박명준 주임교수는 “한국의 기업들은 이미 사내하청이나 외주화로 고용을 유연하게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본다. 오히려 한국의 문제는, 산업구조가 분화되면서 기존 정규직 ‘본고용’은 매우 협소해진 반면 사내하청, 특수고용직, 플랫폼 노동자 등 2차 노동시민으로 분류되는 ‘파생 고용’이 너무나 많아졌고 이들이 아무런 발언권을 갖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지적했다.

한국 노동시장에는 ‘고용 유연화’보다 시급한 일이 많다. “대우조선 하청의 임금은 원청의 기성금(공사가 진척된 만큼 주는 돈)에 전적으로 달려 있지만, 이런 갈등이 아직 제도 영역으로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부가가치 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원청 기업들이 임금 교섭에서든 사회보험료에서든 일정한 책임을 져야 한다. 기업복지를 넘어 실업급여, 연금 등 외부노동시장의 보호 기제도 너무나 취약하다. 하르츠 개혁은 노동시장 유연화만 한 게 아니라 일자리 알선이나 직업훈련 등 고용서비스도 획기적으로 개선했다. 지금 우리의 문제가 뭔지 제대로 진단하고 발본적이고 창의적으로 해결해가야 한다. 헌법이 말하는, 국가가 ‘적정 임금’을 보장할 의무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돌아볼 때다(박명준 주임교수).” 

기자명 전혜원 기자 다른기사 보기 woni@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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